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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이 가을 날 보낸 편지

by 영숙이 2021.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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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날 보낸 편지>   

                        김영자. 처용 수필 제2호 (1996. 겨울)에 실린 글. 울산여상 교사, 시집 발간(흔적남기기)

2. 나의 답장

 높은 하이힐을 신고 교문을 흔들거리면서 들어오다 보니까 아침에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뛸 정도로 바빴던 것을 잊어 버린다. 

 

 오늘 아침에 현이는 일찍 일어나서 아빠 차로 유치원에 데려다 달라고 한 번쯤 보채본다. 안되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래 보는 것이다. 어제 그제 아빠가 데려다 주었더니 아빠가 회사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제는 많이 오늘은 한 번쯤 응얼거리는 것이다. 그리곤 우유 달라고 응얼거리고 사실은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저를 알아봐 달라고 그러는 것이다. 

 오빠도 아침 일찍 일어나더니 엊저녘에 동생에게 빼앗긴 안테나를 얼른 찾아든다. 사실 덩치만 커다랗지 아직은 그야말로 어린이는 어린이다.

 자신이 시시때때로 청소년임을 강조하지만 동생을 시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부러 이제는 동생 보라는 듯 그 앞에 펼쳐들고 흔들어서, 주의를 주었더니 감추면서도 사실은 감추면 재미없다는 표정이다.

 현이는 엊저녁에 오빠가 만든 배를 운전해 보고 싶어 한다.

 좁은 목욕탕이 초만원이 된다.

 아빠는 목욕하고 오빠는 큰 것 본다고 목욕탕 문을 잠그고 현정이는 잠궜다고 목욕탕 문 앞에서 칭칭거리며 엄마에게 일러 주고 있다.

 

 "동화야! 문 열어 줘라!"

 "나 큰거 보고 있단 말이야!"

 "현이가 울고 있잖아!"

 "아빠! 목욕한단 말이야!"
 "현아! 아빠 목욕 끝나고 배 띄워 봐! 응? 조금만 참아! 응?"

 

 그래도 목욕탕 문 앞에서 잉잉 ~ 칭칭 ~ 거리고 있다.

 드디어 오빠가 빨리빨리 볼 일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고 아빠도 쫓기듯이 밖으로 머리를 털면서 나온다.

 나는 화상입은 곳에 약 바르고 거즈 붕대 대고 혼자서 반창고를 붙이자니 와서 도와준다.

 드디어 현이와 동화는 배를 가지고 목욕탕으로 들어가서 욕조에 물을 받고 배를 띄우고 현이의 감탄하며 박수치는 소리가 들린다.

"와! 배가 간다. 와!"

나도 들어가서 보니 엊저녁에 애써 칠한 페인트가 균형감각이 없어 보인다.

 배 밑창을 흰색으로, 배 선창을 파란색으로, 배 위는 진한 초록색으로 칠했으니 날렵해 보이는 대신에 무거워 보인다.

 세수를 하면서 거실에 있는 아이를 부른다. 지금 안부르면 잊어 버리고 이야기 하지 않게 되니까.

 

 "배 밑창은 어두운 색으로 칠하고 선창을 흰색으로 칠해야 산뜻하지! 무게 중심이 아래로 보이지 않겠니? 넌 색칠을 거꾸로 한 것 같애! "

 

 아이는 생각하는 얼굴로 듣고 있더니,

 

 "알았어!"

 

 한마디 하고는 거실로 간다.

 작은 아이

 

 "엄마! 난 오늘 뭐 입고 가지?"

 "이모가 입혀 줄거야! 큰방에 옷 있어! 원복 입고 가는 날이잖아!"

 "응 알았어"

 "얼른 세수하고 이빨 닦아라!"

 "싫어! 싫어! 이빨 안닦을 거야!"

 "그럼 벌레 생겨! 아 해봐! 벌레 생겼나 보게!"

 

 아이는 있는대로 크게 입을 벌린다.

 가만히 생각하니 시댁에서 어린이 치약 가지고는 두세번 닦던 기억이 난다.

 

 "어린이 치약 저녁 때 사줄께! 그럼 그때 닦을래?"   

 "어린이 치약 사줘! 지금 사줘!"

