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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망을 극복하기(캐더린 드 브리즈 폴우즈 커플 성경 817쪽)
녹이 자동차를 부식시키는 것처럼, 실망은 결혼을 부식시킬 수 있다. 배우자의 실직, 만성적인 질병, 심각한 배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 생활은 위기를 맞는다.
이럴 때 영적인 안목은 단순히 도움을 주는 차원을 넘어 반드시 필요하다.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실망조차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 안에서 반드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나환자 치료에 명성이 있는 브랜드(Dr. Paul Brand)는 "내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고통 '그것'(it) 안에 계신 게 아니라, 고통을 당하는 '당신'(you) 안에 계신다."
우리는 여러 가지 소망을 갖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배우자, 직업, 건강 등의 소망은 그 자체가 한계를 지닌다. 배우자는 인간이므로 나를 실망시킬 것이다. 직업을 바뀌거나 잃을 수 있고, 건강도 약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소망은 그분 안에 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심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이 우리 배우자 안에도 계심을 기억하는 것이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실망을 극복한 부부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를 굳게 붙잡음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그들은 실망, 바로 '그것'(it)보다 '우리'(we)가 더욱 강하다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부부 관계는 실망을 극복한 후에 더 좋아졌다.
* 당신의 '궁극적인 소망'이 실망과 낙담 중에도 어떻게 당신을 지지해 주는가?
*절망의 시기에 당신들 두 사람이 서로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를 대처하는데 어떻게 용기를 주는가?
*참조 성경 : 예레미야애가 3:21, 로마서 5:5, 고린도 전서 15:19
2. 결혼하게 해 달라 기도 했었다.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3달 10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서로를 알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고 몇 번 만나지 않고 결혼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남은 시간도 결혼 준비로 바빴다.
결혼을 한 다음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을 가진 셈이다.
30년 동안 각자 성장한 다음 어느 날 결혼이라고 해서 한방에서 사는 것이 쉬울까?
우선 진쌤은 토끼잠을 자는 스타일.
남편은 깊고 푹 자는 스타일.
옆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잠꼬대를 하면 코 고는 소리에 잠이 안 들고 잠꼬대를 하면 깨어서 그 소리를 듣고 있다. 심지어는 잠꼬대한 것을 말해 주려고 들은 잠꼬대를 다시 한번 중얼거려 머릿속으로 기억하기도 했었다.
최소한 3개월은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원래 아침 잠이 많은 데다 이래 저래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남편은 길들인다고 새벽에 일어나서 두 칸짜리 전셋집 창문을 열어 놓았다.
저녁 10시만 되면 잠이 들고 새벽 5시만 되면 일어나는 사람이 보면 아침에 안 일어나고 허우적 대는 건 게으름의 표본.
신혼인데다 진쌤은 자취하면서 잠잘 때 옷을 안 입고 이불을 돌돌 말고 자는 버릇해서 신혼방에서도 이불을 돌돌 말고 잠을 잤다.
남편은 이불을 돌돌 감고 누에고치처럼 자고 있으면 창문을 활짝 열고 돌돌 감은 이불을 벗겨 냈다.
진쌤은 그래도 안 일어나고(못 일어나고) 잔뜩 웅크리고 자고는 했다.
그날도 추워서 잔뜩 쪼그라져 자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실눈을 뜨고 바라보니 앞집 옥상에 웬 남자가 동그란 눈으로 진쌤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으 ~ 아 ~ 악 ~
3. 일찍 자고 일어나기
남편은 진샘의 늦잠 자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은퇴 직전에도 아침 7시에 일어나 눈을 반쯤 감고 비틀비틀 돌아다니면서 투덜투덜
"직장생활 몇십년을 했어도 아침에 일어나는 게 이렇게 힘드니~."
은퇴해서 제일 좋은게 늦잠 자는 거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게 너무 좋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으니까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밤새고 아침에 잠드는 것도 좋다.
