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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전도/전도

십일조 1.

by 영숙이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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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기를 열망한다고 부자가 될까?
애써 노력하고 부지런히 일하고 과도히 아껴서 모은다고 부자가 될까?

성경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잠언 11:24-28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KRV: 개역한글

부자?

부자가 되기는 쉬우면서도 어렵다.
정말 쉬우면 세상에 가난한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정말 어렵다면 세상에 어떻게 부자가 있을까나.

진정한 부자란 돈 걱정에서 놓여난 사람일 것이다.

어둠 속을 헤메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빛으로 나아갔을 때 자기 전에 엎드려 기도하는데

"십일조를 해라"

는 음성이 들렸다.
그전에도 음성이 들릴 때가 있었지만 안좋은 일만 지시하는 귀신의 음성이었다.

십일조를 하라는 음성을 듣고 생각해보니 교사가 되기전에

"교사가 되게 해주시면 십일조도 하고 교회 일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예배 드리고 있었는데 눈 앞에 어떤 학교 현관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보니 울산여상 현관이었다.

그후 20년 동안 십일조를 떼어 먹었고 교회는 가끔 어쩌다 심심하면 가는 곳이었다.
예수를 믿고 보니, 그때 그렇게 기도한게 서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떼어 먹은 십일조를 포함해서 월급과 상관없이 정액제로 예수님께 빚진 마음을 갚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예수님께 빚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아 보자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정말 수입의 십분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정액제로 정해 놓고 하고 있다.

물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할 뿐이지, 물질을 위해서 물질을 모으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삶의 본질을 알턱이 없었다.

어두운 마음은 삶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다. .

무조건 돈만 많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돈이 모든 걸 해결 해준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십일조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그동안 얼마나 시부모님에게 잘못했는지 알아졌다.

"머리에 똥만 들은 ☆"

이라 욕먹을 만 했다.

돈 모으는게 이세상에 태어나서 할일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에 예수님이 눈을 열어 주시니 물질은 부수적으로 우리 삶에 따라 오는 것이었다.

그런 삶의 본질을 깨달아 가는 과정은 금방 알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밤마다 잠이 들면서,

잠에서 깨어 나면서,

성경 말씀을 암송하였다.

성경 말씀을 암송하기 전에는

자기 암시를 했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지혜롭다. 나는 훌륭한 작가다....."

끝없는 나, 나, 나 뿐인, 나만 아는 환자였다.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고 때로 철야 기도를 하였다.

그때마다 주윤이 엄마가 함께 했다.

주윤이 엄마는 구역예배에서 만나 지금까지도 종종 만나는 사이다.

그렇게 예수님이 주시는 빛 가운데로 나아오면서 빛과 어두움을 분별하게 되었다.

어떤 날은 교회 홀에 걸려 있던 커다란 괘종 시계의 정각마다 댕댕 거리는 소리가 아멘 아멘 하는 소리로 들렸다. .

"주윤아, 나 지금 저 시계 소리가 아멘 아멘 하고 들려. 진짜 신기하다."


부엌에서 쌀을 씻을 때에도 쌀이 부딪히는 소리가 아멘 아멘 하고 들렸다.

그렇다.

사람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입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대로 듣는 것이다.

주위에서 들려 오는 소리가 마음에 담겨있는 대로 들리는 것이다.

시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보내는 일도 전에는 아깝다는 생각만 했었다.

얼마나 어리석고 모자란 인생인지.

십일조도 하는데 같이 사는 사람의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게 아닌가.


십일조를 드리면서 오히려 생활이 더 풍족해졌다.

하나님이 물질을 주신다고 생각하니까 과도히 아끼는 걸 멈추게 된 것이다.

필요 이상 저축하는 것도 멈추게 되었다.

물질에 대해서 조금씩 지유로워 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시댁과 친정에 생활비를 드리고 이리 저리 많이 들어가는 시절이었지만 일단 물질에 욕심을 내려 놓으니까 정말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다고 당장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물질에 욕심을 내려 놓기 시작한지 딱 3년.

더불어 십일조를 시작한지 3년.

3년 동안 제일 많이 했던 일이

"전도 신문"

을 만드는 일이었다.

편집을 제대로 할 줄 모르니까 전도 신문에 반쪽 짜리 간증 내용을 싣는데도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학교가 끝나고 나서도 남아서 전도 신문 편집을 다 마쳐야 퇴근을 했다.

전도 신문 만드는 교회 일에 올인하면서 저녁을 먹고 나면 남편이 잠 들 때까지 기다렸다.

10시쯤 잠이 들고 나면 그때서야 교회로 갔다.

교회로 가면 주윤이 엄마가 시간에 맞춰서 교회 성전에 도착하였다.

각기 성전에 떨어져 앉아서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고 그렇게 12시를 넘기면 철야를 했다면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다.

새벽 5시에는 새벽 기도를 드리러 갔다.

3년.

어느 날 학교 보건실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기도가 드려졌다.

"하나님. 저한테 물질이 더 주어지면 더 많은 성경책을 아이들한테 사줄 수 있는데요. 월급으로는 수입이 일정하잖아요."

"무엇으로 벌게 할꼬."

"주식은 싫어요. 하나님 잃어 버릴까봐 무서워요."

난 솔로몬이 아니었다.

솔로몬처럼

"지혜"

를 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기도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편이 회사에서

"명퇴(황퇴:황당한 퇴직)"

를 당하였다.

아직도 그날이 선명하다.

학교 개교 기념일이라서

"한명이라도 전도하게 해주세요."

오랫동안 기도했을 때 보건실로 찾아와서

"선생님 다니는 교회 다닐께요."

