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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칼럼/국내여행

큰집을 찾아서 ~ 충북 양산면 누교리

by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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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을 찾아서 ~ 충북 양산면 누교리>

 

 외갓집 동네인 옥천군 마암리 상정말을 다녀와서 이원으로 갔다.

 

 이원에 있는 장찬저수지를 가서 한바퀴 둘러보고 카페에 가서 카페라떼와 아메리카노 그리고 엄마에게는 대추차를 시켜 드렸다.

 넓은 저수지 주변에는 새로 지은 집을 포함해서 3채의 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계속 살고 있는지 아니면 별장처럼 주말에나 들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갔었던 카페는 위층에서 살림을 살고 있었다. 

 저수지 모양이 고래 모양이라고 한다.

 이원 읍내로 가니 이제 봄철이 되어서인지 팔기 위한 묘목 준비들이 대단했고 아직은 이른 3월 초의 봄이었지만 벌써 묘목을 사기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나무마다 뿌리를 흙으로 감싸서 동그랗게 묶어 놓았다.

 삼거리에 있는 지붕달린 아치형 터널은 없어져 있었다.

 동생들도 기억하는 거보니 상당히 오랫동안 있었던 구조물인가부다.

 그곳에서 버스를 내리고 타고 했던 기억이 난다.

 

 옥천에서 버스를 타고 오면 이원까지 밖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버스를 내려양산 큰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십리길.

 어린 초등학생들에게는 멀고 먼 길이었다.

 멀고 먼 길을 걸으면서도 즐거웠다.

 어디를 간다는게 즐거웠고, 낯선 곳이 즐거웠다.

 

 버스 정류장을 벗어 나면 양산쪽으로 난 포장 안된 도로를 오랫동안 걸어야 했다.

 초등학교가 있고 초등학교 담옆에 도로를 따라가는데 도로 맞은 편에는 밭가운데 잘지은 뾰족한 빨간 지붕의 외딴 양옥집이 한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저렇게 예쁘고 좋은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면서 바라 보았던 생각이 난다.

 자동차로 지나가면서 보니까 언제 심었던 나무들인지 도로를 따라서 고목이 다되어 가는 벚꽃나무가 양쪽으로 주욱 심겨져 있다.

 도로 옆 밭에는 각종 묘목들이 심겨져 있었다.

 전국에서 아주 유명한 묘목 단지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묘목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고 또 봄철에 여는 묘목 축제가 유명하고 하였다.

 

 "5월에 벚꽃이 피면 다시 한번 와보자구. 이 길이 진짜 이쁘거든." 

 양산면으로 가다 보니까 커다란 개심 저수지가 나온다.

 초등학교 다닐때 부터 있었던 저수지니까 진짜 오래된 70년된 저수지이다.

 지금도 저수지가 제법 크게 느껴지니까 그때에는 정말 큰 저수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쪽 도로에서 저쪽 산밑까지의 거리가 한참이나 멀리 보이는 곳이다.

 

 도로를 따라 물이 유입되는 곳 쪽으로 잘 지은 산장 같은 집이 한채  있다.

 그리고 그 앞쪽 저수지에 바짝 붙여서 작으마하지만 아담한 버섯 모양의 집이 있다.

 여동생이 이야기 해준다.

 

 "예전에는 저기에 사람이 살고 있었어.

 차도 팔고 장사도 했었어. 

 언제부터 빈집처럼 보이는데 사람이 안사는 거 같아."

 "누군가 집을 지어서 살다가 도시로 나갔던지, 돌아가셨던지 해서 저기서 살 사람이 없는가부다. 그래서 비어 있는가 보네."

 

 엄청나게 큰 연못을 걷고 또 걷고 물이 유입되는 곳에 도착하면 이제 큰집에 가까이 온 것처럼 생각되었었다.

 

 자동차는 쉬잉 ~

 

  '집이 비어있어. 아무도 안사나봐.'

 

  몇마디 끝나기도 전에 쉬잉 ~

 

  큰 집 아래 동네에 도착.

  도로가로 집들이 서너채 새로 지어져 있다.

 

  '여기서 리어카 길로 올라가야한다. 아니다. 저쪽 산에 있는 길로 가야한다.'

