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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살의 수채화

by 영숙이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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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살의 수채화>

23. 화해

보건소 차로 보건소 소장과 보건소 치료실 사람들 그리고 곽양
하고 안양도 집에 간다면서 가버렸다.

보건지소에 윤선생님과 영숙이만 내려놓았다.

진료실 난롯불이 꺼져서 윤선생님은 가족계획실로 건너와 유리
창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영숙이는 난로 앞에 의자를 끌어당겨 놓고 구두와 핸드백을 콜드
크림으로 닦기 시작했다.

~ 뭐라고 말을 한담.~

말을 꺼내려하니 막상 할 말이 없다.

묵묵히 구두를 닦으며 무슨 말을 꺼낼까 생각해 본다.

늦가을 비가 멈춘 창밖이 차츰 흐릿하게 회색으로 변하여 간다.

영숙이는 난로 불에 빨갛게 익은 얼굴로 창 앞에 서있는 윤선생님
의 완강한 뒷모습을 바라다본다.

창밖에는 늦가을 바람 속에 버드나무의 긴 가지가 부드러운 머리
카락처럼 흩날리고 있다.

"사실은 ~ 그 말때문이 아니라 여러가지로 속상해서 그랬어요."

작은 공간속으로 영숙이의 말소리가 마치 타인의 소리처럼 울려 퍼
진다.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천천히 윤선생님이 돌아섰다.

빨간 볼이 뜨거워서 영숙이는 왼손으로 문지르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선생님의 시선을 붙잡았다.

우울하게 가라앉은 회색빛 시선.
회색 빛 얼굴.
조금씩 밝아졌지만 여전히 가라앉은 그 얼굴은 따스해지지 않는다.

영숙이의 얼굴에 고정되는 윤선생님의 시선을 감당하기 어려워 영숙이는 고개를 숙여 핸
드백을 열심히 닦았다.
마치 핸드백 닦는 일이 지상의 최대 과제인양.

"알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그런 것이라는 것을."
"저를 너무 놀리시는 것 같았어요."

윤선생님은 다시 창 앞에서 어슬렁 거리기 시작하였다.

창앞에 서서 회색양복 바지에 손을 집어넣고 회색빛으로 다가오는 저녁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여기는."
"여기는 창살 없는 감옥이야."
"창살만 없을 뿐이지 감옥이라고."
"오락시설이 있나?"
"다방이 있나?"
"극장이 있나?"
"일이 바쁘기를 해?"
"병원에서 정신없이 지내다가 여기 오니까 정말 심심해서 못살겠다고."
"이건 정말 감옥이라고."
"감옥이 따로 있어?"
"여기가 바로 감옥이지."
"긴긴 겨울 밤에 시골 사람들은 할일이 없으니 초저녁부터 일찍 잠자리에 들잖아.
가족계획 안되어서 애들만 줄줄이 낳지."
"정말 여기는 감옥이야."

영숙이는 난로 앞에 앉아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하얀 가운을 떨쳐 입고 바쁘게 24시간이 모자라서 25시간으로 쪼개 쓰며 가운 옷자락이 펄럭이도록 병원 안을 뛰어다녀야 하는 레지던트 2년차.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늘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때로는 너무 바빠서 제대로 씻지 못할 때도 있다.

씻는 거 보단 먹고 자는게 먼저니까.

갑자기 어느 날부터 조그만 사무실 안에 갇혀서 이야기할 친구나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바쁜 일도없이 할일도 없이 면사무소 정문을 지나서 혹시 찾아올지 모르는 환자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다니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느낌이 들만도 하다.

창문 앞에서 서성이며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혼잣말소리로 중얼거리던 윤선생님의 창백한 회색빛 얼굴이 난로 앞으로 다가와 불을 쬔다.

"사실, 김양이 없었으면 참 심심했을 거야."

영숙이는 난로 앞에서 불을 쬐며 말을 하는 윤선생님의 얼굴을 웃으면서 올려다 보았다.

선생님도 영숙이를 자세히 내려다보고 있다.

사무실 안에 난로의 온기가 점점 가득하여져 오고 영숙은 따스한 느낌 속에서 구두와 핸
드백을 마저 손질하였다.

소리 없는 어두움이 주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윤선생님의 어깨 위로.
창밖의 느티나무에도.

이제 윤선생님은 어둠 속에 어슴푸레한 윤곽만이 비친다.

