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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선 버드나무15

< 홀로 선 버드나무 > 23. 눈이 주는 행복 창 밖으로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쌓였다. 면사무소로 사람들이 등을 바짝 조여 안은 체 종종걸음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가끔 시야를 잠식할 뿐. 모든 것은 반짝이는 색으로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눈이 그친 뒤의 그 고요함. 햇볕이 내리쬔 듯한 그 맑음.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곧 사그라져 버릴지라도 눈의 모습을, 진정함 그 참모습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눈의 예찬을 하다니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밟으면 뽀드득 소리 나는 저 눈처럼 내 마음은 반짝이지도 맑게 개어 있지도 아니하고 텅 비어 있을 뿐이다. 눈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눈 내리는 모습을 보고 내린 눈을 본다는 것은 쓸쓸하다고나 할까? 소슬하다고나 할까? 면사무소 벽 한 귀퉁이에 작은 햇.. 2020. 1. 9.
< 홀로 선 버드나무 > 19. 화해 보건소 차로 보건소 소장과 보건소 치료실 사람들. 곽 양하고 안양도 집에 간다면서 가버리고 보건지소에 윤선생님과 영숙이만 내려놓았다. 진료실 난롯불이 꺼져서 윤선생님은 가족계획실로 건너와서 유리창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영숙이는 난로 앞에 의자를 끌어당겨 놓고 구두와 핸드백을 콜드크림으로 닦기 시작했다. ㅡ 뭐라고 말을 한담.ㅡ 말을 꺼내려하니 막상 할 말이 없다. 묵묵히 구두를 닦으며 무슨 말을 꺼낼까 생각해 본다. 늦가을 비가 멈춘 창밖이 차츰 흐릿하게 회색으로 변하여 가고, 영숙이는 난로 불에 빨갛게 익은 얼굴을 하고 창 앞에 서있는 윤선생님의 완강한 뒷모습을 바라다본다. 창 밖에는 늦가을 바람 속에 버드나무의 긴 가지가 부드러운 머리카락처럼 흩날리고 있다. " 사실은ㅡ, 그 말 때문이 아.. 2020. 1. 5.
< 홀로선 버드나무> 3. 첫날 늦은 아침을 먹고 여전히 지각하는 집 앞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남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와 동생들로부터 교회 갔다 왔느냐는 질문을 받고, 오후에 잠깐 성모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 선아를 만나서 시내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집으로 걸어왔다. 이즈음에 읽는 선아의 책은 계간으로 나오는 미술잡지였다. 만나서는 옷가게를 뒤진다든지 아니면 선아의 남자 친구라든지 또는 주변에 있는 동창들 이야기를 꺼내는, 잡다한 일상사를 가끔가끔 만나서 나누는 대학 때 절친이다. 지난해부터 선아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는 바람에 이야기 도중에 화제의 한계가 생기거나 아니면 선아가 절제하는 언어의 벽에 부딪치고는 한다. 영숙이의 솔직성은 병적이어서 상대 편에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 참는다든지, 대화에 한계선을.. 2019.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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