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에 불현듯 끼어든 이 남자, 한번은 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아빠가 팔만 살짝 움직여도 자기를 때리는 줄 알고 아이들은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이후 “아이들이 선생님을 보고 싶어한다”며 계속 만나러 왔다. 2년 동안 남자에게 시달렸다. 주님께 길을 물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하나님은 이 말씀을 주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이요, 본질인 이 말씀이 왜 내겐 절망으로 들렸을까.
“그 남자를 위해, 아니 그 가정을 위해 저더러 한 알의 밀알이 되라는 겁니까”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했다. 그 가정을 위해 썩는 밀알이 되기로 했다. 1990년 5월 5일. 당시 두 아들의 나이가 9세, 7세였다. 아이들을 품에 안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다. “우리 애들 가슴에 상처주지 않고 잘 키우겠습니다. 저는 자식을 낳지 않고 오로지 이 아이들만을 사랑하며 내 목숨처럼 키우겠습니다.” 남편도 감동했는지 무릎을 꿇고 같이 기도했다.

이 감동, 얼마나 갔을까. 일주일을 못 넘겼다. 남편은 도박에 미쳐 며칠씩 집을 비웠다. 돈이 떨어지면 들어왔다. 죄악된 생활이 인간의 신념만으로는 바뀔 수 없었다. 돈 내놓으라고 숨이 넘어갈 직전까지 내 목을 졸랐다. 남편은 아이들을 막무가내로 때렸다. 학원 원장실까지 들이닥쳤다. 십일조 통에 손대는 그를 향해 “이건 하나님의 것”이라며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순간 번쩍했고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코뼈가 부러져 누워 있는 내 팔을 붙잡고 아이들이 울면서 애원했다. “엄마, 아빠랑 헤어져도 우리 안 버릴 거지? 우린 엄마랑 살 거야.” 나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면 할수록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맞으면서 기도하고, 죽음처럼 그렇게 10년을 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더는 지탱할 수 없었다. 비가 쏟아지던 날 밤, 학원 건물 옥상으로 갔다. 퍼붓는 비를 맞으며 한가운데 무릎을 꿇었다. “더는 힘들어 못하겠습니다.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옥상 난간에 섰다. “주여!”를 외치며 몸을 앞으로 내미는 순간, “엄마,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에 중심을 잃고 옥상 안으로 떨어졌다.

50년 내 삶을 지탱해온 비결은 인내와 기도다. 인생의 폭풍우가 쏟아질 때도 내가 한 것은 인내하며 기도한 것뿐이다. 영적 성숙은 인내로 완성될 수 있다. 인내의 기도 결과, 그렇게 폭력적이던 남편은 어떻게 됐을까. ‘트로트 찬양전도사 신승균.’ 하나님의 사람인 그는, 내 남편이다.
정리=노희경 기자 [출처] - 국민일보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불가사의다. 자이엄마랑 이야기하면서 소판돈에서 백만원만 헌금하고 이백만원은 들고 서울로 올라가지. 라면이라도 먹으면서 버틸텐데 ~ 간증을 들을 때는 와 ~ 전심으로 씨앗을 심었네. 그러고는 돌아서서 이렇게 계산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크고 놀라우신 분.
인간의 계산으로는 계산이 안되는 분.
우리는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면서도 속계산을 하는 그저 얄팍한 인생들인 것이다.
얄팍한 보통의 인생.
남편이라는 분을 만난 과정도 보통이 아니다. 저게 된다는 건가? 참으로? 참으로 인생사 하나님이 쓰셔야 제대로 사는 것이 된다.
우리도 지금 나름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 이겨내야 하는 나름의 삶을 엮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그릇이 다른게 이런건가보다.
사람마다 인격이 다른게 이런건가보다.
사람마다 특성이 다른게 이런건가보다.
하나님 날마다 나아 갈 수 있도록 은혜 주심을 감사합니다. 작은 그릇이지만 써 주심을 감사합니다. 때마다 시다마 은혜로 덮어주시고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과 위로로 함께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인터넷에서 찾아낸 다음 이야기는 다음에 또 쓰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