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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해운대 추억 팔기 1

by 영숙이 2021.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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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에서 송정 가는 기차에 석양이 물들다.

<해운대 추억 팔기 1>

지난 주 화요일날 부스터 샷을 맞았다.

맞으러 가기 전날 몇일 사우나에 못갈 것을 대비해서 사우나도 다녀왔고 다음날 예약 시간에 맞춰 예방접종을 맞았다.

집에 와서 밥 먹고 낮잠 자고 일어나니 찌뿌드드 ~ 아스피린을 먹고 잤는데도 일어나니 기운이 없었다.

몸속에 들어간 백신이 열일 하는 중인가부다.

점심 먹고 전날부터 운동도 안하고, 사우나도 안하고, 집에만 붙어 있었더니 힘들어서 옆에서 나가자고 한다.

차를 탔는데 어디를 가나 했더니 송정에 있는 해운대까지 바다로 향해 있는 열차를 타러 갔다.

전날 한국관광공사에서 소개하는 겨울철 관광지를 유튜브로 보는데 송정에서 해운대까지 예전 기찻길을 왕래하는 기차가 나왔었다.

새로 생긴 지하철때문에 송정의 바닷가 기차길을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송정에서 해운대까지 자주 걸어다니고는 했었다.

한달에 두어번은 갔었던 거 같다.

원래 해운대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해운대가 번잡해지면서 송정을 자주 찾고는 했었다.

아직 송정이 지금처럼 번잡하지 않을 때였다.

건물가격도 싸고 장사도 잘 안되어서 건물이 경매로 많이 나왔었다.

~ 돈 있으면 사고 싶다 ~

군침을 흘리면서 바라보던 곳이다.

이후로 사람이 모이고 해변가가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멋진 카페가 생기고 기찻길에도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녔는데 그 기찻길을 이용해서 발로 구르는 걸 만든다고 환경운동단체에서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는데 영숙이도 서명을 했었다.

원래 그런 일에 서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바닷가에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을 없애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부산 해운대 구청에 반대 글도 게시판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다행이도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길을 잘 만들었고 부산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또 도보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외에 바닷가를 바라볼 수 있는 기차를 만들어서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발돋음을 하고 있다.

예전 송정 기차역에서 왕복 기차표를 끊었다.

캡슐도 있었는데 옆에서 반대해서 포기하고 그냥 기차표만 끊고 기다려서 기차를 탔다.

부스터 샷때문에 기운은 없고 식은 땀이 비질비질 나왔지만 송정 바닷가 관광기차는 처음 타보는 거라서 호기심이 식은 땀을 이기고 있었다.

기차로 보는 바다는 건물들이 가려져서 생각보다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괜찮았다.

캡슐을 만든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시야를 개방해서 바다가 잘 보이게 해놓았을 것이다.

2사람씩 짝꿍끼리 타면 정말 재미 있을 듯.

역쉬 그 길은 기차보 다는 아는 사람들
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푸르른 바닷빛에 눈부셔하면서, 걸어 다니는 도보 길이 정말 최고인 곳이다.

아름다운 ~ 송정 바닷가 ~ 길 ~~~

따뜻한 봄날이 오면 ~ 또 저길을 ~ 따라서 ~ 따라서 ~~~

살아있어서 감사한 길이 될 것이다.

와 ~ 우 ~ 그래도 기차로 20분~.

정신없이 사진 찍고 구포역에 도착하였
다.

구포역에 내려서 해운대 모래사장을 바라보니

막상 어디를 갈까?

날은 춥고 기운은 없고 ......

구포역

넓디 넓은 해운대 모래사장을 보니
46년전 19살때 찾았
던 해운대가 떠오른
다.

선아랑 둘이서 무작정 대전에서 부산까지 4시간 걸리는 완행 기차를 타고 부산역 앞 텍사스 촌에 사는 막내 이모를 찾아 갔었다.

이모는 텍사스촌
에서 다방을 하고 있었다.

이층에 있는 이모네 다방에 가서 이모를 만났을 때 이모는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왔냐고 했다.

