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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관련/경제

원룸 101호

by 영숙이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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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0년 IMF 직후에 원룸을 지었다.(2005. 10. 13. 08:57)

 

  작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짓게 되었는데 실은 짓기 5년 전쯤 다른 지역에 지으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러저러해서 못 짓고 있다가 피치 못하게 몰리게 되니까 결국은 짓게 되었다.

 

  워낙 돈이 없이 시작한 일이라 보증금 빼서 이리저리 돌리니까 월세는 거의 없었지만 월급쟁이가 갑자기 월급 외의 돈이 생기니까 억수로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월세 받아서 은행빚 갚고 어쩌고저쩌고......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쓴 기요사키는 안주한다는 것은 곧 그 일에 갇히는 것이라고 했나?

  어쨌든 그렇게 이해해서 알고 있는데 원룸을 직접 관리하다 보니까 집집마다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101호 첫 입주는 지금 살고 있는 옥동 아파트 앞 상가 2층에 영어학원 원장 선생님이 얻었었다.

  그때  한참 열풍이 불고 있었던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었다. 외국인을 고용하여 원어민 수업을 하는 영어 학원에는 아이들이 넘쳐났었다.  

  한때는 학생수가 350명이나 되어서 웬만한 작은 학교였다.

 

 

 

  울산 전역으로 학원 버스를 돌리고 있었고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아이들이 줄을 맞추어서 줄줄이 계단 한옆으로 이층으로 올라가고 반대쪽 옆으로 아이들이 내려오는 북새통을 이루면서 마치 아이들이 벌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내가 사는 아파트 앞의 상가가 있는 도로쪽으로 쏱아져 나오곤 하였다.

  학원 아이들이 소풍을 갈 때에는 앞에 있는 옥동 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마치 수학여행 가는 것처럼 10여 대의 노란 학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들을 태우고 다녀왔다.

 

  학원에 근무하는 원어민도 많았고 학원 선생님들도 많아서 숙소가 많이 필요했었다.

  1층이라 원룸이 잘 안 나갔기 때문에 매우 저렴하게 내놓았더니, 우아하고 아름다운 고급 의류를 입고 간간히 영어 단어를 쓰던 원장 선생님이 학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을 위해서 선생님들 숙소로 잡았던 것이다.

  어느 날 원룸 뒤뜰을 청소하고 있는데 젊은 여선생님이 어두운 얼굴로 원룸을 열고 들어 가는 것을 보았었다.

 

 

 

  지금은 워낙 좋은 영어학원이 많이 생겨서 결국 한물가고 문을 닫았지만 그때만 해도 처음으로 유치원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영어 회화 학원이어서 독보적인 인기를 차지하고 있었고 정말 잘 나가던 학원이었었다. 

 

  안팎으로 다 잘하기가 어려웠을까?

 

  남편은 창구에 앉아서 학원비 수납하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하더니 영재 스쿨을 이곳 달동에 열었다는데 너무 앞서 갔는지 잘 안되어서(그 후 조금 지나서 소수 정예 영재로 유행이 되었던 학원이다.)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원장인 부인이 병에 걸렸다고 했다. 

 

 

  학원을 넘기고 부산으로 가서 시골에 조용한 전원주택을 사서 요양을 한다고 하였다.

 

  5학년 때 현아를 데리고 그 학원에 가서 등록했더니 하는 말

   

  "형편도 되는데 왜 애를 이제 보내세요."

 

  유치원에 보냈더니 유치원에서 영어 단어를 가르쳐 주는데 그렇게 효과가 있다 생각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5학년 올라가서 학원에 보냈던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영어를 5학년 때부터 시작하던 때였는데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이 불어서 모두들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 아이들이 20대가 되었는데 취업이 안되어서 백수가 되어 있다.

 

   "학원 보내줘서 고마워요. 영어 학원 안 보내주면 어쩌나 걱정했었어! 다른 애들 다 영어 하는데 나만 몰라서 앉아 있으려면 심심해서 뭐해야 하나 하고 걱정했었어!" 

  "하! 하! ".

 

 

 

 

  이후로 영어 학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나면서 학원 아이들이 줄기 시작하였고 현아는 팔린 학원에 계속 남아서 다니다가 학원이 이사하였을 때는 따라가서 그 학원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다녔다.

 

 

 

<<2>>

  그다음에 입주한 101호 아줌마는 참한 아줌마였다.

  집안도 깔끔하게 잘 정리하고 아이는 딸애 한 명이었는데 알뜰하게 보살피면서 보험회사를 다녔다.