 

 남동생이 산쪽에 있는 길로 가는 것을 ~ 그길로 가면 안된다고 있는 목청껏 목청껏 ~ 큰소리로 정말 큰 소리로 ~ 동생 이름을 부르던 곳이다.

 마침 밭에서 일을 하던 큰집 식구들이 보고 산길인 이쪽으로 가도 된다고 불렀고 그쪽 산속 대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서 큰 집으로 갔었다.

 영숙이는그때 처음 가본 길이었다.

 

 자동차가 들어가려는데 한국전력공사에서 길을 따라 전봇대를 세우고 전에 있던 전봇대를 뽑고 있었다.

 일을 마칠때까지 기다렸다.

 몇 사람 안사는 이동네에도 이렇게 전기가 전부 들어오도록 전봇대까지 세우고 전기를 설치를 해준다.

 시멘트로 만든 커다랗고 길쭉한 전봇대를 커다란 트럭에 있는 기계로 쑤욱 뽑아내서 트럭에 싣는다.

 벌써 많은 전봇대들을 뽑았는지 트럭에 제법 실려 있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올라가는 길에 있는 비어 있는 촌집을 보고 친정엄마가 설명을 해주신다.

 

 "저 집이 부잣집이였어. 애가 없어서 딸 하나를 입양했는데 그 딸이 도로 쪽에 집을 잘 지어서 살고 있지."

 "이쪽 외딴집도 다시 지었네."

 

 큰집.

 아무도 없는 빈집.

 

 그 많던 8남매는 다 어디로 갔을까?

 

 성석이, 길석이, 범석이, 삼석이, 교석이. 준석이. 쌍둥이 등등

 

 모두들 결혼 하였다.

 삼석이만 창원에 있는 공장에 취직 되어서 멀리 살고 있다고 했는데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억하는데 삼석이는 큰 집 형제들 중에서 행동도 빠릿빠릿해 보이고 머리가 좋아 보였었다.

 아마도 그래서 결혼을 안했는지도 모른다.

 결혼에 대해서 주판을 튕기느라고.

 

 얼마전까지도 작은 큰아버지네 옥란이 언니가 살았었다고 했다.

 옥란이 언니도 이제 70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이 깨끗했다. 

 그래도 사람이 살지 않아서 인지 부엌이니 뒷뜰이니 작은 방이 무너져 있었다.

 큰 방은 열어 보지 않았다.

 

 뒷뜰에 툇마루가 정말 작아 보인다.

 저렇게 작아 보이지는 않았었는데, 툇마루로 해서 들어가는 사랑채도 작아 보인다.

 

 '저렇게 작은 문으로 들락거렸었구나.'

 

 뒷뜰에 우물물은 양철판데기로 덮여 있었다.

 슬쩍 들여다 보니까 아직도 우물이  깊다.

 옆에 돌절구도 나무 판자로 덮여있다.

 고염을 한단지씩 내주던 고염나무는 커다란 고목이 되어서 담을 지키고 있었다.

 사랑방에서 작은 봉창문으로 바라보면 바람에 일렁이던 오동나무의 큰 잎새들이 지금은 다 떨어져서 빈가지만 허공을 가로질러 있다.

 

 화장실 가려면 사촌들이 겁을 주고는 했었다.

 

 "화장실 갈 때 조심해야 혀. 오동나무 잎사귀들이 너 잡아 가려고 떨어져 내려."

 

 무서워서 혼자 못가고 참다가 누군가를 화장실 밖에 세워놓고 다녀왔었다.

 아직도 그 오동나무는 그 자리에 예전에 그 크기로 서 있다.

 호두열매를 한가마씩 땄었던 집앞 담가까이 아름드리 고목으로 있던 호두나무는 베어냈다고 했었다.

 

 친정엄마가 니은 자로 비교적 최근에 지은 듯한 새로 지은 샷시 방문을 열어 본다.

 그쪽 뒷쪽으로 나막신이 있었던 닭장 같은 것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뒷쪽으로 돌아 가 보았다.

 여전히 뒷쪽 공간에 처마 아래로 도톰하니 시멘트 뜰이 나 있었지만 작디 작고 짧은 그곳에 무엇이 있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 저 좁은 길로 잘도 돌아다닌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뒷집 군수네 집은 너무 오랫동안 비어 있어 흙집에 흙들이 바스라져 보인다.

