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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칼럼/국내여행

기차를 놓치다. (영동역)

by 영숙이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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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놓치다(영동역)>

 

서쪽 하늘에 아직 해가 붉다.

물길을 찾는다고 하천을 따라가다 용두공원에 먼저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던 중학교 여학생들에게 물었다

"몇학년?"
"중학교 1학년요."

아무래도 평생 중학교 학생들과 지내서인지 아이들하고 말하는게 마음이 편하다.

"너네 중학교 1학년은 몇반까지 있어?"
"5반까지요."
"한반에 25명쯤이면 1학년이 100명쯤 되네?"
"3학년은 6반까지 있어요."
"고등학생은?"
"고등학생은 모르겠어요."
"나 4학년 때 크리스마스에 학용품준다해서 교회를 갔었거든?
안받은 사람 손들어해서 손들고 저 안받았어요 했더니 다음주에 오면 줄게 하더라구."
"다음주에 갔더니 신년이라서 합동예배를 드리는데 교회 벽에 구하라. 구해질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열릴 것이요 써있는데 저게 무슨 말일까? 했거든?"
"목사님이 설교하다말고 모르겠다 하면서 구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인데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줘서 얻게 된다는것입니다. 하고 설명하시는 거야."
"옳다. 기도라는 것을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거네?"
"중학교 합격하게 해주세요. 고등학교 합격하게 해주세요. 선생님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다 들어 주셨어. 고등학교 갔는데 너희 둘처럼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가 있었는데 그애가 나를 교회로 데리고 간거야. "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셔."

아이들이 아까부터 샛길로 빠지려다 영숙이 말듣느라고 못빠졌는데 드디어 샛길로 들어섰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를 하나님도 가까이 하신단다."

영숙이도 스스로 그런 소리를 하게 될지 몰랐다.

"공원에 가려면 어디로 가지?"

"다리 건너서 가면 되요. 아, 힘들텐데요."
"해지기 전까지는 올라갔다 오겠지."
"아네."

가볍게 생각하고 올라갔다.
힘들지는 않았다.
계단 따라 올라가면 되는 길.

올라가서 충혼탑도 찍고 나무에 매달린 설명서도 읽고 가볍게 올라 갔으니 가볍게 내려오면 되겠는데? 하고 쉽게 생각했다.

아니었다.
문제는 그때부터 생겼다.

해있을 때 올라갔으니 해 있을 때 내려 올 것이다란 생각이 완전 빗나갔다.

반대쪽으로 내려가려는데 먼저 음악회를 열수 있는 공간이 보였다.

벽에 시가 새겨져 있는 돌판들이 있어서 그냥 못지나가고 찍고 읽었다.

조각품들도 작가들과 더불어 제법 있어서 또 붙잡혔다.

산을 다 내려갔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아까 시를 중간부터 찍었으니까 못찍은 것을 마저 찍어야 겠다고 거꾸로 올라갔다.

분수대 앞을 지나가는데 내려오면서 계단을 내려가기 싫어서 시를 찍으면서 멀찍이 사진만 찍었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니 8시부터 음악분수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분수대 옆으로 모였다.

영숙이도 8시를 기다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그 앞 벤치에 앉았다.

8시.

칼라플한 음악 분수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넘 넘 넘 이뻐.

정신없이 동영상을 찍고 영상통화를 시도하여 음악분수를 보여주었다.

30분 내내 음악분수 동영상을 찍고 아까 못찍은 시들을 마져 찍었다.

그냥 사진만 찍은게 아니라 일일이 읽어가면서 찍었다.

올라가니까 길이 하나 나오는데 그쪽으로는 내려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으로 따라가보니 도로 이쪽으로 돌아서 내려오는 길이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많았던 어른들과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사위가 고요하다.

으 ~ 무서버

마침 아가씨 3명이 이쁜 강아지랑 놀면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이 저 위쪽과 저 아래쪽 뿐인가요?"
"네. 이길 밖에 없어요."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 내려왔을 때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왜 이렇게 안와? 어디여?"
"응, 아직 영동이여."
"왜 이렇게 늦어. 혼자 다니면서."
"음악분수 본다고 좀 늦을지도 모른다고 했잖여."
"그래도 너무 늦네. 걱정되서 전화했어."
"응. 걱정하지 말구 이제 가려구. 가구 있어."

