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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스물세살의 수채화

by 영숙이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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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살의 수채화>


17. 장수리 무의촌 진료

보건소에서 차량 지원을 받아 장수리로 무의촌 진료를 나갔다.

장수리는 면사무소에서 50여 리나 떨어져 있는 곳.

다행히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되어서 금강 유원지에서 2개의 산을 넘어 들어가면 도보로 2시간밖에 안 걸리는 곳이 되었다.

경운기가 겨우 다닐 수 있도록 강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닦여진 좁은 농로를 보건소의 김기사는 잘도 달린다.

강변에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강변을 따라 펼쳐진 모래밭이 초겨울 햇볕에 눈부시도록 하얗게 빛난다.
모래 밭은 마치 성처녀처럼 파란 강물을 배경으로 순수하게 하얀빛으로 빛나고 있다.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상태는 이상한 감동으로 영숙이의 가슴을 적신다.
이 세상에 더 이상의 깨끗함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장수리 이장 집에서 진료와 기생충 보유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채변 수집을 하였다.

산채가 주 반찬인 정성스러운 점심을 막 끝내고 돌로 쌓아서 만든 담 앞에서 모두들 돼지하고 닭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촌부 한 사람이 정신없이 대문을 들어섰다.

"저, 여기 보건소에서 선생님이 나오셨다믄서요."

이장이 아는 체를 한다.

"아랫말 천서방이 웬일 이우?

어디 편찮으셔?
아, 참 부산서 딸이 왔다믄서?"
"어제 그제 왔는디.~
아, 글씨 몸이 아파서 왔는디요.
선생님이 좀 봐주셨으면 해서요."
"그럼, 이리로 데려 와야지."
"데려 올수만 있다면 왜 안 데려 왔겠어요.

꼼작을 못하고 누워 있으니.
유사 장티푸스래나?
식중독 이래나?
뭐래나.
죄송하지만 잠시 저희 집 좀 다녀 가셨으면 해서요."

아랫말 까지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길을 따라 30여분이나 걸어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모두 난처한 얼굴로 촌부의 얼굴을 바라 보기만 하였다.
이장이 우리를 대신 해서 말을 건넨다.

"아, 여기서두 사람들 진찰하고 해야 하는데,

게 들어갔다 나오면 해거름이 다 되잖우.

그러지 말고 딸을 이리로 퍼뜩 데려오우."
"다 큰 처녀를 어떻게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데."
"리어카에라도 싣고 와야지유.
퍼뜩 댕겨 오우."

머뭇머뭇 하던 촌부가 바쁜 듯이 돌아 나갔다.
그 모습을 딱한듯이 바라보던 이장이 혼자 중얼거린다.

"곱게 생긴 딸아인디 돈 벌어 부친다고 좋아하더니만.
명절에나 오는 아이가 왔다기에 웬일인가 했더니만 병들어 왔구먼. 쯧! 쯧!"

누구 집에 랄 것 없이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있다.
학생이거나 공장이거나 도시 생활을 하는 시골 사정이기에 이장도 자기 일인 양 가슴이 아픈 모양이다.
이장 집에도 한둘은 공장으로 한둘은 학생으로 대처에 나가 있을 것이다.

오후에는 영숙이 보고 채변수집을 좀 해달라고 부탁하기에 할머니들 채변 수집을 하였다.

정확히 말한다면 채변 수집이라기보다는 요충 검사를 위하여 면봉으로 항문 근처를 요충 알이 묻도록 문질러서 면봉을 유리 대롱 안에 넣는 것이다.

거의 환갑이나 환갑이 다 돼 가는 할머니들이 속 내의를 내리기를 부끄러워하면서 주저주저 ~
영숙이에게 등을 돌린 채로 속바지를 내린다.

면봉으로 항문 근처를 문지르며 놀란 사실은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자궁 탈장이란 사실이다.

아마도 최소한 6~7명의 아이나 많으면 11명이나 12명의 아이를 낳은 데다 산후조리나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그 때문에 자궁탈장이 생긴 모양이다.

