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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물세살의 수채화

by 영숙이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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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살의 수채화>  

 

26. 친구

 

♣ 순진컨셉

   

   영숙은 이즈음 간간히 통증이 오는 오른쪽 가슴과 한두 번 나오는 기침에 왠지 모를 불안을 느낀다.

   

   불안.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얀 밤톨 속의 하얀 벌레처럼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파먹고 있는 벌레.

   

  바람 한가운데서 영숙은 바람이 더 세게 부는 소리를 듣는다.

  영숙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었다.

 

  불과 몇시간 전 수경이에게 한턱냈던 일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집에서나

  미장원에서 머리 할 때나

  아는 아저씨를 만나 몇 잔의 술잔을 홀짝이고

  나이트에서 춤을 출 때에도

  수경이는 자신의 순진을 자부했고

  실제로 순진해 보였다.

   

  순진해 보이는 것이 특기인 순진파 형 아가씨.

   

  수경이가 영숙이를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있다.

 

  3년 동안이나 함께 몰려 다니면서

  늘 영숙이 앞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수경이를 바라보면서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영숙이를 무서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 그렇지만 수경아 그건 나만의 개성이야.

         나의 개성이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어. ~ 

 

   그러나 속으로만 되뇌일 뿐이었다.

   

   수경이.

   수경이의 컨셉은 순진 무구.

   

   수경이는 가슴을 앓지도 않았고 또 토하지도 않았고 마치 늪 속을 헤엄치는 악어처럼 도시를 유영하면서 그 모든 것을 먹는 대로 통째로 소화시켰다.

   

   그러면서도 그 어느 것도 수경이에게 만족을 채워 줄 수 없다는 것을 그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취직을 해서 월급을 타는 사람이니까 아직 학생인 수경이에게 한턱을 낸 것.

   학생 신분으로는 한잔으로 만족해야 하는 맥주를 5병이나 마시고 수경이는 눈을 깜박이며 

       

       "영숙아! 내가 어떻게 보이니?"

       

   대답해 줄 말을 어떻게 찾는 담.

 

       "너 자신이 잘 알잖니?"

 

   여고 동창생들은 수경이가 엄청 이뻐졌다고 만날 때마다 눈웃음치며 칭찬해주고는 하였다.

 

      "니가 처음으로 내는 한턱인데 마시자.

       실컷.

      알코올이 들어가면 솔직한 말이 나온다더라."

     

   영숙은 속으로 쓱 웃었다.

   

        ~ 글쎄?

           그럴까?

           내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마음을 네가 눈치챌 수 있을까? ~ 
   

   영숙이는 아무 말 없이 따라주는 맥주를 마셨다.

   마시고는 의식 속에 있는 윤선생님의 영상을 지우는 거야.

 

       ~ 애틋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면서

          전혀 아무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어. ~

 

   5병째 비웠을 때 수경이는 탐색하는 눈초리로 또 물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넌 멋진 애야.

        멋진 애라고.

        시대가 몰라 줘서 그렇지."

       "그것뿐이야?"

 

   수경이의 얼굴이 어지러워 보인다.

   

   우린 서로 친하지 않니?

   하지만 수경아 친하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서로의 사정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것일까?

   그렇지만 난 너에 대해 아는 것도 이해해 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여자 친구는 소용이 없기 때문일까?

   결혼하면 잊고 마는 사이들.

   참으로 친했던 친구의 소식이 끊어진 지 일 년쯤 지난 어느 날

   어떤 남자를 데리고 잠깐 만나서

 

       ~ 안녕?

          남자 친구야.

          그동안 연락 안 해서 미안해.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

 

   가버린 얼마 후 청첩장이 날아오고,

   그 후로는 그만인 것이 여자 친구인지도 모르지.

   

   친하다는 것은 단지 몰려다닌다는 자주 모여 몰려다닌다는 의미밖에 없는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 갑자기 이런 것을 생각하는 자신이 초래해지는 것 같다.

   

   주위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젠 일어나자."

 

   지갑을 집어 들다가 도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속이 메슥거려 화장실에 달려가서 있는 데로 토하였다.

   수경이는 등을 두드려 주면서 영숙이가 취한 것을 인정한다.

   자리로 돌아오니 웨이터가 다가왔다.

 

       "많이 취했군요."

       "됐어요.

        괜찮아요.

       우리 나가자."

      

  영숙이는 아직도 취해서 중얼 중얼 ~

     

         ~ 넌 멋진 애야.

