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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

< 홀로선 버드나무> 3. 첫날

by 영숙이 2019.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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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 >

   

   늦은 아침을 먹고 여전히 지각하는 집 앞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남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와 동생들로부터 교회 갔다 왔느냐는 질문을 받고,

   오후에 잠깐 성모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 선아를 만나서 시내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집으로 걸어왔다.

   이즈음에 읽는 선아의 책은 계간으로 나오는 미술잡지였다.

   만나서는 옷가게를 뒤진다든지 아니면 선아의 남자 친구라든지 또는 주변에 있는 동창들 이야기를 꺼내는,

   잡다한 일상사를 가끔가끔 만나서 나누는 대학 때 절친이다.

   

   지난해부터 선아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는 바람에 이야기 도중에 화제의 한계가 생기거나 아니면 선아가 절제하는 언어의 벽에 부딪치고는 한다.

   

   영숙이의 솔직성은 병적이어서 상대 편에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 참는다든지,

   대화에 한계선을 긋는다 할 때에는 불투명한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어쩌면 가끔가끔 그런 것을 느끼게 되는 매력 때문에 선아와 친구가 되어 가깝게 지내지 않나 싶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선아의 그런 면을 꼬집으면서도 상당히 매력을 느낀다고 할까?

   

   저녁에는 티브이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그야말로 안일 무사한 하루였다.

   때로 권태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이런 생활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결코 이 조용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런 생활을 좋아하기 때문 일 것이다.

   

   이튿날 이곳으로 온 후 맞이 하게 된 첫 월요일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서 6시 30분 직행 버스 첫차를 타고 청산면으로 향하였다.

   

   앞으로 매일 아침이면 되풀이하게 될 일과의 시작.

   

   출근하자마자 현관문을 돌쩌귀로 받쳐놓고

   가족계획실 문을 열고 들어가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고 ㅡ,

   현관과 사무실에 물을 뿌리고 빗자루로 쓴 다음 책상 위를 닦는다.

   

   막 사무실 청소를 마치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 자그마하고 똥똥한 젊은 아줌마가 아장아장 ~ 아장 이는 걸음으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사무실 안을 휘둘러 보며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이쪽 편의 신분을 묻는 것이었다.

 

       " 모자 보건 요원 김영숙인데요! "

 

   영숙은 자신을 소개하고 비로소 이곳으로 새로 발령을 받아 근무할 사람인가 부다 짐작을 한다.

   혼자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는데 그 말을 종합하여 미루어 보건대 안양이라는 추측을 한다.

   32살의 노처녀라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이처럼 똥똥한 아줌마 일지는 몰랐다.

   마르고 신경질적인 올드미스라기보다는 결혼하여 임신한 아줌마의 분위기였다.

   하긴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니 그렇게 봐서 그런지 시골 아줌마라고 하기엔 얼굴에서 정리된 느낌이 들었고 앙다문 입술 탓인지 앙칼진 성격이 느껴졌다.

   숨소리를 새근거리면서 더위 때문에 빨갛게 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 내더니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얼굴을 식히면서도 여전히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 세상에 날 이곳으로 보내다니 버스도 없는 이런 곳에 어떻게 근무하라고 그럼 내가 그만 둘 줄 알았나? 정말 속상해 죽겠어! 말 한마디 없이 하루아침에 이런 곳으로 발령을 내다니! "

 

   혼자서 면사무소에 인사를 갔다 오고 옆 사무실 지소장님에 대해 간단히 묻는다.

   집이 청주인데 가서 짐을 가지고 와야 한다면서 누가 와서 묻거들랑 그렇게 이야기해달라고 하고는 역시 아장아장 ~ 아장 이는 걸음으로 창 앞을 지나 면사무소 정문을 빠져나갔다.

 

   창문 쪽 책상에 앉아 있던 영숙은 그 책상이 먼저번 이양 책상이라 길레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책상으로 정하였다.

   안양은 센터에 있는 책상을 자신의 책상으로 정하고 안양의 나이나 또 근무 경력 등을 따져서라기보다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영숙이는 받아들였다.

   원래 센터에 있는 책상은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모자 보건 요원의 책상이고 그 앞에 마주 보고 있는 책상이 보조 간호사 출신인 보건요원의 책상이었다.

   안양과 곽양은 보조 간호사 출신인 보건 요원이었다..

 

   오후 내내 창문 앞에 붙어 서서 건물 옆을 따라 만들어져 있는 작은 꽃밭을 내다보노라니, 새삼스레 영숙이 이곳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그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나이가 아닐까?

   무엇 때문에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음악도,

   시도,

   대화도 없는 곳.

   정막과 햇볕과 고요만이 내려 있는 곳.

   어쩌다 바람 만이 움직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은 나의 날들이기에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혼자 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

   뒤돌아보면 엉킨 실매듭들이 눈에 뜨이지만 뒤돌아 볼 것 없이 꿈의 크기를 스스로의 현실에 비추어 느껴야 하는 것이다.

   

   신선하고 달기까지 한 공기를 마시면서 창 밖을 내다보니 어쩌다 영숙이 이 곳에 와 있는지,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해야 한 사람의 완전한 성인이 된다면

   영숙은 이제 성인으로서 걸음마의 몸짓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비로소 혼자 만의 생활에 한 단면을 열고 있는 것이다..

 

   영숙아!

   그렇지만 너는 살아야 하고,

   무엇인가를 해야 만 하고,

   햇볕과 더위와 고요만 있는 이곳을 사랑하며 시를 가려내고 글을 써야 한다.

                                          <청량함의 끝판왕 스위스 ~ 태어났다면 꼭 가봐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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