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울타리 안의 자유>
오늘의 말씀 : 로마서 3:20 글쓴이 : 룻 센터 오늘의 성경 : 로마서 3:9 - 31
출처 :커플성경(개역개정, 새찬송가), 편찬대표 : 캐더린 드브리즈, 폴 우즈
여러 해 전, 우리 이웃들은 뒤뜰에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웃들이 대화하기 위해 그 울타리 곁에 모인 것을 보았다.
어쩌면 그 울타리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데 안전함을 제공한 것 같았다.
인간들은 때로 울타리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울타리는 나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때로 그것들은 나를 제한하기도 한다.
나를 울타리 안에 가두면, 나는 자유를 원한다.
나는 5살 때 편도선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간호사가 내 팔을 침대 옆 양면에 묶으려 하기 전까지는 수술실이 꽤 평온했다.
하지만 수술을 위해 내 팔을 묶으려 했을 때, 나는 놀라서 날뛰었고, 수술실의 평온은 깨졌다.
나는 여전히 규정된 제한에 저항한다.
방향을 지시하든, 속도를 제한하든, 또는
"너는 ... 하지 말라"
는 하나님의 금지 명령이든 말이다.
하지만 올바른 자유는 손을 풀어 주는 게 아니다, 그 제한들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나에겐 순종과 불순종 사이의 차이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제한들이 필요하다.
법으로 규정한 그 제한을 통해, 우리는
"죄를 깨닫는다."(롬 3:20).
나는 결코 훈련이나 법을 즐긴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이 올바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울타리를 제공한다.
자유는 무제한이 아니라, 그 제한에 대한 이해이며 긍정적인 태도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묵상*>
* 결혼을 위한 하나님의 제한 중 하나는, 성적인 신실함과 순결함이다.
그 "제한"이 실제로 어떻게 당신의 결혼 생활을 보호하는가?
* 당신은 "제한"과 "절제"의 결과로서 자유를 경험하는 남다른 방법이 있는가?
참조 성경 : 시편 25 : 21, 잠언 2:1 미가 6: 8
출처 : <커플성경, 편찬대표 : 캐더린 드브리즈, 폴 우즈, 성서원> 254 - 260쪽
◐ 어려서 부터 친정 엄마가
"너는 우길성이 있어."
그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돌아보면 어떤 일이나 무슨 일이나 이해되지 않거나 깨닫지 못하면 수긍하거나 받아 들이지 않았다.
중학교 때 영숙이가 밥을 먹고 있는데 술에 잔뜩 취한 친정 아버지가 밥상 옆에서 길게 누워 팔베개를 하고 고개를 흔들흔들 하다가 한손을 영숙이 치마속 팬티 위로 사타구니를 스윽 문질렀다.
밥을 먹다 말고 영숙이는 숟가락을 밥상 위에 탁 내려 놓으면서
~ 이 썅놈의 개새끼가 어딜 만져 ~
순식간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온 욕을 퍼붓고 방문 밖으로 달아났던 기억이 난다.
몇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갈데가 없어서 집 뒷쪽 부엌 옆에 붙어있는 짚같은 땔감을 쌓아서 넣어놓는 다락 같은 뒤안에서 잤었다.
다음 날 아버지가 출근하신 다음 밥을 먹으러 집안에 들어 갔더니 엄마가 하는 말이
~ 아버지한테 욕을 하는 애가 어디 있냐? 너 들어오면 때려 죽인다고 책상 아래에 도끼 갖다 놨어. 어제 저녁에는 어디에서 잤어? ~
책상 밑에 있는 날선 작은 손도끼를 보니까 정말 무서웠다.
그렇지만 엄마한테는 왜 아버지한테 욕을 했는지 말하지 못했다.
말했으면 엄마가 뭐라고 했을까?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 후 엄마가 80이 넘었을 때 그 이야기를 했었다.
연세 드신 엄마는 아무 말도 안했다.
그때 밥을 먹고 성당으로 올라가서 성당 마당 정원에 있는 작은 성모마리아 상을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적셔서 이끼를 닦으면서 처음으로 기도같은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저 좀 집에 들어 가게 해주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집에 들어가게 도와주셔요."
다 저녁 때 집에 들어 갔는데 어쩐지 집안이 환하게 느껴졌다.
책상 아래에 있는 도끼도 치워져 있었다.
