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칼럼/국내여행

외갓집을 찾아서 ~ 옥천군 마암리 상정말

by 영숙이 2021. 3. 15.
728x90
반응형

 

 

 

 

<외갓집을 찾아서 ~ 옥천군 마암리 상정말>

 

 공모주 청약하느라 정신없이 수요일을 보내고 목요일 아침 친정 엄마 만나러 갔다.

 부슬부슬 봄비가 왔다.

 늦어서 여동생한테 한소리 듣고,

 어렸을 때 자랐던 옥천(옥천에 있는 삼양초등학교를 초등학교 1,2,3,4학년을 다녔으며 옥천여중을 졸업하였다.)에 있는 돼지찌게 집에 김치 돼지찌게를 먹으러 갔다.

 

 가는 동안 비가 그쳐서 봄 햇볕에 눈이 부시다.

 김치찌게는 국물이 시원하였고 돼지고기도 생고기인지 달큰하고 맛이 있었다.

 앞에 있는 2살 아래의 남동생은 머리카락이 별로 없는 머리에서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돌솥밥 2개를 먹었고 우리도 남김없이 갓지은 돌솥밥을 맛있게 싹싹 비웠다. 

 작은 양은 돌솥에 눌러 붙은 누룽지에 끓는 물을 부어서 마지막 숭늉까지 디저트로 먹었다. 

 역쉬 한국식 디저트인 누룽지 끓인 물을 먹어야 밥을 제대로 먹은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야 소화가 되는 느낌이 든다.

 

 여동생네 닥스훈트 소미는 짧은 다리와 긴 허리로 종종 거리며 잘도 돌아 다닌다.

 따스한 봄 햇볕에 소미가 여기 저기 요리 조리 돌아 다니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평화가 느껴진다.

 

 점심을 먹고 외갓집으로 갔다.

 옥천군 마암리 상정말.

 외갓집은 오래전에 이미 기와 집에서 빨간 벽돌 양옥집으로 새로 지었었다.

 예전에 논이었던 곳으로 도로를 내어 집의 방향이 논쪽으로 바뀌었다.

 마을은 조용했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도 없고 지나다니는 어른들도 없고 골목마다 사람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에서 내려 걸어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마을회관은 경로당으로 바뀌고 외갓집 맞은 편 골목은 차가 들어 갈 정도로 넓혀서 집들을 새로 지었다.

 대문 앞 모두의 마당에는 승용차들이 세워져있었다.

 마을에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자동차들은 집집마다 보였다.

 

  외갓집 앞 집만 집의 형태가 그대로 있고 나머지 집들은 전부 새로운 형태로 지은 집들이었다.

 예전에 네모 반듯하던 마을회관도 경로당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양옥집으로 바뀌었고 마을 회관 뒷쪽으로 있었던 주인없던 무덤에는 근사한 집을 지어서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

 집과 집을 연결하는 통로를 투명한 파아란 비가리개로 만들어서 사람이 쉴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우리만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적 논과 밭을 배경으로 했던 마을도 신식으로 전부 바뀐 것이다.

 마을회관 뒷쪽으로 있었던 길은 그대로였다.

 저렇게 작고 좁고 짧은 길이었을까? 

 어렸을 때 기억하던 그 길은 제법 길고 넓고 깨끗했던 뽀오얀 흙길이었다.

 마을회관 마당도 제법 넓다고 생각했는데 그 앞에 천정이 높은 아치형 지붕을 만들어서 그 아래서 이야기도 하고 쉴수도 있게 만들었는데도 작아 보인다.

 

 "아, 내가 어른이 되어서 크기가 달라져 보이는구나."

 

 경로당 뒷쪽 길로 끝까지 가보았다.

 예전에 넓직한 타작마당이 있었던 곳은 보이지 않고 그자리는 밭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지 그렇게 높은 곳에 있어 보였던 집들이 낡아서 허름하게 보이고 새로 지은 분홍색 벽돌 기와로 지은 양옥집 마당에는 모르는 분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 오래 사셨어요?"

 "오래 살았지. 마당에 돌을 깔아 놨더니 빗자루로 쓸어 낼 수가 없어 돌사이에 쓰레기를 이렇게 장갑끼고 골라내어야 해."

 

 다시 골목을 내려와서 정숙이네 집으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길이 그대로였는데 이렇게 좁고 짧았었나? 

 정숙이네 집도 다시 지었다.

 대문 위치도 그대로이고 집 방향도 그대로이다.

 흙으로 만든 기와집을 벽돌과 시멘트로 양옥 형태로 지었다.

 

 조금 올라간 맞은 편 집은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어서 집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포도밭이었던 곳은 포도나무가 없었고 밭이 되어서 아직 이른 봄이라서 그런지 말라붙은 노오랗고 짧은 풀들이 가득 자리잡고 있다.

 그 밭이 끝나는 곳에 있던 외딴집이 영숙이 또래였던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매끄럽게 보이던 바지런한 옥자네 집이다.

 

 '가볼까?'

 

 건너다 보면서 생각하다가 머뭇머뭇.
 외딴집까지 가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섰다. 영숙이의 추억은 이제 추억일 뿐이다.
 추억 속에 포도 밭은 아직도 초록색 포도 열매가 가득 열려 있었지만 현실은 그냥 메마른 밭일 뿐이었다..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패랭이 꽃이 피어 있던 논둑과 밭둑을 어린 송아지를 지개에 지고 걸어가던 외할아버지가 가던 길을 따라갔다.

