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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life of JINNSSAM

설왕설래

by 영숙이 2021.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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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오랫만에 친정에 왔다.

 코로나 때문에 자주 오지는 못했지만 이래도 저래도 만나는 것도 좋고, 또 필요한 것도 사드리고 마음껏 아무소리나 막 떠드는 것도 좋다.

 

 예전에는 떠드는게 버거웠다.

 하루에 4 ~5 시간씩 떠들다보면 집에 오면 TV 소리도 듣기 싫고 심지어는 세수하는 것도 싫어서 그냥 잠이 들고는 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친정에 오면 아무말이나 막해도 타박할 사람도 없고 들어주니까 마구 떠들어서 친청 엄마가

 

 '우째 이리 말이 많노'

 

 하고 타박을 주고는 하였다.

 이렇게 넓은 세상이라도 마음껏 떠들 곳이 없다.

 마음 놓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될 사람이 없다.

 그냥 교회가서 소리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한다.

 

 제부가 모는 차 뒤에 친정엄마, 여동생, 영숙이 이렇게 3명이 앉아서 정말 속시원히 떠들고 깔깔깔 웃었다.

 

 저녁은 묵밥과, 묵수제비, 묵야채무침, 골패묵, 묵부치개 이렇게 고루고루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묵으로 된 요리가 배도 부르면서 좀 늦은 저녁에 먹었는데도 부담이 없었다. 

 

 예전에 묵 요리는 먹을게 없어서 양식 대체제로 먹었으니 싫은 음식이었겠지만 지금은 살이 쪄서 병이 나는 현대인들에게 별미요. 건강식이고, 추억의 맛이면서 얼마든지 먹어도 부담이 안되는 좋은 음식이다.

 

 큰 그릇에 나오는 것을 작은 그릇에 떠서 나누어 먹고는 그 자리에 앉아서 묵집에 양념이 너무 맛있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맛있느냐고 칭찬을 하면서 양념 간장 위에 떠있는 부추를 건져 먹었다.

 

  "그렇게 먹으면 짜."

 

 그렇게 말하던 여동생도 한번 맛보더니 테이블 위에 있는 간장을 끌어당겨서 간장 위에 떠있는 부추를 모조리 건져 먹었다.

 집간장인데도 짜지 않은 것을 보면 집간장에 다른 육수를 섞은 듯 하고 특히 끝맛에 참기를 냄새가 고소하니 입안에 오래도록 향미가 남는다.

 결국 여동생은 묵을 집에 사간다고 하나 주문해서 묵에 간장이 딸려 있는데도  테이블에 남은 간장에 삭힌 고추를 작게 썬 것까지 전부 넣어서 알뜰살뜰 챙겨서 일어났다.

 

 그렇게 차를 타고 군서면에 있는 어렸을 때 살던 동네를 찾아갔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서 봐도 잘모를정도인데 이야기는 그동네에 살던 시절로 흘러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친정아버지가 산 하나를 사서 개간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무상으로 부쳐먹던 것을 친정아버지가 사는 바람에 못부쳐먹게 되어서 동네 사람들이 싫어 했었다고 친정어머니가 어눌한 85세의 어조로 말씀하신다.

 

 여동생은 여동생의 시선으로 보았던 그때 그 시절을 이야기 했고,

 영숙이는 영숙이의 시선으로 보았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서

 사양리로 가는 다리가 있었다느니 없었다느니 설왕설래하기 시작하였다.

 

 친정엄마도 다리가 없었다는데, 영숙이는 다리 입구에 도착하면 사양리 사는 머스마들이

 

  "끼리끼리 한쌍"

 

 이라고 놀렸었다고 말해서 다리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다가 성당 사택에 살 때에 엄마가 야단쳤다고 영숙이가 도그통에 쌀을

찧을때 쓰는 홍두께를 들고 여닫이 창호지 문을 콱 부시고 도망간 이야기를 꺼냈다.

 

 어려서부터 '우길성'있는 여자라서 말은 참 지독히도 안들었다.

