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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만에 대박사건 >
살아가노라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잊혀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별일이 아닐 수도 있고 또 뭐 그런 일에 그렇게 의미를 둬?
하고 말할 수도 있다.
약 30년전.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후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
곤충을 잡아보는 숙제가 있어서 채집통과 채집망을 사가지고 지금은 울산 대공원이 된 곳이지만 그때에는 연못이 있는 들녘으로 곤충 채집하러 갔다.
잠자리를 쫓아 다니며 열심히 잡았다.
채집통이 가득 찼다.
내일 다 놔주자면서 기분좋게 집으로 들고 왔다.
다음 날 아침 잠자리를 놔주려고 채집통을 들여다보니 전부다 꼴까딱 ~ 깜
짝 놀랐다.
바글바글 들어 있었던 잠자리가 한마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이 아팠다.
잡은 다음 바로 다 놔줘야 했었다.
집으로 들고 오면 안되는거 였다.
밤사이 안녕.
야생의 잠자리들을 바글 바글 채집통에 넣어 놓은 것부터가 잘못한 거였다.
혹여 넣었더라도 바로 다 꺼내주어야 했던 것.
분명히 집으로 들고 올라올 때는 전부다 파다닥 거렸었는데....
잠자리는 모기를 먹고 산다.
그 채집통에 들어 있었던 잠자리가 번식을 했다면 얼마나 많은 모기를 잡아 먹었을까.
또 잠자리는 새들의 먹이가 된다.
얼마나 많은 새들의 먹이가 되었을까.
이후에는 잠자리를 잡으면 채집통에 넣었다가 집에 가기 전에 전부다 놓아 주었다.
어떤 일은 경험해야 깨닫는 일이 있다.
잠자리는 채집통에 넣어두면 하룻만에 안녕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때 그 잠자리에 대한 기억은 머리 한귀퉁이에 남아 있었다.
이번에 여름 해갈이라는 티스토리를 쓰게했던 바다 다슬기.
잔뜩 잡아왔던 다슬기를 물속에 넣어 놓으면서 소금을 잔뜩 뿌려 주었다.
야생의 것은 하룻만에 꼴까닥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바로 삶아서 먹던지 아니면 놔주고 오던지 했어야 했다.
22년도에 정자에서 잡아온 바다 다슬기는 집에 오자마자 박박 씻어내서 팔팔 끓였었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이쑤시게로 파먹었는데 참 맛있었다.
따개비는 먹을 줄 몰라서 그냥 두고 다슬기만 전부 먹었었다.
따개비는 다음 날 혼자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잊어버리고 하루 지나고 그 다음날 들여다 보니까 냄새가 나서 그냥 버렸었다.
23년도 여름해갈을 안겨준 바다 다슬기는?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 물에 소금뿌려서 담가 놓았는데 다음날 보니까 이미 한마리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혀도 빼물지 않았다.
남편이 말했다.
다 꼴까닥했네.
아냐. 혀 빼문 것두 있잖여.
즈들끼리 엉겨 붙어 있던지 그릇 밖으로 나오더지 해야는데 한마리도 안나왔잖여.
30년 전의 잠자리들이 생각났다.
아냐.
그럴 수는 없어.
바다라도 데려다 줄래.
차가 없으니 바다 데려다 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침 늦게 일어나서 아점 먹고 뭐좀 하다보면 벌써 저녁이 된다.
하루 이틀 미루고 벌써 금요일이 되었다.
그동안 물을 몇번 갈아주고 소금도 더 많이 잔뜩 뿌려 주었다.
오늘은 금요일.
전부 지퍼백에다 담아서 비닐로 한번 더 싸가지고 집을 나섰다.
치과에 들려서 주왕산에서 사온 엿을 쭉쭉 빨아먹다가 빠져버린 인공치아를 붙이고 장생포로 갔다.
장생포.
처음 울산 왔을 때 회식하러 장생포 고래 고기를 먹으러 왔었던 생각이 난다.
장생포에 도착했지만 바다 가까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항만청 근처로 갔더니 울산대교가 올려다 보이는 곳에 옛날에 횟집을 했었던 곳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다 물을 닫고 두서너 집만 불을 켜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입구 쪽에는 젊은 아줌마가 가게 문을 열고 있었는데 손님이 없어서 시름이 가득한 얼굴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안쪽으로는 한테이블에 손님이 있는 횟집에서 불을 켜놓고 손님을 대접하고 있었다.
두사람이 있는 횟집 그리고 불만 켜있는 2집.
예전에는 몇십집이 바글 거렸을 횟집 동네가 지금은 통털어 6집만 영업을 하고 나머지는 나무 판으로 출입구를 막아놓은 곳이 많았다.
횟집들 사이로 골목길도 있을 만큼 번성했던 곳이 이제는 손님 그림자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판자촌으로 이루어진 횟집 촌 끝으로 가니까 바다가 눈아래로 보인다.
그곳에서 가방을 열어 지퍼백에서 바다 다슬기를 바다로 보내주었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다슬기를 볼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았었다.
어떡하지? 했었는데 태어난 곳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항만청 근처의 횟집판자촌을 떠나면서 시작 ~ 번성 ~ 전성기 ~ 쇠퇴기 ~ 소멸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는 것 같았다.
치과 의자에 앉아서 거울로 이가 떨어져 나온 곳을 들여다보다가 거울에 익숙하지 않은 어떤 나이드신 분이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우 이 할머니가 누구랴? 이 사람이 나란 말이지?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단 말이지?'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도 탄생 ~ 성장 ~ 전성기 ~ 쇠퇴기 ~ 소멸의 과정이 있다.
jinnssam은 지금 가을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항만청을 벗어나서 어디 저녁 먹을 곳이 있을까?
