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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물세살의 수채화

by 영숙이 2022.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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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버드나무

 

7. 사랑의 주제가

 

" 유아 비누가 한 달에 한 상자씩이나 쓰이는데? "
" 기저귀를 유아 비누로 빠니까 그런가 본데 신생아의 피부는 약하거든 그래서 유아 비누를 안 쓸 수도 없고. "

영숙이는 선생님의 얼굴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윤선생님은 집 생각을,
 새로 태어난 아가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 내려 온다니까

  따라 내려온다는 걸 말렸었지.
  여동생이 만삭이 된 몸으로 시골 집으로 내려오다가 택시 안에서 몸을 틀기 시작하여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애를 낳았거든.
 칠칠치 못하게.
 곧 아기 낳을 사람이 버스 타고 흔들려서 잘못하면 버스 안에서 아기 낳기 십상이거든.
 우리 아기가 태어난 지 벌써 세 달이나 됐군. "

 그 순간,

 윤선생님은 아가야 아빠였다.

아가야 아빠.
영숙이와는 상관없는 이방인.
먼 존재.

......

 

 

 이튿날은 날씨가 푸근했다.

 창 밖의 버드나무도 말갛게 씻은 새초롬한 긴 가지들을 부드러운 바람에 맡긴 체 살랑살랑 ~

 10시 좀 지나서 옥천군 보건소장이 보건소 차를 타고 여기 청성 보건지소로 출장을 왔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가족계획 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예비군들에게 정관수술을 하라고 권유하고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 준다고 권유한다.

 보건소 차에는 용산 보건소에 무의촌 진료로 파견된 지소장이 함께 타고 왔다.

 마침 할아버지 한 분이 리어카에 실려 진료 받으러 왔다가 돌아가는데 용산면 지소장이 할아버지를 업고 나오는 젊은 사람 뒤를 이불을 들고 따라 나와 리어카에 실리는 할아버지에게 잘 덮어주고 있었다.

 영숙은 용산면 보건 지소장님을 바라보면서 윤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윤선생님은 그저 현관 한쪽에 서서 양쪽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짚어 넣은 체 환자를 리어카에 싣고 용산면 보건 지소장이 이불을 덮어 주는 모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확실히 윤선생님은 차가운 사람이다.
 자기에게 진료받고 돌아가는 환자를 그저 구경하고 있다.

 불편한 환자를 옮기는데 딴 곳에서 근무하면서 이 곳에 잠깐 들린 용산면 보건지
소장이 도와주고 있다.

 영숙이는 사무실 창문 앞에 서성이며  군 보건소 차가 사람들을 싣고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용산면 보건 지소장님 결혼하셨어요?"

난로 가에 앉아 있던 윤선생님이 고개를 들고 영숙이를 자세히 바라보면서 빙긋 웃는다.

"응? 미혼이라던데?"
"그래요?"
"왜?"
"아니, 그냥 결혼했나 싶어서 물어봤어요."

 

 푸근히 풀린 창 밖의 날씨에 버드나무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허브차가 난로 위에서 끓고 ~
 사무실 안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
 영숙은 문학사상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을까?
 선생님을 바라보니 창 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정말 조용하다.

 곽 양과 안양도 아까 군 보건소 차에 출장이라 올리고 함께 타고 집으로 가버렸다.

 창 밖에 비 내리는 소리.
 작은 공간에 찻잔이란 제목의 노래가 스미어 든다.

 갈색의 향기가 온 방안에 번져 있는 듯한 느낌은 행복한 것.

 .....

 

 ~ 사랑의 주제가 ~

 늘 같이 부르고 함께 듣던 노래.

대학 때 절친이었던 선아랑 만나면 언제 어디서나 이중창으로 불렀던 주제곡.

~ you are my sunshine.~

외우기 쉽고 이중창으로 부르기 쉬워서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참 많이도 불렀었다.

< you are my sunshine >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you make me happy when skies are gray
you'll never know dear, how much I love you
please don't take my sunshine away.

 사랑의 주제가는

 먼 훗날 사랑이 성공했을 때.
 살아가다가 권태를 느끼던 어느 날 ~

 거리를 걸어가다가
 어느 거리의 음악사에서 흘러 나오는

 예전에 그 사랑의 주제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
 옛날 행복했던 시절
 사랑에 주제가를 함께 부르던 꿈같은 시절을   
 기억해내고~
 다시 기운을 차려 생활하게 하는 노래.

 혹 성공하지 못하였을 때
 남몰래

 혼잣 속으로

 가끔 가끔 ~

 어쩌다 ~  

 아름다운 시절을 생각해 보고

 미소를 짓는다는
 사랑의 주제가.

 

 영숙은 요즈음

  " 젊은 연인들 "

 이란 노래를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남동생 석이에게 배웠다.

 사무실에서 청소할 때,
 혹은 한가 할 때,
 라디오를 듣지 않을 때,
 노래를 불렀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 "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는 따라 불렀다.

 ......

 

 선생님이 이쪽 사무실로 건너오셔서 영숙이 책상 위에 있는 문학사상책을 집어 들었다.

 사무실 바닥에 물을 뿌린 후 빗자루로 쓸고 밖의 청소도 마치고 ~
 면사무소에서 가져온 허브 차는 난로 위에서 기분 좋게 끓고 있었다.

 

 청소를 마쳤을 때의 말끔한 기분.
 

 방금 막 씻어온 컵에다 허브 차를 따라 설탕을 타던 손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에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

 영숙이는 슬그머니 웃고 있었다.
 문학사상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차를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드디어 노래를 부르시네요.  
      언제인가는 선생님이 그 노래 부르기를 기다렸어요."

 선생님은 회색 빛 시선으로 영숙이를 돌아보았다.

      "사랑의 주제가요."
      "언제인가 선생님이 먼 훗날 그 노래를 들으시면 생각 날 거예요.
       여기서 함께 생활했던 날들이요.
       그게 사랑의 주제가죠.
       요즈음 제가 매일 그 노래를 불렀잖아요.
       언제인가는 선생님도 부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드디어 부르고 계시네요."

 

 선생님은 회색빛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창밖에는 부드럽게 버드나무 가지가 춤추고 있었다.
 영숙이는 허브 차를 선생님이 앉아 계신 책상위에 가져다 놓았다.

        "차 드세요."

 영숙이는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을 보았다.
 부드럽게 춤추는 버드나무 가지들.

 윤선생님과 영숙이는 헤어져야 한다.
 영숙이는 지금 떠남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선생님에게 지금 그 사실을 알려 준 것이다.

 

 

💥 사랑.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정말로 사랑하였다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변한다.

 

 한때의 사랑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수는 있다 해도 그 한때의 사랑이란 그때 사랑할 당시의 그 사랑인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생물은 수명이 있다.

 모든 사랑도 수명이 있다.

 

 살아 있는 생물이나

 사랑을

 안타까이 여기는 것은 수명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한 사람들은 사랑이 식은 다음에는 무엇으로 살아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책임인 것 같다.

 

 사랑에 대한 책임.

 결혼에 대한 책임.

 생명에 대한 책임.

 살아있음에 대한 책임 ,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 아님을 구별하는 바로미터는 자신의 일에 그리고 자신의 사랑과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버드나무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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