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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life of JINNSSAM

의자 이야기

by 영숙이 2021.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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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빈 의자만 보면 미친듯이 사진을 찍어 대던 때가 있었다. 

 

 동유럽 갔을 때도 공항에서 빈의자들을 마구 찍어댔다.

 관광지에서도 찍어댔다.

 벤치나 긴의자나 작은 의자나 큰 의자나

 박물관에 전시된 의자도 찍어댔다.

 

 평범한 의자, 아이디어 의자, 특별한 의자

 길가 의자, 카페 의자, 사무실 의자

 

 보이는 의자마다 마구 찍어댔다.

 

 지금은?

 의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찍어놓은 의자 사진이 다 어디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많던 의자 사진이 다 어디갔지?

 

 왜 그렇게 찍어 댔을까?

 

 의자들은 누군가 와서 앉아 주길 기다린다.

 

 기다림.

 

 아무도 앉아 주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의자도 있고 박물관에 있는 의자는 의자 자체로 빛이 나기도 한다.

 

 처음에는 의자 자체에 의미를 두고 찍다가 차츰 의자라는 건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 필요가 있을 때에라야 의자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숙이는 의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무나 의자 같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의자의 의미도 사람만큼 다양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낡아서 버려지는 의자,

 부서져서 버리는 의자,

 쓸모가 없어진 의자,

 

 영원한 의자는 없었다.

 

 영원한 사람도 없다.

 

 의자가 의자로서 최선을 다하듯이

 사람도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의자 사진을 내려 놓게 되었다.

 

 오늘 오랜만에 선암호수를 찾았다.

 

 한때 자주 올 때는 일주일에 한번은 다녔었다.

 

 최근에는 태화강이나 대공원을 많이 찾고 주말에는 바다로 가면서 선암호수에 올일이 없었다.

 

 새벽기도 마치고 태화강 국립공원을 갈까 하다가 공업탑에 있는 재건축지역을 돌아 보았는데 재건축지역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사이 선암호수에 와 있었다.

 

 오랫만에 오니 그동안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산책길이 모두 그늘이 되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시계방향으로 일방통행을 하도록 규칙이 바뀌었다.

 

 새벽 6시 30분부터 걷기 시작해서 8시 30분까지 걸었다.

 

 예쁜 꽃도 잘가꾸어 놓았고 물과 산과 길이 어울어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평일이어서 사람도 적당히 있었고,

 

 조금 힘들어지려고 하는데 한때 열심히 찍어대던 의자 하나가 길 옆 숲쪽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영숙이는 어떤 의자였을까?

 

 품위있는 의자?
 충분히 쉴 수 있는 편안한 의자?

 아무나 앉을 수 있는 평범한 의자?

 어느 곳에 가든지 부딪힐 수 있는 보통의자?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의자?

 

 영숙이는 불편한 의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에는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앉으면 오래 앉을 수 없는 불편한 의자.

 

 비록 가시가 있거나

 상처를 낼 수 있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결코 편안한 의자는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모든 것은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

 이제 와서 후회한들 지나간 날들을 바꿀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다른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의자이고 싶다.

 그러려면?

 

 이미 만들어진 것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바꾸려고 노력해 봐야한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특별한 의자이면서   

 마음껏 쓰임받는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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