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빈터>
노명숙 (주) 한국제지 총무과장역임. 처용수필 제2호 1996년 겨울호 수록
토요일 오후
서류를 챙기고 필기구를 정리하여 서랍에 넣는 손길이 리듬을 탄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머리를 다시 빗고 거울을 들여다보니 홍조를 띤 얼굴에 눈빛까지 빛난다. 오전에 받은 전화 한통화.
"오늘 머리 좀 비우자고."
"좋죠."
다시 생각해도 즐겁다. 한 옥타브 높여서
"먼저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인사를 흘리고는 뛰어 내려가는 계단 위의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공단을 벗어나서 다운동을 지나면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들길이 시작된다. 창문을 모두 내리고 심호흡을 한다.
빨갛게 물든 옻나무잎 그 사이로 노랗게 피어난 들국화(야생초를 키우는 친구는 쑥부쟁이라고 꼬집어 일러 주지만) 맑고 푸른 가을 하늘, 황금색 들판, 마음이 우울할 때 떠올리기 위하여 눈도장을 꼭꼭 찍어둔다.
오늘 몇명이나 올까.
고기 좀 사올걸 그랬나?
가다가 가게가 있으면 음료수라도 사야지.
저수지를 지나 치술령이라는 간판을 멀리 하고 샛길로 접어드니 승용차로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길 양쪽에 빨간 열매가 울타리를 이룬 감나무 단지가 이어진다. 차창 밖으로 손만 뻗으면 가지를 꺽을 수 있을 만큼 무겁게 열린 감나무 가지가 울타리 밖으로 까지 뻗어나와 있다.
"과일 안사오길 잘했네."
"단감이니 칼만 있으면 되겠네."
한참을 울퉁불퉁 거리며 올라가니 치술령 붉은 단풍이 환하게 다가온다. 아니, 앞만 아니라 양옆의 산에서도 붉은 빛이 묻어 나온다. 그 밑의 들에는 파란 배추, 무, 황금색 나락물결, 논두렁 위의 하얀 갈대가 어우러지고 ..... 처음 이곳을 찾았던 때가 생각 난다.
모든 잎들이 연초록으로 빛나고 감나무 잎이 연하게 피어날 때 우리 동무들은 이곳으로 초대되어 왔었다. 전화로 모두를 불러모은 이집 주인은 자기의 별장으로 우리를 모신다고 했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왠 별장? 하며 꼬불거리는 들길을 따라온 우리 앞에 서 있는 별장는 다 낡은 콘테이너 하나, 그 옆에 볏짚으로 지붕은 얹은 원두막, 하늘을 지붕으로 하고 볏짚 엮은 것을 앞쪽만 친 간이 화장실.
그러나 주인은 온몸으로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감나무는 우리 애와 마누라와 같이 심었고 저 대추 나무는 - 저 마늘 좀 봐 감자도 있어. 깻잎도 있고, 저 산에 있는 밤나무는 우리 것은 아니지만 가을에 오면 주워가게는 할께 등등.
"이땅은 왠 땅."
우리들의 물음에 자기의 꿈은 자식들 다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회사에서 정년퇴직하면 부인괴 같이 자연에 묻혀 살고 싶어서 몇 년간 아껴서 적금 부은 것으로 이땅을 샀다고 했다. 몇 년간 이곳은 깊은 산이었기 때문에 싼 가격에 살수 있었다고, 그 산을 공휴일이나 일요일에 온 식구가 다와서 이렇게 일궈 놨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초라하지만 몇년 열심히 일하고 나서 이곳에 아담한 집을 지을테니 그때 우리 모두 이곳에서 자주 모여 무거운 머리도 좀 비우고 답답한 가슴도 털어 내며 지냅시다. 하는 말에 우리 모두는 박수로서 답례를 보냈었다.
그때 흐믓한 마음으로 둘러 보았던 사방의 연초목 무리, 산밑에서 피어 올라가던 안개 자락, 또 뻐꾸기 소리가 지금은 빨간 단풍숲, 저녁연기, 이름모를 산새 소리로 바꿔져 있다.
꿈을 가지고 꿈을 키워 나가는 멋진 모습, 남들이 꽃놀이다 바캉스다 놀러 다닐 때 온가족이 이곳으로 와서 씨앗을 뿌리고 가꾸면서 가족애를 키워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라 기슴 밑이 훈훈해진다.
저위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올라와요. 닭백숙이 다 됐어요. "
산그늘을 뒤로 하고 웃고 서 있는 움막의 주인. 왁자지껄 웃는 소리들이 정겹다.
같은 울타리 안에서 공부했다는 인연을 고리로 지금까지 정겹게 어울리는 벗들이 「 머리를 비우자 」는 꼬드김 전화 한통화에 다 모인 것이다. 많이도 웃고, 먹고, 얘기하고 정말 머리와 일상의 찌꺼기들이 말끔히 씼기는 것 같다.