밤늦게 다방 문을 닫고 이모네 집에 가는데 산꼭대기 어디 어디까지 올라가서 작은 방 2칸에 달린 마루 아래쪽에 연탄을 넣고 밥을 해먹는 부엌이 있는 집에 살고 있었다.


이모는 방한칸을 우리에게 내어 주고 이모부와 아이 2명을 데리고 다른 방에서 잤다.

한밤중에 이모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면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는 이런 저런 생각을 못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선아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여서 그런 상황을 크게 게의치 않았
었던 것 같다.

영숙이는 철이 없어
서 이러니 저러니 별 생각이 없었고 그렇
게 이모네 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이모가 맛갈 나게 만들어준 아침밥을 먹고 시내 버스에 실려 부산 구경을 다녔다.

진짜 이모 음식솜씨
는 그냥 휘적휘적 만드는데도 어쩜 그렇게 맛깔나고 맛있었는지 정말 신기했다.

이모는 피부도 반짝 반짝 윤이 나는게 정말 좋은 피부에 말솜씨는 또 얼마나 좋았던지 ~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모는 배우지 못했
다는 자격지심 때문
인지 이래저래 자존
감이 낮았었던거 같다.

선아랑 오전부터 이모가 말한 달맞이 고개를 찾아 갔는데 달맞이 고개는 풀밭이 가득한 그냥 산 언덕이었다.


밤에 반짝이 꼬마 전구를 켤 만한 거를 앞에 걸어놓고 밤이 되면 막걸리를 팔
것 같은 허름한 나무 판자로 만든 가게 하나가 전부였다.

조그마한 개울을 건너서 풀밭을 걸어가니 거기에 어느 유명한 시인의 시비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인의 이름과 시비 내용은 40대까지만 해도 기억했었는데 이제는 아물 ~ 아물 ~  

그 다음에 해운대 겨울 바닷가로 왔었는데 그때의 해운대는 정말 황량해서 아무 것도 없었고, 저멀리 아득한 곳에 해운대 호텔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해운대 바닷가로 나가는 길 왼쪽 지금 100층짜리 건물이 있는 곳에 있었던 음식점이라고는 낮으막한 나무 지붕에 허름하게 보이는 중국집이 전부였었다.


선아랑 짜장면으로 점심을 먹으러 들어 갔다.

좀 큰방에는 50대의 중년 남자가 길게 누워서 아픈지 어떤지, 식은땀을 흘리면서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자는지 어떤지, 표정없이 누워 있었다.

짜장면은 정말 맛 있었다.

철없는 영숙이는 그저 짜장면이 맛있어서 맛나게 먹고 나오는데 선아가 큰방에 누워있는 아저씨 아픈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픈 아저씨 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시절에는 아파도 돈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집에 누워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해운대 겨울 바닷가는 정말 아무것도 볼게 없었다.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눈부시게 하얀 모래가 바닷가 가득 반짝 반짝 눈이 부셨다.

모래사장 끝에서 끝까지 가는 것도 멀고 멀어서 버겁게 보였다.

겨울 바닷가의 조그마한 판자촌 가게들은 겨울에는 돈 될 일이 없으니 전부 문을 닫아서 사람그림자 하나 없었다.

눈부신 겨울 바닷가.

선아랑 영숙이가 떠났던 겨울 바닷가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그래도 갈 수 없었던 먼 곳을 다녀 왔다는 흡족함.

어딘가로 떠나갔다가 돌아 왔다는 사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잔뜩 채워졌던 흥분.

있는 것이라고는 젊음과 시간 뿐이던 우리가 비용을 들여서 대전에서 부산 해운대를 다녀올만한 충분한 이유였다.

46년전 풋풋하기만 했던 19살(대학 1학년때 유행하던 나팔바지).

그리고 봄이 왔다.

이번에는 영숙이 친구 민아와 충남대 신문기자였던 열이와 열이친구 털털이랑 같이 충무로 해서 밤배를 타고 부산으로 왔었다.

서대전 역에서 밤 12시에 떠나는 호남선 열차를 타고 새벽쯤 여수역에 도착하여 시장에 가서 굴을 먹었었다.