되도록이면 규칙적으로 잠들고 일어나려 하지만 억지로는 안 한다.
남편은 진쎔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도록 길들이는데 실패했지만 본인은 여전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진쌤이 밤새 무얼 하는지 간섭 안 한다.
4. 진쌤은 잘 때
진쌤은 잠이 들려면 비비적 비비적해야 잠이 드는데 남편은 그 부비적 부비적을 싫어한다.
남편한테 항의했었다.
"돈을 얼마나 들여서 시집왔는데 달라붙어 자지도 못하게 해? 싫어도 잠들 때까지는 참아."
결혼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진쌤의 빈약한 가슴 때문에 남편이 왜 이렇게 작냐고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몇 번 들으면 싫증이 나는데 좋지도 않은 소리를 왜 그렇게 반복해서 해?"
"어린애나 큰 가슴 좋아한다던데."
남편은 큰 가슴을 좋아하는 스타일?
나중에 나이 들어서 가슴이 커다래 졌을 때도 별로 안 좋아한 거 보면 그것도 아닌 듯.
어쨌든 티브이나 거리에서 가슴 큰 여자를 보면 말하고는 했었다.
"와, 저 여자 가슴 크다."
"나도 무대에 올라가서 흔들면 저렇게 보일걸?"
"가슴이 있어야 흔들지?"
"꼭 가슴만 흔들게 뭐 있어. 엉덩이 크니까 엉덩이 흔들면 되지머."
5. 3년 동안 시댁에서 하자는 대로 하니까 돈이 모이지 않았다.
전세에서 진쌤이 결혼 전에 들었던 만기 된 재형저축을 타서 아파트로 이사는 했지만 이후로는 돈이 모이지 않았다.
결혼하면서 3년짜리 재형저축을 들어서 탈 때가 됐는데 못된 며느리라고 진쌤 부부를 불렀을 때 시댁에서 일을 도와주던 식모 아이 월급을 줘야 한다면서 남편이 재형저축을 찾아온 봉투 채 진쌤의 손에 쥐어 보기도 전에 건너갔다.
재형저축 들었다고 하니까 그다음 주에 시댁에 재형저축 안내장이 서류 속에 보였다.
아버님이 은행에 가서 안내서를 들고 와 언제 얼마를 타는지 계산하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는 그때 그렇게 살았다.
아들이 벌어 오는 돈은 당연히 부모의 돈이었고 며느리가 벌어 오는 것도 당연히 시부모의 돈이었던 것이다.
키워준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아니면 효자 아들 효부 며느리가 아니었다.
또 친정에 돈이 건너가는가 의심받고 감시당하면서 가끔씩 친정에 돈 준다고 욕먹으면서 살았다.
"출가외인인데 왜 친정에 돈을 줘? 주면 안 되지.".
딱 3년이 지나고 나서 진쌤은 결단을 했다.
이렇게 살다 간 시부모도 어렵고 진쌤네도 어려워진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진쌤이 받는 월급은 전부 장기저축을 하고 남편이 봉투에 넣어 가져오는 월급은 무조건 백화점에 가서 한 달 동안 쓸 생필품을 전부 사다 날랐다.
어느 날 남편이 혼자 시댁 다녀오더니
"집에 좀 다녀 가라고 회사로 전화가 와서 갔다 왔다. 생활비가 모자란다더라. 밥에다 김치만 차려 놓고 형편없이 먹고 있더라. 다음 달부터 생활비 더보 내라."
아파트로 이사 오던 해에 어머니가 김장 김치 가져왔는데 '웬일이세요' 했다가 외숙모 집으로 불려 가 난리가 난 다음 대구 시댁으로 가시기 전에 말했었다.
"자식 키우는 건 자라서 돈 벌면 생활비 받으려고 키우는 건데 너도 자식 키우지? 나중에 생활비 받을 거 생각하고 키우는 거 아니냐?"