 

 한 번 떼쓰기 시작하면 못말리는 작은 아이.

 

 "슈퍼 문 안열었는데 어떻게 사?"

 "싫어 싫어 지금 사줘!"

 "동화야! 네 동생 어린이 치약 좀 사줘! 현이 데리고! 돈은 서랍장 위에 있다. 응?"

 

 큰 아이는 왠지 심술이 가득. ( 와우 배가 스크류가 돌아가면서 정말 잘 가네 하고 칭찬해야 했나?)

 무엇인가 불만이 있고 귀찮기도 하다.

 오늘 개교 기념일이라고 학교에 안간다기에 이불을 개켜 놓으라고 저희 아빠가 이야기 하니 후딱 개켜 놓고 앉아서 시선이 텔레비젼에 고정되어 있다.

 

 "쟤가 왜 저리 말을 안듣고 그러지? 응? 무슨 말하면 대꾸하고, 싫다하고, 소리 지르고! 엄마 바쁜 것 안보이니?"

 

 그쯤해서 엄마 사정을 봐준다.

 

 "알았어! 혼자 가서 사오라고 해!"

 "길 건너 슈퍼인데 어떻게 그러니?"

 

 드디어 데리고 나간다.

 갔다 와서 작은 아이는 치약 자랑을 한 후 오빠가 가면서 몇번 때렸다고 이른다.

 

 "왜 동생을 때리니? 사이좋게 놀아야지! 너 자꾸 동생 때릴래?"

 

 큰애 손에 안테나가 쥐어져 있다.

 가기 전에는 유치원에 안가지고 간다는 조건으로 작은 아이에게 주었었는데 갔다 오면서 아마도 치약과 바꾸었는지 큰 애의 손에서 흔들거린다.

 아직도 식탁은 깨끗하다.

 얼른 식탁을 차리고 선 채로 순식간에 밥 한술 뚝딱, 대문 밖으로 쫓기어 나가면서 그래도

 

 "얘들아! 엄마 한테 뽀뽀 해야지!"

 큰애는 시일 웃으면서 작은 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 볼에다 뽀뽀.

 

 "현이는 이 닦았어? 응? 좋은 냄새! 착하네! 유치원 잘 갔다와! 응?"

 

 차에 타고 나서 생각하니 차 타기 전에 회사 옷 긴 소매를 가지고 오라는 것을 깜박했다.

 오늘도 짧은 소매를 입고 다니겠지?

 제법 날씨가 쌀쌀해서 엊저녁에 긴소매를 다려서 눈에 띄도록 작은 방 옷장 앞 옷걸이에 걸어 놓았는데 말이다.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는 로터리에 내려서 차가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마음이 약간 느긋해지면서 교통 순경 아저씨들이 도로 한가운데 서서 수고하고 계시는 횡단 보도를 건너 간다.

 

 오늘은 하이힐을 신었다.

 대문을 나서기 전에 급히 꺼내서 손질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굽높은 하이힐에 흔들 거리면서, 다행히도 내 다리가 적당힌 긴 것과 바지와 브라우스와 조끼를 입으려고 엊저녁에 잠을 덜 자고 수고하면서 준비한 대가를 즐긴다.

 한번씩 새로운 기분을 만끽하는 것은 기분이 좋다.

 아무도 없는 교문 길을 혼자서 건들거리면서 팔도 벌려 흔들어도 보다가 다리도 붙여서 걷다가 리듬을 줘 보기도 하고 어찌됐던 한번씩 하이힐을 신고 기분도 낼만 하다.

 

 올케의 편지 너무나 반가웠어!

 어제 아침녘엔 정말 맑고 밝은 가을 날씨였는데 오랜 만에 교정을 산책하니까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어!

 밝은 햇볕과 따뜻한 대기 속을 걸으면서

 

 '사는 건 이런거야! 내가 너무 오랫동안 산책을 해보지 않았어!'

 

 그러면서 이런 햇볕과 날씨를 즐길 수 있는 우리나라의 가을을 아니 우리나라의 사계절에 대해 감사했지!

 2교시에 교실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그런 기분 그대로의 느낌을 이야기 했었지!

 아이들에게도 감정이 전이 되는지 내가 느낀 것을 그대로 느끼는 기분을 느껴지.