터덜 터덜 포도나무로 만들어서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터널을 지나갔다.

밤이라서 주렁주렁 열린 포도열매를 찍을 수 없어 안타깝다.

후레쉬를 터트려도 화면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도로 옆인데도 저렇게 주저리 주저리 열리다가

2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영동 읍내가 너무 좋다.

공기도 좋다.

길가에 포도나무에도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는 영동이 좋다.

하천을 따라가지 못해
서 물을 찾지는 못했다.

물길을 만나지 못했다.

와인 터널도 못봤다.

그럼에도 영동이란 읍내가 마음 속으로 쏘옥 들어왔다.

포도열매처럼, 와인처럼 달콤하게 숙성될듯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아까 대풍이라는 식당을 찾아가라는 WAYA카페의 사장님 말처럼 할머니들이 만들고 서빙하는 식당은 딱 영숙이 취향이었다.

나물 반찬에 콤콤한 청국장, 구운 맨김에 양념, 각종 채소등등

마침 동네 아주머니가 깻잎과 풋고추를 팔러왔다.

주방에서 역시 할머니가 나오더니 깻잎과 풋고추를 산다

기대했던대로 팔려서 인지 기분좋게 돈을 받아들고 아주머니가 나간다.

옆 테이블에 깻잎을 주는데 너무 맛있어 보인다.

"저두 깻잎 주세요. 고추도 주세요."

깻잎과 고추와 된장을 주신다.

보들보들 깻잎과 야들야들한 풋고추.

된장을 올려서 싸먹으니 맛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

구운생선 반토막에 덤으로 가져다 주신 물김치

싹싹싹.
비웠다.

밥 한그릇 더 먹고 싶지만 꿀꿀거릴까 참는다.

반찬 먹느라 짜게 먹고 밥은 더 안먹었다.

행복한 저녁 밥상.

할머니 한분이 카드를 못긁어서 주방에 할머니 한분이 나와서 카드 긁는 법을 가르켜 준다.

영동에 오면 대풍 식당으로 가세요.

대풍 식당에는 대풍을 불러 일으킬만한 할머니들이 모여서 홀과 주방에서 일합니다.

푸짐하게 푸짐하게 줍니다.

옛시골 인심으로 듬뿍듬뿍

웃으면서 맛있게 먹어요. 하신다.

꼭 말로 안해도 저절로 느껴진다.

부산가는 기차가 도착했다.

사람들이 한 발떼기 내린다.

다들 어디서 오는 걸까?

터덜 터덜 걸어서 하천의 다리를 건너고 코앞에 있는 영동역에 도착하였다.

9시 22분.

대전가는 9시 16분 기차가 떠났다.

6분만 일찍 도착했으면 되는데 아깝다.

버스타고 갈까?

이리저리 인터넷에 물어보니까 버스가 없다.

옥천으로 갈까
심천으로 갈까
인터넷에 물어보니 기차로 가란다.

결국 11시 3분 기차표를 끊고 역구내에 자리잡고 앉아서 티스토리를 쓴다.

물은 찾지 못하였다.

와인 터널도 못가봤다.

다시 올 충분한 이유들이 생겼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물들을 찾고 싶고 물길을 따라가고 싶고 와인터널도 가고 싶다.

지금은?

엄마 집에 가서 잠을 자야한다.

기차타고 대전역에 도착하면 11시 35분.

지하철이 있을까?
없으면 택시.
최근엔 왠만하면 택시를 안탄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을 땐 타야지.

택시 안타고 버스나 지하철 타는 것도 재미있다.

지금은 영동역 구내.

기차에서 한발떼기 내린 손님들이 모두들 다 떠났다.

다시 역구내가 조용해진다.

시원한 역구내.

우리가 말려버린 물줄기도 못찾고 우리가 없애버린 물도 찾지 못했지만
영동은 다시오고 싶은 동네다.

울산 그 큰도시에서 음악 분수한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울산시도 싸게 싸게 음악분수도 하고 울산의 자랑도 만들고 울산특기도 개발해야 할텐디.

물을 따라가다가 물을 찾지도 못하고 물길도 못찾은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물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요즘의 아이들처럼 물 없는 하천을 당연시 받아들이게 되는 하루가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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