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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탐구

이어령교수 별세

by 영숙이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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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뀌고 변해도 신 앞에선 피조물일 뿐 자신의 죄 인정 않는 사람이 대역죄 짓는 것 

<이어령교수 별세>  

 

출처 : 위키 백과에서

 이어령(李御寧, 1933년 12월 29일~2022년 2월 26일)은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언론인, 저술가, 대학 교수를 지낸 국어국문학자이며, 노태우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우봉. 호(號)는 능소(凌宵)이다.

 배우자는 문학 평론가인 강인숙이며, 서울 관악구에 이어령의 '령'과 강인숙의 '인'을 딴 영인문학관을 운영하였다.

 

 

생애

국인문화소통포럼 2013에서 기조강연하고 있는 이어령
충청남도 아산 출생이다.
 

 1956년 서울대학교 국문학 학사와 196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 석사, 1987년 단국대학교 국문학 박사 등을 취득하였다.

 경기고등학교 교사, 단국대학교 전임강사를 지냈으며, 1960년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에서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67년부터 1989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이다.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990년 1월 3일부터 1991년 12월 19일까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2009년에는 경기디지로그창조학교를 설립하여 명예교장을 맡았다.

 

2022년 2월 26일 암 투병 끝에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학력

  • 공주고등학교(前) → 부여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 박사

경력

  • 1960~1961: 서울신문 논설위원
  • 1961: 한국일보 논설위원
  • 1962~1965: 경향신문 논설위원
  • 1966~1972: 중앙일보 논설위원
  • 1966~1989: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 1990.01~1991.12: 문화부 장관
  • 1992.09 올림픽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 1993 한백연구재단 자문위원
  • 1993.12 범국민독서 새물결운동추진위원회 상임고문
  • 1994~2022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1994.03 국제화추진위원회 위원
  • 1994.03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 1995.01 세계화추진위원회 위원
  • 1995.02 조선일보21세기 정보화포럼 위원
  • 1998~1999.03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 1998.05 통일고문회의 통일고문
  • 1999.04~2001.01: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 2001.01~2022.02: 중앙일보 고문
  • 2001.05 사이언스 북 스타트운동 공동대표
  • 2005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6 한국측 조직위원
  • 2008.07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 조직위원회 위원
  • 2009.07 제3회 제주세계델픽대회 명예고문
  • 2009.10~2022.02 Korea CEO Summit 명예이사장
  • 201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 2010.04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창조위원회 위원장
  • 2011.03 가족친화포럼 고문
  • 2012 배재대학교 한류문화산업대학원 석학교수
  • 2014.12~2022.02: 동아시아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 경기디지로그창조학교 명예 교장
  • 영인문학관 명예 이사장
  •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고문
  •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문단 활동

 1956년 한국일보에 문학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우상의 파괴〉에서 그는 김동리를 '미몽(迷夢)의 우상'이라고 하고 '모더니즘'의 기수를 자처하고 있는 조향을 '사기사의 우상', 이무영을 '우매(愚昧)의 우상', 최일수를 '영아(嬰兒)의 우상'이라고 깎아내렸을 뿐만 아니라 황순원, 조연현,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

 그는 우리 문학의 불모지적 상황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데올로기와 독재 체제의 금제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작품의 실존성'을 문제로 김동리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조연현과 '전통논쟁'도 펼쳤다.

 특히 1959년 3월 한 신문을 통해 전개된 소설가 김동리와 비평가 이어령 사이의 시비는 대한민국 문단사에서 은유와 비문(非文)에 관한 '험악한' 논쟁으로 기록된다. (남영신,<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주요 작품

평론

  • 《이상론》
  • 《우상의 파괴》
  • 《비유법론고》
  • 《해학의 미적 범주》
  • 《사회참가의 문학》
  • 《현대소설 60년》

평론집

  • 《저항의 문학》
  • 《전후문학의 새물결》
  • 《한국작가전기연구》

소설

  • 《마호가니의 계절》
  • 《장군의 수염》
  • 《의상과 나신》

소설집

  • 《환각의 다리》
  • 《둥지 속의 날개》
  • 《무익조》

수필

  • 《흙속에 저 바람속에》
  • 《신한국인》
  • 《축소지향의 일본인》
  • 《디지로그》선언편
  • 《지성의 오솔길》
  • 《지성에서 영성으로》

해외 출판

 <축소지향의 일본인>(「縮み」志向の日本人)을 비롯 이어령의 책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고, 지금까지도 번역 출판되고 있다.