           시대가 몰라줘서 그렇지.

           멋진 애라고. ~

 

  수경이는 영숙이와는 달리 전혀 취해 있지 않았다.

 

        "찬 바람을 쐬면 좀 괜찮아질 거야."

 

   어지러웠다.

   수경이는 커피를 마시면 괜찮을 거라면서 길건너 건물에 있는 홍명 다방으로 데리고 갔다.

   자리가 없어 혼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와 합석했다.

   

   밝은 불빛.

   많은 사람.

   어지러움.

   

   영숙은 탁자에 엎드려 있었다.

   탁자 밑으로 윤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언제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

   싸늘한 바람이 부는 얼굴.

 

   탁자 위에 엎드려 있는 영숙이의 귀에 수경이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오늘 쟤가 월급 탔다고 한턱냈어요."

      "많이 취했군."

      "혼자 저렇게 취했어요."

 

   영숙이는 몽롱한 체 자꾸 헛구역질이 나왔다.

   벗어 든 가죽 장갑을 입에 대고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영숙이의 눈에 자리가 없어 합석하게 된 30대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여기는 너무 밝은데 밖으로 나가지.

       내가 한잔 살 테니까."

      "네 좋아요."

 

   영숙이는 수경이가 일으켜 세워서 이끄는 데로  밖으로 끌려 나갔다.

   

   불빛이

   차량 행렬이 어지러웠다.

   

  영숙이는 초록 원피스 주머니에 손을 짚어 넣고는 옆에서 수경이가 잡아 이끄는대로 흔들 흔들 ~

   

   한참 가다가 눈을 뜨니까

   수경이가 팔짱을 낀 채 부축하고 있었고

   계단 위에서는 붉은 불빛과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권하는 술잔을 영숙은 받을 엄두도 못 내고

   토한 데다 어지러워서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턱을 괴고 수경이 마시는 것을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붉은 불빛 속에서 제각기 어지럽게 젖어 있는 사람들.

   남자는 영숙이에게 몇 번이고 맥주를 권하다가 포기하고 수경이와 춤추러 나갔다.

   불빛 아래 돌아가는 사람들.

   

   불빛 아래 예쁘게 드러나는 수경이의 자그마하고 까만 옷의 몸매.

   천진해 보이는 얼굴만큼 예쁘게 추는 춤.

   

   영숙이의 머리가 조금씩 깨이면서 모든 것이 확실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자리로 돌아온 수경이가 같이 추자고 했으나 영숙이는 입을 꼭 다문체 머리를 흔들고 붉은 불빛 아래 흔들 거리는 사람들을 건너다보았다.

   

   아무런 이야기도 하고 싶지가 않다.

   다만,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

   이 곳에 올 이유도 그리고 이 곳에 있을 이유도 없었다.

   

   영숙이 입을 다물고 앉아 있으니 수경이도 흥이 안나는 모양.

   얼굴 절반을 가리는 갈색 안경 유리알 너머로 가만히 쏘아보다가 시선을 떨어 드린다.

 

       "우리 나가자."

 

   밖은 추웠다.

   술이 깨어 하얗게 바랜 머릿속으로 찬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주머니 속에 손을 짚어넣으니 장갑이 한 짝뿐이다.

   일 년을 벼르고 별러 겨우 지난달에 월급타서 산 검은 가죽 장갑인데 다방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있었다.

   아마 어디서 잃은 모양이다.

   

   거리 한 옆으로 검은 지프차가 서 있었다.

   남자는 집에 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굳이 사양하면서 상냥하게 작별 인사하는 수경이.

   

   수경이랑 택시를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와서

   택시를 타고 떠나는 수경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면서 집을 향하여 걸었다.

   

   문득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텅 비인 가슴속으로 찬 바람이 소리를 내면서 불어왔다.

   

       '가죽 장갑을 어디서 잃었더라?'

 

   추운 가슴 사이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도시 한 귀퉁이에서 쓸쓸하게 가슴을 앓을 뿐.

   혼자이다.

   귀로에는 혼자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절감한다.

 

 

♣친구     

   

   대전에 가서 보영이를 만났다. 

   보영이와 수경이와 영숙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터 절친.

   

   보영이와 수경이가 친한 것은 수경이 부모는 부부 교사였고 보영이 아버지는 장학사였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같은 동네에 살던 보영이와 친해졌는데 보영이와 친한 수경이 와도 친구가 된 것이다. 