사무실 불을 켜니 갑작스러운 밝음 속에 윤선생님은 여전히 생경한 얼굴로
곧 떠날 것 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생경한 얼굴로부터 도망치듯 하얀 포플린 커튼을 묶은 끈을 풀어 내리고 문을 잠근 다음 선생님과 같이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현관문을 받쳐 놓은 돌을 치워서 문을 닫은 다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별빛도 없는 캄캄한 밤.
무심한 버드나무는 면사무소의 따뜻한 불빛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버드나무 아래를 지나가면서 바라보니 불이 환하게 켜진 면사무소에는 한서기와 김서기
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숙직일까?
아직도 할 일이 남아서일까?

따뜻하고 환하게 보이는 면사무소가 왜 저렇게 멀게 보이는지.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선생님을 올려다보니 윤선생님도 그쪽을 바라보고 계셨다.

윤선생님과의 이런 일체감.
이런 느낌이 옳은 것일까?

옳고 그른 것을 가리기 이전에 인간의 정서는 생긴다.

정서가 정서로 끝났을 때는 변명이 필요 없지만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을 때는 스캔들이 되는 것이다.

어떤 미래가 영숙이의 앞 날에 펼쳐질지 모르지만 현재의 이 일체감의 느낌 만으로도 영숙이는 만족하고 또 모든 일이 잘돼 나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선생님 내일 뵙겠습니다."
"응 내일 만나."

면사무소 문을 기점으로 마을의 아래 위로 헤어졌다.

초겨울 날씨 답지 않게 부드러운 밤.
부드러운 밤속으로 가슴 가득 꿈을 담고 낮은 담과 지붕들이 둘러싸고 있는 마을 한가운데로 집을 향하여 걸어갔다.


💢

💎

예전에 어른들이 그런말을 했었다.

"남자 여자를 한방에 두면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하루저녁에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였다.

그렇다해도 길고 긴 인생에 마음이 안맞고 뜻이 안맞고 거기에 인성이 나쁘고 기본
적인 인격. 품성.심성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을 것이다.

윤선생님처럼 좋은 분하고 6개월간 같은 공간에서 지냈다는게 참 다행이었다.
좋은느낌과 행복한 감정으로 남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생각해보니 2020년 봄에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정말 아쉬운건 눈이 나빠서 돋보기로 하루에 한장 정도 책을 읽을수 있다 하셨다.

책을 받으셨는지.
읽으셨는지.
못읽으시면 읽어 드릴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다 소용없는 일이다.

2021년 작년에 별이 되셨으면 통화한지 딱 1년 만이다.

목소리는 예전 30대 때 보건지소에서 만났던 그 비음섞인 목소리 그대로였었다.

어떻게 된일일까?

알수없다.
알방법도 없다.

그렇구나 ~
끝.

아무리 똑똑하고 잘생기고 멋있어도 ~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

💎

<전화>

2020년 블로그를 시작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 ~ 홀로 선 버드나무 ~ 를 완성하였을 때 드디어 요양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교환원이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선생님이 기억 하실까?
전화 받으실까?

전화 받으셨고
기억하셨고
자세한 건 기억 못하시는데 청성이 아니고 청산리 의료봉사로 기억하고 계셨다.

나이가 많이 든 목소리다.
영숙이가 반가워서 말을 이어가는데 선생님은 가물가물 그래도 전화를 끊지 않으시고 말을 이어 가신다.

"인터넷으로 선생님 이름을 치니까 뜨더라고요."
"블로그 주소를 알려 드릴까요?"

인터넷은 안하신단다.
심지어 톡도 안하신다고 하신다.
눈이 나빠서 볼 수 없다고 하신다.

영숙이랑 10살 차이인데도 세대 저편에 서 계셨다.
참 신기하다.

"아.그러시구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으니까요."
"선생님 그때 정말 너무 멋있었어요."
"정말 그때 제가 선생님 참 많이 좋아했었는데."
"이제 와서 그런 감정을 생각해보면 잘 없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좋았던거 같아요."

"내가 눈이 나빠져서 인터넷도 못하고 톡도 못하고 책도 돋보기 쓰
고 하루에 한장 정도 읽을 수 있어."

"제가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시어머니가 치매 오셔서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아들도 몰
라 보셔서 더 나이를 먹으면 못할 거 같아서 썼어요."

"병중에 치매가 제일 무서워요."

"여기 병원에 50대
인데 치매 걸려서 온 젊은 사람들 많아요. 치매가 제일 무서운거 맞아요."

