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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비밀 4. 1405호>
37년 전
아래층 아주머니는 완전 여자여자한 분이셨다.
행동도 조신하고 얌전했으며 얼굴표정이나 눈,코,입도 완전 여자여자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아무 말씀도 안하고 무어라고 하지도 않는데 결혼하기 전 예전에 평범한 직업을 가지셨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위기가 고급 요정이나 룸싸롱에 근무하셨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느낌이었다.
느낌이었으니 실제로는 아닐 수 있었다.
그렇다고
"결혼 전에 무슨 일 하셨어요? "
그런 걸 물어 볼 수는 없었다.
그저 왔다 갔다 하다가 얼굴이 마주쳤고 별말없이 쳐다보면서 지나가다가 가끔 인사나 나누는 정도였다.
어느 날 밤에는 계단에 앉아있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한번은 아파트 밖으로 나서는데 주차장에 아래집 차가 세워져 있고 그안에서 아랫집 아주머니가 훌쩍 거리고 있었다.
한번씩 걸어서 내려 가다가 엘레베이터를 타는데 아래집 앞을 지나가는데 현관이 열려 있었다.
열려진 현관에는 신이 가득 놓여 있었다. 그리고 도포자락에 갓을 쓴 할아버지들이 거실 가득 앉아 있었다.
한번은 아주머니가 문을 여는데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그집 아들이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무기력하게 누워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주머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1405호 아저씨는 언제나 밤늦게 들어오고 아침 늦게까지 집에서 자다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나갔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늘 술이 취해서 들어 올 때가 많았다.
그날도 아래 집 아주머니가 계단을 돌아가는 곳 창앞에 멍하니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가 그 옆에 나란히 섰다.
창밖으로는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낙엽을 흩부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팔짱을 끼고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예요."
"사실은 아저씨가 하두 졸라서 결혼을 한거예요. 아들도 있는 사람인데 나 아니면 죽는다고 하도 난리를 쳐서 결혼했어요."
"종갓집이라서 제사가 일년에 15번이예요. 제사 지낼 때마다 집안 어른들이 15명에서 20명은 오셔요."
"콩나물도 반드시 집에서 키운걸로 지내야 해요. 제사가 돌아오기 전에 콩나물 콩을 사다가 모양이 이상한거는 다 골라내고 콩나물 시루에다 앉혀서 물로만 키워야 해요."
말하는 아주머니의 조신한 얼굴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얼마나 고단하게 살고 있는지 저절로 느껴져 왔다.
매일 술에 취해 들어 오는 아저씨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에 빠지고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라서 말을 잘 안듣다.
제사는 또 얼마나 자주 돌아오는지, 거기에 추석과 설날을 더하면 한달 반에 두번의 제사를 치르는 셈이다.
제사 때마다 그 많은 어른들이 오셔서 제사를 꼭 밤12시에 지내기 때문에 저녁뿐만 아니라 다음날 아침까지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신혼시절.
35년도 더 된 이야기.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때마다 일주일 씩 시댁에 오라고 하였다.
시댁에 가면 집안에 일하는 아이를 도와서 부엌일을 배웠다.
여름 방학 때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서 일주일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려는 참이었다.
어머님이 말씀하시기를 8월말에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제사요? 제사를 뭐하러 지내요? 산사람한테도 잘 못하는데 안갈래요."
"아니 니 조카 백일까지 챙기면서 제사를 안지내겠다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고 그날 어머니는 울면서 당신 아들한테 전화를 했었다고 한다.
집에 오니까 남편은
"니가 뭔데 우리 엄마한테 그럴 수가 있어."
그날 맞았다.
울부짖었고 옆에 사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와서 방문앞에 서서 들여다 보면서도 아무말 안하고 구경하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전화해서 그런일이 있어도 모르는 척 하라고 전화했었다고 했다. 미리 각본을 짜고 시작했던 것이다.
평생에 처음 겪는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남동생이랑 싸웠다고 아버지한테 헛간에 끌려가서 나무 막대기로 맞은 이후로.
모든 일에는 초등대처가 중요하다. 사건에서 초등 수사가 중요하듯이
곧 바로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었고 법무사에 가서 고소장을 썼다.
