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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비밀. 1(1605호)>
문학사상을 열심히 정기구독 할 때 읽었던 이야기다.
전반적인 내용은 기억이 안나는데 작가가 쓴 내용 중에 회사에서 상사한테 혼나면 그 윗층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상사가 앉는 위치에서 볼일을 보는 것이다.
또 우연히 상사하고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고 있었는데 상사가 아침에 화장실에 들어갈 시간에 맞춰서 화장실 볼일을 본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을 때에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했다.
얼마전에 인도 영화를 보는데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언급하면서 인도의 하층민을 닭장에 갇힌 닭이라고 표현을 한 것을 봤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닭장에 갇힌 닭처럼 살면서 닭장에 갇힌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을수 있다.
자신이 만든 울타리 안에 갇혀서 갇힌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삶.
실제로 닭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라는 자신이 만든 울타리 안에 갇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의 화장실 위치는 같은 라인이면 다 똑 같다.
아파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작가처럼 누군가의 머리 위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을 수 있다.
아파트.
어쩌면 아파트라는 집의 형태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신혼 초.
남편은 집을 얻을 때 반드시 집 주위에 다른 집이 있는 집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을 얻더라도 이웃이 있는 집을 얻으라고 해서 그때는 그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전원 주택으로 이사를 가거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한다면 아파트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아파트에 길들여지고 아파트 안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옆집에서 큰소리가 나면 불편해 하면서도 또 전혀 사람 소리가 안나면 더 불편해 한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듣지도 않으면서 집에 들어오면 무조건 티비를 켜서 사람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영숙이네 집은 25층 아파트 단지에서 5,6 라인 중에 1505호이다.
1505호는 1506호와 1504호를 옆집으로 두고 윗층에는 1605호이고 아래층은 1405호이다.
우리 집은 1505호로 불린다.
낮 동안에는 이런 저런 소리와 티비 소리 때문에 옆집 소리가 잘 안 들린다. 그냥 옆집에서 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나 들어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밤이면 사위가 조용해서 옆집에서 일어나는 속 깊은 소리가 들린다.
1605호
영숙이네 윗집은 동네 상가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집이었다.
이쁘장한 아주머니는 꽤 큰 슈퍼의 카운터를 보고 있었고 남편은 성깔 있어 보이는 날카로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두사람 사이에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아주머니 얼굴에는 늘 멍자욱이 있었다.
아예 푸른 멍이 이마에 항상 있어서 원래 그런 얼굴처럼 보였다.
낮에는 그렇게 카운터를 보면서 잘 웃고 말도 잘하고 상냥한 아주머니였는데 밤만 되면 상황이 달랐다.
영숙이는 피곤해서 초저녁에 잠이 들면 새벽 2시쯤에 깨어 나서 잠이 안 온다.
그러면 일어나서 책을 읽을 때도 있고 설겆이를 하던지 그냥 눈을 감고 성경귀절을 암송하거나 기도를 할 때도 있다.
그냥 잘 때에도 잠귀가 밝아서 옆에서 잠꼬대 하는 소리도 다 들으면서 자는 토끼형 스타일이다.
새벽 1시나 2시쯤이면 1605에서 술에 취한 그 집 남편이 카운터를 보는 아주머니와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너 돈 다 어디로 빼돌렸어. 얼마나 빼돌렸어."
술에 취해 혀꼬인 소리로 똑같은 소리를 무한으로 반복하면서 부인을 잡는 소리가 들린다.
윗층 벽이 쿵쿵 울리는데도 아주머니는 아무 소리없이 남편의 퍼붓는 소리와 부딪히는 쿠당당 거리는 소리만 날뿐 조용하다.
다음 날 슈퍼에 가서 카운터에 있는 아주머니 얼굴을 살피듯 바라보다가 말을 걸면 상냥하게 웃거나 대답을 해준다.
'잘못 들었나? 아닌가?'
이마에 멍이 가시지 않는 체로 일년 쯤 지났을 때 슈퍼를 다른 사람에게 팔고 시내에서 오리고기 집을 한다고 하였다.
밤늦은 시간이면 물통에 물을 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슈퍼를 안하면 조용해질까 싶었는데 더 시끄러웠다.
이번에는 물건이 깨지고 화장대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한밤중에.
슈퍼를 그만두고 6개월 쯤 지났을 때에 영숙이네 1505호의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1604호인데요."
문을 열었더니 처음보는 남자 얼굴이 눈앞에 서 있었다.
안경 쓴 키가 작은 남자가 영숙이한테 도전하듯 말을 던졌다.
"왜 그렇게 싸우세요?"
"네?"
"싸우는 소리가 다 들려요"
"언제요?"
"지난 주 내내 싸웠잖아요."
"지난 주요?"
"오늘 이사 가는 날이라 말하러 왔어요."
"지난 주라면 바로 우리 윗집 1605호에서 지난 주 내내 싸웠어요. 우리 집이 아녜요."
30대의 젊은 남자는 얼굴에 쓴 네모진 까만테의 안경을 손으로 들썩 들썩 올리면서 서 있었다.
영숙이는 남자의 얼굴을 미안해하는 얼굴로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우리 집이 아니고요. 바로 우리 윗집에서 지난 주 내내 싸웠어요. 우리 집에서 싸우는 것처럼 들렸나보네요."
의기양양 말하던 바로 윗집 옆집에 사는 남자는 눈을 깜박거리며 대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돌아서서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그렇게 지독하게 싸우던 1605호 집이 이사를 갔다.
부인이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유치원에 다니는 딸하나 있고 3살짜리 딸은 친정엄마가 보러 오는 집에 아파트를 팔고 이사를 갔다.
몇달이 지나서 체육관 근처로 운동을 갔는데 많은 사람들 중에 섞여서 이마에 푸른 멍이 없는 이쁘장한 1605호 아주머니가 아담한 낯선 남자와 걷고 있었다.
"오랫만이어요. 잘 지내시죠? 누구여요? 친척인가요?"
"아. 네. 저 실은 영호 아빠랑 이혼했어요."
"아, 네?"
30년 전만 해도 이혼이 흔한 사건은 아니었다.
누구나 이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아니었는데 만나자 마자 이혼 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1605호 아주머니는 그렇게 상냥하게 웃고 활발하게 말하면서도 1604호, 1606호, 1505호, 1504호, 1506호 그리고 1705호, 1704호, 1706호에서 밤마다 싸우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아파트의 비밀은 비밀이 아닌 비밀인 것이다.
10년 후.
1605호 아주머니를 사우나가 있는 빌딩에서 만났다.
아주머니가 건물주였다.
사우나가 있는 건물 말고도 또 다른 빌딩이 있다는 말도 슬쩍 비췄다.
남편이 법무사라는 말도 무심히 지나치듯 말했다.
"영어학원 했는데 얼마나 잘됐는지...그때 돈 정말 많이 벌었어요."
한참 영어학원 붐이 불 때 영어 학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고졸학력이었는데 학원 원장이 꼭 대학 나올 필요는 없었다.
학원 건물을 얻고 선생님을 고용하고 운영할 능력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딸 하나가 있다고 했다.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다고 했는데 카운터에서 티켓팅하는 아가씨에게 슬쩍 물어 보았다.
"사장님 아들 집에 자주 오나요?"
"아들요? 사장님은 딸밖에 없는데요?"
"아, 내가 잘못 알았나 보네요. 아들이 있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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