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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물세살의 수채화

by 영숙이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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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살의 수채화>

 

15. 윤선생님

 

윤선생님이 오셨다고 청산으로 모두들 점심 먹으러 나갔다.

 

청산면에서 음식점을 찾아 걷는데 뒤에 오는 일행들의 시선 중에서 유독 선생님의 시선이 영숙이의 줄 나간 스타킹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할 수만 있다면 땅 속으로 스며들든지, 아니면 어디에라도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 나간 스타킹이나 남의 시선 따위에는 무감각하던 영숙이가 갑자기 스타킹에 신경이 쓰이다니 별일이다.

 

음식점을 알아 놓고 양품점에 가서 스타킹을 사서 갈아 신고 돌아와 보니 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음식점 뒤뜰에서 한가한 농담들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뒤뜰에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감나무에 매여 있었다.

영숙이가 아무 생각 없이 나무 곁으로 다가섰더니 개가 짖으면서 달려드는 바람에 어찌나 놀랐는지 높은 소프라노로

 

"엄마야!"

 

를 외쳤다.

군 보건소에서 오신 분이 개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개를 다룰 때는 뒷모습을 보이면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해서 달려들어요.

개하고 눈을 마주치고 바라보면 꼬리를 내리거든. "

 

음식이 나왔을 때 선생님과 대각선으로 마주 앉게 되었다.

창백한 얼굴을 숙이고 방바닥을 내려다보는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영숙이는 어떤 예감으로 아니 예감했던 어떤 일이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보건소 차가 안양, 이양, 영숙이, 이제 이곳 지소장님이 되신 윤선생님을 보건지소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진료실을 점검하던 윤선생님이 건너오셔서 어디 방 구할 데가 없느냐고 물으셨다.

시선을 책상 위에 떨어트린 체 바지 옆 주머니에 양손을 찌르고 서 계시는 윤선생님의 창백하고 이지적인 모습.

이쪽 책상 앞에 서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영숙이의 마음은 떨리고 있었다.

 

그냥 무심코 이 쪽을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정시하여 받아 내지 못하고 시선을 떨어트려 손을 보니 손톱이 너무 길고 더러워서 얼른 등뒤로 감추었다.

등 뒤로 돌린 손을 의식하게 되자 당황하여 손가락을 구부려 손톱이 보이지 않도록 애쓰면서 재빨리 장부를 들어 책상 서랍에 넣었다.

시선을 들어 재빨리 선생님을 올려다보니 차가운 얼굴이 창밖을 향해 있었다.

 

회색 양복.

하얀 와이셔츠.

저처럼 잘 어울리는 분은 처음 뵌 것 같다.

 

사무실이 꽉 차서 숨쉬기가 답답하고 곤란한 것 같다.

 

185센티.

수려한 외모.

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이는 피부.

외과 의사.

남자로서 최고의 시절인 32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무튼 너무 멋진 남자다.

저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얼굴.

 

창 밖에 수없이 많은 가늘고 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면서 수많은 나뭇잎들을 바람결에 따라 떨어 트리고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

 

선생님의 홀로 서계신 모습이 창 밖의 버드나무만큼이나 영숙이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고 계시는지.

 

선생님은 안양 언니가 얘기하는 먼저번 지소장님이 계시던 방을 보러 안양 언니와 버드나무 밑을 지나 면사무소 정문으로 향하였다.

뒷모습을 보이며 약간은 고개를 숙인 성실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가고 계셨다.

 

"버드나무야.

저분이 글쎄 총각이란다."

"버드나무야.

너는 아니?

이 떨림을? "

 

곽양언니가 청산에서 보건지소로 돌아왔을 때 말했었다.

 

"보건소 이주사가 그러는데 아직 미혼이라든데?"

 

영숙이의 가슴은 왜 이렇게 드높게 뛰고 있는지.

 

"버드나무야.

너는 아니?

이 흥분을?'"

 

모두들이 가버린 비인 사무실에서 창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창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까 저녁 먹으러 청산으로 나가기 위해서 보건지소 사무실을 대충 닫은 다음 랜드로바 자동차를 타기 위해 보건지소 현관문을 나서서 버드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 선생님이 하시던 말을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보고 있었다.