 시키는 걸 들어봐서 타당하다 싶으면 듣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엄마가 이야기하는 것이라도 그자리에서 당당하게

 

 "싫어"

 

 소리를 했었다.

 여동생이 놀라면서

 

 "언니는 그랬어? 나는 한번도 그래 본적이 없었어. 원래 언니가 독기가 있었어."

 "그래, 맞아." 

 "지독히도 말도 안들었지"
 "호호호. 하하하."

 

 친정 아버지에 대한 추억도 떠올렸다.

 

 "아버지"

 

 전형적인 그때 그 시절의 아버지셨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하고 옥천에 살 때 눈앞으로 지나가면서 중학생이던 영숙이를 모른척하고 지나갔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머리 한번 쓰다듬어 줄법도 한데, 아니면 '여기서 놀고 있네.' 하고 아는척도 할법했는데, 무심히 지나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분이셨다고,

 그토록이나 출장을 다니고 각지 맛집에서 그리 맛있는 것을 드셨으면서도 평생 자식들을 위해 집에 사탕 한알 사온적 없고, 붕어빵 한개 손에 들고 오신 적이 없으셨다고.

 

 보건소에 잠시 임시직으로 근무하기 위해 갈 때, 아버지가 데리고 가셨었는데 매점에서 버스표를 사면서 브라보콘을 꺼내서 혼자서 먹으셨던 아버지.

 영숙이가 놀라서 쳐다 보니까 그제서야 '너도 먹을래?'

 

 그래도 처음 교사로 학교에 인사하러 갈 때 학교까지 따라와 교감선생님에게 인사하고 잘부탁한다면서 '돈봉투'를 드렸다고 한다.

 교감 선생님은 그런 일이 처음이라서 무척 당황했다면서 같은과 샘들하고 회식하라고 하면서 아버지에게 받은 '돈봉투'를 주셨다.

 

 막내아들로 할머니가 오냐오냐하면서 아버지를 받들어 키우셨고 형님들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서 팔아 막내 하나를 가르쳤으니까 자식을 위하는 게 어떤 건지도 잘 몰랐을 법하다.

 배우고 본 것이 없으셨을테니 이기적이실 수 밖에

 

 이야기는 친정엄마의 춤바람으로 이어졌다.

 엄마 나이 그때 37살.

  한참 예쁠 때 아이들은 다 컸고 아버지는 관심업고 젊음 엄마는 새로사귄 첩실이었던 아줌마를 따라 중앙나이트에 춤추러 다니셨다.

 

 엄마가 한복을 곱게 입으면 영숙이가 보기에도 이뻤다.

 

 "엄마 어디가?"
 "응. 경호 엄마랑 놀러가."

 "어디로 놀러 가는데? 왜 한복을 입고 놀려가?"

 

 동생 중에 누군가가 엄마가 낮에 축음기를 틀어놓고 큰방에서 남녀 몇사람이 모여 춤을 춘다는 이야기를 했다.

 영숙이는 아버지는 자식들한테 관심도 없고 엄마마져 춤바람 나서 집이라도 나가면 우리 5남매는 

 

 "낙동강 오리알" 이요 "끈 떨어진 연"

 

 신세였다.

 몇일 궁리하다가 아버지한테 일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엄마 밤마다 한복 입고 경호 엄마랑 춤추러 다녀요"

 "낮에는 큰방에 모여서 축음기 틀어놓고 춤춘대요."

 

 아버지는 군청에 가신다 하고는 숨어있다가 춤추는 현장에 들이닥쳤다.

 영숙이는 전날 일렀으니까 분명 월요일에는 사단이 나리라는 것을 알았고 담임 선생님한테 몸이 안좋다고 하고서 야간자습을 빼먹고 오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에 왔었다.

 방문 앞에서 들어보니까 아버지가 엄마를 닥달하고 있었다.

 

 "이혼하자. 이혼하자."

 

 작은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있었다.

 그렇게도 무섭게 쥐잡듯 닥달하던 아버지는 다음 날 출근하셨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엄마는 다시 집에 들어앉아 살림만 하다가 집에서 축구공을 꼬매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다.

