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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편지글

편지글 12

by 영숙이 2020.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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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부, 언니 보세요.

 

  이제 봄이 완연히 다가왔나 봅니다.

  구태여 두꺼운 옷을 입지 않고도 춥지 않은 것이 말이에요.

  환절기 불청객으로 으뜸가는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형부와 언니 조심하세요.

  대전 식구들은 모두 감기 하나 걸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답니다. 조금 있으면 아버지 나무도 잘 팔리겠지요. 며칠 전에 민이한테 편지가 왔는데 팀 스피리트 훈련 때문에 소대원들이 많이 탐색을 나가서 요즘은 민이도 요즘은 보초를 선다는군요.

  힘든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오히려 이 기회를 극기의 기회로 삼을 것이라며 이 나라의 진정한 군인다운 말을 하더군요.

  연이는 피아노 열심히 치고 있어요.

  하숙생 중에 고1짜리가 있는데 그 아이와도 친하게 지내고요. 이번에는 남자가 3, 여자가 3이나 하숙생이 있어요. 숙이도 아침마다 엄마를 돕느라 바쁘답니다.(착하죠. 호호)

  학숙생들과도 가족처럼 지내려고 분위기 조성에 신경 쓴답니다.

  여학생들은 제법 화기애애한데 남학생들은 2층이라 말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래도 숙한테 "누님"하며 예의가 깍듯하답니다.

  그런데 엄마가 요즘 치질이 있어 심란하신가 봐요.

  항문이 조금 나왔대요.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약을 주면서 안 나으면 수술을 해야 한대나 봐요.

  형부네 대구 식구들은 모두 편안하신지요. 도련님은 취직되셨나요. 모두 잘 되었겠죠.

  숙은 이즈음 최상의 기분입니다.

  직장 분위기도 좋고 나의 전공 따라 일도 하고요.

  모두 믿는 분들이라 사무실 공기도 깨끗하고 환해요.

  숙이는 정리실에서 목록에 관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어요. 수입 도장 찍고 등록번호(numbering) 매기고 최종적으로 목록 카드를 작성하면 되는 거예요. 정리실 인원은 3명이고 근로 장학생이 2명이에요.

  책은 항상 들어오고 참 바빠요.

  책으로 둘러 쌓여 있거든요.

  책 제목에 관한 한 으뜸(?)으로 알 거 같아요.

  8시 30분까지 출근해서 6시까지 인데 집에 오면 7시 전후가 돼요. 찬이 씨도 잘 있어요. 군의관을 도와 수술도 하는데 참석한데요. 간호원들한테 군의관한테 인기가 좋다는데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대요.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문장이 매끄럽지 않네요.

  이해하시고 여기 엄마 반지를 동봉할게요. 변함없이 주님의 은총을 받는 형부 가정이 되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뵈올 때까지 몸 건강히 안녕히 계세요.

                                         85년 3월 22일 큰 처제며 동생 종숙 올림

                               (글씨 못써서 미안, 내가 요즘 이렇게 산다오.)

 

 

2. 언니에게

 

  교정에 개나리가 그 고운 자태를 한창 이기적인 빛깔로 세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벌써 개나리가 피고 지는 것을 네 번째나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인생무상(?)함을 재삼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숙이가 너무 정서적으로 메마르게 지낸 것 같아 이렇게 펜을 들어 사랑하는 언니에게 내 마음의 글월을 올려 봅니다.

  언니.

  집안은 무고하겠지요. 조카는 계속 방글방글 잘 웃겠고요. 그 덕에 언니 시름 한번 덜어지겠고요.

  그리고 형부도 건강히 잘 계시겠지요. 사랑의 깊이가 계속 깊어지겠지요. 애기보는 할머니도 잘 계시고요.

  어제는 찬이 씨 논산 집에 다녀왔어요.

  시집간 큰 누님이 아프셔서 누워 계시더군요. 작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지금까지라느데 병명은 없다고 그런데요. 괜찮다고 하는데도 아랫배가 아프고 어지럽다는데요.

  굉장히 신앙적으로 깊이가 있으신 분인데요. 그 남편이 교회에 요즘 소홀히 한대나 봐요. 그래서 찬이 씨 말로는 신앙적 시련기 같다고 그러는군요.

  언니.

  집안 식구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토요일 아버지, 엄마, 나, 셋이 금은방에 가서 은수저 세트 샀어요.

