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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17. 난로와 침묵

by 영숙이 2020.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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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와 침묵>   

 

   새벽에 버스를 타고 청산에 도착하였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거울을 보니 안색이 참 나빴다.

   기분이 좋지 않아 소음 밖으로 나와서 길가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관광버스를 잡아 탔다.

   청성에 들어오는데 저만큼 앞에서 누군가가 뒤돌아 보고 있었다.

   한참 쳐다보니 지소장님 같았다.

   고개를 돌리길래 잘못 봤나 보다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으려니 다시 돌아다본다.

   그때서야 지소장님 임을 확인하고 인사를 하였다.

 

   가족계획실에 용인 아저씨가 전에 쓰던 난로를 손질하여 설치하였다.

 

      " 진료실에도 난로를 놓아야겠어요. "

      " 전에는 안 놓고 가족계획실 난로를 같이 썼어요. "

      " 추워서 진료를 어떻게 합니까? "

      " 난로도 없는데요? 사 와야 해요. "

      " 우선 내 돈으로 사고 나중에 보건소에 이야기하죠 뭐! 누가 청산 나갈 사람이  없을까요? "

 

   마침 농협의 김 군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 김 군한테 부탁하면 되겠네요! "

       " 아! 저도 청산 좀 나가야겠어요! 청산 김양한테 책 빌릴 게 있거든요. "

 

   곽 양이 옆에서 말했다.

 

        " 김양. 가는 길에 청산에서 도토리 묵 사 가지고 와. "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 조용한 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좋았다.

   청산 면사무소에 김양을 만나러 가니 다른 사람들은 출장 가고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 한다. 옆에 앉아서 약품 대장 등 서류들을 들여다보니 깔끔하고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커피 한잔 마시고 책도 빌리고 탁구도 치고 도토리 묵을 사러 갔더니 다 팔리고 없었다.

   좀 늦어져서 버스를 타고 보건 지소로 향했다.

   

   진료실에서 윤선생님은 새로 사 온 난로를 설치하느라 철사로 연통을 묶고 있었다.

 

      " 왜 이렇게 늦었어? "

      " 청산 김양하고 업무 이야기도 하고 학교 관계 이야기도 하느라 늦었어요! "

      " 도토리 묵 기다리다가 선생님이 호빵 사줘서 호빵 먹었지. "

      " 정말 예요? 선생님? "

      " 정말이야! 그런데 오토바이 신나게 탔어? "

      " 네! 재미있었어요! "

      " 오토바이를 타고 뒤를 잡던데? 사람을 잡아야지! "

      " 사람 잡기가 뭐해서요. 왜요? 사람을 잡을 걸 그랬나 봐요."

     

   난로를 다 놓은 후 우리 모두는 가족계획실에 앉아서 각자 자기의 일을 하고 있었고 윤선생님은 난로가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 대전 우리 동네에 미장원이 있는데요! 그 아줌마 세컨드인가 봐요. 늘 혼자 있다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만 아저씨가 있어요! 아저씨 나이도 굉장히 많아 보이더라고요! "

       " 아줌마는 여느 여염집 부인 같지 않고 굉장히 야하게 보여요! "

       " 아마, 아저씨가 미장원 차려 주고 어쩌다 일요일에만 오는가 봐요! "

       " 김양은 맨날 세컨드 얘기만 하드라! "

       " 내가 언제 그랬어요? "

       " 전번에도 무슨 여고 교장이 누구 세컨드인데 얼마나 똑똑한지 학교도 세우고 교장도 하다가 죽어서 그 학교에 묻히고 학교에서 비석도 세워 줬다고 했잖아! "

 

   할 말이 없었다. 대꾸할 말이 없어서 잠잠히 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눈물이 나오려 했다.

       

        ㅡ 바보처럼 눈물이 나오려 하다니. ㅡ

 

   눈을 깜박거리다가 얼른 일어나 화장실 가려는 사람처럼 사무실 문을 나섰다. 

   면사무소 뒷문으로 해서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는 엉엉 큰소리로 속 시원하게 울었다.

   낮에는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

   

       ㅡ내가 언제 첩 얘기만 했어? ㅡ

       ㅡ쳇 내가 뭔 말만 하면 괜히 나만 가지고 셋이서 야단이야! ㅡ

       ㅡ 아이. 정말, 전부 미워 죽겠어. 아이 속상해. 엉! 엉! 엉! ㅡ

 

   괜히 혼자 서러워서, 알지도 못할 눈물이 자꾸만 자꾸만 펑펑 쏟아져 나왔다.

   실컷 울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디에 감춰져 있었던지 눈물이 봇물 터지듯이 나오고는 밑바닥을 드러 낸 것처럼 시원해졌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가슴에 차였던 설움 덩어리가 빠져나간 것 같았다.

 

   사실은 울 이유가 없었다. 괜히 혼자서 서러워하고 혼자서 운 것이다. 아마도 그동안 울고 싶었는데 울 이유를 못 찾아서 못 울었나 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웃음이 나왔다.

   빨갛게 된 눈알을 식히기 위해 세수를 하고 물수건으로 눈가를 두드리고는 사무실로 갔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양.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 가니까 곽양은 뜨개질을 하고 안양은 서류 정리를 하고 선생님은 진료실에 계셨다.

   책상 앞에 앉아 정리하다만 출산 기록을 꺼내었다.

   한참 하고 있는데 곽 양이 물었다.

   웃는 얼굴이다..

   

       " 김양! 울었어? "

       " 예? 울어요? 누가요? "   

       " 아까 주인 할머니가 왔다 갔어! 갑자기 김양 방에서 엉엉 우는 소리가 나길래 무슨 일이 났나 싶어 놀란 얼굴로 왔더라고! "

        ㅡ 아이쿠야 ㅡ,

 

   갑자기 얼굴이 화끈 거려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선생님이 건너오셨다.

   

       " 김양 왜 울었어? "

       " 몰라요! 괜히 심심해서 울었나 보죠! ":

       " 아까 내가 그 말했다고 울었어? 뭐 그런 거 가지고 울어. "

       " 아녜요! "

       " 할머니가 놀래 가지고 무슨 일이냐고 ㅡ  열려니까 방문도 잠그고 하두 서럽게 울길래 왔다면서 눈이 둥그렇더라! " 

 

   화가 났다.

   셋이 빙글빙글 웃는 게 더 화가 났다.

   무안하기도 하고ㅡ.

   이제 앞으로는 선생님하고 이야기도 안 하련다. 맨날 놀리기만 하고 ㅡ

 

   그때부터  선생님이 무슨 말을 물어도 대꾸도 안 했고 먼저 말을 일도 없었다. 

 

        " 김양 환자 없었어? "

        "...... "

        " 김양! 주사기 있어? "

        "...... "

        " 김양! 앞으로 영영 나하고 말 안 할 거야? "

        "...... "

 

    인사도 않고 쳐다보는 일도, 말도 하는 일이 없는 영숙이 대신에 곽 양과 안양에게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도 화가 났는지 꼭 필요한 일 이외에는 가족계획실에 건너오지도 않고 며칠이 지나갔다. 

  

   저녁 무렵 윤선생님에게 서울에서 시외 전화가 왔다. 

 

       " 네? 병원에 갔다고요? "

       " 낳았어요? 아직 안 낳았다고요? "

       " 집 사람이 아기 낳으려고 병원에 갔데요! 지금 가봐야 되겠어요!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일찍 와야 월요일 날에 올렀는지 모르겠어요! "

< 풍경이 좋다고 사는 사람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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