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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선 버드나무 >2. 출발

by 영숙이 2019.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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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 >

   

   오늘 아침.

   

   출근하여 면사무소에 가서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사무실 청소를 끝내고는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자니

   웬 반바지를 입은 뚱뚱한 남자가 면사무소 정문으로 들어서면서

   안경 낀 눈으로 보건지소를 쓱 쳐다보더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고는 절걱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안경 속으로 쌍꺼풀이 크게 떠오른 눈 하며 털이 숭숭 나온 반바지가 낯선 여자의 시선 때문인지 부자연스럽게 현관을 지나서 이쪽 가족계획실 문을 열고 고개를 쓱 디민 자세로 물어본다.

   

      " 어떻게 오셨어요? "

   

  사무실 문턱에 고개를 부딪힐까 봐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고 있는 그 커다란 사람을 향하여

 

     " 어제 발령받고 왔는데요! "

 

  영숙이는 일어서서 책상 모서리를 꼭 붙잡고 대답을 하였다.

 

      " 아! 그래요? 난 이 곳에 파견된 의사입니다. 이 곳에 근무하는 한양과 이양은 어디 갔어요? "

      " 오늘부터 청산에서 근무합니다.! "

      " 아! 참 청산으로 발령 났다고 하더군요! "

 

   저쪽 진료실 사무실을 열쇠를 절걱거리며 열고 들어 가는 소리.

   창문 여는 소리.

   의자 당기고 책상 서랍 여는 소리들.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온 영숙이가 사람들이 들랑날랑하는 진료실에 건너갔을 때 근육주사를 이제 막 놓았는지 세수 대야에다 담고 이쪽을 바라본다.

 

       " 좀 씻어 줄래요? "

   

   영숙은 얼른 세숫대야를 들고나가 깨끗이 주사기를 씻어 가지고 돌아왔다.

   이 선생님이 세수 대야에 소독약을 탄다.

 

       " 간호학교 나왔다면서요? "

       " 혹시 먼저 이 곳에 있던 박태자 알아요? "

       " 아! 예! 중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동기 동창이었어요! "

       " 제가 간호학교 나왔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

       " 먼저 번에 보건소 갔더니 그러더군요! "

   

   그러고는 말이 끊기고 침묵이 흘렀다.

   이 선생님은 혼자 천천히 중얼거렸다.

     

       " 박양 서울의 백병원으로 갔는데 아마 거기에 가서도 일을 잘할 거예요! 일을 아주 열심히 깨끗하게 잘 해내거든요! 키는 작아도 똘망 똘망한 아가씨인데... 생김새처럼 빈틈이 없는 아가씨예요. "

       " 한 번은 둘이서 장수리라고 40리도 넘는 곳이지! 환자가 생겨 걸어서 왕진 갔다가 오는데 어찌나 더웠던지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얼굴이 빨개 가지고 열심히 걷던 박양 모습이 떠오르는군! " 

 

   이선생님은 태자에 대한 인상이 무척 좋은 것 같았다. 백병원 가서도 참 일을 잘할 거라는 말까지도 보태는 것을 보니까.

   먼지가 나는 길을 땀을 흘리면서 오는 두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반바지를 입은 이선생과 작고 탱글 탱글 생긴 태자 두 사람이 저녁 석양의 길을 걷는 모습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라도 있으면 훨씬 좋을텐데.

 

   이선생님은 결혼하자마자 이곳 무의촌 의사로 오게 되어 부인과 함께 신혼의 생활을 보내고 있는 키가 크고 뚱뚱한 사람 좋아 보이는 분이셨다. 

   

   영숙은 이 선생님이 말하는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첫인상이 우락부락한 생김새와는 달리 생각에 잠긴 옆얼굴은 살이 붙어 있으나 밑으로 향한 눈꺼풀에 긴 속눈썹이 호감을 주고 그보다도 상당히 맑은 눈동자와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맑은 눈빛이려니와 회상에 잠긴 그늘 없는 얼굴이 온순하게 어쩐지 다른 사람들을 감싸 주는 듯 보인다. 

 

   

   영숙은 얼굴에서 눈을 떼며 천천히 남방과 반바지로 눈길을 옮겼다.

   상당히 뚱뚱한 체격에 배도 많이 나와 있다.

   영숙이 시선이 다리에 가서 멈추자 변명하듯이 시선을 들어 영숙이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 반바지가 이상하죠? "

      " 너무 덥기도 하고 반바지가 편하여서! "

      " 이 선풍기는 서울에서 가지고 왔어요! "

      " 경제적인 여유만 있다면 여기는 살만한데, 아무튼 한여름 피서지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

      " 6개월 근무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생활 하지요! "

     

   아까 영숙이의 사무실로 건너갔다 점심 후 다시 가져온 선풍기가 느리 잇, 느리 잇  바람을 보내고 있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며 긴장한 탓인지 별로 덥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이선생님의 시선은 맑으면서도 가만히 남의 얼굴에 표정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이 먹은 농부 아저씨 한분이 오셨다.