 명절에 큰 집에 왔을 때 소고기 같은 것을 뒷집 군수네 집에 가져다 드리라고 심부름을 가면 나무 대문이 정말 커보였다.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잘닦여진 마루 한 가운데에 머리가 하얗고 풍채가 좋은 군수 할아버지가 곰방대를 물고 양반다리로 꼬고 앉아서 영숙이를 바라 보았었다.

 열려진 방문 너머로 방도 잘 정돈이 되어 있고 좋아 보였었다.

 

 아가씨 때 미국으로 이민 가고 싶어서 군수 할아버지를 찾아와서 이민에 대해 물어 본다고 미국에 의사로 가 있는 아드님 주소를 받아 갔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이민은 포기 했었다.

 얻어온 주소지의 아드님한테도 편지를 보내보지 못했다.

 이민 대신 사우디 간호사로 지원한 적도 있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다.

 현장 경험이 없다는 이유였다. 

 

 지금 바라보는 그 커다란 나무 대문은 기우뚱하게 기울어서 닫힌둥 만둥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다.

 부엌과 방문은 잠겨 있지만 오랜세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서 인지 뿌연 먼지속에 금새 사그라져 없어질 것 처럼 보인다.

 

 떠나지는 못했지만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었나 부다. 

 

 누군가가 왔다고 동네에 있는 개들이 일제히 시끄럽게 짖는다.

 군수네 뒷집과 큰 집 옆집 이렇게 해서 누교리 서씨네 일가가 사는 집성촌 마을은 전부 5가구 였었다.

 모두들 마을을 떠났고 군수네 뒷집에 장사 간판은 달려 있지만 장사는 하지 않는 집에 대원이 동생이라는 분이 한분 살고 계셨다. 

 아직 50대 인듯한 그분은 심심하니까 바람개비를 여러개 세워 놓았고 개들을 여러마리 키우고 있어서 그렇게나 짖어 대었던 것이다.

 

 그 집은 사람 냄새가 났다.

 이상하게 사람이 안 살면 집도 사람냄새가 안난다. 

 어디가 휑하니 비어 보이고 먼지가 쌓여 있고 고적한 정적과 적막이 흐른다.   그집은 사람 냄새가 났다.

 이리 저리 손을 보아서 방문도, 뜰도, 마당도 깨끗하였다.

 

 큰 집 옆으로 돌아가니 커다란 탱자나무가 한그루 남아 있고 가지에 아직도 탱자를 몇개 달고 있다.

 큰 집 옆집 울타리는 탱자나무 울타리였었다.

 탱자가시와 탱자가 달려 있는 울타리.

 그집 마당  한 옆에는 잔파도 심겨져 있고 씨를 뿌리려고 흙고랑을 만들어 놓았다.

 

 대전에 사니까 가끔씩 찾아 와서 마당에 파, 양파, 마늘 같은 것을 심어서 가꾸고 가는가 보다.

 탱자나무 뒷쪽으로는 대나무 숲이다.

 빡빡한 대나무 숲이었는데 지금은 대나무 잎새들이 전부 노랗게 말라서 마치 숱이 적은 노랑 머리가 날리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렇게 크지 않은 대나무 숲길이다.

 

 그토록이나 울창하게 느껴지고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이 바람결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별나게 느껴지던 길이었었다.

 푸르른 대나무들이 호위병처럼 서 있고 그 사이를 걸어가면 대나무들이 바람결을 의지하여 말을 걸어 오는 것 같았었다.

 그러면 영숙이는 푸르른 숲속으로 여행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었다.

 

 저렇게 대나무가 빈약하게 있었나?

 

 사이즈 차이가 머리 속에 있는 것과 현실이 너무 차이가 난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과 실제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요즘 많이 체험하는 중이다.

 

 엄마는 대원이 아저씨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꽤 오래 나누셨다.

 

 때가 되었으니 이제 저녁 먹으러 가야겠다.

 놀러 다녀도 때가 되면 먹어야 하고, 일을 해도 때가 되면 먹어야 하고, 가만히 있어도 때가 되면 먹어야 한다.

 

 먹는 일이 인생사에 일이다.

 

 먹기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오늘은 놀기위해 먹어야 한다. 아니면 먹기위해 놀고 있는걸까?

 

 오늘의 추억 따라가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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