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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내 친구 하정이 이야기

by 영숙이 202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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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하정이 이야기>     

 

 좋은 나라와 행복한 청소년 이야기를 적다 보니 잠재 의식 저편에 파묻혀 있던 하정이 이야기가 떠올라 왔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47년전 이야기를 전부 기억한다는게 쉽진 않지만 그래도 게중에는 뚜렷이 기억나는게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잊어 버릴까봐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뵈면서 적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적어 나가기 시작한게 베이비붐 세대 이야기를 써나가게 된 동기가 되었고 이제 대학 졸업식까지 갔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하정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하정이 ~ 2학년 열등반인 3반으로 배정받은 후 놀라서 또순이는 열심히 공부를 했었고 한달에 한번씩 보는 시험과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또순이가 1등을 했고 이름이 같고 성은 다른 하정이가 2등을 했다.

 물론 열등반이니까 1등이 의미가 있겠나 하겠지만 열등반도 1등부터 꼴등까지 있고 그때는 매월 1등부터 3등까지 상장을 주던 시절이었다.

 

 자연히 하정이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때는 경아와 경아친구인 희경이와 친해지기 이전이어서 또순이는 하정이네 집에도 놀러가고 하정이네 집이 있는 시장을 둘이 쏘다니기도 하였다.

 
 하정이네 집은 시장 근처에 매우 낡은 예전에 또순이네가 옥천에서 살던 셋집 같은 집이었다. 대문으로 들어가면 긴 쪽마루와 2개의 방이 연결되어 있고 앞에 작은 마당에는 아무것도 심겨진 게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대문쪽으로는 조그마한 가게가 있었는데 비어 있었다. 하정이네 엄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고 하였다. 위로 언니가 한명 있었는데 결혼해서 시골에서 살고 있었고, 오빠가 있었는데  파출소 순경이었고 결혼을 해서 따로 살고 있다고 했다. 

 

  홀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하정이는 하얀 얼굴에 양쪽 볼에 보조개가 들어가고 쌍꺼플진 눈이 감실 감실 웃는 오동통하고 보기 좋은 얼굴이었고 체격이었다.

 
 집이 시장근처이고 엄마는 항상 시장에 가 계셔서 장사를 하시기 때문에 하정이는 거의 혼자 집에 있는 상황이었다. 주말이나 또는 학교 끝나고 하정이네 집에 가서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마당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하정이네 집 근처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다니다가 집으로 오고는 하였다.

 

 그러다가 경아랑 친해져서 경아하고 많이 어울렸고 하정이랑은 어울릴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날 학교에 온 하정이 얼굴에 멍이 잔뜩 들어 있었다.

 

 "얼굴에 멍이 들어있어. 무슨 일이야?" 

 "아냐. 별일 없어."

 "별일 없는데 얼굴에 그렇게 멍이 들었어?"

 

 하정이는 얼굴이 하얘서 파란 멍이 더 돋보였고 눈에 띄었다. 아무리 머리카락으로 가려도 눈에 띄었다.

 

 "하정아 말해봐. 무슨 일이야. 누가 그랬어?"

 

 처음에는 아무리 물어도 말을 안했다. 우울한 얼굴로 애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따로 떨어져 혼자서 다녔다. 또순이가 걱정이 되어서 어러번 물어서야 겨우 입을 떼었다.

 

 "오빠한테 맞았어."

 "오빠?"

 "그게 말하기가 좀 그래."

 

 토요일에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갔다가 하정이네 집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하정이네 빈 가게에서 어둑어둑해지는 밖을 지저분한 유리창을 통하여 내다 보고 있었다. 하정이의 하얗고 창백한 얼굴이 시니컬하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정말 챙피한데 ~ 말하기가 좀 그래."
 "말해봐."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누구한테 말할데도 없어. 어디다 말하겠어."   

 

 하정이는 1학기 기말고사 시험준비 한다고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다가 너무도 덥고 답답해서 바람 좀 쐬려고 집앞으로 나갔었다고 한다. 12시가 넘었는지도 모르고 집 앞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서 있었는데 집 앞이 시장통이라서 당시 12시가 넘으면 통행금지가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던 파출소 순경이 하정이가 집이 여기라고 말했는데도 통행금지 위반이라고 파출소로 데려 갔다고 한다.   

 

 하정이 성격이 앙칼지거나 대담한 성격이었다면 우리 집이 여기라고 하면서 홱 뿌리친 다음 바로 집에 뛰어 들어 갔더라면 됐을텐데 물에 물 탄듯 한 우유부단한 성격이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파출소 까지 끌려 갔었나 보다.

 

 "파출소에 가서 창고 같은 곳에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가 있었는데 순경 2명이 긴막대기를 가지고 치마를 들추는거야. 우리 오빠가 파출소 순경이고 아까 서 있던 곳이 우리 집이라고 말했는데도 거짓말이지? 하면서 계속 그랬어. 너무 챙피하고 너무 부끄러웠어."

