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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33.이사

by 영숙이 202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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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안양 언니를 따라 언니가 사는 집에 갔다.

   같은 집에 만명리 이장 집에서 만났던 김서기가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김서기가 안방에 길게 누워 예쁘장한 얼굴에 술로 벌겋게 된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우리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안양 언니가 설명했다.

 

      ㅡ 글쎄 저 김서기가 장수리에 출장 갔는데 이장집에서 저녁을 한상 잘 차려 술이 취하도록 먹여 재웠다지 뭐야. 그러고는 그 집 아가씨를 밤중에 몰래 들여보내 같이 잤대요. 그런데 저 김서기가 책임 안 진다고 절대로 결혼 못한다고 그 아가씨 싫다고 펄펄 뛰었대요. ㅡ

     ㅡ 시골에는 이런 일이 자주 있기는 하지만 그럴 거 같으면 아가씨 있는 집에는 왜 가서 먹고 취하고 자고 그랬는지 모르겠네. 그냥 결혼하면 될 거 같은데 ㅡ

 

   김서기가 장수리 출장을 아무 이유 없이 다녔던 게 아니었다.

   만명리 이장 집에서 만날 때도 장수리 다녀오는 중이라고 했었다.

   그 날 자전거 타고 올 때 아무 생각 없이 탔었는데 그 자전거는 같이 타면 안 되는 자전거였었다.

   

   그다음에도 출장 안 가냐고,

   같이 가자고 여러 번 보건지소에 왔었는데

   영숙이는 출장 안 갈 거라고 거절했었다.

   면사무소 직원과 같이 갈 출장은 없었다.

   어쩌다 이장 집에서 만난 것뿐인데 그 걸 인연으로 삼으려 애쓰다니.

 

   아직 날도 밝은 데 술이 잔뜩 취해서 남의 집 안방에 길게 대자로 누워 지나가는 여자들을 저렇게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니 애당초 사상이 글러 먹었다.   

   윽(토하는 소리)이다.

 

 

   

   수요일 저녁에 보건 지소 뒤에 있는 교회를 갔다.

   군인 복장을 하신 목사님이 설교를 하여서 깜짝 놀랐었는데 구세군 교회라고 했다. 

   잘 몰라서 이단인가 싶어 동생한테 물으니 구세군 냄비를 연말에 설치하는 온전한 지파의 교회라 했다. 

   교회 옆에 좀 크고 깨끗한 집이 있었는데 교회 다니시는 할머니 혼자 사시고 집도 좀 넓고 세를 놓는다 하여 영숙이는 그 집으로 옮겼다. 

 

  영숙이는 안방으로 해서 들어가는 윗방에 기거하기로 하였다.

  안방은 부엌 하고 연결되어 있어 난방을 따로 안 해도 되고 텔레비전도 볼 수 있고 교회 다니시는 할머니가 이야기도 잘하시고 또 남향이라 햇볕도 잘 들었다. 

   할머니네 외손자나 친손자가 자주 놀러 오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영숙이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집이었다. 

 

   

 

   환자는 눈만 살아 누워 있었다.

   보건지소장인 윤선생님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한 지 다섯 번 만에 벌써 5년 이상이나 꼼짝없이 누워 있던 그의 방에서 동네 사람 다섯 명에 의해 들려 나와 경운기에 실린 것이다.

   

   돈이 없다는 것이 그 남자가 방치된 유일한 이유였다.

   사실 시골에서 천만 원씩이나 들여 수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 두 노인네가 짓는 약간의 농사로 먹고사는 처지에,

   한 사람의 존엄한 생명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어두운 방 안에서 죽음과 대면하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처음 윤선생님과 그 집을 방문하여 환자의 부어 오른 무릎에 윤선생님이 주사기를 꼽은 다음 잡아당겼을 때 나오던 누런 농은 그냥 풍풍 솟아 나올 정도였다.

   면사무소에서 극빈자 보호 대상자로 황색 카드를 발급받고 윤선생님이 계신 카토릭 의과 대학과 같은 계열의 성모 병원에서 수술비를 부담하기로 하고 오늘 옥천 성모 병원에 입원시킨 것이다.

   완치율은 50%였으나 지금 남자가 겪고 있는 육체적 고통을 줄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경운기 위에서 그 남자를 들여다보며 눈물짓던 할머니 모습이 망막 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보건소 뒤로 교회 옆을 지나 집으로 퇴근하면서 아랫집을 내려다보니까 지대가 높아서 불이 켜진 초상 치르는 집안이 환하게 들여다 보였다.