어이가 없었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그런 걸 반박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댁에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결혼 전에 은행에 1800만 원 저축이 있다고 남편이 자랑했었다.
그때 아파트 한 채에 600만 원이니까 1800만 원이면 큰돈이었는데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를 받고 있었다.
우리 결혼할 때는 400만 원짜리 전세를 얻어 주었었다.
아파트 매매가가 전세보다 쌌는데도 팔기 어렵다고 굳이 전세를 했었던 울산의 분위기였다.
그렇게 돈을 은행에 2000만 원까지 쌓아 놓고 있었나 보다.
시동생이 교통사고를 내서 해결하고 합의 보는데 은행에 있는 2000만 원 모두 썼다고 시아버지가 말했었다.
우리는 시동생 교통사고 때문에 아버님이 전화하여서 넣고 있던 재형저축을 담보로 대출을 내어서 300만 원을 가져다주었었다.
왜 그렇게 돈을 은행에 쌓아 놓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파트를 사서 월세를 받았으면 아파트가 몇 채나 될 수 있었는데 또 그 시절에 부동산 거래는 무척 쉬웠고 얼마든지 살 수 있었던 시절이다.
아가씨 때 진쌤은 아파트를 샀다가 팔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와 관리를 할 줄 모르고 은행에 돈을 모셔 놓고 사시던 부모님 세대였고 그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해야 하는 베이비 붐 세대였다..
6. 임신
첫 번째 임신을 유산하고 나서 두 번째 임신에는 걸음도 조심조심 걸어 다녔다.
주택에 붙어 있는 두 칸짜리 방에는 신을 신고 내려가야 하는 작은 부엌이 붙어 있었다.
샤워할 곳이 없어서 샤워는 부엌 뒤쪽과 뒷집 담 사이에서 해야 했다.
샤워를 하고 있으면 뒷집 마루에서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여기 재미있네? 목욕하는 소리가 다 들리네?"
"응 다 들려. 뭐 하는지 다 안다니까."
부엌은 좁아서 부른 배에 앞뒤가 닿을 정도였다.
석유곤로를 써서 밥을 했는데 혼자 살다가 누군가 같이 먹고 같이 자고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아서 정말 기쁘게 음식을 만들었다.
진쌤은 채소를 좋아했는데 남편은 고기를 좋아해서 고기반찬이 있어야 했다.
근처에 자취하던 여선생님이랑 같이 퇴근하면서 시장에 들르곤 했었다.
"샘은 매일 고기를 사네요."
7. 우유 먹이기
아이를 낳고 우유를 먹여야 하는데 남편은 보리차에 타서 먹이자고 하고 진쌤은 결명자 차에 타서 먹여도 된다고 하였다.
아이는 배 고프다고 울고 있는데 우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일어서서 보리차냐, 결명자 차에 타느냐를 가지고 싸웠다.
결국 진쌤이 이겨서 우유를 결명자 차에 타 먹였다.
우리 집 물은 보리차가 아니라 결명자 차였다.
아이가 조금 커서 외갓집에 갔을 때 외할머니가 물이라고 숭늉을 주니까
"이게 무슨 물이야. 하얀 물 말고 빨간 물 줘. 잉잉잉~"
간호학교 다닐 때에 교회를 다녔고 이후 가끔 심심하면 교회에 예배드리러 갔었고 결혼 이후에는 그나마도 다니지 않고 있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야 함에도 예수님을 모르던 그때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모든 이는 경쟁 상대였다.
경쟁 상대는 이겨야 한다.
8. 처음 만든 반찬 콩나물 무침.
자취를 했다고는 했지만 반찬을 만든 기억은 별로 없었다.
저녁마다 혼자 살던 여선생님들과 모여서 공업탑 로터리 원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저녁은 근처에서 김밥이나 칼국수 같은 간편식으로 때우기 일수였다.
그러니 반찬을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제일 만들기 쉬운 게 콩나물 반찬이다.
