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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새해를 맞으며

by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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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며>

                                            -신원호. 전 kbs 울산방송국장. 처용수필 제2호 1996년 겨울호-

 똑 같은 해, 똑 같은 아침, 똑 같은 이웃, 똑 같은 거리를 맞고 마주하면서도 해가 달라졌다는 것, 그것도 올해는 우리를 억눌렀던 암울했던 한 시대가 문민정부에 의해 새해를 맞았다는데서 느끼는 감회와 각오는 남다른 데가 있다. 저마다 거는 새해의 소망, 크게는 나라와 사회의 평안에서 부터, 작게는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보람찬 한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집을 떠나 울산으로 부임한 지 어느듯 두 해가 가까워 온다. 30여년을 부산으로, 창원으로, 서울로 떠돌다 유년의 고향땅에 되돌아 왔지만 두고 온 가족이 더 없이 그립고 외로울 때가 많다. 이순을 바라보는 세월이면서도 자칫하면 외로움에 밀려 스스로를 가늠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때마다 나는 주제넘게도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했던 본 받을 이들의 처신과 지혜를 흉내낸다. 

 권력다툼에 밀려 오지의 채마밭 관리인으로 전락한 중국의 실력자 등소평이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열심히 두엄을 나르고 똥지게를 지면서 잃었던 건강을 되찾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던 것이라든가, 가깝게는 올챙이 기자시절 존경했던 언론인이었고 소설가로 유명한 이병주 선생의 자기 극복, 그는 60년대 교원노조 사건과 남북 영세중립을 주장하다 옥고에 시달리면서도 오랜 옥중 생활을 불어 공부에 전념해서 대학 교단에도 섰다. 

 절치부심, 권토중래는 아니더라도 지역근무에서 오는 어떤 손해감(?)이나 나태함을 벗어나 좀더 적극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이 사회가 요구하는 바램에 나의 능력을 전부 내던지는 능동인이 되고 싶다. 더구나 이곳 울산은 우리나라 기간산업의 요람이요. 태화강의 기적을 일궈낸 나라경제의 중추가 아닌가.

 지난시절 그 격심했던 노사분규, 폭발한 화산처럼 분출했던 각계 각층의 욕구불만, 근로자들의 육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 싶다. 안팎으로 곱사등이 돼 회사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고향 바닷가에 돌아가 세상을 잊고 살고 싶다던 어느 대기업 경영주의 절실한 하소연에 공감하기도 했던 일들이 새해 아침에 새삼 생각난다. 

 제 목소리 높이고 자기 앞만 가리고 살기에는 이 사회가 너무나 다기화 되고 다양화 되었으며, 돌아가는 톱니바퀴같이 한사람 한사람이 개개인이면서 개개인이 아닌 거대한 사회조직의 한 구성원이 되어 있는 것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현주소다. 

 자기 목소리대로 행동하고 자기 몫만 더 챙기려면 원시 수렵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암울했던 과거의 찌꺼기를 걷어내고 좀더 성숙한 사회와 이웃을 만들어야 하는 공동의 책임이 있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세대의 의무다. 

 그러려면 우선 내 목소리가 남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열심히 일하는 이웃에게 본의 아니게 걸림돌이 되는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 봐야한다. 새해에는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성숙시키는 성인이 되고 싶다. 

 새해는 열림의 신호이다.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열리는 문앞에 서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이 열린 문의 이름은 1996년이다. 열려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창조적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졸고를 쓰고 있는 나도 이 열린 문앞에서 겸허하게 새해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노자의 글에 이런 것이 있다. 

 "사람들은 꽃항아리를 만들기 위하여 진흙을 빚는다. 그러나 실제로 쓰이는 부분은 꽃항아리 속의 비어 있는 공간이다. "

 이는 누구나 다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객관적인 사실을 마음 속으로부터 깨닫는 이는 무척 드물다. 꽃병은 꽃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의 몸 가운데를 열어 두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속을 비워두어야 하는 것이다. 

 21세기를 준비하는 대망의 새해, 2천년대를 여는 길목에서 우리는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서로를 비워야 한다. 서로가 빈 마음이 될 때 새로운 창조는 시작되는 것이고, 그 창조는 서로의 공감 위에서 더 큰 울림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 사회 각층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활동하시면서도 이렇게 좋은 글들을 쓰신 분들께 폐가 될까봐 영숙이의 생각을 적지 않고 그냥 쓰신 분들의 글 그대로를 읽기 원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본인의 생각을 적어서 새로운 글로 재탄생 시켜야 하기 때문에 본인의 생각을 추가해 본다.

 영숙이도 새해가 되기 전에 혹은 새해가 되면 매년 주변을 돌아보면서 가는 해에는 무엇을 했었고 다가오는 해에는 무엇을 할른지 점검하고는 했었다. 위의 필자와는 달리 부끄럽지만 대부분이 많은 대출로 인한 계획으로 대출상환에 대한 방법들에 대한 계획이었다. 여행은 갑작스럽게 떠나는 걸 선호하였으며  대부분의 일들을 계획없이 충동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제만은 기준이 있어서 기준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은퇴한 이후에는 모든 계획을 내려 놓았다. 계획 없음이 너무 행복하다. 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2020년 올해는 유난히도 힘든 한해였다. 이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돌아보면 2020년은 영숙이에게 정말 뜻깊은 한해였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였다. 코로나 덕분에 이렇게 티스토리 앞에 앉아서 글을 쓸 수 있었음에 영숙이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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