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산소 이장

by 영숙이 2021. 12. 8.
728x90
반응형

 

 

<산소 이장>   

 

 차박을 하면서 제일 신경 쓰이는게 화장실 문제였다.

 

 생각해보면 먹었으면 화장실을 가야하는게 정상인데도 우리는 먹는 이야기는 많이 해도 화장실 이야기는 쉬쉬.

 

 감추고 싶어한다.

 

 아무리 솔직하고 정직하게 산다고 해도 우리는 감출 것은 감추면서 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만나서 하하 ~ 호호 하면서도 나이가 들기 전에는 화장실 이야기를 못하고 끙끙 거리며 힘들었던 기억이 누구나에게나 있을 것이다.

 

 혹시 나만 있으려나? ㅎ

 

 

 생노병사도 마찬가지.

 

 태어나면 나이가 들고 아프기도 하고 어느 날인가 부르면 가야 한다.

 

 모르는 척해도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길인 것이다.

 

 태어남이 사실인 것처럼 또 살아감이 사실인 것 처럼 그리고 천국으로 가야하는 것도 사실 인 것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2016년 6월 26일 벌써 만 5년.

 

 생전에 묘지자리를 사서 묘지를 써 놓았었다.

 

 미리 묘지를 써 놓으면 장수한다고 해서이다.

 

 아버님은 6.25 참전 용사이셔서 현충원에 가실 수 있는데 아버님의 바로 밑에 동생이신 작은 집에서 선산에 쓸 자리가 없다고 같이 하자고 해서이다.

 

 산이 멀고 올라가는 길도 쉽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모두들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이 시작된 것은 추석 때였다.

 

 추석 때 산소를 찾았는데 벌초같은 산소를 돌보는 일을 작은 집에 아들이 하고 있었다.

 

 산소에 갔다가 작은 집에 들렸는데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산 밑에 있는 작은 집에 모신다고 한다.   

 

 산소가 있는 산이 공동명의로 되어 있는데 판다는 것이었다.

 

 팔면 아버님도 작은 집에 만들어 놓은 곳에 모시라는 것.

 

 결국 아버님은 현충원에 모시기로 하였다.

 

 

 동서 친정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안되어서 철희는 동서한테 대전에 이장을 전문으로 하는 분을 알아보라고 하였다.

 

 장례 전문가.

 

 이장 날자도 알아 보라고 하였다.

 

 예수를 믿는 영숙이는 날이 따스하고 맑으면 아무날이나 골라서 하면 되겠지만 영숙이외에는 예수 믿는 이들이 없는 시댁 형제들은 손없는 날을 찾았다.

 

 

 

 10월 25일 일단 호국원에 신청을 하였다.

 

 기본 증명서(사망사실기재)와 병적증명서를 FAX로 보냈다.

 

 11월 23일에 호국원에서 연락이 왔다.

 

 -국립 영천 호국원입니다. 유공자에 대한 이장 신청이 승인 처리 되었습니다. 이장 희망일이 확정되시면 사전에 연락하여 준비 사항을 안내 받으시기 바랍니다. (안내 0564 -*** -****).

 

 

 24일에 산소가 있는 면사무소에 가서 개장 신고 증명서 신청을 하였다.

 

 산소 사진 앞/뒤 각 1장씩 찍고 고인 재적 등본, 가족 관계 증명서 준비해서 개장 신고 증명서를 신청.

 

 이장 당일에는 개장 신고 증명서, 개장 유골 화장 증명서 또는 유골 반환증중에서 1부. 사진 3 x 4 cm 1장.

 

 희망일은 12월 3일.

 

 12월 3일이 손이 없는 날이라고 하였다.

 

 

 산소 사진을 찍으로 가서 작은 집에 들려서 호국원에 모시기로 하였다고 말씀 드렸다.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이 살고 있는 아들 뜻에 따라서 산소가 있는 산을 파는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호국원에 모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개장 신고를 하러 해당 산소가 있는 면사무소에 갔다.

 

 개장신고서가 있어야만 대전정수원(화장장)에서 유골재처리를 해서 호국원으로 모시고 갈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12월 3일에 이미 대전정수원에 자리가 다 차서 아침 8시 30분에 한자리와 오후 1시에 자리가 있었다.

 

 오후 1시에 한다면 호국원에 4시전에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아침 8시 30분에 맞춰서 이장을 새벽 6시에 하기로 하였다. .

 

 점심을 먹고 신고서를 가지러 철희가 면사무소에 들어간 사이에 영숙이 혼자 차안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귀에서 꽹과리며 북이며 징이며 장구를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정월에 동네에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머리에 긴끈을 맨 사모를 돌리면서 징, 꽹과리, 장구, 북을 치면서 다니는 것 똑 같은 소리였다.

 

 너무 사실적으로 들려서 동네 어디에서 사물놀이를 연습하는가부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연습하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폰에 헤드셋을 연결해서 귀를 덮고 유튜브에서 ccm을 듣고 있는데 철희가 차에 탔다.

 

 무어라고 이야기를 해서 헤드셋을 떼었는데 그렇게 요란하게 들리던 사물놀이 소리가 안들렸다.

 

 그칠만 해서 그쳤겠지 하면서도 예수를 믿기 전에 들리던 꽹과리 소리가 기억났다.

