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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유명 브랜드 이야기 ~ 코카 - 콜라 1

by 영숙이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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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유명 브랜드 이야기 ~ 코카 - 콜라 1>        

 

 오늘은 세계의 유명 브랜드에 대하여 이야기 해봐야겠다.

 항상 관심이 있었지만 이래 저래 시간이 흘러 버렸는데 지금이라도 써봐야지.

 

 1. 코카 - 콜라 (1)

 

 너무 유명한 음료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코카  콜라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유명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세계인의 음료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 조항록 그림 박순구의 세계의 유명 브랜드 이야기에서 가져왔다.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톡 쏘는 맛        

 

 코카 골라 소개

 

 청량 음료 하면 대표적인 것이 콜라.

 새로운 청량 음료가 계속 개발되고 있지만, 10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우리 곁에 있어 온 콜라의 위세를 아직 꺾지 못하고 있다.

 콜라의 대표적인 브랜드 코카 - 콜라.

 

 코카 - 콜라는 1886년에 미국 애틀랜타의 약사 '존 스티스 펨버튼'이 개발했다.

 남북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던 그는 호기심이 무척 많은 사람.

 그는 틈날 때마다 여러 가지 약재들을 혼합하며 실험하는 것을 즐겼다.

 

 하루는 두통에 효험이 있는 약을 연구하던 중 캐러멜 색의 향기로운 액체를 만들어 냈다.   펨버튼은 곧 어떤 영감을 느껴 그 액체에 탄산수를 더한 후 약국에 오는 손님들에게 맛을 보게 했다.

 

 콜라가 음료수가 아닌 약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손님들은 뭔지 모르겠지만 독특하다는 평가를 내렸고 그래서 한잔에 5센트씩 받고 판매를 시작했다.

 

 당신 약국에는 '프랭크 로빈슨'이라는 직원이 있었다.

 그가 탄산수가 섞인 캐러맬 색 액체에 '코카 - 콜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개성있는 필체로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코카 - 콜라 영문 글씨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펨버튼은 연구가일 뿐, 사업가적 기질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돈이 필요해지자 2천 3백 달러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코카 - 콜라에 관한 모든 권리를 넘겼다.

 지금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코카 - 콜라를 즐겨 마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 코카 - 콜라의 사업 규모는 정말 대단하다.

 

 전 세계 200여 개 나라 사람들에게 250밀리리터 캔을 기준으로 해서 하루에 약 7억 개 분량의 콜라가 팔린다고 한다.

 연간 매출액은 2백억 달러 정도.

 매 20초마다 12만 6천명의 사람들이 코카 - 콜라, 코카 - 콜라 라이트(일명 다이어트 코크), 환타, 스프라이트 등의 코카 -콜라 제품을 마신다는 통계도 있다.

 

 하기는 코카 - 톨라가 세계 1위, 코카 - 콜라 라이트가 세계 3위의 청량 음료 판매량을 기록한다니 그럴 만도 하다.

 환타와 스프라이트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잘 팔린다고 하니 시장 가치로 따지면 약 1천 5백억 달러에 이르는 회사라고 한다.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브랜드'(1995년)

 '미국에서 두 번째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는 회사'(2001년)

 '브랜드 가치만 689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2001년)

 

 이런 평가는 <표춘>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 전문 잡지에서 코카 - 콜라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코카 - 콜라를 세계 최고로 키운 사람들

 

 펨버튼으로부터 코카 - 콜라를 사들인 사람은 '아서 캔들러'였다.

 그는 코카 - 콜라를 최고의 청량 음료 기업으로 자리 매김한 사람이다.

 

 캔들러는 콜라라는 새로운 '발명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코카 - 콜라를 무료로 나눠 주기도 했고, 배급하는 약국에 여러 가지 사은품을 제공해 판매가 잘되도록 애를 썼다.

 

 그리고 몇년 후부터는 코카 - 콜라가 약이 아니라 음료수로 팔리도록 영업 및 홍보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음료수로 팔리는 것이 판매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캔들러의 예상는 들어맞았다.

 1895년에 시카고와 댈러스, 로스앤젤레스에 원액 제조 공장을 세울 만큼 코카 - 콜라는 성장해 나갔다.

 그러나 캔들러도 코카 - 콜라를 병에 담아 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소비자가 어디든 자유롭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병에 담아 파는 것이 중요했었는데도 말이다.

 

 코카 - 콜라를 병에 담아 팔 생각을 맨 처음 한 사람은 '조셉 비덴한'이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캔들러의 흥미를 별로 끌지 못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두 명의 변호사가 헐값에 코카 - 콜라를 병에 담아 파는 독점권(권리를 독차지하는 것)을 취득할 때까지 캔들러는 그 중요성을 몰랐다.

 

 그후 1916년, '루트 글래스'라는 회사에서 그 유명한 코카 - 콜라 병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이 병이 여자의 몸을 본뜬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코카 - 톨라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상징물로 남아 있다.

 

 캔들러에 이어 코카 - 콜라의 역사에는 '우드러프'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우드러프만큼 코카 - 콜라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도 드물다.

 그는 아버지 어니스트가 캔들러로부터 코카 - 콜라를 사들인 지 5년망에 사장이 되었다. 