 특히 2005년 4월 출간된 <장켐 문명론>(신조사)은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후 문명 융합에 대한 해박한 경륜을 담아 한 중 일 삼국의 미래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받았다.

평가

이어령은

 

 '이 시대 최고의 지성’, ‘5000년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창조적 인물’

 

 로 칭송을 받고 있지만 선천적인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일부에서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고령의 나이에 비해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

 

 서재에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7대의 컴퓨터가 있으며, 자료 정리는 에버노트를 주로 쓴다.

 

 김정운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에버노트에 저장된 노트의 수가 18,000개라고 밝혔다.

 

 

가족

  • 아버지: 이병승(李丙昇)
  • 어머니: 원용숙(元溶淑, 아명(兒名)은 원경자(元庚子).)
    • 배우자: 강인숙(姜仁淑, 1933년 10월 15일~, 문학평론가, 함경남도 이원군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문학 석사·박사,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영인문학관 관장)
      • 딸: 이민아(李玟娥, 1959년 7월 23일~2012년 3월 15일, 변호사, 검사, 개신교 목사)
      • 장남: 이승무(李丞茂, 1963년 4월 20일~, 영화감독,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학과 졸, 동국대학교 대학원 노어노문학과 문학석사, 미국 뉴욕 대학교 대학원 영화학과 예술학 석사)
      • 차남: 이강무(李岡茂, 1966년 7월 20일~, 백석대학교 교수)
      • 장자부: 김경희
      • 차자부: 이유미
        • 손자: 이수범
        • 손자: 이정범
        • 손녀: 이다인
        • 손녀: 이지인

출연작

  • 1990년 7월 9일 KBS 《11시에 만납시다 - 문화부 장관 이어령》
  • 1992년 8월 3일 KBS 《11시에 만납시다 -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 2011년 KBS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
  • 2008년 CTS기독교TV 이어령의 토크 에새이

상훈

  • 197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 1989년: 체육훈장 맹호장
  • 1992년: 일본 디자인문화상
  • 1996년: 일본 국제교류기금 대상
  • 2001년: 서울시문화상(문학부문)
  • 2003년: 제48회 대한민국 예술원상(문학부문)
  • 2007년: 제2회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
  • 2009년: 마사오카 시키 국제 하이쿠상
  • 2009년: 제2회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문학부문상
  • 2011년: 제24회 기독교문화대상 시상식 문학특상
  • 2011년: 제20회 소충 사선문화상 특별상
  • 2020년: 제11회 홍진기 창조인상 특별상
  • 2021년: 제50회 문화의 날 금관문화훈장

 

<이어령 전 장관 별세…모두에게 존경받은 ‘시대의 지성’>   

                                                                                    출처 : KBS뉴스( 2022.02.26)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암 투병 끝에 오늘(2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은 수많은 직함을 거치며 다양한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는데요.

 진정한 '시대의 지성'으로 세대를 초월해 존경을 받아온 고인의 삶을 정연욱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1990년 출범한 문화부 초대 장관이자, 당대 최고의 시인 김수영과 문학의 순수성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했던 평론가.

 그리고 '축소지향의 일본인'과 같은 시대를 초월한 명저를 남긴 문명학자.

 이어령의 수많은 직함은 상상과 창조, 분야를 뛰어넘는 '융합'을 추구했던 그의 삶을 말해줍니다.

 [이어령/이화여대 고별강연/2001년 : "폐허가 된 상상력이나 창조력 그 중간의 회색지대를 어떻게 만들어가는가. 이것이 지성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전 세계를 전율케 했던 '굴렁쇠 소년' 역시 당시 대본을 집필했던 고인의 작품이었습니다.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면서도, 항암치료 대신 마지막 저작 시리즈인 '한국인 이야기' 집필에 몰두해 왔습니다.

 [2019년 인터뷰 : "마지막도 한국론을 쓰는 것으로 내 일생을 정리해 보자 해서 열심히 쓰고는 있지만, 이 12권을 다 완성할지는 모르겠고..."]

 '시대의 지성'이라 불릴만큼 다양한 분야를 망라했던 열정을, 고인은 '우물'에 자주 비유했습니다.

 [2010년 인터뷰 : "제가 평생 살아온 것은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올 때까지 역할을 하면 그 다음에 다른 데 가서 또 우물을 판다."]