콩나물을 사다가 국을 끓이고 일부는 건져서 고춧가루에 양념을 하면 콩나물 무침이 된다.
"제대로 만들 줄 아는 반찬이 콩나물 반찬밖에 없네."
시어머니 음식 솜씨가 무척 좋았다.
정말 맛이 있었다.
시댁에 가면 반찬이 맛이 있어서 다른 식구들이 다 먹고 일어나도 새댁이 혼자 밥상을 붙잡고 앉아서 먹었었다.
눈치라고는 ~
생각해보면 새댁이 되어서 진짜 눈치도 없이 끝까지 먹고 있었으니, 게다가 일은 할 줄 몰라서 손은 느려 터졌었다.
밥 먹고 설거지하는 걸 바라보던 시누이.
"설거지 하루 종일 하겠네."
9. 싸움
참 많이도 싸웠다.
겨울 방학이 되니까 혼자 애기 데리고 시댁 가라고 해서 친정 엄마한테 전화했었다.
"엄마 진짜 가기 싫어."
"뭐 어떻게 하려고 가라는데 가봐.".
시댁에 부엌에서 일하는 애도 있었는데 짐 선생님을 부엌에 내내 있게 하다가 애기 우유 타서 우우 먹이러 작은 방에 들어가니까 어머니가 안고 있다가 진쌤을 피해서 큰방으로 얼른 안고 간다.
화가 난 진쌤은 따라가서 시어머니 손에서 애기를 얼른 당겨 안고서 작은 방으로 가서 우유를 먹였다.
여름 방학 때에는 큰집으로 제사 지내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싫어요."
"친정동생 조카 백일까지 챙기면서 제사를 안 지내러 간다고?"
"제사 지내면 떡이 생겨요? 밥이 생겨요?"
그날 울산으로 오는데 시어머니가 남편한테 울면서 전화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런 *은 맞아야 정신 차려."
그날 집에 와서 맞았다.
군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헛간에서 아버지한테 동생이랑 맞은 후 처음이다.
미친 듯이 울었고 우리 집 방문 앞에서 듣고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말린 후 주인집 안방에 가서 여기저기에 전화했다.
근처 부대에 부대장이었던 친정 육촌 오빠가 오셔서 남편을 지프차에 태워 정보부에 데려가야겠다고, 한 번만 더 때리면 정말 데리고 갈 거라고 말했다.
그때 정보부는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대단한 기관이었다..
또 포항에 살고 있던 남동생도 와서 매형한테 한 번만 더 누나 때리면 그때는 와서 패주겠다고 말했다.
친정에 전화하니까 친정아버지가 바로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어 오라고 해서 응급실에 가서 바로 진단서를 끊었다..
"이 진단서 파출소에 들고 가서 고소할 거야. 고소당해서 재판받고 감옥 가라고 이혼할 거고 절대로 합의 안 할 테니까."
친정어머니가 오셨다.
이혼한다고 하니까 시부모는 조금 있으면 진쌤이 결혼하기 전에 들었던 재형저축이 만기가 되어서 아파트 전세를 얻을 텐데, 그 돈이 아까워서 딸 이혼시키려고 한다고 딸이 벌어오는 월급이 아까워서 친정어머니가 딸 이혼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원래 진쌤은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에 매이는 게 싫었고 결혼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책임 대신 마음껏 글을 쓰면서 여행을 다니고 싶어 했었다.
그런 진쌤을 설득하고 결혼하도록 이끄신 분이 친정어머니셨다.
친정어머니 덕분에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감사하다.
"어떤 여자는 결혼을 두 번씩이나 하던데 결혼을 해야지.".
맞았을 때 이혼한다고 펄펄 뛰니까 친정엄마가 말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혼 안 하고 살아야 복수하지. 아버지하고 살면서 이혼하면 복수 못하니까 복수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어."
일요일 날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일직 하러 갔는데 그때는 두 사람씩 일직 하던 시절이었다.