   익숙하게 상처가 좀 어떠냐 묻는 것을 보고 영숙은 자기 사무실로 돌아왔다.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유리창 앞에 팔짱을 끼고 서성인다.

   한가한 풍경이 졸리듯 가라앉아 있다.

   

   

   참으로 조용한 하루다.

   혼자 빈 사무실을 지키며 창밖을 내다보거나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하였다. 

 

   요즈음 근 한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아직도 모내기를 하지 않은 곳이 많아서인지 가뭄으로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농가를 위해서 양수기 몇 대가 면사무소 창고 앞에 나 앉아 누군가 데려가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저께 저녁은 이양 집에서 먹었다.

   그녀 방은 여러 세간살이가 몰려 있는 윗방이었다.

   작은 책상에 깨끗한 옥스퍼드지의 책상보가 손질이 잘 되어 놓여 있었고 여려가지 화장품, 책들이 시골 아가씨의 작은 방다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더랬다.

   

   주인집 할머니네 집은 너무나 조용하여서 이양네 집에서 저녁 먹고 돌아오니 저녁 어스름과 이웃집에서의 연기들이 어울려서 꼭 어렸을 적 외할머니 집에 갔을 때 느끼던 고요하고 차분한 시골의 고즈넉한 냄새가 났다.

 

   

   퇴근 무렵.

   이 선생님이 이쪽으로 건너오셨다.

   창 앞에 서 있는 영숙이를 보고는 우물 쪽으로 나 있는 옆 창문 앞에 선다.

   면사무소와 보건지소를 나누기 위해 경계 표시로 세우려 했던 듯한 중간쯤 끊긴 담장 아래 채소를 가리키면서 슬그머니 웃는다.

 

     " 하도 심심해서 상추를 심었어요! 몇 번 뜯어다 먹었는데 얼마 동안 돌봐주지 않았더니 엉망으로 돼 버렸네! "

 

  담장 밑으로 한쪽 옆에 상추들이 있고 바로 유리창 밑에는 봉숭아 꽃들이 몇몇 꽃송이를 매달고 기운 없이 서 있었다.

 

   출입문 쪽을 제외한 삼면이 유리창으로 되어서 인지 실내보다는 자주자주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이곳 보건 지소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토요일.

 

   하루 일과의 시작으로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사무실 청소를 하고 이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한가한 반나절을 보냈다.

   

   오후 1시.

   집에 가려면 청산으로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영숙이는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 또 청산면까지의 거리를 실제로 체험하기 위하여 걸어가기로 하였다.

   조용한 시골의 포장 안된 도로를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주위를 살펴가며 걸었다.

 

   초록으로 번져 있는 주위의 풍경.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나무에 고정되어 있는 뽕잎들 사이로 느리 잇 느리 잇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어미 소가 보였다.

   

   버스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것 같더니 상당히 먼 거리였다.

   처음에 여유 있던 마음 과는 달리 온몸으로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고 숨이 가빠온다.

   쉰다는 마음은 접어 두고 목적지까지 가기로 한 당초의 생각대로,

   결국 청산면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더위 먹은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 더운 숨을 헉헉 거리면서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영숙은 기어이 도착하였다는 기쁨과 땀을 흘린 후의 상쾌함과 건강함에 기분이 좋아져서 대전시로 가는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신을 시험하고자 하던 일에 합격을 하고 100점의 점수를 스스로에게 매긴 것과 같은 기꺼움이라고 할까?

   직행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로 들어 서기 위해 용산으로 해서 면사무소 앞을 지나다가 보니 용산 보건 지소가 버스 창문으로 비쳤다.

 

   영숙은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소설의 한 장면을 읽듯이 갑자기 비집고 들어 오는 목소리.

 

     " 만약 여기 용산 보건지소에 배치되었더라면 영숙 씨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여기 용산 보건지소에 배치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청성 보건지소에 파견되는 무의촌 의사는 6개월 근무를 한다니 다음에 오는 의사는 멋진 총각 의사 일지 누가 아나? 레지던트 2년 차라면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도 많이 있을 테니까!

 

   영숙이의 머릿속으로 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아 지금 지나가고 있는 용산면 보건 지소를 내다보고 있을 낯 모르는 사람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감각이 가능한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지금 계시는 이선생님은 9월 말이면 무의촌 진료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간다고 하니까 앞으로 2개월여의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아니하다.

   

   다음에 오실 의사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고속도로에는 토요일 오후를 바쁘게 달리는 수많은 차량들이 창밖으로 보이고 이제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비로소 집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청량함의 끝판왕 스위스 ~ 태어 났으면 꼭 가봐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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