했던 선생님이랑 같이 언양 좌천청에 벚꽃 구경을 가기로 하였다.

벚꽃 구경을 마치고 다른 날보다는 좀 일찍 집에 돌아 왔는데 남편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일찍 집에 온 것이 좋아서

"어? 일찍 왔네?"

현관에 신을 벗는 것을 바라보면서 남편이 말했다.

"나 회사 짤렸어."

"으응? 진급한다더니. 먼 소리여."

"명퇴 명단에 내 이름이 있더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에서 짤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IMF 시절이다.

회사에서 짤릴 뿐만 아니라 문을 닫는 회사도 많았다.

교사 급여도 교육청에 재정이 부족해서 하루 이틀 늦게 나왔고 또 급여 자체도 많이 줄어들었던 때였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이리저리 돌아 다녔다.

만약 남편이 회사를 짤리지 않았으면 무거동에 주택공사에서 분양하는 땅을 사볼까 생각 중이었다.

막상 회사를 짤리니까 할게 없었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주택공사에서 할부로 산 땅에 가건물을 짓고 학교 옆이니까

"문구점을 할까?"

말했다.

우선 땅이 절반은 다른 사람의 땅이었다.

땅을 주택공사와 할부로 계약하기는 했지만 계약 이행이 어려워서 주택 공사에 전화를 했었다.

"계약 해지하고 싶은데요."

"해지하지 마세요. 분명히 땅값 오릅니다.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해지해서 곤란하거든요. 조금만 참아보세요."

젊은 주택공사 직원이 울듯이 너무나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알았어요. 더 생각해 볼께요."

땅값 때문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때 친했던 보건 선생님한테 말했더니 절반을 산다고 하여서 법무사에 가서 공증인 서류작성을 한다음 나머지 땅값을 넣었다.

세금 비용이 없어서 등기도 못하고 있었다.

"가건물을 지으면 나중에 제대로 지으려면, 허무는데 돈들고 새로 짓는데 돈 드니까 지을 때 제대로 지어요."

새로 건물을 지으려면 돈이 든다.

땅값도 없어서 겨우 해결했는데, 등기도 못하고 지냈는데 어떻게 돈을 마련할까나.

어느날 그 넓은 교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양복을 입은 어떤 사람이 들어오더니 교무실 게시판에다 무슨 종이를 한장 붙이고 나갔다.

물을 마시려고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무언가 싶어서 종이를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는 대출을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시티은행이었는데 교사는 신용으로 1억까지 대출을 해준다고 써 있었다.

이자는 13%.

지금 생각해보면 어마무시한 이자이지만, IMF 시절에는 22%의 이자에 대출이라고는 안되던 때였다.

거기에 써 있는대로 서류를 준비해가서 시티은행에서 신용으로 대출을 했다.

빚이라고는 10만원만 있어도 버거워하고 걱정하던 사람이었는데 1억이라는 대출을 어떻게 했을까.

그후 나중에는 대출을 5억까지 낸 적이 있으니까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 담대함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평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남편의 퇴직금 5천만원.

공사를 시작하였다.

주위에서 집 짓는다고 하니까 안좋은 이야기들만 해줬다.

다른 사람이 집 짓다가 땅 빼앗긴 이야기.

본인이 삼산에 있는 땅에다가 건물을 올리다가 대출이 너무 많아서 은행에 넘어간 이야기 등등.

짓지 말라는 소리뿐이었다.

실제로 일하러 온 일꾼은 이렇게 말했다.

"원룸이 넘쳐 나는데 원룸이 될까요?"

전에 한번 지으려고 건축회사를 알아 본적도 있었지만 시아버지가 전화해서

"너희들 시동생이 안짓고 다른 사람이 지으면 평생 원수 될 줄 알아라."

말해서 그만 둔적도 있고 해서 집 짓는 일에 항상 관심이 많았었다.

업자가 다른 사람 집을 지어 줄 때는 보통 평당 300-500을 받지만 실제로 드는 비용은 150내외라는 내용도 알고 있었다.

집 짓는다고 말하니까 건축일을 하는 시동생이 당장 집으로 쫓아왔다.

"형수님. 정자로 회 먹으러 갑시다."

"아니요. 바빠서 못갑니다."

"집 한채 지으면 3000만원에서 4000만원 남는데 제가 지을께요."

시동생이 짓느냐 마느냐로 남편하고 대립하였다.

"시동생이 집을 짓는다면 난 돈 한푼도 댈 수 없어요. 알아서 짓든지 말든지 하세요."

결국은 시동생이 시부모님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은행 빚 3000만원을 남편 퇴직금으로 갚은 다음에야 남편이 집 짓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또 하나는 땅 값 문제였다.

집을 다 지으면 세를 받아서 땅값을 주기로 각서를 써주었다.

그때는 우리가 계약 할때보다 땅값이 3천만원 내려갔지만 땅값에서 1500만원 빼고 준다고 하면 건물을 지으라고 허락할리가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투자한 돈에 이자를 500만원 더해서 주기로 하였다.

원금 보장에 이자가 500만원이면 괜찮은 상황이라서 각서를 받고 집짓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다른 모든 일보다 사람을 다루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땅값 때문에 보건 선생님하고 교섭하느라고 입술이 다 부르텄다.

그렇게 공사를 시작하였다.

나라는 사람이,

또 남편의 성격상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십일조를 한지 3년이 지나고 더불어 주님의 일을 3년을 하고 나서야 물질의 물꼬가 열렸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열망하고 바라고 바라던 일이 그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에 임해서야 시작되었던 것이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RNKSV: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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