 문재인 대통령이 빈소를 찾아 애도한 가운데, 장례는 닷새 동안 문체부장으로 치러집니다.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 故이어령이 말하는 이어령, “나는 우물 파는 사람, 내가 마시려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고인은 암 투병 끝에 이날 별세했다.

 

 향년 88세.

 

 1934년 충남 아산 출생인 고인은 소설가·칼럼니스트·시인·관료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렸다.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회식을 총괄 기획하면서 88올림픽의 상징인 '굴렁쇠 소년'을 기획하기도 했다.

 고인은 소설·시·에세이·평론 등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정보화 사회의 미래를 예견한 '디지로그', 일본 사회를 분석한 '축소지향의 일본인', 50년대 문학 시평 '지성의 오솔길' 등이다.

 유족은 부인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과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천안대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장녀인 고 이민아 목사는 2012년 위암으로 별세했다.

                                                                                                     출처 : 머니 투데이에서 

 

<이어령 교수의 회심 이야기> 

                                                 출처 : 인터넷 블루빌리지 블로그에서 (2007. 7. 31)

이성을 넘어 영성으로    

 금년 4월 12일 동아일보에 이어령 교수의 사진과 함께 기독교에 귀의 하게된 내용을 자세히 보도했다.

 그후 월간잡지 빛과소금 7월호에서 이어령 교수의 간증문이 실리고 여러 기독교 매체를 통한 보도가 있었다.

 

 미리 발표한 내용대로 7월 23일 그는 마침내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어령 교수는 지금까지 종교를 문화의 일부로 인식해 왔다.

 

 종교를 논했지만 신앙인은 아니었고, 성서를 읽었지만 열정의 시선은 아니었다.

 

 기독교방송에서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와 1년간 성서를 놓고 대담도 했다.

 

 그러나 늘 제3자, 객관적 시각으로 종교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분석하는 데 주력했었다.

 그런 그가 기독교를 선택하기까지는 딸 민아(47) 씨에게 지난 15년간 닥친 시련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 어렵게 공부한 끝에 변호사가 됐고, 한때 로스앤젤레스 지방 검사로 활약하면서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뤘던 딸이다.

 

 아버지에게는 자랑스러운 딸, 교민사회에선 성공한 한인이자 전도가 양양한 유망주였다.

 1992년, 이 명예교수의 딸 민아 씨는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했지만 1996년과 1999년에 두 차례나 암이 재발했다.

 

 설상가상으로 유치원에 들어간 민아 씨의 작은 아들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로 판명나면서 민아 씨는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몸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아들의 일까지 생기자 그녀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하와이로 이주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의 눈이 점차 흐릿해졌다.

 망막이 손상돼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 명예교수 부부는 급히 하와이로 건너갔다.

 눈이 안 보여 설거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딸을 보고 두 부부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최근 딸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케 했던 이화여대 이어령 명예교수(73)가 기독교에 귀의한 사연을 밝혔다.

 

 그는 월간잡지 빛과소금 7월호에서

 

 “’내 딸이 시력을 잃게 되어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며

 

 “미국 하와이의 한 작은 교회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고 고백했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 민아에게서 빛을 거두시지 않는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나이다.”

 

 그의 기도는 겸허하고 절실했다.

 이 명예교수는 아이들을 봐줄 테니 한국에 가서 검사를 받자고 딸에게 요청했다.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민아 씨가 점차 시력을 회복하더니 정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망막이 다 나았다고 진단했다.

 기적은 그것만이 아니다.

 

 민아 씨는 자신과 아들의 길고 길었던 투병기와 완치되기까지의 과정을 4월 3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새벽기도에서 공개했다.

 

 울먹이며 흐느끼며 30여 분 동안 그가 사연을 털어놓자 교회당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 교수가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것도 그즈음이다.

 

 그는

 

 “아직 교리문답도, 세례도 받지 않았다”

 

 면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못 해준 것을 해준 분이 있다면 대단한 것 아니냐”

 

 며 심경의 변화를 나타냈다.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는 그가 7월에 세례를 받을 예정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위에서 보도한 내용대로 마침내 7월 23일 이교수는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 교수는 23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하용조 서울 온누리교회 담임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세례식은 이 교수의 부인과 딸 장민아 변호사 등 가족,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목사와 장로 등 집례위원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 교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님으로 영접하겠는지'

 

 를 묻는 세례 문답에 모두

 

 "예, 아멘"

 

 이라고 대답했다.