같이 일직 하던 선생님.
"언니가 밥하는데 시어머니가 잔소리를 해서 자기도 모르게 밀쳤는데 시어머니가 넘어졌어.
시어머니가 노발대발해서 그 때문에 이혼당했는데, 지금은 애들이 둘인데도 애들 얼굴도 못 보고 만나지도 못하고 할 일도 없어서 매일매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돌아다녀.
언니네 시댁에는 다른 여자가 들어와서 잘만 살고 있다고 있다고 하더라."
이혼하면 안 된다고 말하였다.
"애를 봐서도 이혼하면 안 돼."
남편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때린 거 잘못했다고 울면서 빌었다.
그 모습이 더 싫었다.
'맞아야 정신 차릴 *이라고' 때리란다고 때린 것도 기가 막혔지만,
시부모님이 그렇게 해야 이혼 안 하겠다 생각했는지 잘못했다고 하라니까 잘못했다고 하는 건 정말 아니었다.
이후로 남편은 지금까지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
아무리 싸우고 아무리 화가 나도 말로만 싸울 뿐이고 한 번인가? 거실 바닥에 플라스틱인가 전화기인가 물건을 던졌을 뿐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난 어느 토요일.
"띵똥"
"누구세요?"
"벌컥"
시어머니가 문 앞에 서 계셨다.
놀라서
"웬일이세요?"
집안에 김치를 담은 플라스틱 양동이를 내려놓으시더니 자리에 앉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중매하셨던 바로 옆에 다른 아파트에 사시는 외숙모 집에 인사하러 갔다 오마고 가시더니 거기서 저녁 먹는다 하면서 집에 오지 않으셨다.
그날 저녁 외숙모 집으로 호출을 받았다.
남편과 시부모, 대구 시댁 근처에 사시는 이모와 시이모부 그리고 진쌤에게 남편을 소개해준 시외 숙모 부부까지 1대 7이었다.
그렇게 모여서 퍼붓든지 말든지 울지도 않고 말도 안 하고 문 옆에 꿇어앉았다가 다리가 저리면 옆으로 가지런히 놓고 듣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김치 담가 가지고 왔는데 문 열어 주면서 '웬일이세요?' 말이 되냐? 그걸 말이라고 해?"
"너는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그렇게 말하냐?"
"진짜 너 독하다. 어떻게 잘못했다는 소리를 안 하냐?"
진쌤은 듣도 보도 못한 상황 속에서 앞에서 퍼붓는 온갖 폭언을 듣고 있었는데 그 건 진쌤의 현실이 아니었다.
눈을 끔벅끔벅.
왜 저런 말을 할까?
왜 저렇게 화가 나고 무엇이 화가 나게 할까.
몇 시간이 지난 나중에는 욕을 하다가 지쳤는지 거실로 나가 모여서 상의를 하였다..
시외 숙모가 혼자 들어오더니
"네가 빨리 잘못했다고 해야 끝난다"
다시 모두들 방으로 들어와서 진쌤 앞에 나란히 앉았다.
"잘못했어요."
10. 길들이기
진쌤은 주택 옆에 붙어 있는 두 칸짜리 전세에서 24평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아파트에 이사 가서도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남편은 화가 나면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부엌에서 아침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개*아, 쌍*아, 이 씨**아"
프라이팬 앞에 서서 생선을 굽고 있던 진쌤은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똑같이 욕을 해주었다.
"이 개*아, 쌍*아, 이 씨**아"
"아니, 이게 욕을 해?"
"나도 욕할 줄 안다고. 네가 욕할 때마다 나도 고대로 욕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그렇게 해서 욕하는 버릇을 고쳤다.
다행히도 진쌤만큼은 독하지 않고 시부모 말대로 착하고 순한 남편은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욕을 한 적이 없다.
잠꼬대를 잘하는데 잠꼬대로라도 욕을 한 적이 없다..
참 많이 싸웠다.