심한 사람은 작은 애호박만 한 자궁을 덜렁 덜렁 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곳에 젖소의 그것이 달린 모양이었다.
물론 세월이 흘러서 신체의 일부인양 쪼글거리고 피부와 같은 색을 띄우고 있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진료가 끝나서 모두들 마당으로 나와서 벌통 앞에 서 있었다.

윤선생님 장인이 당뇨병인데 혹시 꿀 받아 놓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딸을 데리러 간 촌부가 오지 않기에 아마도

~ 안 올 모양인가 부다 ~

생각하면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돌담 너머로 아까 그 촌부가 리어카를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늙은 아낙이 리어카를 뒤에서 밀고 있었다.

"어떻게 아파요?"
"자꾸, 먹은 것을 토하고 설사를 했대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열이 나기 시작한 것은 벌써부터이구 토하고 설사를 시작한 건 한 너 댓새 된대요."
"회사에서 병원에 안 갔었어요?"
"병원에 갔었는데, 하룻밤 재우고 나더니 글씨, 집에 가서 몸조리 하구 병 나은 다음에 오
라고 하드래유."
"병원에서는 무슨 병이라고 합디까?"
"식중독 이래나? 유사뭐래나? 그랬대요."

아가씨는 보기에도 딱하리만큼 마른 데다가 탈수증으로 인하여 전혀 풀기가 없어 보였
다.

"우선 링거를 좀 맞아야겠어요.
몸속에 물이 부족해서 힘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리고 링거를 며칠 더 맞아야겠는데요.
우리가 이리 올 수도 없고 내일 보건지소로 나오세요.
보건지소 근처에 방을 얻어서 며칠 있으면서 링거도 맞고 주사도 맞고 해야 해요. "
"보건소 근처에 먼 친척 뻘이 있긴 있는데 ~ "
"그럼 잘 됐네요.
우선 오늘은 여기서 주사 맞고서 집에 가서 쉰 다음 내일 보건지소로 꼭 나오세요. "
"알았구먼요. 이거 참 지송 해유. 폐를 끼치는구먼유."

이장 댁 윗방에 아가씨를 눕히고 vit B comflex를 Mix 한 링거를 꼽아주고 주사를 놓아 준후 링게르 빼는 법을 일러 준 다음 우리 일행은 이장댁을 떠났다.

회사에서는 아마도 장티푸스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해지니까 아가씨를 병원에서 곧장 퇴원시켜 고향으로 보냈던 것 일게다.

가난한 시골집에서 아가씨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할 형편이 될 리가 없다.

평상시에는 보건 지소의 존재를 잘 못 느끼지만 이런 경우에는 보건지소의 절실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오늘 장수리에서 D.P.T 예방접종을 한 아기들이 15명이나 된다.

보건지소가 가까운 곳에 사는 아기들은 예방 접종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하게 되지만 이곳 아기들은 우리들이 출장을 와야만 예방 접종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 달 이 날에 또 출장 와서 2차 예방 접종을 해야 한다.

돌아오는 길은 합금강을 따라서 청마 국교 앞으로 빙 둘러 왔다.

지금은 청마 국교 앞으로 다리가 놓여 있지만 처음에는 건너갈 배도 없어서 비만 조금 많이 오는 날이면 작은 배로는 건너지 못하고 학교를 쉬고는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옥쳥청년회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옥천 청년회에서 기증한 50인승 배를 놓고서 저 강가에서 아이들과 청년들이 서서는 목멘 목소리로 교가를 불렀었다고 한다.

그동안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다리가 조금씩 놓이다가 지난번에 다리가 완성됐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서 자리에 누우니 피곤이 몰려온다.

그러나 가슴에 담아 온 합금강과 병풍 바위 그리고 그 깨끗한 강변을 내 작은 방에다 쏟아 놓는다.

굽이치는 강물.
한쪽 귀퉁이에 나룻배가 놓이고,
물레방아는 돌아 보릿방아 찧고......

