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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 선 버드나무 > 34. 사랑의 주제가

by 영숙이 2020.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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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제가>     

 

      " 유아 비누가 한 달에 한 상자씩이나 쓰이는데? "

      " 기저귀를 유아 비누로 빠니까 그런가 본데! 신생아의 피부는 약하거든! 그래서 유아 비누를 안 쓸 수도 없고! "

 

   영숙이는 선생님의 얼굴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윤선생님은 집 생각을,

   새로 태어난 아가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내가 여기 내려온다니까, 따라 내려온다는 걸 말렸었지! 여동생이 만삭 된 몸으로 시골 갔다가 택시 안에서 몸을 틀기 시작하여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애를 낳았거든. 칠칠치 못하게끔. 곧 아기 낳을 사람이 버스 타면 흔들려서, 잘못하면 버스 안에서 아기 낳기 십상이거든. 우리 아기가 태어난 지 벌써 세 달이나 됐군. "

 

   그 순간, 윤선생님은 아가야 아빠였다.

   다만, 아가야 아빠 일 뿐.

   영숙이와는 상관없는 이방인,

   먼 존재인 것이다.

   

 

   이튿날은 날씨가 푸근했다.

   창 밖의 버드나무도 말갛게 씻은 새초롬한 긴 가지들을 부드러운 바람에 맡긴 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10시 좀 지나서 옥천군 군 보건소에 군 보건소장이 보건소 차를 타고 이곳 청성 보건지소에 왔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가족계획 교육을 하기 위해서이다.

   예비군들에게 정관수술을 하고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 준다고 권유한다.

   보건소 차에는 용산 보건소에 무의촌 진료로 파견된 지소장도 함께 타고 왔었다.

   

   마침 할아버지 한 분이 리어카에 실려 진료 왔다가 돌아가려고 하는데 용산면 지소장이 할아버지를 업고 나오는 젊은 사람 뒤를 이불을 들고 따라 나와서 리어카에 실리는 할아버지에게 잘 덮어주고 있었다.

   

   영숙은 용산면 보건 지소장님을 바라보면서 윤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윤선생님은 그저 현관에 서서 양쪽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짚어 넣은 체 환자를 리어카에 싣고 용산면 보건 지소장이 이불을 덮어 주는 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확실히 윤선생님은 차가운 사람이다.

   자기에게 진료받고 돌아가는 환자를 그저 구경하고 있고

   불편한 환자를 옮기는데 딴 곳에서 근무하면서 이 곳에 잠깐 들린 용산면 보건지소장이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영숙이는 창문 안쪽에 서서 왔던 사람들을 싣고 가는 군 보건소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윤선생님에게 물었다.

       " 용산면 보건 지소장님 결혼하셨어요? "

   난로 가에 앉아 있던 윤선생님이 고개를 들고 영숙이를 자세히 바라보면서 빙긋 웃는다.

 

        " 응? 미혼이라던데? "

        " 그래요? "

        " 왜? "

        " 아니, 그냥 결혼했나 싶어서 물어봤어요. "

 

   푸근히 풀린 창 밖의 날씨에 버드나무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허브차가 난로 위에서 끓고 ㅡ

   사무실 안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ㅡ

   영숙은 문학 사상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을까?

   선생님을 바라보니 창 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정말 조용하다.

   곽 양과 안양도 아까 군 보건소 차에 보건지소 지소장과 함께 보건소 차를 타고 출장 명령서를 쓰고 출장이라면서 집으로 갔다.

   창 밖에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내 작은 공간에는 찻잔이란 제목의 노래가 스미어 든다.

   갈색의 향기가 온 방안에 번져 있는 듯한 느낌은 행복한 것이다.

   

       

   

        ㅡ 사랑의 주제가 ㅡ

 

   늘 같이 부르고 함께 듣던 노래.

   대학 때 절친이었던 선아랑 만나면 언제 어디서나 이중창으로 불렀던 주제곡.  you are my sunshine 은 외우기 쉽고 이중창으로 부르기 쉬워서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많이도 불렀었다.

     

< you are my sunshine >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you make me happy when skies are gray

         you'll never know dear, how much I love you

         please don't take my sunshine away.

 

   사랑의 주제가는

   먼 훗날 사랑이 성공했을 때,

   살아가다가 권태를 느끼던 어느 날.

   

   거리를 걸어가다가,

   어느 거리의 음악사에서 흘러나오는 예전에 그 사랑의 주제가에 문득 걸음을 멈추고 옛날 행복했던 시절,

   사랑에 주제가를 함께 부르던 꿈같은 시절을 기억해 내고는,

   다시 기운을 차려 생활하게 하는 노래.

 

   혹 성공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남몰래 혼잣 속으로 가끔가끔 어쩌다가 옛 아름다운 시절을 생각해 보고는 미소를 짓는다는,

   사랑의 주제가.

   

   영숙은 " 젊은 연인들 "이란 노래를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남동생 석이에게 배웠다.

   사무실에서 청소할 때,

   혹은 한가 할 때,

   라디오를 듣지 않을 때,

   노래를 불렀다.

 

        "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ㅡ "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는 따라 불렀다.

   

   

  선생님은 이쪽 사무실로 건너오셔서는 영숙이 책상 위에 있는 잡지책을 집어 들었다.

   

   사무실 바닥에 물을 뿌린 후 빗자루로 쓸고 밖의 청소도 마치고,

   면사무소에서 가져온 허브 차는 난로 위에서 기분 좋게 끓고 있었다.

 

   영숙은 청소를 마쳤을 때의 말끔한 기분으로 방금 막 씻어온 컵에다 허브 차를 따라 설탕을 타던 손을 멈추고는 고개를 들어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선생님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에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ㅡ "

 

   영숙이는 슬그머니 웃고 있다가 잡지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차를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을 불렀다.

 

      " 선생님 드디어 노래 부르시는군요. 언제인가는 선생님이 그 노래 부르기를 기다렸어요. "

 

   선생님은 회색 빛 시선으로 영숙이를 돌아보았다.

 

      " 사랑의 주제가요. "

      " 언제인가 선생님이 먼 훗날 그 노래를 들으시면 생각 날 거예요.

        여기서 함께 생활했던 날들이요.

        그게 사랑의 주제가죠.

        요즈음 제가 매일 그 노래를 불렀잖아요.

        언제인가는 선생님도 부를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드디어 부르고 계시잖아요. "  

 

   선생님은 회색빛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고,

   창밖에는 부드럽게 버드나무 가지가 춤추고 있었다.

   영숙이는 허브 차를 선생님이 앉아 계신 책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 차 드세요. "

 

   영숙이는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을 보았다.

   부드럽게 춤추는 버드나무 가지들.

   윤선생님과 영숙이는 헤어져야 한다.

   영숙이는 지금 떠남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지금 그 사실을 알려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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