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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지소24

< 홀로 선 버드나무 > 37.로맨스 영숙이와 윤선생님은 보건지소 사무실 뒷문 쪽 창문 앞에 서서 퇴근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여름에 이 선생님이 상추를 심어 놓았었던 곳은 이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영숙이가 가을이 되면서 긴 머리를 잘랐던 것처럼, 저 화단의 풀과 시든 상추를 전부 뽑고 정리했던 것이다. 저녁 안개가 조용히 나래를 펴고 사무실 주위에 내려앉는다. 영숙이는 초록 원피스 주머니에 호두를 만지작 거린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옆얼굴을 올려다보니 묵묵히 창 밖을 보고 있다. 회색 양복에 같은 빛깔의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을 수가 없다. 영숙이도 말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나무 울타리에 마지막 남아 있던 따스한 햇살이 부서지고 회색 빛 저녁이 천천히 걸어오고 사방은 침묵 속에 잦아든다. 영숙이는 점점.. 2020. 1. 23.
< 홀로 선 버드나무 > 36. 연애 내일은 공휴일이다. 영숙이는 서울 가시는 선생님과 함께 퇴근했다. 대전 가려고 나선 길이다. 달빛이 어슴푸레하게 빛을 발하는 신비한 베일이 엷게 들판에 빛나고 있었다. " 제 이 고치는데 삼십만 원 달래요! " " 삼십만 원? 너무 많이 드는데? " " 죽으면 이빨만 남겠어요. " " 하. 하. " 웃음소리가 퍼지다가 멈춘 들판에서는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놀란 듯이 조용해졌다. 조금 있으니 다시 그들의 언어를 음악으로 주고받는다. 청산으로 나가는 차가 바로 있으려나 모르겠다. 청산으로 가는 차가 없고 마침 군북으로 돌아가는 시내버스가 있었다. 텅텅 빈 차 안에서 너무 자리가 많아 어떤 자리에 앉을까 망설였지만 영숙이는 선생님이 앉자는 대로 맨 앞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건너편 자리에 앉아 계셨다가 너.. 2020. 1. 22.
< 홀로 선 버드나무 > 35. 청자의 완성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올라가서 쌀 한주먹을 솥에다 올려놓은 후 방에 들어가서 책을 조금 읽다가 밥을 정말 맛있게 비록 반찬은 김치와 고추장과 참기름뿐이었지만, 먹은 후에 치우고는 마루 끝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쪼이면서 처마 끝에서 낙수가 떨어지는 것을, 연탄재가 부엌 옆에 나 앉아 있는 모양을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안방에서 누가 빠꼼이 문을 연다. " 희영이 아니니? " " 밖에 안 나갔었어? " " 예 재미없어서 들어왔어요! " " 영재는 어디 갔는데? " " 애들하고 초등학교에서 놀아요! " " 너 심심하겠다. " " 좀 심심해요. " 희영이와 마루 끝에 나란히 앉아서 닭 한 마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빈 헛간으로 가서 헤집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곳 처마에서도 낙수가 잊지 않고 있다는 듯이 떨.. 2020. 1. 21.
< 홀로 선 버드나무 > 28. 출산 면사무소의 박서기가 우리를 부르러 왔다. 부인이 아기를 낳으려 한다는 것이다. 곽 양과 영숙이는 출산을 도와줄 준비를 해서 박서기가 세 들어 사는 집으로 갔다. 점심때 윤선생님은 보고서 일로 군 보건소에 가셨다가 내일은 휴일이기 때문에 바로 서울로 올라가신다고 하셨다. 곽양은 익숙하게 무쇠 솥에 물을 가득 붓고 불을 때라고 주인집 할머니에게 이르고 방안에 있는 부인이 힘을 주기 쉽도록 이불을 내려서 부인 등 밑에 고여 주었다. 박서기에게 청산 산부인과 선생님을 모셔 오라고 하였더니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신작로를 달려 나갔다. 영숙은 부인 옆에서 부인 손을 잡고 있었고 곽양은 수건으로 부인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들을 닦아 주었다. " 아이구 배야. 아이고 배야. 어머니 나 죽어.. 2020.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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