결혼해서 임신하고 애 낳을 때까지는 빼고 결혼해서 3년 동안 정말 많이 싸웠다.
싸우면서 얼굴을 익히고 서로의 성격을 파악하고 적응했었던 것 같다.
얼마나 싸웠는지
어느 날 살고 있는 아파트를 지나가고 있는데 동네 할머니가 진쌤을 보고 말했다.
"싸움도 힘이 있을 때 하는 거야"
11. 화가 나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말을 하다가 화가 나면 술 담가 놓은 것을 가져다가 혼자서 술을 퍼마시고 술주정을 했다.
그날도 진쌤이 저녁을 먹고 과일을 깎고 있는데 무언가 또 기분이 나빴는지 술병을 거실에 가져다 놓고 뚜껑을 열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
진쌤은 과일 깎던 칼을 거실 나무 바닥에 콱 찍어서 세워 놓은 다음 떠들었다.
"나도 술 마신다. 나도 술 마실 줄 안다고."
진쌤은 큰 컵으로 한 컵 술을 따라 마시고 취해서 욕실에 가서 토하느라 윽윽거리면서
"아, 세상에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네.
진짜 진쌤 너 불쌍하다.
겨우 겨우 시집이라고 왔더니
이 세상에 진쌤 너를 사랑해 줄 사람이 이렇게 한 사람도 없는 거야?"
그날 남편은 놀래서 술을 마시지 못했다.
대신 친정에 가서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하였다.
12. 우리 세대는 부모님을 모신 마지막 세대이고 자녀들을 섬겨야 할 첫 번째 세대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농사 지어먹던 땅에서 농사지어서 먹고살았고, 우리 세대는 여자들도 막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던 세대인데 우리가 벌어들인 것은 당연히 부모님들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위에 세대만큼은 아니어도 동생들을 건사해야 하는 것도 우리들 몫이었다.
지금은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어서 "여자가 더 센 세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결혼 생활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가 공부한 내용하고 사회적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서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많이 낮았고 그렇게 희생을 강요받던 세대였다.
다들 각자 다른 선택으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었지만 진쌤이 뒤돌아보면 예수님을 제대로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좀 더 달리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깨닫는다.
결국은 하나님의 시간 즉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깨닫고 예수님을 알게 되고 변화된다는 이야기이다.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드리고
부모님에게 필요했던 필요를 드리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구하고 기대었다면
내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찬 370)
하나님이 공급해 주셨을 텐데...
뒤돌아 보면 부끄러울 뿐이요.
회한이 남는다.
학생들 한테도 마찬가지.
정말 부끄러울 뿐인 선생님이었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다.
후회보다는 회개로, 지금부터 주어지는 시간에 감사함으로, 은혜로 채울 수 있기를.
13. 결정하기 (캐더린 드 브리즈 폴우즈 커플 성경 941쪽)
대부분의 부부들은 결혼 생활에서 서로 적당히 타협하면서 무엇을 결정하려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에서, 당신들 부부가 크게 의견을 달리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아래의 제안들을 받아들여 보라.
1. 부부가 함께 이기는 해결책을 찾아보라. 자신의 생각이 무시당하는 것에 분개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따라서 상호 간의 승리를 추구하라.
2. 당신은 말하기보다는 경청하라. 당신의 진정한 감정 이입은 상대방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3. 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라. 당신의 배우자를 정복하려고 하지 마라. 당 신의 배우자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바로 문제다.
4. 큰 결정을 위해서는 시간을 가져라.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촉박하게 결정하 려 한다면 그 결정은 감정의 산물일 수 있다.
5. 충고를 구하라. 믿을 만한 사람의 조언이나 또는 당신들 부부가 모두 존경하는 그런 사람의 조언을 구하라.
6. 올바른 결정을 위해 기도하라.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다 아신다. 그분은 당신들의 결정이 당신들의 미래에 가져올 영향을 알고 계 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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