치마폭에 감싸 온 파랗게 녹아난 하늘을 펼쳐 덮고 합금강 청돌을 깔고 내 작은 방 강가에서 잠이 든다.

한 사람의 꿈을 꾸면서.

< 합금강 >


가슴에 담아 온 합금강과 병풍 바위
내 작은 방에 쏟아 놓으면.

굽이치는 강물 한 귀퉁이에

나룻배 놓이고
물레방아는 보릿방아 찧고

청마 초등학교와 옥천 청년회
기증한 50인승 배에 아이들을 태우고
강가에 서서 목메인 교가 불렀다.

강 건너 청마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준비하느라

부챗살들이 춤을 추고.

치마폭에 감싸 온

파랗게 녹아 난 가을하늘.

펼쳐 덮고
내 방 강가에서

잠이 든다.

◐ 돈이란 무엇일까?

왜 돈 때문에 일희일비 할까?

원룸 리모델링으로 화장실, 앞베란다, 부엌 전면, 출입문 타일까지 인건비 150만원 재료비 90만원 도합 약 250만원. 싱크대 인조대리석에 세탁기 넣고 185만원 약 200만원 지금까지 약 450만원. 아직 도배와 장판이 남았다.

페인트를 칠해야 해서 페인트 사러 가서 인부를 구해 달라고 하였더니 일인당 20만원씩 2사람을 써야하기 때문에 40만원이라 한다.

20만원 정도면 사람을 쓰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서 직접 페인트를 칠하기로 했다.

이틀동안 오후에 3 ~ 4시간 일해서 다 칠했다.

물론 땀도 나고 힘도 들었지만 하루에 20만원 번다고 생각하니까 참을만 했다.

돈이라는게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돈에 일희일비하는건 왠지 저속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시할 수도 없다는게 문제다.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데 도로 건너편 초등학교 뒤편 여유공간에 풀숲을 도로정비에서 풀깎는 제초기로 자르고 있었다.

젊은 사람이 깎고 나이드신 분이 돌이나 풀이 튀지 않도록 파란색 프라스틱 발을 늘여트려 잡고서 그 옆에 서 있었다.

나이드신 분이 한번씩 소리를 질렀다.

제초기 사용법을 일러주는 모양인데 제초기 소리가 요란해서인지 고함을 지르듯 말한다.

젊은 분은 그저 네네 ~ 하면서 재빨리 넓게 자리잡은 풀들을 깎아냈다.

니이드신 분은 이일을 하신지 오래되셨고 젊은 분은 신참이시겠다.

처음 배울 때는 모두들 저렇게 배운다.

소리 지르는게 못마땅해도 배워야 일을 해낼 수 있을테니까 일을 잘하게 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네네 ~ 하면서 일을 할 것이다.

모든 일에 달인이 될때까지는 힘든 일이 있다.

힘든 고비를 몇차레 겪고 달인이 되면 그때부턴 수월해진다.

일도 쉬워지고 수입도 증가한다.

그렇다고 돈을 따라가는 인생 ~

그처럼 허무한 것도 없을 것 같다.

돈이면 뭐든지 다 해결 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돈하고 상관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학창시절 절친 선아랑 대전홍명상가에서 놀다가 우연히 의대생들이랑 탁구를 치게 되어서 잘치고 헤어졌다.

한애가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면서 다음날 전화를 한다고 하였다.

다음날 전화를 받고 나갔더니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유성으로 놀러가자고 하였다.

시간이 늦어서 안된다고 하였더니 의대생이 말하면 다 따라온다고 보통은 자고 간다고 말하였다.

사람을 뭘로 보고 ~

형도 서울의대 다닌다고 한참을 자랑을 늘어놓던 터라 살짝 벨이 꼴렸었는데 기분이 완전히 나빠졌다.

