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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물세살의 수채화

by 영숙이 202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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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살의 수채화>

 

13. 지소장의 떠남

 

가뭄을 달래는 오랜만의 단비로 이 작은 산골도 무척이나 바빠졌다.

 

모심으랴

물 대랴

농사일들이 태산이다.

 

사무실로 면사무소의 한서기가 면장님이 안양과 곽양 언니를 부른다고 데리러 왔다가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을 보고 영숙이랑 면사무소 이야기를 하다가 갔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영숙이랑 초등학교 동창인 김기남이 여기 청성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군대를 갔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이 동네 아가씨랑 사귀다가 군대를 갔는데 이번에 그 아가씨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 기남이가 여기 면사무소에 근무를 했었구나.

아들을 낳았구나. ~

 

기남이는 옥천군 군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반장이었다.

그 애가 아파 3월 한 달 내내 학교에 안 나와서 우리 반 아이들이 모여 깊은 산골 외딴집에 사는 그애네 집에 병문안을 갔었다.

 

그애네 집에 가는 골짜기 골짜기마다 ~
냇가 냇가마다 ~

진달래가 정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기남이를 생각하면 언제나 골짜기의 진달래와 함께 떠오른다.

 

형이 기남이 고등학교 입학금을 들고 서울로 튀어서 고등학교를 못 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여기 청성 면사무소 면서기로 근무하다가 군대를 갔다는 거다.

 

💎
보건 지소 옆에 펌프로 지하수를 퍼 올리는 우물이 있다.

그 뒤에 커다란 자두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상당히 많은 열매가 달려 있다.

 

열매를 따서 겉 표면에 얇게 퍼져 있는 것을 닦으면 반짝이는 진짜 표면이 나온다.

 

몇 알을 따서 펌프가에 있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며칠 후 자두나무에 열매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두를 따간다고 용인 아저씨가 몇 번이나 야단쳤는데도 어느 사이 한알도 안 남기고 따갔나 보다.

아니면 용인 아저씨가 전부 따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이 선생님이 건너오셨다.

 

"지금 어디에서 있어요?"

"할머니 집에요. 농협 다니는 주양 옆방이에요."

"그 방 옆방에서 밥 먹는 소리까지 다 들리지 않아요?"

"어떻게 아세요?"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거기서 살았거든요."

 

지소장님이 난처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부인은 가끔 사무실로 와서 냉장고에 고기를 가져가거나 맡기거나 한다.

또 가끔 치료실에 와서 지소장이 귀를 후벼 준다든지 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부인이 퇴근 무렵 데리러 와서 둘이 나란히 반바지를 입은 부부가 면사무소 문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빈 사무실.

 

석양이 내려오는 창문앞에 서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숙이의 가슴에서 바람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외로움.

시골의 고요함.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집으로 향하는 신혼부부의 정다운 뒷모습을 만나면 외로움이라는 바람이 스며들어 온다.

 

장모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반찬이며 부엌을 치워 주고 간단다.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중매지 뭐."

"중매쟁이들이 두툼한 서류철을 가지고 매일 오거든."

"선 본건 76번인가?"

"한번은 호텔 카페에서 오전에 선 보고 오후에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 보는데 저쪽에서 오전에 선 본 여자가 다른 남자하고 맞선을 보고 있더군."

"요지경 속이라니까."

"나중에는 선을 너무 많이 보니까 그 여자가 그 여자같고 잘 모르겠더라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선본 여자 중에서 아직 시집을 안 간 그래도 괜찮다 싶었던 사람에게 연락했지."

"그때 고른 사람이 바로 집사람이야."

"내가 구제해 줬지."

"장인이 부산에서 산부인과 local을 하고 있어."

"혼인 신고하려고 호적등본을 떼 보니까 집사람 출생 신고보다 부모님 혼인 신고가 늦게 돼 있더군."

"무의촌 근무는 해야지.
혼자 오기는 싫고 어떻게 해."

"부리나케 결혼을 했지.
여기 오기 한 달 전에 했으니까."

 

"우리 아버지는 대구에서 조그만 공장을 하고 있어."

"삼 남매라서 형님이 도와주고 있고 난 셋째야."

 

"보건지소에 결혼 안 하고 오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

"보건지소 아가씨들
한테 발목 잡힌다고."

 

이선생님은 먼저번 영숙이 전임으로 있던 태자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영숙이는 얘기하면 듣고 ~

말 걸면 대답하고 ~

 

이선생님은 퉁퉁한 모습 그대로 사무실에 신문을 참 풍성하게도 남겨둔 체 떠나갔다.

 

"김양 내가 가서 편지
할게."
"혹시 병원의 일자리도 있는가 알아보고."

 

이선생님 부부는 9월 말에 떠나갔다.

 

영숙이가 감나무 가지
로 꺾꽂이를 하여 빈 사무실을 채우고.
들꽃을 방안의 물병에 채워 위로로 삼고 보냈던 9월 말에.

 

"이선생님은 아침마다 일어나서 마당을 쓸었어요."

"참 착실하고 사람이 좋아요."

"장모가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녀 갔어요."

"부지런하지 않은 여자가 남편 복이 있는가 봐요."

 

시골 사람들은 부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시의 부잣집 숙녀.

