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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전도

구역장님 어디 계시나요?

by 영숙이 2021.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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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울산 교회에 등록하였을 때.

그때 계시던 목사님은

'하루에 7~8시간 기도하기.'

이런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셨고, 뭐든지 열심히 하셔서,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있었다.

주일 날이면 한꺼번에 10여명씩 등록하였고 교회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북적.

영숙이는 목사님이 이끄시는 대로 열심히 따라갔다.

'모으는 복도 주시옵고, 쓰는 복도 주시옵소서.'

모을 줄만 알았지 쓰는 복이 있는 줄을 몰랐었다.

그때 목사님은 예배가 끝나면 교인들을 일어나게 해서 복음송을 많이 불렀는데 그때 많이 불렀던 복음송 중에 하나가

'부흥'

이라는 복음송이었다.

'가사'

이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모두 하나 되어 이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오 주님나라 이땅에 임하소서 이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모두 하나 되어 이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오 주님나라 이땅에 임하소서

목사님은 교회 사택에 사셨는데 새벽기도 시간이나 저녁기도 가면 항상 목사님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0년이 지나고 교회 사업이 바빠지면서 목사님을 성전에서 점점 더 뵙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잘 치지 않는다'

면서 성전에서 떠나 사업에 바쁘시던 목사님은 울산 땅이 떠들석하게 뜨겁던 '부흥'을 일으키셨지만 이후 5년 동안 또 울산 땅이 떠들석하도록 교회 분열을 일으키시면서 교회를 떠나셨다.

이제 목사님이 떠나시고 10년.


그때 이후 다른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때 있었던 열렬한 '부흥' 속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은퇴 후.

교회 앞에서 전도하는데 영숙이는 자신도 모르게

'남울산교회입니다.'

말하고는 하였었다.

그만큼 영적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

목사님이 그렇게 되신 것은 안타깝지만 그때 받았던 긍정적인 영적 영향력은 평생을 간다.


그만큼 영적인 지도자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때 영숙이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준 또 한사람.

"구역장".

영숙이가 살던 도성아파트 구역장은 키가 150인 자그마하고 여위신 분이셨는데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셨다고 했다.

"세상학문은 초등학문이라"

구역식구들을 이끄시던 구역장님은 무척 영적인 분이셨다.


항상 집을 개방하셨고 구역예배를 구역식구들 집을 돌아가면서 드렸는데 그때마다 미리 가서 구역식구들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셨다.


아기 때문에 청소를 못하고 있으면 가서 구역식구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해주셨고, 설겆이가 안되어 있으면 설겆이를 해주셨고, 음식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울산여고에 근무하던 때였는데 점심시간 걸쳐서 4교시나 5교시가 비면 영숙이네 집에 미리 오셔서 구역예배를 준비해 놓고 구역식구들과 모여서 놀고 있었다.


영숙이는 구역예배만 드리고 학교로 가면 구역식구
들과 놀다가 치워놓고 가셨다.

성경공부하는 작은 책이 있었는데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고 또 구역식구들의 작은 문제까지도 정말 열심히 기도해 주셨다.

우리가 모르는 영적 문제에 대해서 물어보면 명쾌하고 쉽게 설명해 주었다.

또 기도 제목을 말하라 해서 말하면 기도 해보시고 응답받은 내용을 말해 주었다.

구역예배가 너무 재미 있었다.

새벽부터 모든 구역식구들이 모여서 구역장님의 차를 타고 새벽기도를 다녔다.

모든 공예배를 구역식구들과 모여서 다니다 보니 매일 새벽, 수, 금, 주일에다가 어떤 토요일 날에는 모여서 함께 교회 식사 준비까지 하다보면 날마다 만났었던 것 같다.

새벽기도 시간에 구역장님은 맨날 울면서 기도를 하였다.

"왜 그렇게 우세요?"

"기도를 하다보면 너무 불쌍해져서 저절로 눈물이 나.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 갈거라고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나서 울며 기도하게 돼."

사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울면서 기도한다는게 솔직히 영숙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저렇게 울면서 기도를 하는거지?'

그때 남울산 교회 새벽기도 시간은 그 넓은 성전에 사람이 가득 가득 차서 항상 와글
와글 떠들면서 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시작하면 마치 여름날 논바닥에 시끄럽게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큰 소리로 기도를 하였다.

목사님 말씀이

"남의 기도 소리가 들리는 것은 그만큼 자기 기도에 집중하지 않고 소리내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 기도소리 들리지 않도록 부르짖으며 기도해라. 하나님은 부르짖으며 기도 할때 응답하신다. 성경을 보면 - 부르짖었더라 - 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

남의 기도 소리 듣지 않으려고 정말 목청껏 소리 소리 지르며 기도 했었다.

물기 없는 마른 목으로 매일 매일 새벽마다 얼마나 부르짖었는지 영숙이 목에서 혈관이 터져서 피를 토하고 응급실에 입원해서 중환자실로 갔다.
터진 혈관을 꿰매느라 입원하였다.