영숙이가 어떻게 나오나 보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집에 가야겠다고 헤어져서 걸어가는데 기분이 얼마나 나빴는지 침을 캭 뱉으면서 속으로 욕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충남의대와 간호대학은 같은 캠퍼스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끔은 로맨스가 생기기도 하였지만 거의 희귀한 드문일이었다.


간호대학 선배 한분은 영숙이가 졸업한 충남여고 교련 교사가 되어서 학교 다닐 때 사귀었던 의대생이랑 결혼한 케이스가 있긴 있었지만 그건 아주 희귀한 경우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그때에는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새로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오면 간호사랑 사귀지 말라고 충고를 한다고 했었다.

열쇄 3개를 가지고 시집올 여자들이 줄을 섰다고 ~

열쇄 3개란 병원, 집, 자동차 열쇄를 말한다.

그렇지만 인생 살아봐야 안다.

그때 그렇게 결혼한 인생이 다 완벽한 인생이 되었을까?

부잣집에 시집간다고 좋다고 결혼했더니 부잣집 막나가는 망나니라서 재산 다 잃고 직업도 없이 떠도는 인생이 된 경우도 많다.


고등학교 나온 말단 공무원하고 단칸 셋방
에서 부터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방송대학
나오고 대학원나와 승승장구해서 연수원 원장으로 퇴직하고 70살까지 시설지원
공단 사장으로 재직하
면서 잘먹고 잘사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중학생이 이렇게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돈 벌려고 학교 나와요?"

"돈 벌려고 학교 나오
는 건 아니지만 돈 안주
면 학교 나올  수가
없지."

인생이 그렇다.

"돈벌려고 태어난 건 아니지만 돈 없으면 살아가기가 힘들다."

의사 선생님은 돈벌려고 환자를 치료하나요?

"돈벌려고 치료하지는 않지만 돈이 없으면 치료를 계속 할 수가 없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참 좋은 제도다 .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살린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그리고 그에 대한 댓가로 돈을 번다.

윤선생님은 나이가 드시고 사회적 지위가 어느정도 되면서부터 봉사활동을 많이 하신 것 같다.

의사라는 직업이 봉사활동 하기에 최적의 직업인 것은 맞다.

그래서 의사라는 직업을 존경하는 것이 아닐까?.

군서초등학교에서 옥천여중에 3명의 여학생이 합격을 하였다.

영숙이는 대전에 있는 충남여자고등학교로 진학하였지만 나머지 2명의 여학생은 옥천여고로 진학을 하였다.

그중에서 지금 방어진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 선임이 말고 또 한 아이는 장티푸스에 걸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하늘에 별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군서면에는 보건지소가 없었을까?

장수리에 살던 아가씨는 다음날 부터 보건지소가 있는 동네로 나와서 친척집에 머물며 하루에 한번씩 보건지소로 치료하러 왔다.

링게르를 맞고 주사를 맞은 다음 약 처방을 받아서 갔다.

약은 숮가루로 죽에 넣고 끓여 먹도록 하였
다.

숯이 장속에 있는 균을 흡수하여 배출시키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완쾌 되었고 다시 부산에 있는 공장으로 돈벌러 갔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기억이 있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장티푸스를 앓았는데 못먹고 계속 설사를 하니까 누가 숯을 갈아서 죽을 끓여 주면 된다고 해서 그 죽을 먹고 낫게 됐다고 ~

지금부터 약 20년전에 숯이 굉장히 유행한 적이 있다.

집안 곳곳에 숯을 놓아두면 나쁜 균이 흡수되어 사라진다고 해서 여기저기에 숯을 놓아두었던 적이 있다.

냉장고에 숯을 놓아두면 냄새를 흡수한다고 해서 냉장고에 넣어 두기도 했고 실제로 숯을 갈아서 통에 담은 것을 탈취제로 마트에서 팔기도 한다.

또 정수기에 물을 정화 시키는 정화제로 숯가루가 이용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숯가루를 다이어트로 사용한다고 교인이 사달라고 해서 영숙이도 한번인가 두번이가 먹은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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