   

   수경이는 학력고사에 떨어져서 재수를 하였는데 미술학원에 가서 미술을 배워 미술학과에 진학하였다.

   수경이는 예술을 하는 거보단 미술학과 아이들과 그 애들의 퇴폐적인 분위기에 더 잘 어울렸다.

 

   영숙이 친구들은 어떻게 수경이와 친구가 됐느냐고 신기해했고

   수경이 친구들은 어떻게 영숙이와 어울리느냐고 신기해했다.

   

   우리 둘은 극과 극의 성격이었다.

   가운데에서 보영이가 잘 조절해서 잘 어울려 다녔다.

 

   대학진학에 실패한 보영이는 엄마가 은행 출신이라서 은행에 입사해서 다니고 있었다.

   보영이에게 수경이가 대학 써클 선배를 소개해주었는데 수경이가 반대하는데도 잘 만나고 있었다.

  남자집안이 시내버스 회사를 운영하는데 남자는 유학을 갈 예정이고 유학갈 때 보영이도 함께 간다고 준비하고 있었다.

 

  세사람이 늘 만나고는 했었는데 이젠 수경이와 영숙이 둘이 만나고 있다. 

 

  다방에서 늘 그렇듯 코리안 타임으로 1시간쯤 기다려 만난 수경이가 동학사로 놀러 가자고 해서 하릴없이 놀러 갔다.

   

   동학사에서 딱히 무슨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리 기웃 ~  저리 기웃 ~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러 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자가용이 한대 멈추더니 대전까지 태워 준다고 한다. 

 

   요즘은 웬만하면 거의 다 차를 가지고 있고

   아가씨들도 차를 몰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위험하기도 하고.

   

   요즘 같으면 어림도없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자가용이 있는 남자들은 좀 사는 남자들인 경우가 많았다.

   수경이는 얼굴 절반을 가린 짙은 갈색 안경 문그라스를 손으로 잡고 올리면서 쓱 훑어 보았다.

   차에 탄 남자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차를 타고 가면서 평소처럼 순진하고 귀엽게 대화를 주도한다.

 

  영숙이는 수경이 옆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아저씨들이 심심하고 아가씨들도 심심해 보이니 클럽에 가자고 했다.

   유성에 있는 클럽에 갔는데 웬 대낮부터 춤추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맥주 한잔씩 하고 플로어에 나갔다 돌아오니 말을 걸었다.    

 

        ~ 이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나 맞춰 볼까? ~

        ~ 네. 맞춰 보세요. ~

   

    바로 대답을 안 하고 머뭇거린다.

 

       ~ 어떻게 알아맞춰요?

          투시안이라도 돼요? ~

       ~ 만져 보면 알 수 있지. ~

 

   탁자 위에 있는 지갑을 손안에 놓고 만져 보더니

 

       ~ 돈이 하나도 없는데? ~

       ~ 그래요? ~

 

   다시 고고 타임.

   

   이번엔  전부 플로어에 나가고 영숙이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혹시 신분증이라도 들어 있을까 봐 걱정이 되어 지갑을 열어 보았다.

   신분증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공무원 증이 있었다.

   혹시 세무 공무원쯤으로 오해(? )할만한 공무원증이었을까? ㅋ

   

   기분이 나빠졌다.

   지갑을 열어 본 모양이다. 

   

   테이블 위에 빈 맥주병 2개.

   빈 안주 접시.

   웨이터가 재빨리 치운다.

   시계는 벌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너무 늦었어요.

              집에 가야 되겠어요. ~

          ~  우리도 나가지.

              뭐 이왕 태워다 주었는데 끝까지 태워다 줘야지. ~

 

   밖은 완전한 어둠속에서 네온사인 불빛만 비치고있었다.

   어둠 속에서 영숙이는 그 어둠보다 더 캄캄한 마음이었다.

   

   사양하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는데 먼저 버스를 타는 수경이를 바라보면서 영숙이는 정말 앞으로는 수경이를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는 만나지 말아야지.

   헤어질 때면 늘 하는 생각이지만

   실천을 못하고 생각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괴롭다.

 

   

   이 때문에 영숙이는 자신의 결단력을 의심하게 된다.

   수경이가 전화해도 만나지 않을 방법이 없을까?.

   

   수경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하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끌려 다니고 있다.

 

출처: https://sjjtc1.tistory.com/194 [베이비 붐 세대 - 또순이:티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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