 

 그때 깨달았다고 부부의 일은 부부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의 사랑과 인격적인 대우를 못받았던 엄마는 항상 우울한 얼굴로 웃음기가 없었고,

 아버지의 바람기 때문에 야매로 이쁜이 수술까지 하셨다.

 

 엄마는 발에 밧줄을 맨체 말뚝에 묶여 있는 커다란 코끼리 같았다.

 18살에 시집와서 이기적이고 마음대로 하는 아버지한테 길들여진 코끼리.

 아버지한테 반항할 줄도 모르고 아버지한테 "안돼" 소리를 할줄도 모르고 아버지 시키는 대로 하신 분이다.

 그 시절에 대부분의 어머니들처럼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분이셨고 나중에 경제적 여유가 생겼어도 어떻게 쓸줄 모르시는 무조건 아끼는 분이시다.

 

 영숙이는 아버지한테 이렇게 반항했어요.

 ㅎㅎㅎ   

 

 영숙이가 중년이 되었을 때,

 엄마가 아버지한테 시달림 받고 힘들어 하는 걸 보고,

 엄마한테 아버지보다 체격도 커다란데 아버지가 술마시고 땡깡치고 못되게 굴면 한번만 올라타고 한대만 때려 주면 물론 아버지가 처음에는 펄펄 뛰겠지만 그 다음부턴 엄마가 째려보면 꼼짝 못할 아버지인데

 

 "엄마, 아버지가 그렇게 못되게 굴고 땡깡치고 난리를 치면 한번 때려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조용했을텐데, 술주정도 안하고, 엄마가 힘도 훨씬 센데 왜 맨날 당하고 살아. 속상하게. "

 "난 못하겠더라. 안되더라고. 보고 자란게 그런거만 봐서 그런지."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천둥같은 목소리로 외할머니를 야단치시는 것만 보고 자랐으니까 배운게 없기는 할 것이다.

 영숙이는 보고 배워서 반항했을까?

 타고 난 반골기질?

 

 아버지가 영동에서 하숙하시면서 여자를 들였을 때 엄마가 찾아가서 난리를 쳤고 아버지는 살림을 택시에 싣고 집에 오셨다.

 일주일 내내 두분은 싸우셨고 싸울 때 남동생이 울면서 말렸다.

 영숙이는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문간방에서 공부를 했다.

 남동생이 말했다.

 

 "엄마, 아버지가 이혼한다면서 저렇게 싸우는데 누나는 공부가 돼? 누나는 냉혈한이야."

 "흥분하지말고 너 할일이나 해. 싸움 말린다고 말려져? 냅두면 조용해져."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조용해졌었다.

 싸움이야기를 하면서 낄낄낄.

 대전여고에 과외도 안하고 합격한 여동생이 진짜 머리 좋은 아이라서 대전여고 다니는게 부러웠다고 하하하

 

 지독하게 공부안해서 대전여고에서 최저 충남대학을 갔는데 교육대학을 보낼걸 그랬으면 지금도 초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었을텐데.

 대학만 나오면 무조건 취직을 하는 줄 알고 여동생이 집안에서 처음으로 정식 대학을 가는게 좋아서 충남 대학 가라고 했던 걸 후회한다고 엄마가 말씀 하셨다.

 

 "잘만 살고 있구만, 캠퍼스 커플로 만나서 지금도 돈 잘벌고 있는 남자랑 잘먹고 잘살고 있구만. 호호호"

 "마져. 마져. 성실하고, 자기 관리 잘하고, 성실하게 직장생활 잘하고, 속안썩이고, 그럼 됐지 뭘 바래? 하하하"

 "그려, 그려, 내가 사위들은 다 잘봤지."

 

 그렇게 4년동안 살았던 시골을 한바퀴 돌고 우리의 살아온 이야기도 한바퀴 돌고,

 얼마나 웃었던지 그동안 가슴을 꽉 메웠던 쓸데없는 것들이 후욱하고 다 날라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는 형제자매들만 나눌 수 있는 설왕설래.

 

 시장을 봐드렸으니까 한달 후인 다음 달에 만날일에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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