"읽기 어려우면 한가한 시간에 전화해서 읽어 드리는 건 어떨까요?"
"전화 하는걸 막지는 못하지. 누가 머라하겠어?"

나도 모르게 하하하 웃었다.

"옛날이나 그런 건 똑 같으신 거 같네요."
"가는 사람 안막고 오는 사람 안막는다는 생각이 변하지 않은 것 같네요."

"왜 건강을 잃게 되셨어요?"
"어디 아프셔요?"
"자기관리를 잘 못하셨어요?"
"스트레스지 뭐."

말을 이어 갈 수록 말하는 느낌이나 모양이 40년 전이나 똑 같아지는게 정말 신기하다.
옛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때문인가 보다.

"갑자기 건강을 잃게 된 동기가 5년전 큰 병을 앓았거든."
"대동맥 분리라고."
"그게 뭐죠?"
"배에 있는 동맥이 분리 됐어."
"죽다 살아 났지."
"지금도 정기적으로 검사하러 다니고 있어."

"외과의라서 외과수술은 수술한 후 결과를 알게 되니까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
지."
"그때 이야기가 인터넷에 많이 뜨던데요."
"이번에 책을 썼어요.
청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썼어요."
"다 쓰고 나서 인터넷 찾아 보니까 나오더군요."
"인터넷 치면 다 나오니 참 좋은 세상이예요"
"응 정말 좋은 세상이야."

"제목이 ~홀로 선 버드나무~ 입니다."
"서점에 가서 한권 사다 읽을께."
"아 ~ 전 그렇게 유명한 작가는 아니고요."
"책이 있으면 하루에 한장씩 돋보기로 읽을 수 있는데."
"그럼 인쇄해서 보내 드릴까요?"
"그러려면 수고를 많이 해야 하잖아."
"인쇄해서 병원으로 보내 드릴께요."


전화 번호 알려 드리고 끊었다.
전화 번호 적는데 이름이 김영숙 이라고 하니까 김경숙이라고 부르신다.

"맨날 김양이라고 불러서 이름 잘 모르시죠?"
"제 이름은 김영숙입니다."
"전화 할일 있으시거나 물어 보실거 있으시면 전화하셔요."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때보다 끊고 나니까 속이 다 후련하다.
전화 잘한거 같다.

"이제 끊을께요."
"전화 해줘서 감사해요."
"저도 감사해요.
살아계셔서 감사하고 운전도 하시고 진료도 하시고 일상 생활도 잘하신다니까 감사해요."

"안녕히 계셔요."

~선생님 by by.~
~사요나라.~

💎

새벽기도를 갔는데 교회 마당에 경찰 순찰차가 한대 서 있었다.

소시민이라서 그런지 순찰차가 보이면 왠지

무슨 일 생겼나?

교회 문이 열려 있었고 들어가니 순경아저씨들이 후라쉬를 가지고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었다.

무슨일 있나요?

아이파크에 사시는 83세 되신 치매 할아버지가 런닝구 바람에 기저귀차고 소변통 가지고 나가셨다고 신고가 들어왔어요.

날씨가 차니까 어디 따뜻한데 들어가지 않으셨을까 혹시 교회에 들어가지 않으셨을까해서 둘러보고 있습니다.
가족이 거정을 많이 하시던데 ...

83세 할아버지.

예전에는 영숙이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즈음은 거리가 많이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런닝구, 기저귀, 소변통 ~ 상상하니까 안쓰럽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젊어지는 약이 언제인가는 발견되겠지만 아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누구나 가야할길이다.

기분이 좀 그랬다.

하루종일 비가 왔다.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에 면회를 가는 날이다.

지난 달에 뵙고 이번에 뵙는 어머니는 지난번보다는 총기가 있어 보이신다.

총기는 좀 있으셔서 철희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신다.

몸은?

상반신은 괜찮아 보였는데 이불을 들치고 다리를 보니 다리가 이미 굳어서 펴거나 구부리지 못한다.

운동을 안해서 무릎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45도 각도로 구부린채 굳어있는 무릎.

아무도 몰라볼때보다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들라니까 손을 흔들고 ~

더 기분이 이상해진다.

지난해 봄 요양원에서 돌아가실 거 같다고 연락이 와서 다녀왔을 때 철희가 날이 너무 더운 날에 돌아가시면 안되는데 하고 말해서 영숙이가 그런말 하지 마요~ 했을 때보다 기분이 더 안좋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뜻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과 사랑 속에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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