 

 

 

 몇일 전에 바닷가를 걷고 있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생각 그만하기 위해서 성경말씀을 외웠더니 금방 이상한 생각이 지워졌다.

 

 그때 외웠던 성경 말씀은

 "주께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시옵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에서 벗어서 근심없는 축복으로 함께 하옵소서(대상4:9-10)"

 

 야베스의 기도를 외우니까 머리 속이 개이면서 가슴에 평안이 찾아왔었다.

 

 

 

 꽹과리 소리가 무섭지는 않았지만 ccm을 들으니까 소리가 안들리면서 마음에 평강이 가득 찼다.

 

 

 

 철희는 내내 힘들어 했다.

 

 스케쥴, 인력, 시동생과 시누이에게 설명하느라, 비가 오는지, 얼마나 오는지에 신경 쓰느라 잠꾸러기가 잠을 설쳤다. 

 

 몇번씩 자다가 깨어서 컴퓨터에 날씨를 확인하였다.   .

 

 정해진 12월 3일이 아니면 날자를 미루게 될 것이고 그럼 모두들 스케줄을 다시 짜야 했기 때문이다.

 

 왠만하면 예약된 날에 스케줄대로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비가 온다는데 얼마나 올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 세웠다.

 

 제사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준비물은 무엇인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하는지, 날이 춥지는 않을지. 추우면 얼마나 추울지.

 

 6시는 너무 어두워서 6시 30분으로 30분을 늦추었다.. 

 

 

 산소가 있는 곳에 제시간에 도착하느라 새벽 2시 30분에 출발해서 6시 30분에 맞춰 도착하였다.

 

 그동안 영숙이는 내내 해드셋을 머리에 끼고 폰에서 ccm을 들었다.

 

 은혜와 선한 능력으로 그리고 바라고 원하고 기도합니다.

 

 산소 이장 이야기가 나올 무렵부터 가는 길, 오는 길, 또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게 해달라고 새벽기도나 식사기도 때에도 기도했다.

 

 특히 개장 신고를 하기 전후부터 모든 일이 잘 진행되도록 열심히 기도했었다.

 

 

 새벽 6시 30분.

 

 아직 어둑어둑 했지만 후레쉬를 켜고 동서가 준비해온 음식을 차려놓고 모두들 산소 앞에서 절을 하는 걸 바라보고 서 있다가 이장을 위해서 오신 분들이 삽을 꼽기 전에 

 

 "도저히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말하고 돌아서서 차로 왔다.

 

 산소 저 위쪽 편평한 곳에 세워져 있는 차속으로 들어가서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ccm을 들었다.

 

 전날 저녁에 전혀 잠을 안자고 있다가 2시에 그대로 차를 타고 오느라 비몽사몽 ccm을 듣고 있는데 유골을 유골함에 넣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비가 오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비가 우두둑 쏱아지네. 우산을 가져다 줘야겠다.' 

 

 우산을 찾아서 들고 산소 쪽으로 내려가는데 삼촌이 올라오는게 보였다.

 

 뭐라고 이야기 하는데 잘 안들렸다.   

 

 '얼릉 우산을 가져다 줘야겠다. 비가 많이 오네.'

 

 길을 돌아서 산소가 올려다 보이는 곳에 오니까 일꾼들이 말했다. 

 

 '다 끝나서 벌써 올라갔어요.'

 

 '이쪽 길로 온 것이 아니라 반대쪽 지름 길로 올라갔나부다.'   

 

 부지런히 차 있는데로 돌아 오니까 모두들 차에 타고 있었다. 

 

 비가 후두둑 거리며 떨어지고 있는데 다행히 비가 떨어지기 전에 일을 마쳤나부다.             

 

 모두들 차에 타고 대전정수원으로 향하였다.

 

 

 도착하니까 장례식 차들이 잔뜩 와 있었다.

 

 8시 30분에 예약된 9명의 이름이 사무실에 적혀 있었다.

 

 장지가 먼곳인 경우에는 일찍 서둘러서 시간을 맞추는가부다.

 

 아버님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난 후에 재처리를 위한 시설에 유골함을 넣는 것이 보였다.

 

 30분 정도 기다리니까 다 되었다고 유골함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서류를 챙겨 들고 영천에 있는 호국원으로 조심스레 이동했다.

 

 사무실에서 서류를 제출한 필요한 내용을 서류에  작성하고 아버님 유골을 모셨다.

 

 60년 동안 호국원에서 모시고 이후에는 영구 봉안을 할런지 명패만 모실런지 그때의 법안에 따라서 한다고 한다. 

 

 -국립 영천호국원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 이인식님의 영현 사진입니다. 고인이 안장되어 계신 곳은 충령당 제2관(봉안함 번호 *****)입니다. 국립영천호국원 카카오톡 채녈 가입 후 친구 추가 하시면 다양한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버님의 산소 이장을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마쳤다.

 

  

호국원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 옆에 서서 바라보면서 산소에서처럼 기도를 했다. 

 

 -하나님. 아버님 영혼이 천국에 가게 해 주시옵소서.  -                       . 

 

 

728x90
반응형

'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97년 일곱 쌍둥이  (1) 2021.12.12
치매 위험 커진다?  (0) 2021.12.10
가을 정취 ~ 5개  (1) 2021.12.05
시민영웅들이 몰려왔다  (1) 2021.11.24
전두환 전 대통령 별세  (0) 20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