충남대 기자단이 신입생 환영회겸 다녔던 여행코스 그대로 다닌다고 하였었다.

충무에 있는 공원에 갔었는데 누군가의 특별한 관심을 받는게 좋았는지, 열이가 보여주는 따뜻한 마음씨가 좋았는지 모르지만 영숙이와 열이 사이에는 온기가 있었다.

저녁이 되어 여수에서 부산으로 가는 밤배를 타고 새벽에 자갈치 시장에 갔다가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갔다.

밤배.

여수 밤바다.

남해로 건너가는 다리를 바라보면서 배의 갑판에서 따스하게 느껴지던 4월의 쌀쌀했던 바람.

누군가와 사이 좋음은 쌀쌀한 바람도 부드럽고 시원하게 느끼게 했었다.

다도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섬들.

섬들 사이에 있는 바다의 어두움이 두려울 만도 한데 부드럽게 느껴졌다.

아무리 넓고 캄캄한 바다라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배라도, 내편이 한사람만 있다고 생각이 들면 그 모든 것이 부드럽게 느껴질 수 있었다.

그후 열이와는 인연이 안되었는지 졸업할 때까지 이어지다가 by ~

인연이 안되려니까 그쪽에서 열정을 보이면 이쪽에서 시큰둥, 이쪽에서 열의를 보이면 그쪽에서 시큰둥 ~ 그렇게 이어지지 않고 by ~

by ~

객지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혼자 사는게 쉽지 않았고, 또 결혼하는 것은 더 쉽지 않았다.

세상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어쨌건 결혼 하였고 철이와 잘 지내고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영숙이는 항상 철이한테 감사한 마음이다.

언제나 내편이 되어 주는 철이가 곁에 있음에 감사하다.

이 넓은 세상에,

척박하고 막막한 세상에,

항상 내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렇게 용두산 공원에 들렸는데 유치환의 깃발인가? 부러운 마음으로
시비를 읽고 나서 부산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는데 근처 에서 교회 종소리가 들렸다.

~ 그래. 주일이구나. 예배 드리러 가야하는데. ~

주일학교 총무를 두어달 했었는데 제대로 안해서 부장선생님에게 잘렸지만 주일만 되면 예배 드리러 교회에 갔었다.

열이와 부산까지 오는 여행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교회 종소리가 유난히도 귀에 와 꽂혔었다.

열이와 여행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왠지 하나님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이 섞여 들었다.

그때 열이가 민아와 영숙이를 찍어준 사진이 아직까지 앨범에 남아 있다.

열이는 충남대학교 학보사 신문기자였기 때문에 학교 사진기
를 빌려 가지고 왔었
던  것이다.

20살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다음에 간 곳이 태종대 ~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주던 열이가 생각난다.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그때 처음으로 마셔 보았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동글동글한 돌틈 사이에서 주웠던 5천원짜리 종이 돈.

종이돈을 주워서 열이한테 주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결혼 생활이 힘들고 부댔꼈을 때, 철이랑 태종대에 갔었는데 그때에도 바닷가로 내려가다가 바로 그 장소 동글동글한 돌틈 사이로 5천원을 주워 철이한테 주었던 기억이 난다.

태종대의 몽돌 바닷가에는 그런 추억이 있다.

열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제법 유명한 사람이 되어 인터넷을 치면 인물사전에 나왔었는데 언제인가부터는 나오지 않았다.

일선에서 물러나서 일 것이다.

일선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었을까나?

많이 베풀었다면 지금 쯤 그덕을 많이 보고 있을텐데.

인생은 베푸는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고 봉사하는 만큼 보답을 받는 것.

해운대 바닷가에는 아직도 저렇게 모래사장이 반짝 반짝 남아 있고 바닷가가 그대로인데 19살의 소녀는 이제 60대 중반이 되어 있다.

언제인가는 새로운 세대가 이곳을 체우겠지?

그때도 바닷물은 그대로 일 것이다.

바닷가의 모래도 그대로 일 것이다.


지금은 모래사장이 유실 될까봐 방파제를 만들어서 보호하고 있지만 어쨌든 모래는 여기 바닷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판자로 만들어졌던 바닷가 건물은 이제 100층 높이의 마천루가 되어 있지만 다음세대에는 어떤 모양이 될까?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인간의 유한함과 연약함.