 

시골 여자들은 남자
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집안일.

가축 기르기.

밭일.

농사짓기 등등

부인의 처지를 이해 할리가 없었다.

 

부인은 심심하다면서 영숙이에게 문학사상 책을 빌려 갔었다.

다 읽었다고 가지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책을 가지러 이선생님 집에 가니 부인은 방문 앞에 대발을 치고 화문석 돗자리 위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하얀 모시옷.

시원하고 깨끗하다.

 

시골 사람들은 비치는 옷 입었다고 야단들.

 

시원한 자리 위에서 영숙이는 녹차를 한잔 대접받았다.

칙칙한 청바지의 영숙이는 조심스러웠다.

 

보건소 랜드로바 차에 이런저런 모든 것을 싣고 이선생님 부부는 떠나갔다.

반바지.

강낛시.

먹을 것이 있는 여름과 함께.

 

보건 지소장을 떠나
보내는 영숙이의 머리
는 커트로 짧아 있었다.

 

여름의 땀.

고뇌.

영숙이의 결핵.

아팠던 가슴과 함께.

긴 머리를 잘라 버리고 커트로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외로운 가을은 가끔
가끔 비를 뿌리고 있
었다

 

출처: https://sjjtc1.tistory.com/177 [베이비 붐 세대 - 또순이:티스토리]

 

◐ 지금도 누군가는 결혼을 거래로 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한다해도 세월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결혼 생활이다.

 

오랜 결혼 생활은 사랑해서 결혼을 했거나 거래로 했거나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선생님이 늘 ~ 지민이 왔어? ~ 그러면서 이름을 불러 주는게 참 좋았어요."

 

이렇게 이쁘게 말할줄
아는 지민이는 군대를 갔는데 여자친구를 사귀려면

 

"너를 좀더 나은 사람
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을 사귀면 좋겠다."

 

라고 지민이에게
말해준 적이 있다.

 

결혼 생활도 좀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
게 만드는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 할 것 같다.

조금씩의 변화지만 그 조금씩의 변화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 큰 변화
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
다.

 

그러러면 믿음이 필요
하다.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결혼 생활과 그에 따른 자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
이선생님의 부인과 이
선생님은 어떤 삶을 살았고 지금은 어떤모
습으로 지내고 계실까?

 

여고 시절 절친이었던 친구들의 소식도 모르
는데 이제 44년이 지난 22살 때 3개월 남짓 보건지소에서 잠깐 함께 근무했던 분들의 소식을 알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같이 근무했었던 분들의 이름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이선생님.

안양.

곽양의 이름과 성도 생각이 안났지만
성은 일기장에 써 있었
다.

 

기억나는 것은 윤선생
님의 이름뿐이다.

여기에 써있는 윤선생
님의 이름은 가명이지
만 선생님의 진짜 이름
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
다.

 

윤선생님과 함께 근무
했었던 6개월 간의 시간들.

만약 병원에서 만났
다면 선생님은 영숙
이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작은 사무실에서 의사
와 가족계획요원이었
지만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로 근무했었기 때
문에 잊혀질 수 없는 시간들이 된 것이다.

그것도 글로 썼기에 남아 있는 것이다.

 


💎
선생님은

기억은 나는데 ...  
이렇게 말씀 하셨지만 영숙이의 진짜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6개월 동안 성만 불렀
으니 이름을 모를 수도 있다.

성은 기억하고 있었을
까?

안물어봐서 모르겠다.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전화 걸었을 때 그때의 목소리로 돌아가서 재빠르게 추억속으로 걸어 들어
오는 것으로 봐서는 기억하고 있었다고 믿고 싶다.

💎
선생님이 기억하던 기억하지 못하던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영숙이가 쓰는 것이고 소설 주인공 중에 한 사람으로 쓰는 것이니까.

난목에 그림 그리는 친구가 말했다.

"글은 니 마음대로 쓰는 거니까."

그렇다.
특히 소설은 관광안내
서도 아니고 전문서적
도 아니고 사진처럼 서술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작가의 시선으로 작가의 역랑만큼 보이는데로 영감을 받아 쓰는 것이다.

 

💎
결혼은 그런 것이다.

 

연애를 해서

사랑을 해서

거래이거나

결혼을 하면

 

연하이던

연상이던

동갑이던

 

돈이 많던 적던

직업이 무엇이던

남자와 여자로 만나서 오랜세월을 함께 하는 것이다.

 

결혼 생활이 짧을 수도 있지만 남자와 여자로 만나서 함께 지내는 것은 사실이다.

 

결혼을 수십번이나 수백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와 여자로 만나서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면 잊혀질리가 없다.

 

이선생님은?

그냥 의사와 가족계획요원으로 3개월을 근무했기 때문에 잊혀진 것이다.

 

많은 남선생님들과 교무실에서 근무했지만 그냥 선생님으로써 근무했었기 때문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글로 쓴 사람이 없어서인지 모두들 쉽게 잊혀진다

 

사진과 글쓰기 중 글쓰기가 생각 속에 더 오래 남는다.

사진은 보는 순간 기억이 났다가 사라져 가고

글쓰기는 그때의 감정이 잔상이 되어 마음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
청송 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근무하다가 군대에 간 기남이는 옥천군청 감사실에까지
승진해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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