목에서 혈관이 터진 진단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2달 동안 병가를 받았다.

평생 쉬어 본적이 없었던 병가를 받은 후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는 매일 매일 새벽부터 구역장을 만나서 새벽기도 끝나면 아침을 먹고 함께 모여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전도를 했다.

(여고 동창생을 은행에서 만났는데 아는척 하더니 영숙이 집에 놀러 왔고 영숙이도 동창생 집에 놀러 갔더니 동창생이 통일교 간부였다. 이후 구역장하고 동네를 전도 하러 돌아 다닐 때 통일교를 전도하러 다니는 여고 동창생과 사람들이 멀리 보이고는 했다.)

구역장이 시키는 대로 옆집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 다른 동에 있는 똑같은 이름의 아이가 엄마와 함께 와서 등록을 했다.

구역장과 함께 놀이터에 가서 아이들 머리에 손을 올리고 기도를 하면 어떤 아이는 자지러지면서 울었다.

영이 달라서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을 못견디는 것이다.

그때 막 피자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구역장이 집에서 피자를 만들면 우리 모두 구역장네 집에 가서 피자를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이나 기도제목을 내 놓고 기도를 했었다.

구역장이 응답을 받았다고 말해주고 또 응답받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면 또 그게 그렇게 신기해서 더 열심히 기도를 했었다.

그러다보니 구역식구들이 자꾸 자꾸 불어나서 너무 많은 구역식구 때문에 구역을 2개 3개로 나누어야 했다.

영숙이는 구역장 바로 옆동이었으니까 구역장한테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배울게 너무 많은데 어떻게 떨어질까나.

그때 구역식구 중에는 엄마가 무당인 사람도 있었고 집을 절대로 청소하지 않는 구역식구도 있었고 남의 험담을 늘어 놓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들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암에 걸렸는데 무당을 찾아가서 절에 다니고 싶다고 하니까 조용한 절보다는 Up 될 수 있는 교회에 다니라고 해서 온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 저런 사람들
이 많았지만 한번
도 구역장이 그 사람들 험담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냥 구역예배 드리다 보면 이 집이 어떤 상태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저절로 알아질 뿐이었다.

모두들 모여서 행복한 예배를 드리고 행복한 성경공부를 할 뿐이었다.

모든 구역장은 원래 모두 우리 구역장 같은 줄 알았다.

우리 구역장 같은 분이 구역장을 맡아서 하는 줄 알았다.

교회가 시끄러워지기 직전에 구역장 남편이 현대 자동차를 퇴직하게 되어서 구역장은 남편 고향으로 떠났다.

"어떻게 남편하고 결혼하게 되었어요?"

"교회 반사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 시어머니가 몰래 와서 보고는 우리 아들하고 결혼해 달라고 해서 결혼 했어요."

구역장은 키가 150인 작고 여윈 분이셨는데 이렇게 말씀 하셨다.

"태어났는데 너무 작고 약해서 호적에도 2년이나 지난 다음에 올렸대요. 거기에다가 너무 가난한 집이라 너무 먹을 것이 없어서 못먹어서 키가 자라지 않았는데 날마다 엄마 몰래 설탕을 물에 타서 설탕물 을 마시고 그나마 오그라졌던 키가 펴져서 지금의 키가 된거여요."

"초등학교 2학년 까지만 다니고 월사금 낼 형편도 안되어서 학교도 못다니고 공부도 제대로 못했어요. 교회 다니면서 성경책 열심히 읽고 교회 반사를 하고 있었어요."

"까마귀가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엘리야에게 먹이 물어다 주듯
이 교회 봉사 열심
히 하니까 예수님
이 남편을 데려다 준 거지요."

이후,

구역장이 우리 구역에서 떠나 고향으로 가는 바람에 다른 구역에 소속 되었지만 구역장이라고 다 같은 구역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 그때만큼 놀라운 구역장을 만나지 못했다.

하나님이 회심한 영숙이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구역장님.

어디 계시나요?

<구역장님은 아들만 둘이었다.
큰아들은 공부를 잘해서 한양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였다.
우리 구역장일 때에는 작은 아들이 고등학생이었는데 구역장 말에 따르면 공부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고 통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이라 하였다.
수능을 쳤는데 평소 모의고사 점수보다 50점이나 더 나왔다고 했다.
어떻게 기도했냐고 했더니

"시험칠 때 정답만 보이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했는데 평소보다 50점이나 더 나와서 무사히 울대에 입성.
구역장님이 고향으로 떠나고 전혀 소식을 몰랐는데 한전에 다니는 지인이 새로 입사한 한전 직원중에 어머니 이름이 독특했던 구역장 이름인 직원이 들어왔다고 했다. 주소도 구역장님 고향이라고 하였다.
화력발전에 입사한 다음 시험을 쳐서 한전으로 옮기는 경로를 거쳤는데 그렇게 한전으로 옮기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같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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