파출소에 가서 고소장을 접수할거라고 통보했더니 그날 바로 와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거라고
"잘못했어. 다시는 안그럴거야. 처음이잖아."
울면서 빌었지만 이혼한다고 하였다.
친정엄마가 오셨는데 딸 이혼 시켜서 월급 챙길려고 한다고 하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현실이었다.
일직이어서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갔다.
함께 일직하는 선생님께 이혼할거라고 말씀 드리니까 선생님 친정언니가 밥푸다가 시어머니 밀쳐서 이혼 당했다고 이혼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친정언니는 아이들도 두고 쫓겨나서 할일이 없어, 이리 기웃, 저리 거웃, 거리를 기웃거리고 남자는 새여자 얻어서 잘만 살고 있다고 말하였다.
친정 쪽에 5촌벌 되는 오빠가 같은 동네에 있는 부대의 부대장으로 있었는데 찦차를 타고와서 한번만 더 때리면 정보부로 데려 간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남동생도 와서 한번만 더 손대면 와서 가만 안놔둘거라고 협박했다.
바보처럼 그냥 맞는게 어디있냐고 '한두대 때리고 말것 같다'고 한대라도 맞으면 절대로 안된다고 힘을 써서 못때리게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다음해 여름 휴가 때 여행을 갔다가 친정인 대전에 가자고 하더니 대전에 있는 큰 집에 인사나 하러 가자면서 갔더니 제사 지내는 날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휴가 날자를 잡고 날자에 맞춰서 친정에 갔다가 제사 날자에 큰집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제사지내는 데 가자고 하면 안 갈 것 같으니까 속여서 데리고 간 것이다.
개인 주택 이층이었는데 큰방 작은방 복도 그리고 주방에 사람들이 가득가득 하였다.
현관에는 신발이 넘쳐서 밖에까지 나와 있었다.
속였다고 그 자리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주방에 가서 일을 도와 주는데 누군가가 말한다.
"안온다고 하는데 기어이 데려왔네. 뭐하러 저렇게 데려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제사상을 차리더니 불러내서 죽 한줄로 서 있는 끝에 가서 절을 하라고 하였다.
끝까지 서 있었다.
할 수 있는게 절 안하고 서 있는거였다.
어머니와 아버님의 얼굴은 '니가 어떡하나 보자'는 표정이었다.
제사를 지내고 산에까지 갔다.
산에서도 절을 안하고 서 있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핍박은 그것이 시작이었다.
제사 때문에 힘들게 살아야 하는 1405호나 제사 때문에 끊임없는 핍박을 받으면서 힘든거는 마찬가지였다.
◐ 부모 말을 잘 듣는 남자는 부인 말을 잘 듣는 남자 일 수도 있다. ◑
◐ 아는 샘이 같은과 동기생과 캠퍼스 커플로 결혼 했는데, 결혼 후 아이들이 초등학교 학생이 됐을 즈음 남편이 춤바람이 났다.
춤바람에 대하여 항의를 하면 손찌검을 해서 얼굴에 멍이 들어서 출근할 때도 있었다.
"한대라도 맞지 마셔요. 무조건 파출소 신고하셔요. 그럼 무조건 조사하러 옵니다."
다음부터는 손만 올라가면 전화기 들고 파출소에 전화 한다고 하였고 그러면 올라갔던 손이 내려간다고 했다.
나중에 샘도 같이 스포츠 댄스를 배워서 함께 춤추면서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 ◑
◐ 15년전 쯤.
원룸 201호.
바람이 나서 둘다 가정을 버리고 원룸에 입주한 커플이 날이면 날마다 싸웠다.
남자가 얼마나 과격한지 창문을 깨고 뛰어 내린다 난리를 쳤다.
그때마다 전화를 해서 창문 수리 뿐 아니라 더불어 여자의 하소연도 들어야 했다.
어느 날 또 전화를 했길레 바로 파출소에 연락을 했다.
원룸으로 파출소 순경이 찾아갔고 그 다음부터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래 살지는 않았는데 참 힘들게 세상을 사시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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