 

"집이 어디예요?"

"대전요."

"그럼 대전서 통근해요?"

"아, 여기 집요? 이 동네예요."

"어디인데요?"

"저 위예요."

 

영숙이가 들뜬 표정으로 받아 내고 있었던 말들.

선생님이 처음으로 영숙이에게 건네 오던 말들.

 

사무실 사방 창문에 묶었던 하얀 포플린 커튼을 내리고 다른 날과는 다른 기대감으로 사무실을 벗어났다.


출처: https://sjjtc1.tistory.com/179 [베이비 붐 세대 - 또순이:티스토리]

  ◐ 어제 여동생이랑 통화를 했다.

이즈음에는 시간이 날때 여동생이랑 통화하면서 잡담을 나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친정아버지의 바람기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는 정말 바람을 많이 폈어.

그나마 다행인게 밖에서 아이를 낳아 오지 않은 것만도 어디야.

예전에는 혼외자식도 많이 낳아서 데리고 왔잖아."

"그게 살아가면서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 몰라.

키울 때부터 문제가 되고 키우고 나면 또 재산분활에 문제가 나오는가 보더라."

"친구가 말하는데 자기 학교 다닐때 꽤 친했던 친구가 자동차 관련공장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엄청 부자로 잘살았는데 공부는 안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해서 일찍 결혼하고 엄청 싸우다가 이혼했대"

"친정아버지가 딸만 둘이 있으니까 밖에서 아들을 하나 낳아가지고 왔나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초등학생이 된 그 아들을 해외 입양보냈나봐. 안가겠다고 울고불고하는 애를 억지로 비행기 태워서 해외로 보내버린거야."

애없이 이혼하고 이번에는 매너가 기가 막힌 남자를 만나서 재혼했는데 정말 깎듯이 친구를 모시고 새벽기도를 무려 함께 6년을 다녔대.

어떻게 됐게?"

"남자가 공장 재산을 다 빼돌리고 이혼하자고 해서 이혼했는데 이혼하고 바로 부도가 나서 보니까 남은게 아무것도 없어서 결국 먹고 살길이 막막하니까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불쌍하게 여겨서 사찰집사로 교회에서 사나보더라."

"남자는 이혼하고 본처한태 갔대. 거기에 아들이 2명 있었다더라."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낳아 왔으니 남보다 나을텐데 잘키워서 공장 운영시켰으면 부도는 안맞았을텐데. 그렇게 잔인하게 해외입양시키더니 끝내 망한거지.".

"어쨌든 우리아버지는 바람은 많이 피웠어도. 자식을 낳지는 않았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안 낳은게 아니고 안생긴거 아니야?"

"어쨌거나."

"우리 아버지 시절에는 조금만 잘살았다하면 작은집도 많이 뒀잖아."

"올케만 해도 어렸을 때 올케 아버지가 집에 여자를 몇번이나 데리고 들어왔다고 하더라. 결국은 마지막 여자는 재산이 있는 것을 알고 아들을 낳아서 안떨어졌다고 하더라. 돌아가실때 그여자앞으로 재산을 다 돌려놨다하던데."

 

요즈음 우리나라 이혼율이 서양 못지 않게 높다고 알고 있다.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으니 귀히 여기고 잘 키우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에 또 쉽게 결혼하고 아이도 쉽게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세대마다 결혼 풍습이나 아이들 양육방식도 다양해지는 것 같다.

 

다행히 베이비붐 세대는 아이를 많이 낳기도 하였지만 아이를 공부시키고자 하는 교육열도 높았기 때문에 베이비 붐세대들이 많은 혜택을 입은 거 같다.

 

교육을 받은 덕분에 결혼이나 양육방식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영숙이 5형제는 대부분 1부1처제를 고집했지만 그중에서 바람둥이였던 아버지를 닮은 아이가 있다.

연애할 때도 연애도 많이 했지만 결혼 이후에도 한남자만을 바라보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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