 "아침에 오빠한테 연락해서 오빠가 데리러 왔어. 집에 왔는데 오빠가 챙피하다면서 오빠를 망신 시켰다고 여자애가 싸돌아 다녀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서 마구 때렸어."
"엄마가 안말렸어?"
"우리 엄마는 오빠 말이라면 꼼짝 못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때려?"

 또순이는 고등학생한테 그토록 심한 매질을 한 것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파출소로 데리고 간 순경이나 집에 데리고 와서 자기 체면 깎이고 망신 당했다고 매질한 하정이 오빠나 같은 부류의 무식한 인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정이네 집이 시장통이어서 한밤중에 밖에 서 있는 하정이를 보고 이상한 여자로 오해해서 데리고 갔나 보았다. 그리고 젊은 파출소 순경들이 예쁘게 생긴 하정이한테 못된 장난을 쳤었나부다. 하정이 오빠는 그 상황을 자신을 망신 시켰다고 하면서 순전히 하정이 잘못이라고 매질을 했나부다.

 지금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그때는 있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정이가 너무 불쌍했지만 또순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냥 이야기를 들어 주고 마음 아파하는 일 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짜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후로 자존감과 정체정이 바닥에 떨어진 하정이는 공부에서 손을 놓았고 공부와는 아주 멀어졌다. 대학을 보낼 수 없는 형편이라고 가족들이 말하는 것도 공부에 집중할 수 없도록 했을 것이다. 그래도 본인이 대학에 가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어떻게 됐을텐데, 당시에는 교육대학이 2년제였고 국립이라 학비도 싸서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 또순이와 하정이 사이는 멀어졌고 어쩌다 가끔 학교에서 얼굴 한두번 스치고 그렇
게 학년이 지나고 졸업을 하였다. 졸업 후 전화가 없던 시절이니까 서로 연락없이 지냈
었는데 우연히 길에서 하정이를 만났다. 대전 시내가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고 또순이도 잘 싸돌아 다니는 스타일이니까 하정이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었던가? 아니면 기차 타고 어디 갔다오다 하정이 역시 기차 타고 공장 사람들과 소풍을 다녀오다가 만났었나? 잘 기억이 안난다. 다음 날 또순이네 집에 놀러 온다고 해서 버스타고 테미시장에 몇시까지 오라고해서 테미시장 정류장으로 데리러 갔었나? 하정이가 또순이네 집에 온 것은 기억이 난다.

 

 "요즘 어떻게 지내? 사귀는 사람은 있어?"

 "그게 사귀는 사람까지는 아니고, 공장에서 기차 타고 소풍 갔다 오다가 ~ 누굴 만났어. "

 "공장 다녔어? "

 "응 엄마가 말해서 공장 다니고 있거든."

 "그랬구나. 어떤 사람인데?"
 "말하기 좀 창피한데"
 "창피할게 뭐있어?"

 "기차에서 일하는 사람."

 "기차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

 

 하정이와 같이 부엌에서 엄마를 도와 점심을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하정이는 주방일도 잘했다. 주방일을 많이 해본 솜씨였다.

 

 "챙피해서 말하기 싫은데 기차에서 물건 파는 사람이야."

 "응? 누구라고?"   

 "기차 판매원."

 

 또순이는 깜짝 놀랐다.

 

 "우리 언니가 연애할 때 왠 남자가 몰고 다니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돌아 다닌다고 엄마한테 일러서 엄마한테 우리 언니 무지하게 맞았거든.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정말 잘못했지. 창피해."

 "언니는 어떻게 됐는데?"
 "오토바이 몰고 다니던 그 남자한테 시집갔어."
 "뭐하는 남자인데?"
 "초등학교 선생님."
 "그래? 시집 잘갔네.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어?"
 "응. 형부 학교가 있는 시골에서 살고 있는데 아들 낳고 잘 살고 있어."

 "잘했네. 고등학교 선생님이면 연애 잘했네.".

 

 그때 또순이가 하정이가 연애하는 그 남자에 대해서 '좋다고 또는 나쁘다' 라고 뭐라고 이야기 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아마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도 같다.

 

 "하정아. 언니는 연애를 잘했네. 기차 판매원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람한테 시집 가기는 네가 좀 아깝지 않을까?"

 "결혼까지는 아니고 그냥 만나는 건데 뭐."

 "그러다가 결혼하게 되면 어쩔려구."

 

 그날 그렇게 만나서 또순이네 집에서 점심을 먹은 이후로 하정이는 집으로 갔고 그 이후에는 하정이를 만난 기억이 없고 서로 연락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다.

 

 잘 살았으리라 믿는다.

 이젠 소식도 알 수 없지만 얼굴을 보면 알아 볼수나 있으려나? 

 잘 살고 있었으리라 믿는다.

 

 예배 드리고 오면서 생각이 났는데 또순이 친구 경익이가 또순이를 교회에 데리고 가서 예배를 드렸던 것처럼 만약 또순이가 하정이를 교회에 데리고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을 알게 하였더라면 하정이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까. 아마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많은 제자들이 또순이 옆을 지나갔다. 그때마다 전도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껄, 껄, 껄 찾지 말고, 지나간 것에 연연해 하지말고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것에 만족하자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로 변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을 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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