 그렇지만 그후부터는 더 이상 그런 기분을 낼 수가 없더군.

 기분 좋은 밝은 가을 햇볕에서 얻은 영감이 피곤에 밀려 나는게지.

 

 엊저녘의 편지.

 처음 편지함에서 올케의 편지를 받고 잠시 망연했어.

 생각이 안나는 거야. 나에게 편지를 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주소를 보곤 그때서야

 

 "아! "

 

 했었지.

 올케의 편지는 정신의 황무지를 걷고 있는 나에게 정말 가을 햇살처럼, 가을 날씨처럼 청명한 공감과 정신세계를 느끼게 해주었어!

 오래 잊고 있는 세계.

 혼자서 가는 길.

 결코 누구에게도 내보일 수도 그리고 공감하는 이를 찾기가 지극히 어려운 길.

 누군가가 내 시를 읽어주고 알아주고 분석해 줄 이가 있다는 더없는 기쁨.

 나에게는 백만인의 독자보다도 더 반가운 편지였어.

 나는 사실 누군가의 지원이, 애정이 필요했었어.

 글 쓰는 이의 지도보다도 내 시에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 보아주고 배울점 또 객관적으로 혹독한 비판을 해 줄 사람이.

 사실은 누군가의 혹독한 비판이 필요했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런 관심을 주는 이는 없었지.

 시를 쓴다는 사실은 항상 고독하고 혼자 가는 어려운 길이지. 그저 누가 알아주나 마나 그저 쓸 수 밖에 없는 길이야. 그렇다고 금방 쓴 것이 눈에 드러나는 것도 아니지. 혼자 채찍질하고 잊지 않고 시간을 아껴가며 쓰고 생각하고 읽고 그러다가 조금 게을러지면 그냥 후퇴하는, 전진은 눈에 보이지 않고 후퇴는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거야. 

 

 물론 나도 감정이 무르녹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

 그러나 글을 쓴다는 일은 감동만 기다리다가는 너무 늦어지게 돼. 떠오른 영감은 지워지고 그곳에 일상의 잡사가 채워지게 되는게지. 어떤 면에선 습관처럼 쓰는 것이 필요해.

 매일 매일 정해놓고 자꾸 쓰는거야. 그리고 좋은 영감이 떠오를 때면 더 좋고 그러다 보면 좋은 글도 써지지.

 떠오른 영감을 읽어 내고 정확히 표현하는데 무조건적인 연습이 필요해.

 매일 만나는 사람이 매일 할말이 있듯이 글도 쓰는 이가 자꾸 쓸거리가 있고 감동도 받은 사람이 받는거지.

 

 한번 건너 뛰면 두번, 두번이 세번 되고 ......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아.

 이번에 신춘 문예 응모하려고 해.

 매년 되거나 말거나 항상 어느 곳엔가는 응모를 했었는데 올해는 준비를 좀 일찍 하려고 해.

  조금 긴 시를 아니 정확하게 하면 이야기가 담긴 시를 응모해 보려고.

 이야기가 길어도 읽는데 지루하지만 않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되었던 쓴 시를 보낼 테니까 읽고 되도록 혹독한 비평을 원해.

 그래야 내가 좀더 열심을 내서 할테니까.

 그런데 사실은 이 시들은 솔직히 말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어.

 지금 이순간 으로선 말이지.

 그래도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 좀더 기분이 좋아지겠지.

 희망은 우리 모두의 원동력이니까.

 

 누군가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알아 주고 인정해 주고 그리고 서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 같아.

 

 모든 위대한 이의 곁에는 그를 격려 해 주고 용기와 열심을 내도록 하는 협조자가 있었지. 그렇다고 내가 위대하기까지 하려고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걱정 말고.

 

 항상 건강하고 그리고 집안에 가호와 사랑이 언제나처럼 가득가득 넘치길 빌면서 두서없는 글 여기에서 마칠께.

 그냥그냥 쉽게 쓴 편지라서 말이 앞뒤가 안맞기도 그리고 혹 예의에 어긋나고 그리고 불편한 것이 있을지라도 용서하우.

 안녕.

                                  1996년 10월 2일 울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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