두리번 두리번.
늘 토요일이나 주일날 같은 노는 날만 왔었기 때문에 올 때마다 사람이 많았었다.
이번 봄에는 수국 공원 때문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일 때에 왔었다.
지금은?
문 닫은 가게도 많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거리는 오후 5시인데도 캄캄했다.
고래생태체험관은 도착하는 4시부터 캄캄했었고 모노레일에는 빈 차량만 왔다 갔다하고 있다.
쇠퇴기에 들어선 거리는 한때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살고 있었을 것이고 아이들이 여기저기를 뛰어 다녔을테고 거리에는 돈이 흘러 넘쳤을 것이다.
그나마 아직 주변에 관공서와 공장이 있어서 사람들이 근무하는 낮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왔다갔다 할 것이다.
도로가에 낡은 끝집에 할아버지 한분이 문을 열고 들어가신다.
한참 있다가 그 옆집에는 할머니 한분이 문을 열고 들어가신다.
끝집에 있던 할아버지가 문으로 나오시더니 창턱에 있는 컵을 들어서 물을 한모금 마시더니 다시 창턱에 올려 놓는다.
불편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걸어서 그 옆집 할머니가 들어가신 집 문을 열고 들어가신다.
도로를 따라서 죽 이어진 무허가 인듯 한 많은 집들 중에서 끝의 두채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시는 집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할머니가 들어가신 집은 좀 수선을 했는지 사람이 살만큼은 깨끗해보인다.
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버스 정류장인지 잘 모르겠다.
도로를 따라서 주욱 걸었다.
버스가 지나갔다.
버스 정류장 맞구만.
캄캄한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조금 있다가 들어갔던 버스가 반대편으로 지나간다.
불도 안켜진 캄캄한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심난해서 버스 정류장 밖으로 두어번 들락날락 ㅋㅋㅋ
집이 이렇게 많은데 왜 아무데도 불이 안켜져 있는겨.
전부 빈집인가?
심난하네.
심난하네.
버스 한대가 온다.
손을 높이 들어서 냉큼 올라탔다.
기사가 말한다.
이차는 종점을 가는데요.
아네. 저도 종점까지 갈께요.
버스정류장이 심난해서 못 앉아 있겠어요.
2정거장을 무사통과하더니 종점이란다.
종점에서 버스 기사는 번호키가 붙어있는 WC에 가서 번호키를 누르고 다녀오더니 손을 씻고 와서 운전대를 잡고 바로 출발한다.
그나마 불이 켜있는 고래생태박물관 앞에 오니까 그래도 두어 사람이 탄다.
아마도 식당하시는 분들이 퇴근하시는 모양이다.
항만청 버스 정류장에서 두어 사람.
그렇게 버스는 야음동에 있는 번개시장을 지나 야음시장 앞을 가니까 환하게 불이 들어온 거리가 된다.
야음동에 있는 홈플러스.
홈플러스가 세워지기 전에 홈플러스 세울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공인 중개사 사무실에 갔었는데 손님으로 오신 분이 물었다.
어디에다 홈플러스를 세우면 좋을까요?
어디긴요?
야음동이 최고지요.
동부 아파트 앞에 넓은 공터가 있거든요..
거기에다가 세우라고 해요.
무심코 말했었다.
부지 추천 공고문은 그 후에 인터넷으로 보았다.
그때 말하면서 괜히 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했었는데, 제대로 말한 것이다.
이후에 홈플이 세워지고 야음동의 낡은 이미지가 변하면서 서서히 오래되고 어두운 거리가 환하고 밝은 거리가 되었다.
달동과 삼산동에 가까이 있다는 것도 유리한 이유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아직도 야음동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버스는 롯데마트 앞을 지나 달동 4거리로 해서 시청 앞으로 갔다.
시청 앞에서 내려 울대가는 버스를 탔다.
이제 버스타는 일이 익숙해져서 제대로 찾아서 탄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어리벙벙 아주머니 2분이 카드 끊는 것부터 버스기사한테 혼나고 바로 jinnssam뒤에 앉는다.
옥동 울산 대공원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나요?
저랑 같이 내리면 되요.
아, 아니네요. 저가 알려 드릴께요.
원래 내려할 곳을 지나쳐 식당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저녁을 무얼 먹을까 궁리하다가 콩나물 국밥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콩나물 국밥 식당 앞에 도착했는데 문이 닫혀 있다.
돌아서서 집으로 가다가 스시 집 앞에서 멈춰서 바라보다가 스시 도시락을 사가기로 하였다.
회초밥 10개 메뉴명 오늘의 초밥 17000원.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바로 옆에서 초밥을 먹던 일가족이 계산을 하는데 15만 8000원을 계산한다.
아들, 딸, 부부 인 것 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아닐지도 모르지.
어디갔다 왔는지 남자는 기분이 좋은 것 같고 계산을 한 아주머니는 얼굴이 어둡다.
아이들은 놀란 얼굴이 굳어있다.
정자 신명횟집은 2인 4만원. 3인 6만원. 4인 8만원인데 스시집에 비하면 정말 저렴하고 맛있는 횟집이다.
저녁으로 회초밥 10개, 달걀 2개. 고구마 삶은거, 사과 1개, 감 1개.
회초밥 10개를 5개씩 먹는데 각자 속으로 카운팅을 한다. ㅋㅋㅋ
"신명 횟집은 여기에 비하면 정말 싼거야."
오늘은 30년 전에 잠자리 사건을 기억하게된 바다 다슬기 사건을 다루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던 말던 jinnssam에게는 두가지다 대박사건이었다.
30년 만에 대박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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