  바로 옆 주공아파트에 사는 친정 집에 애를 맡기고 있었는데 친정에서 골치가 아파 살림을 내놓았다고 어른들이 말했었다. 

 

  남편은 포클레인 기사였고 월세를 내면서 차는 하얀색 소나타를 몰고 다녔다.

  하얀 얼굴에 깔끔한 외모와 옷차림으로 차를 몰고 나갈 때 보면 "사모님"이시다.

 

  302호에 살다가 101호가 이사 가니까 그곳으로 이사를 해서 1년 살았다.

  남편이 사고가 나서 수술하고 난 후 "사모님"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이후 주택에 월세가 싼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 간다고 하였다.  

 

  101호 아주머니가 하얀색 소나타 몰고 다닐 때  나랑 카플 하는 샘한테 애들이 그랬단다

 

  "저 샘이랑 무서워서 어떻게 같이 다녀요? "

 

  무슨 소린가 싶어서

 

  "뭐가 무서워? "

  "저렇게 찌그러진 차를 몰고 다니는데 어떻게 안 무서워요? "

  "하! 하! 하! "

 

  일 년 동안 카플 한 후에 영숙이 샘이 다른 학교로 옮기고 난 후 후일담 ~

 

  영숙이가 옮기고 난 후에 같이 카플 하게 된 샘이 빨간색 새 차를 뽑았다고 굳이 점심을 산다고 하였단다.

  둘이서 학교를 나가 점심을 먹고 오다가 새차를 길가에 박아 부서졌는데 견적이 65만 원 나왔단다.   

  그래서 예의로

 

  "십만 원이라도 줘야 해?"

  "말아야 해?"

 

  다 찌그러진 영숙이 차에 맨날 법대로 안 몰고 위반한다고 머라 했었는데 영숙이하고 카플 할 때는 사고가 한 번도 안 났었는데 ~ 새 차로 카플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

 하고 고민하는 소리였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 ^*^;;;".

 

<<3>> 

  그다음에 입주한 부부는 20대 후반인 부인이 정말 예뻤다.

  역시 친정이 홈타운에 살고 있었고 하나 있는 딸아이를 친정에서 돌보아 주기로 하고 101호에 살게 된 것이다.

 

  뒤뜰 청소를 하다가 가끔 부인이 말을 걸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큰 레스토랑을 했었어요. 시댁이 잘 살아서 차려 준 거죠. 남편은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어요. 남편이 레스토랑은 안 돌보고 도박만 하다가 망했어요. 도박빚으로 레스토랑을 넘기고 아무것도 없이 친정으로 온 거예요. 친정에서 속 시끄럽다고 원룸 얻어준 거고요." 

  "뭐를 끝까지 못해요. 배달한다고 오토바이 몰다가 사고 냈어요. 식당 주방에서 보조로 일한다고 하더니 한 달도 못 버텨요. 일한다고 식당에서 일자리를 얻어도 한 달을 못 버텨요."

 

  어린이 집에 다니던 딸아이는 점점 더 마르면서 꾀죄죄해 보였고 부인은 여전히 예뻤지만 예쁜 얼굴이 생활비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쁜 얼굴로 쉽게 할 수 있는 술집에서 서비스하면서 생활비를 벌어대고 있었다.

  어느 날 뒤뜰을 청소하고 있는데 부인이 남편한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를 만나서 이 꼬락서니가 되었어. 어떡해. 책임져. 어떡할 거냐고. 왜 나랑 결혼했냐고 너랑 결혼 안 했으면 내가 이 꼬락서니로 안 살 건데,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남편을 붙잡고 끝없이 타박하며 반복하는 소리는 정말 듣기 괴로웠는데 남편은 한마디도 안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원룸이 있는 길로 들어가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인테리젠시한 남자분이 주소를 적은 종이를 들고 찾고 있었다.

  어쨌든 그 후 얼마 안 있다가 이사를 갔다.

 

  잘살고 있을까?

  아님 헤어졌을까?

  이혼율이 50%나 되는 나라이다.

 

 

<<4>>

 

  그다음 입주자는 덕하에서 살다가 이쪽으로 이사 온 단정하게 생긴 총각이었다.

  매우 성실하게 뒤뜰을 청소도 하고 깔끔하게 세탁기도 돌리고 하였다.

  작은 중소기업에 다닌다고 하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느라 뒤뜰에 오토바이가 놓여 있었다.

  오토바이 때문에 일층을 얻는다고 하였다.   

 

  어느 날 보니까 뒤뜰에 군고구마통이 놓여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는지 커다란 군고구마통을 뒷뜰에 데려다 놓고는 한 번도 쓰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오토바이와 커다란 양철 군고구마통과 함께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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