  시가 ₩70,000인데 ₩55,000에 샀어요. 그리고 각기 가락국수, 비빔밥, 만두, 빵 등 나만 배부르게 먹었지 뭐예요. 아버지가 남기시는 바람에.

  아버지. 어머니는 요즈음 그런대로 오붓한 정을 뒤늦게 많이 나누시며 교호(하나님)께도 충실히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제 민이, 석이 오빠 내외, 형부만 교회에 출석하며 하나님 테두리 안에서 살도록 믿음의 끈을 묶으면 되겠어요. 우리 열심히 기도하도록 해요. 사항 하는 우리의 이웃을 위해서 ~

  엄마가 아버지 시중드시느라 조금 힘드신 것 같아요. 숙이가 많이 부족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군요.

  민이와 연이도 잘 지내고 있어요.

  민이는 수시고사 때문에 아침 일찍, 저녁 늦게예요.

  연이는 매일 모델처럼 하고 다녀요. 민이가 매일 종알대죠. 그래도 시내 나가면 연이도 준수한 것 같아요. 아마 세대차이 인 것 같애요. 조금 더 폭을 넓혀서 연이를 위해 기도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답니다.

  그렇게 하니까 나름대로 멋지게 사랑스럽게 느껴져요.

  엄마는 지난주 진해 벚꽃 귀경 갔다 오셨지요. 그리고 옷도 샀어요. 이젠 조금씩 쓰시며 사시겠대요.

  이 봄에 많이 사색하며 많은 것을 사랑하며 나의 생명을 한껏 충만하게 충전시키는 삶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부단히 정진하겠어요.

  여행도 가고 싶고 승마도, 볼링도 배우고 싶군요.

  그리고 가엾고 없는 사람들의 편이 돼주고 싶어요. 이 순간에는 미워하는 이 하나도 없는 무아의 지경 ㅡ 천국 그 자체로 승화시키고 싶습니다. 부족한 것은 그대로 인정하며 단점도 보이며 살고 싶어요.

  마음속에 무수히 엇갈리는 쓸데없는 욕심들을 모두 모아 허공에 날려 보냅니다.

  내 마음에 스스로 얽매어 놓았던 올무를 참으로 결단성 잇게 싹둑싹둑 잘라내어 자유인으로 새롭게 탄생됐음을 선포합니다.

  ㅡ 나는 자유인이다.. 하하하 ㅡ

  산다는 것은 타인이 나를 인정할 때보다는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할 때만큼 기쁘고 평화가 충만한 것은 또 없습니다.

  세모는 세모이고 동그라미는 동그라미인 것입니다.

  이제껏 세모인 것을 동그랗게 만들려고 내적인 갈등을, 전생을 치른 것에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해결이죠. 협상이고요.

  교정에 꽉 찬 공기 소리가, 학생 소리가, 꽃 소리가 온통 ㅇ노래로 들리는군요.

  이제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움 없이 푯대를 향하여 확신을 가지고 삶의 고지를 정복하겠습니다.

  서종숙의 삶을 이룰 거예요.

  언니에게 편지로 고백합니다. 나의 결심을 ㅡ

  그리고 세뇌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훨씬 깊이 있는 언니는 눈치로 알아차리겠지요. 나의 정신적 변환을요. 도서관에 아무도 없어 집으로 갈 길을 괜히 채찍질하네요. 배도 고프고요. 먹고살아야겠죠. 주님의 보호가 항상 있길.

                 83년. 4월. 11일 동생 종숙 100원짜리 우표로 쓰고 부자네요. 후후.

 

 

3. 오랜만에 비 오는 날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편지 쓰는 기분도 꽤 괜찮은데, 울산도 지금 비가 올까요?

  조카도 이제 제법 크고 말도 잘한다고 들었습니다. 형님께서는 여전히 재미있고 정열적으로 살고 계시겠지요? 그것이 부럽습니다.

  사람이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열성적이기는 침 드는 법인데 형님은 늘 그러신 것 같더군요. 그것이 바로 생에의 열정이 아닐는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답니다. 한때 열심을 떨고 가슴이 꽉 짜오르도록 의욕이랄까, 욕망이랄까, 또는 의지 같은 것을 느끼다가도 어느 한순간 가시에 찔린 풍선처럼 푹 꺼져 주저앉아 버리곤 한답니다.