 캔들러가 미국에 코카 - 콜라의 뿌리를 내렸다면, 우드러프는 자그마치 60년 동안 경영권을 갖고 전 세계에 코카 - 콜라를 알리는 데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다.

 

 그는 처음으로 코카 - 콜라를 홍보하는 일에 올림픽을 활용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어디에서나 5센트만 있으면 코카 - 콜라를 마실 수 있다'고 선전하며 미군들이 참전하고 있는 유럽에 까지 판매 영역을 넓혔다.

 이 판매망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코카 - 콜라를 유럽에 전파하는 데 더없이 좋은 수단이 되었다.

 

 또한 코카 - 콜라의 광고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끌게 된 것도 우드러프 때였다.

 1978년에는 코카 - 콜라가 포장 용기에 담긴 청량 음료로는 유일하게 중국 시장에서 판매를 허가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당시 중국은 폐쇄적인 공산 국가였기 때문에 매우 놀랄 만한 일이었다.

 

 1981년. 코카 - 콜라의 경영 책임자가 로버트 고이주에타로 바뀌었다.   

 한데 그 무렵은 경쟁사의 콜라가 코카 - 콜라의 시장을 빠르게 빼앗아 가고 있을 때였다.

 이에 고이주에타는 신제품을 내놓기로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명 다이어트코크라 하는 '코카 - 콜라 라이트' 였다.

 지나치게 살이 찐 사람이 많은 미국에서 코카 - 콜라 라이트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단지 미국뿐 아니라 다이어트에 관심이 높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이어트 음료수'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낼 정도였다.

 시장에 나온 지 2년 만에 코카 - 콜라 라이트는 가장 인기 있는 저칼로리 음료수가 되었다.

 

 하지만 코카 - 콜라 라이트가 코카 - 콜라 회사를 대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비자들은 다시 원래의 코카 - 콜라를 찾기 시작했다.

 한번 길들여진 입맛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

 그래서 칸생한 것이 '코카 - 콜라 클래식'이다.

 요즘 사람들이 그냥 '코카 - 콜라'라고 부르는 제품이 그것이다.

 결국 코카 - 콜라는 본래의 맛으로 소비자들에게 다시 다가간 것이다.

 

◐ 코카 콜라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3회로 짤라서 올려야 겠다,

 

 코카 콜라 이야기를 올리는 이유는 우리나라에도 코카 콜라처럼 세계적인 브랜드가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요즈음 K 브랜드가 엄청 많이 생기고 있다.

 다행이다.

 조금만 더하면 세계적인 브랜드도 많이 나올 것이다.

 기대해본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을. 

 

 월요일이라서 도자기 공방에 갔다.

 샘의 공방은 보리와 호두가 주인이다.

 별이 샘은 보리와 호두 때문에 어디에 여행을 못간다.

 보리와 호두를 돌봐야하고 먹이를 챙겨야 하기 때문.

 

 오늘은 호두가 관심있는 눈빛을 보냈다.

 한달이 다 되어 가니까 정기적으로 오는 사람이라고 관심을 표현한다.

 호동그란 노오란 눈으로 가만히 jinnssam의 얼굴에 집중해서 바라본다.

 ㅎ ㅎ ㅎ

 드뎌 ㅋ

 

 오늘은 콩화분 밑받침들과 하얀 도자기 콩 화분을 만들었다.

 손으로 빚는 것이 아니고 손잡이를 돌리는 것으로 납작하게 만들어서 잘라 만들었다. 

 만든 화분에는 도장 찍듯이 무늬를 빙둘러 찍었다.

 

 선생님은 이쁜 여고생의 모습을 조각하셨다.

 머리카락 하나 하나 정성을 들여 새기고 ~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지난 번에 별이 샘이 말씀하신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 같다.

 역시 도자기 하시는 분인데 본인이 못만들겠다고 해서 별이 샘이 만들어 주시는 가보다.     

 이럭 저럭 콩분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아직 말리는 중 ~ 가마 속으로 들어가길 기다리면서 ~ 불속에서 단단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별이샘이 도자기 공방을 많이 정리하셨다.

 작년에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한달이상 입원하신 후로 처음 만날 날도 그렇지만 한번씩 이야기 끝에 슬픈 이야기를 하신다.

 "샘 그런 이야기 하지말고 좋은 이야기에 좋은 생각만 하셔요."

 마음대로 조절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처럼 좋은 이야기에 좋은 생각만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성경 말씀이나 찬양을 들으면서 생각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

 좋은 생각, 긍정적 생각, 바른 생각, 옳은 생각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사이 생각들이 진흙 속에 빠져있다.

 얼릉 나와야지 내버려두면 점점더 진흙탕 속에 빠지게 되고 길이 아닌 곳으로 가게 된다.    "왜 그러지? 이해 할 수 없네?"

  인간의 생각과 마음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저절로 진흙탕 속에 갇혀 딱딱하게 굳어져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정말 무섭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성경말씀같은 좋은 책을 읽고 찬양같은 좋은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오늘도 별이 샘은 도자기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잘 가르쳐 주신다.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그냥 지나치셔도 되는데 스스로에게 그게 안되시는 분.

 

 jinnssam은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

 

 샘 열심히 배울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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