 까만색깔의 껍데기 속에 하얀 가루가 있었던 '말'을 캐던 연못을 가려면 초등학교 1,2학년 때의 영숙이는 한참을 밭사이 길과 논사이 길을 걸어가야 했었다.

 자동차로 훅 1분.

 도착.

 

 연못이 작아 졌는지,

 내가 커졌는지,

 연못 반쯤은 물을 담고 반쯤은 논을 만들었는지

 정말 작아 보였다.

 

 연못 바로 옆에 있는 집들은 보이지 않는다.

 연못에서 '말'을 캐다가 그곳이 간질간질하여 손가락을 넣었더니 거머리가 피와 함께 꺼내졌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바로 옆에 있는 싸리나무로 울타리를 한 집 마당에 있는 우물에 가서 진흙 투성이 발을 씻고 손을 씻었었다.

 

 연못이 끝나는 곳에 있던 외딴 집에는 여자가 혼자 살고 있었다고 했다.

 마을에서 남자가 집안으로 들어 가면 도끼를 들고 나와서 휘두르는 무서운 여자가 살고 있다고 했었다.

 거기는 혼자 사는 무서운 여자가 있는 먼 곳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가까운가?

 

 다시 상정말로 내려와서 외갓집을 기웃기웃 했지만 사람이 있는 거 같지는 않았다.

 외갓집 아래 집 낮은 담 위로 마당을 들여다 보니 70대 노인 한분이 이러저러한 잡동사니들을 들여다 보면서 서성인다. 

 선풍기 틀도 있고 딱보아도 물건이 될 것 같지 않은 잡동사니들이 죽 일렬로 늘어서 있다. . 

 

 다시 차로 돌아와서 외갓집을 바라보니까 수돗가에서 외숙모가 뭔가를 씻고 있는게 보였다.

 외숙모도 이제 나이가 70이 넘었을 것이다.

 영숙이가 초등학교 1학년 일 때 그때도 키가 컸던 외삼촌이 6학년 이었으니까 나이 차이가 6살쯤 났었다.

 외삼촌은 71살이고 한살 차이였으니까 외숙모도 70이다.

 여전히 빠글빠글한 노오란 해바라기 머리에 화가 난 것 처럼 물소리를 촥촥 내면서 씻는다.

 

 들여다보면서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85세이신 친정 엄마가 들어가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친정 엄마에게 무엇을 하시라고 권하기에는 좀 그렇다.

 함께 간 동생들에게는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정말 낯선 동네니까 더 말할 것도 없다.

 

 경로당 앞에 있는 논과 논 사이 넓은 도로를 자동차로 달려갔다.

 

 어렸을 적에 그 길은 어딘가 모르는 낮선 곳으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그 길은 너무 멀게 느껴졌고 아슴하게 보이는 웃말은 어린 영숙이에게는 너무도 멀어서 가보고 싶었지만 가볼 수 없는 그런 동네였다.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지.' 

 

 이제 이렇게 환갑이 넘어서 가보게 되었다.

 

 상정말은 제법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였고, 웃말은 너무 멀어서 산 밑에 자리 잡은 두어개의 집들이 안개나 저녁 연기에 아슴아슴하게 보였었던 곳이다.

 언젠인가 한번 가보았었나?

 무언가 굉장한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외딴 집 한채가 산 밑에 있었고 뚝 떨어진 곳에 또 한채 있었던 것도 같다.

 상상 속에서 생각했던 굉장한 곳은 아니고 평범한 풍경이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마을에 나이 많은 노인이 돌아가셨을 때 화려한 깃발을 앞장 세운 울긋불긋한 상여가 논 한가운데로 난 그 길을 따라갔었다.

 어깨에 상여를 맨 상여꾼들 맨 앞에서 요령소리를 흔들며 부르는 노래에 상여꾼들이 장단을 맞추어 구성지게 후렴구를 따라 했었다.

 돌아오지 못할 이를 보내던 상여가 가는 길이었었다.

 

 웃말 뒷편으로는 높고 깊은 산이 있었다.

 그 산을 넘으면 영숙이가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면서 이사를 갔었던 군서면이 나온다.

 5학년과 6학년을 군서초등학교를 다녔다.

 

 자동차로 슈웅 ~

 도착한 그곳에는 잘 지은 별장같은 집이 있었고 두어 사람이 농사 준비를 하고 있는게 보였다.

 

 한바퀴 휘익 ~   

 

 연초 제조창 옆으로 있었던 길은 없어지고 예전에 논둑길로 다니던 논 가운데에 도로를 내어서 자동차로 쉬잉 ~ 5분이면 철로를 건너서 옥천 시내 큰길로 나선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이 아기 진달레. ~ 울긋 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728x90
반응형

'여행 칼럼 >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박1. ~ 행복한 출발  (0) 2021.04.26
큰집을 찾아서 ~ 충북 양산면 누교리  (3) 2021.03.16
해월당 ~ 카페 이야기  (3) 2021.03.13
여행 - 통일 전망대  (1) 2021.03.06
슬도 바닷가 길  (18) 2021.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