  그것이 다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게으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제는 전역지원서를 쓰고 도장을 꽝 찍어서 제출을 했습니다. 이제 내년 3월 30일에 확실히 제대를 하는 것이지요.

  마음 한구석으로 아쉬움 같은 것이 솔솔 피어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롬니를 생각하면 그런 건 금세 없어져 버려요. 그리고 제대 후에 누리게 될 제 마음대로의 생활을  생각하면 금새 기분이 좋아져요. 너무너무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요. 막상 내 시간이란 걸 갖게 되면 의욕이 좀 사그라들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아요. 물론 금전적으로는 조금 아쉬움이 있겠지요? 하지만 「알뜰살뜰」이란 것도 배워야지요. 

  혹시 「샘터」 1월호 보셨어요? 거기에 좋은 글이 있더군요. 여기에 옮겨 적어 볼게요.

 

<심심하고 따분해질 때>

 

  왜 심심하고 자루 해야 합니까?

  세상 엔느 배우고 탐색할 일이

  수백만 가지도 더 있습니다.

  당신은 절대로 그것들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원자, 심해의 해저 생물,

  야생화, 솔방울, 우주 공간,

  호박, 시, 역사, 음악,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당신의 마음과 가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

 

  배우면 배울수록

  배울 것이 더 많아집니다.

  사람의 한평생은

  모든 것을 배우고 경험하기에는

  너무도 짧습니다.

 

  지루함이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

   

 

  돌아보면 지나버린 시간들은 너무도 빨리 흘러가 버렸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 또한 내가 느끼지도 못할 사이에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 버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때때로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푸념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속되고 게으르고 의지박약한 인간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실망하진 않습니다. 작지만 결코 꺼지지 않을 불씨 하나가 제 소기에도 들어 있음을 느끼니까요.

  지금 노마가 아주 심각한 얼굴로 화장대를 휘젓고 있는 중입니다. 이만 총총

                                                    89. 2. 16. 노마 엄마 올림

 

 

4. 날씨는 무더우데 얼마나 만이 수고하고 있구나

 

  여기는 다 잘 있고 은회 편지도 잘 받아보고 은희 선생님 은회반 아이들 편 지내 용을 잘 써다고 선생님이 일구 주고 은회 언니를 잘 두어서 좋게 다고 칭찬받닥단다.

  요준문 이서방과 시집식구들들 없지 하구 있는지 궁금하구나.

  손자 보는 형 어머니는 몸궁강하게 잘 지내고 게시게지 속쌍해두 함고 잘살라나가면 조운일리 생긴단다 다들 그래 쌀라 나가는 사람이 인생인가봐 아무걱정말구 몸궁강하게 잘지내고 군무 잘하고 하기를 발난다. 

왜왜왜 사진은 부치라고 해내지 궁금하구나.        86. 7. 15. 어머니가

 

 

5. 보고 싶은 언니 보세요.

 

  무더운 날씨가 모두 물러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요.

  그동안 안녕하신지요.

  나 연이는 건강하고 내일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답니다.

  편지 잘 받았어요.

  아주 좋은 말귀가 서 있어서 너무 감동이 되고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반성할 기회가 되었어요.

  아프다는 이는 어떠하신지요?

  빨리 완쾌되길 원해요.

  사람은 자고로 건강해야 해요.

  요사이 체력장 연습하느라 바쁘지만 모두 잊고 공부에 열중합니다.

  너무 언니께서 걱정일랑 마세요.

  걱정은 고맙지만 너무 부담이 되어요. 밤낮 제 걱정만 하시면 어떻게 하세요.   

  그리고 피아노를 그만두고 공부하라는데, 저는 결코 피아노 때문에 공부 못하지는 않아요.

  이제까지 저는 피아노 때문에 공부 못한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안 했거든요. 피아노는 제 의무고 꼭 꼭 꼭 죽어도 해야 해요.

  저에게 있어 피아노가 없다면 죽은 인생과도 같아요.

  형부에게 전하세요.

  절대로 죽어도 피아노 그만둘 수 없다고.

  내가 잡은 것은 끝까지 놓치지 않을 거고, 열심히 모두 한다고요.

  그리고 이젠 정신 차리고 공부하니까 언니가 너무 걱정하지 마.

  항상 건강하고 행복해요.

  이 시간도 공부해서 바빠요.

                                                               1984. 8. 24. 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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