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화씀. 전 화정실업고등학교 교사. 처용수필 제2호. 1996년 겨울 ) 연초에 시작하는 가계부 적기, 쓰윽 훑어 넘기면 내 가계부는 콩나물, 풋고추, 마늘, 대파 따위의 기본 반찬거리로부터 낙지, 쇠고기, 인삼들에 이르는 값비싼 항복들고 간혹 적혀 있다. 서너 달이면 벌써 가계부는 닳은 표지에 온갖 영수증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어 배가 불룩하다. 가계부를 적을 때 나는 가급적이면 생각나는 모든 항목을 옮겨 적는다. 시내 버스 요금에서 빨래집게 사고 남은 거스름돈까지, 간혹, 한 두 가지가 생각이 안나, 어디다 썼을까 한동안 고민하기도 한다. 그래도 생각이 안날 때 적은 돈이면 콩나물에 덧붙이고 제법 돈이 비면 쇠고기나 인삼을 한 근 더 산 걸로 적기도 한다. 책임 없는 행위긴 하지만 사소한 몇 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