   엊저녁에도 아랫집 초상 난 집에서 밤새 윷놀이를 벌이는 것 같더니만 오늘도 벌이고 있다.

   마당에 쳐놓은 천막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자리 보존하고 누워 계시던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대청마루에는 누런 상복을 입고 머리에 노란 끈을 감은 곡하는 남자들이 보이고 부엌에는 상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여기저기 밥상을 차려 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들들은 돌아가면서 대청 빈소 앞에서 곡을 한다.

   애 ~고, 애~고 하는 곡소리가 밤새 노래 가락처럼 들린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면서 보니 아랫집에 상여가 나가는 모양이다.

   마당에 상여가 놓여 있고 광목천으로 상복을 아래 위로 하얗게 입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상여에 매는 끈을 점검하고 있다.

   자기가 맬 자리에 서서 끈을 잡아 다녀도 보고 삼삼 오오 모여 서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교회 위쪽 비탈진 곳 위에 있는 산에 무덤을 만들려는지 거기에도 하얗게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몇몇 사람은 제법 깊이 파인 땅 속에서 삽질을 하고 있었다.

 

 

 

   영숙이가 이사할 때 할머니네는 사랑 채를 수리하고 있었다.

   윤선생님은 지금 기거하고 계시는 집이 너무 춥고 반찬도 별로여서 새로 수리되어 따뜻한 할머니 집으로 옮기고 싶어 하셨다. 

   할머니한테 여쭤 보니 반찬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하셔서 선생님한테 말했더니 선생님은 그냥 할머니 드시는 대로 주시면 된다 해서 선생님은 보건지소 바로 뒤 교회 옆 할머니네 사랑채로 이사를 오셨다.

 

   영숙이와 윤선생님은 아침 먹을 때부터 저녁 먹을 때까지 함께 하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선생님하고 같이 밥을 먹는데 영숙이만 따로 먹기가 그러니까 영숙이도 같이 먹자고 해서 식사를 같이 하기로 한 것이다.

   할머니 집은 지대가 높아서 아침 먹고 9시에 맞춰 보건지소를 향해 할머니 집과 같은 높이에 있는 교회 옆을 지날 때면 보건지소와 면사무소가 내려다 보인다.

   

   아침 먹고 호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면사무소 마당과 버드나무를 내려다보며 출근하였다.

   선생님을 쳐다보니 선생님도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짚어 넣고 표정 없이 면 사무소를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다.

   저 밑에 안양 언니가 면사무소 정문을 지나 버드나무 아래를 예의 아장아장 ~ 아장 이는 걸음으로 출근하고 있다.

   윤선생님과 영숙이가 나란히 출근하는 게 보이니까 속이 구부러진 웃음을 웃는 모양이 보였다.

 

   언니들이 어떤 심사로 웃는지 어떤 마음으로 영숙이와 윤선생님을 지켜보는지 안다.

   아무리 언니들이 그래도 영숙이는 그런 언니들의 기대를 무너뜨릴 것이다. 

   

   

   윤선생님과 함께 생활하던 시간 속에서는 빗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푸짐한 눈 내리는 소리.

   영숙이에게는 정말 쓸쓸하고 차가운 눈발 들이었지.

   창밖에서는 여전히 바람 소리가 몰려다니고 홀로 선 버드나무에 그 긴가지들이 바람에 맞춰 눈송이 사이를 춤추고는 하였지.

   

   창문 앞에 선 영숙이는 가슴을 앓고 있었지. 

   무엇인가를 목마르게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없는 가슴으로

   텅 비고 쓰라린 가슴으로 내 작은 숨소리를 들고 있었지.

 

   창 밖에 홀로 서 있는 저 버드나무처럼 윤선생님은 영숙이의 앞에 나타났지.

   

   소슬하게 차가운 얼굴로,

   허전하고 추운 몸짓으로 선생님은 영숙이 옆에 서 있었어.

   

   차츰 따뜻해 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장 밖에 홀로 서 있는 저 버드나무처럼 홀로 서 있었지.

 

   어차피 이별을 전제로 한 만남이었어.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사람들이기에

   원상태 인체로 헤어져야 했지.

   지금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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