자연의 위대함과 영원함을 느낀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니라면 인간이 이 지구라는 자연 속에 살아 남아서 지금처럼 살아가고 있을까?

해운대 바닷가

~ 어디 갈만한 카페가? ~

그러다 100층짜리 빌딩이 보였다.

~ 저 빌딩이 언제 세워졌더라? ~

~ 빌딩도 가물 가물 ~ 생각도 가물 가물 ~

전망대 가보자.

입장료를 받는다.

홍콩에 빌딩도, 시드니의 빌딩도 돈내고 입장하는데, 여기는 우리나라.

몇백만원씩 돈을 내고 여행가서 빌딩에 올라가는데 여기야 입장료만 내고 올라가는데 ~

24000원인가? 벌써 가물 가물 ~ 농협카드 할인 적용받아서 1인당 2만원을 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서 탔다.

손녀와 엄마와 외할머니 ~ 여인 3대와 함께 타고 슈웅 58초인가? 초고속으로 올라가는데 귀가 먹먹하다.

급격한 기압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100층에서 본 해운대

입구에서 찍은 사진 만원내고 찾고 한바퀴 휘익 돌고 있는데 스타벅스 카페로 올라가는 높디 높은 2층짜리 계단이 보였다.

그때 생각이 났다.

~ 그래, 저 계단 끝, 그 앞에 스타벅스, 50대인가? 왔었어. 저 계단 보니까 생각이 나누만. 그때 스타벅스는 안들어갔지만 저 계단 끝까지 올라가서 스타벅스를 들여다 본 생각이 나네. ~

여전히 2층짜리 계단은 아름다워서, 그리이스 여신처럼 입은, 아름답고 품위있는, 격조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하늘하늘한 하얗고 부드러운 반투명 옷을 기일게~ 길게 끄을며 내려 올 것 같다.

ㅋ ~ ㅋ ~ ㅋ

실내가 더워서 바깥 공기가 유통되는 벤치로 갔더니 여전히 찬바람이 휘잉 ~ 휘잉 ~

눈 앞에 멋진 레스
토랑이 있어서 가격
을 보았더니 스테
이크 10만원. 저렴 스테이크 5만원. 파스타 25000원
와 ~ 우.

언제쯤 되면 저 가격
에도 아깝다 생각
안하면서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을까나.

진짜 부자는 물건을 살 때 가격을 안보고 산다는데, 가격을 안보고 먹을 수 있는 부자?

송정역

마지막 기차가 6시 30분에 있는데 옆에서 가자고 제촉을 한다.

98층에 내려와서 엘레베이터로 휘잉 ~ 그 전에 화장실이 가고 싶었는데 생략 ~ 옆에서 다녀 왔는데 평범한 화장실이래서 그냥 1층에서 가기로 하였다.

남산타워 화장실은 완전 럭셔리 화장실이래서 화장실 유리창으로 서울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고 화장실 세면대나 거울이 완전 럭셔리하다.

혹시나 100층짜리 건물의 화장실도 완전 럭셔리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던 것이다.

다시 기차역으로 빠르게 갔더니 6시 15분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송정역에서 탈 때에는 기차에 있는 두줄짜리 자리가 모자라서 자리에 못 앉은 사람들이 두번째 줄 의자 뒤에 서서 구포역에 왔었다.

다시 송정역으로 갈 때에는 마지막 기차가 아니어서인지 몇몇 사람이 타고 갔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주차장으로 가면서 바라보니 해운대 38cm 칼국수 간판이 보였다.

칼국수를 담는 그릇 지름이 38cm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각종 조개류를 잔뜩 넣은 영숙이가 엄청 좋아하는 칼국수라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먹고 가자고 하니까 그런다고 한다.

아직 백신때문에 으슬으슬한데 시원한 조개 칼국수를 먹었더니 속이 시원 ~ 시원 ~

그렇게 송정에서 해운대까지 기차여행을 마무리하였다.

여행은 여전히
우리를, 영숙이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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