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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지소24

< 홀로 선 버드나무 > 24. 탄생과 전매청 용인 아저씨가 간 밤에 무릎까지 빠지도록 쌓인 눈을 쓸고 있다. 선생님은 서울에서 아직 안 내려오셨고 영숙은 사무실 청소를 마치고 창문 앞에서 용인 아저씨가 눈 쓰는 것을 구경했다. 겨우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을 내었을 때 눈만 내놓고는 모자까지 푹 뒤집어쓴 사람이 면사무소 문을 지나 곧바로 보건지소를 향해 걸어왔다. " 어떻게 오셨어요? " " 저 여기 안양 있지요? " 보건지소 현관 앞에서 모자를 벗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아저씨를 보고 안양이 반가운 소리를 한다. " 아니, 웬일이세요?" " 안녕하세요? " " 그래, 신양은 잘 있어요? " " 아, 예, 실은 애기 났어요! " " 아기 낳았어요? 딸? 아들? " " 아들이에요! " " 아유 잘됐네요. 이제 아들 .. 2020. 1. 10.
< 홀로 선 버드나무 > 11. 윤선생님 윤선생님이 오셨다고 청산으로 모두들 점심 먹으러 나갔다. 청산면에서 음식점을 찾아 걷는데 뒤에 오는 일행들의 시선 중에서 유독 선생님의 시선이 영숙이의 줄 나간 스타킹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할 수만 있다면 땅 속으로 스며들든지, 아니면 어디에라도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 나간 스타킹이나 남의 시선 따위에는 무감각하던 영숙이가 갑자기 스타킹에 신경이 쓰이다니. 음식점을 알아 놓고 양품점에 가서 스타킹을 사서 갈아 신고 돌아와 보니 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음식점 뒤뜰에서 한가한 농담들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뒤뜰에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감나무에 매여 있었다. 영숙이가 아무 생각 없이 나무 곁으로 다가섰더니 개가 짖으면서 달려드는 바람에 어찌나 놀랐는지 높은 소프라노로.. 2019. 12. 28.
< 홀로선 버드나무> 3. 첫날 늦은 아침을 먹고 여전히 지각하는 집 앞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남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와 동생들로부터 교회 갔다 왔느냐는 질문을 받고, 오후에 잠깐 성모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 선아를 만나서 시내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집으로 걸어왔다. 이즈음에 읽는 선아의 책은 계간으로 나오는 미술잡지였다. 만나서는 옷가게를 뒤진다든지 아니면 선아의 남자 친구라든지 또는 주변에 있는 동창들 이야기를 꺼내는, 잡다한 일상사를 가끔가끔 만나서 나누는 대학 때 절친이다. 지난해부터 선아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는 바람에 이야기 도중에 화제의 한계가 생기거나 아니면 선아가 절제하는 언어의 벽에 부딪치고는 한다. 영숙이의 솔직성은 병적이어서 상대 편에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 참는다든지, 대화에 한계선을.. 2019. 12. 20.
< 홀로 선 버드나무 > 1. 시작 40년 동안 묵혀 두었던 것을 어제 낮에 드디어 꺼내었다. 지난달에 45년 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찾느라 친정에서 먼지 쌓인 책장들 사이에서 앨범을 꺼내 뒤졌던 것처럼 이번엔 농 속에 수북이 쌓아놨던 원고지들을 찾아내서 종류별로 분류 해 놓고 홀로 선 버드나무 원고들만 따로 모아봤다. 원고들을 배낭 가방에다 넣어서 의자 위에 올려놓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실제로 위가 아프기도 하고 두통도 생기고 으쓸으쓸 춥기도 하다. " 내가 할 수 있을까? " " 잠이나 자자! " 자고 나서도 컨디션이 좋아지지 않고 위축된 마음이 펴지지도 않고 일하기도 싫고 영화도 안 봐지고 다른 일거리 없나 보다가 며칠 전부터 미루어 놓았던 아주 얇은 소설책 " 중학교 1학년 -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을 읽기 시작하였다... 2019.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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