목탁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와 보니 조금 위에 새로 지은 깨끗한 절이 보인다. 아마 저녁 예불을 드리는가 보다.
산밑 몇채의 집에서는 옛날 시골길에나 볼 수 있었던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고 숲속에서는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숲속이 서서히 어둠에 젖어 드는 시간이다.
평온한 기분에 젖어 있다. 별장 주인을 불러 내서 새집을 지어 들어오는 날 현판은 내가 걸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서각을 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돌배 나무에 양각으로 멋있게 새겨질 그 집의 택호는 《숲속의 빈터》로 하겠다고.
◐ 모든 베이비 붐 세대는 거의 다 농촌 생활을 겪었을 것이다. 영숙이도 마찬가지이다. 외갓집에서 성장했던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에 겪었던 군서면 상지리의 시골 생활은 평생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다. 그때 당시에는 쉽지 않았을 생활이었겠지만 이렇게 먼 세월을 지나고 보면 자연과 함께 했던 정말 행복했던 시절들이었다. 그래서 베이비 붐 세대의 이야기로 적었고 또순이의 어린 시절로 티스토리에 쓴 것이다.
그런 덕분에 모든 베이비 붐 세대의 워너비는 전원생활이다. 실제로 위의 필자가 말한 지역은 물론이지만 그 근처의 모든 지역에 전원주택이 깜짝놀랄 정도로 정말 많이 들어서 있다. 많은 베이비 붐 세대가 복잡한 도시 생활을 접고 그동안 모은 자산을 가지고 원했던 자연 속에 원하는 집을 짓고 원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 파트너도 심심하면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아마도 50대 들어서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인간이라면 꿈을 꾸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우리 집 파트너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숙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숲속의 빈터는 모든 베이비 붐 세대의 열망의 표현이다. 아니 모든 사람들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열망의 표현이 아닐까?
영숙이의 생각은? 물론 자연 속에서 살면서 자연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노래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농촌을 떠나 온다음 실제로 자연을 접하면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영숙이가 카페를 열고 그리고 폐업하였던 것처럼 그런 과정을 걸어갈 것 같아서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다. 더우기 있는 자산을 전부 투자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더 힘들다.
우선 영숙이는 일을 할 줄 모른다. 글을 쓰는 컴퓨터 자판은 신나게 두드리지만 호미를 잡고 땅을 파라면 잘 못한다. 실제로 원룸 뒷편에 한평 남짓한 화단이 있는데 그것도 제대로 못가꾸고 항상 전전긍긍이다. 만약에 시골에 가서 땅에 무엇을 심고 가꾸라고 하면 딱 앞베란다 만큼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앞마당에 풀은 수북하고 집안에 파리 날라 다니고 ~~~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안도 청소를 잘 안하는 성격에 제대로 시골 집을 가꾸고 살 자신이 없다.
대부분의 자산을 시골집에 부어 넣는다면 사고 파는 일이 잘 안생기는 전원주택은 그냥 평생을 가지고 가야한다. 마치 카페를 오픈하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카페에 매여서 모든 활동이 구속되는 것처럼 전원주택도 거기 사는 사람의 활동을 구속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물론 넉넉한 자산으로 주말에만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또 다르지만 주말만 이용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커서 그 자산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실제로 파트너가 아는 지인이 가지산 중턱 전원마을에 거의 7 ~8년전에 집을 짓고 팔려고 내놨지만 아직까지 팔리지 않고있다.
도시가 생긴 이유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경제활동을 편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활동이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전원생활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나 노력도 만만치 않다. 특히 도시로 나오고 싶은데 못 벗어 날 때는 대부분이 집을 비워 놓고 도시로 나온다. 집은 비워놓으면 그때부터 이상하게 허물어져 간다. 멀리 안가고 근교에 비워진 집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자연에서 살고 싶으면 우선 빌려서 자연생활을 해보고 잘 적응이 되고 계속 하고 싶다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우리 집 파트너가 말한다.
"은퇴하면 시골에 가서 과수원 농사나 지으면서 살고 싶어."
"응. 그래요. 자기는 시골에 가서 과수원에 약치고 가지치기 하고 거름주고 과일도 다 따고 과수원 관리하면서 살아요. 그리고 마당에 풀도 뽑고 ~ 그런 일 자기가 다 한다면 따라 갈께요."
요즈음은 파트너의 말이 바뀌었다.
"난 그냥 가끔 자연 속으로 놀러 가서 하루나 이틀이나 몇일 지내다 오는게 좋아요.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하면서 힐링하다가 오는게 좋아요."
"나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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