 

 하 목사가 손에 물을 적셔 이 전 장관의 머리에 얹고 기도할 때 그의 가족은 감격스러워했다.

 

 이 교수는

 

 "영성으로 거듭나는 오늘의 기억은 영원히 남을 것"

 

 이라고 고백했다.

 무신론자였던 이 교수가 암과 시력장애를 앓던 딸과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증후가 있던 손자의 병이 치유되는 과정에서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 교수는 세례식에 이어 한·일·대만 등에서 활동중인 CEO(최고경영자) 700여명이 참가한 리더십 포럼에 특별강사로 나섰다.

 그는 유창한 일본어로 진행한

 

 '이성에서 지성으로,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제목의 특강에서

 

 "지금까지 의지와 이성, 지성으로 살아왔는데 그것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이 잘 모르는 것들, 그 안에 또 다른 세계(영성)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 역설했다.

 

 다고 모토요시 일본 생명의말씀사 회장은 이 교수의 강연에 대해

 

 "참으로 놀라운 지성의 고백"

 

 이라며

 

 "일본의 지성을 영성으로 깨우는 귀한 말씀이었다"

 

 고 말했다.  
 하 목사는

 

 "이 교수가 오늘 세례받은 것은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것보다 더 큰 기적"

 

 이라며

 

 "이 교수의 회심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지성사회가 영적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고 소망했다.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이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믿게 하시므로 가능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현장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b) 

 

 

 

<기독교인 이어령 교수 소천> 

                                                 출처 : 크리스천 투데이에서 ( 2022.02.26)

  이어령 교수는 특히 2007년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이후 영성에 관한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양화진문화원에서 다양한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시작으로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지성과 영성의 만남>,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등을 펴냈으며, 최근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 등을 담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과 삼성 故 이병철 회장이 만년에 가졌던 24가지 종교적 물음에 답하는 <메멘토 모리>가 출간됐다.

 

 

◐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이어령씨 수필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

 

 확실한 건 이 시대의 최고의 지성이었다.

 

 특히 이어령씨를 잘 기억하게 된 것은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이어령씨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은 일.

 

 영숙이가 예수를 믿고 몇년이 지나서 이어령씨가 CTS에 자주 등장하여 간증을 하는 모습과 영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시대의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분이 TV에 나와서 예수님에 대하여 간증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전에는 이어령씨의 큰딸 이민아씨의 간증을 여러번 들었었다.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주뜻대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쓰임 받기를 기도할 뿐이다.

 

 요 몇일 아프면서 생각이 났는데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그즈음 배우고 싶어했던 볼링을 계속 배우러 다니려고 하였었다.

 

 도성 아파트라고 22평형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때에는 재활용을 하려면 재활용 차가 오는 날 재활용품을 들고 나가서 차가 오는 큰 도로에서 기다렸다가 해야 했다.

 

 그날도 구역식구들과 만나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활용을 하는데 무슨 물건인가를 차에 던져 넣는데 새끼 손가락이 탈골 된 것이다.

 

 탈골된 새끼 손가락을 만지면서

 

 '볼링 배우러 다닌다고 마음 먹으니까 손가락에 탈이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탈골된 새끼 손가락을 제자리에 끼워 넣고 설압자를 댄 다음 반창고로 칭칭 감았다.

 

 그렇게 한달 동안 고정한 다음 풀었는데 아픈 것은 낳았지만 탈골되었던 중간 부분이 약간 구부러져 있었다. 

 

 하나님은 영숙이가 가야할 길이 아닌 길로 가면 막아 주신다.

 

 이번에도 포켓볼 당구 배우러 가기로 사람들과 약속했는데 만나기로 한 화요일 전날 월요일에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파서 자동으로 약속이 파기 되었다.

 

 밤새 으으으으 ~ 하면서 신음 소리를 내는데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철수는 자다가 일어나 앉아

 

 "그렇게 아프면 응급실에 가던지 하자."

 "내일 아침 병원에 갈께. 소리내서 미안. 소리내면 덜 아픈것 같아서 듣기 싫어도 조금만 참아줘."

 "으으으으 ~ ".

 

 일주일 내내 기운도, 밥맛도 없고 끙끙 앓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 속에 새끼 손가락 탈골이 생각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저 같은 것을 불러 주시고 길이 아닌 곳으로 가면 막아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주님의 은혜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어령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셨을 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해서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깜깜한 가슴 속 밤하늘에 떠다닐
반딧불만 한 빛 한 점이면 족합니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 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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