더이상 아버지는 그일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아무리 술김이라도 본인의 잘못을 알아서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일찍 아이들을 둔데다 우리 윗세
대 남자어른들은 유교사상에 젖어 남존여비사상과
거기에 이기적이고 본인만 아는 분이
신데 원래 아이들을 애지중지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후로 아버지는 전혀 아이들의 일에 간여하지 않았고 평생 아버지가 한번이라도 따뜻하게 영숙이 손을 잡아 주신 적은 없는 것 같다.
대학 때 매일 술에
잔뜩 취해 퇴근하시
던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연수 받은 내용을 반복하고 따라하게 하고 천원짜리 한장씩을 주었다.
우리를 세워 놓고 대장 노릇을 하다가 아버지가 졸리면 가라고 하였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아버지는 주었던 용돈을 다시 걷었다.
그렇게 새마을 노래도 불렀었다.
직장인 청주 시청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에 취해서 집에 오면 무언가를 물어 놓고서 대답 안하면 대답 안한다고, 대답하면 말대답한다는둥 누군가를 트집 잡아서 화를 내거나 때렸다.
하루는 영숙이가 저녁밥 먹을 때 들어왔다고 화를 냈었나?
~ 어디 갔다가 이렇게 늦게 들어와? ~
~ 아직 안 캄캄한데
요? ~
~저게 말대답해? ~
이런 식이었다.
아무튼 큰 이유는 아니었는데 일어나서
때리려고 하는데 온 식구가 일어서서 아버지를 말리는 중에 영숙이가 팔을 뻗쳐서 아버지 귀싸대기를 있는대로 후려치고 도망을 쳤다.
그때도 집에 들어가지 못해서 뒷뜰 연탄광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가 잠드신 다음에 몰래 작은 방에 들어가서 농속에서 잤었다.
~ 너는 아버지를 때리냐. 아버지 때리 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어제는 어디서 잤어? ~
아버지가 출근하신 다음에 농에서 나오니까 엄마가 하신 말씀이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맏딸인 영숙이한테는 절대로 술주정을 하지 않았다.
동생들 중에 누군가가 대신 아버지의 술주정을 받아야 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다분히 반골기질에 마음에 안드는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저항기질을 나타냈었던 것 같다.
정상이 아닌 것 같은 상황에서는 이해하기 전까지는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렸다.
절대로 그냥 넘어간 경우가 없었던 것 같다.
~ 화합 ~ 더불어 함께 ~ 이해 ~ 상대방을 기분 좋게함 ~ 일을 도모함 ~
서투를 수 밖에 없다.
이제와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굳이 버리고 새삼스럽게 함께 하려고 애쓸 이유도 없을 것 같다.
금요 철야 기도 시간, 혼자서 금요일 밤만 되면 춥거나 덥거나 캄캄한 성전에서 혼자 조는 듯, 기도하는 듯 하는 영숙이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 가족과 함께 하라. ~
나의 성질을 아시고 나의 가는 길을 아시
는 예수님께서 내가 가야 할 길을 말씀 하신 것이다.
이후로 일천번제
의 기도 제목 중에 하나가 되었다.
예수믿고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 축복의 통로로 행하라 ~
첫번째 일천번제
기도 제목 중 하나 였었다.
티스토리를 쓰게 되었을 때 카테고리로
"부부로 살아남기"
를 넣은 이유이다.
의외로 부부이면서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부부들이 많다.
한집에 살면서도 각방을 쓰거나 활동 영역이 다르거나 타인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또 남자라는 이유로 아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물론 본인은 느끼지 못할 것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면 여자라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철희가 운전하다가 운전이 미숙한 사람을 보면
"여자가 운전하지?"
드디어 어느날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요. 옆에서 듣는 여자 기분 나빠요."
교장 선생님들 중에서 "황혼 이혼"
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평생 지시만 하고 사시다가 사모님과 `오손도손`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엄청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부부로 사이좋게 사는 것도 못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작은 일에 어떻게 충성하면서 살 수 있을까?
아닌 길로 가는 사람을 보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말로 고쳐질 것 같으면 무슨 걱정이 있으랴.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아져야 한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의 문을 열고 하루의 문을 닫는다.
~ 동네에서 개가 짖어도 부부가 탄 기차는 간다 ~ ◑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