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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물세살의 수채화

by 영숙이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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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살의 수채화>

 

29. 겨울 사람

 

마치 겨울의 한 끝에 서서 도시의 찬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황정두 씨는 신문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직행버스 터미널 입구에 서 있었다.

 

자색 잠바에 동일한 색의 바지로 그의 얼굴을 보완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빛은 자색 잠바 보다도 진한 자색이었다.

특히 뺨에서부터 목까지는 한층 진한 자색 얼룩이 피부를 팽팽히 잡아 다니고 있었다.

 

청산면으로 가는 고속도로 둔덕에는 아직 덜녹은 눈들이 보이고 마른풀 위로 따뜻한 햇볕이 소복이 내리고 있었다.

 

저쯤일까?

 

단발머리 소녀 때.

어쩌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을 세어보며 한 낮의 햇볕이 기울어가는 양을 지켜보던 곳이?

 

이젠 한사람의 사회인으로 굳어버렸지만 이곳을 지날 때면 그때의 꿈과 이상이 떠올라서 가슴이 따스하여지고는 한다.

 

정말 올겨울은 유난히도 따뜻하다.

10년 내의 이상 기온으로 예년 같으면 한창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때인데도 따뜻한 초가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동생들은 얼음이 얼지 않아 스케이트를 못 탄다고 야단들이다.

 

창밖 따뜻한 햇발 사이로 황정두 씨의 추워하던 모습이 어둡게 서 있다.

 

처음 그를 발견하게 된 것은 간호학교 2학년초 대학 병원에 실습 나갔을 때.

첫 날.

내과 병동의 간호원이 빙긋이 웃으며 130호 실에 가서 환자 밥 좀 먹이라고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환자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환자 3명이 맞은편에 다리며 머리에 하얀 붕대를 둥둥 감고는 누워 있었다.

 

"어느 분 식사를 도와 드릴까요?"

 

가운데 환자가 턱짓으로 앞쪽을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전부 보호자들이 옆에서 밥을 먹여 주고 있었다.

 

돌아서 보니 들어올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환자 한 사람이 문 바로 옆의 침상에 누워 있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면서 밥상을 집어 들었으나 어떻게 할 줄 몰라 바라보고만 있으려니 뒤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 턱 밑에 놓으세요."

 

얼떨떨 ~

누워 있는 턱밑 이불 위에 트레이를 놓고 수저를 들어 밥을 떠서 그의 입에 가져가니 누운 채로 얼른 받아먹었다.

국을 떠서 입안에 넣어 주고 그때서야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자색 계통의 헝겊을 모아 연결한 위에 쪼그라진 눈과 코와 입을 그린 것 같았다.

눈썹 부분은 굵은 주름과 흉터로 이루어져 있었다.

얼굴 전체는 아직도 덜 나은 상처와 다 나은 빤질빤질한 둥근 흉터로 덮여 있었다.

목은 아예 없고 진한 자색 피부가 오른쪽 뺨에서부터 목을 직선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사실 그의 모습으로는 나이조차 짐작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유난히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힘차게 밥을 씹는 모습,

생명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보건데 아직 젊은 남자였다.

 

뜨악한 시선으로 그가 밥 씹는 것을 지켜보자니 이 반찬 저 반찬 달라고 가리키는 손은 마치 쇼윈도 위에 있는 마네킹의 손 같았다.

쓰기 편리하도록 구부러져서 주름 하나 없이 빤질빤질하게 굳어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아직도 하얀 붕대를 감고 배 위에 놓여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니 모두들 무관심한 척하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영숙이가 어떻게 하나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간호보조원이 빼꼼히 방문을 열었다.

 

"제가 밥 먹일게요."

"아, 네."

 

얼른 대답하고 그 병실을 나설 때는 어지러운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간호원이 입가에 빼물은 웃음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처음 실습 나오면 일부러 놀라게 하려고 온 몸에 붕대를 하얗게 감은 환자 방에 들여보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간호원 실로 오자 마자 그 사람의 chart를 찾아 펼쳤다.

 

이름은 황 정두.

나이 32세.

입원 일은 약 898일째.

약 2년 5개월 됐다.

 

70% 화상.

신체 중에서도 상체는 2도 화상.

손은 3도 화상.

다리는 1도 화상이다.

 

3도 화상이기에 손가락들이 붙어 버리고 오그라져 굳어 버렸는가 부다.

 

직업은 미장이.

석유난로 과열로 불이 나서 집은 전소되고 아이는 죽고 부인은 도망갔다고 한다.

 

 

차가 영동읍 인터 체인지로 들어 서고 있었다.

일단 용산 읍내로 들어갔다가 돌아 나와 청산면 정류장으로 가는 것이다.

 

면사무소 앞을 지나가다 보니 용산 보건 지소가 버스 창문으로 비쳤다.

 

영숙은 용산 보건 지소 앞을 지날 때마다 꿈을 꾸었었다.

소설의 한 장면을 읽듯이 갑자기 비집고 들어 오는 목소리.

 

~ 만약에 여기 용산 보건 지소에 배치되었더라면 김양을 못 만났을 텐데 ~

~ 청성에 배치되고 용산 보건 지소에 배치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

 

그랬다.

 

청성 면에 파견되는 무의촌 의사는 6개월의 근무가 기한이라니 다음번에 오는 의사는 멋진 총각 의사 일지,

허긴 레지던트 2년 차면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도 많이 있으니까 ~

 

영숙이의 머릿속으로 나란히 버스 좌석에 앉아 지금 지나가고 있는 용산면 보건지소를 내다보고 있을 모습이 현실적으로 감각이 가능한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었던 때도 있었다.

 

 

첫날 이후 황정두 씨 방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기보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그 사람을 간호하는 게 싫었다는 것이 더 정직한 이유일 게다.

 

그 날은 오후 근무로 간호원실에서 나와 106호실 환자 링거를 뽑아 주러 가는데 저쪽 복도 끝에서 부터 외국인 아줌마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깨끗한 옷차림과 건강한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환자는 아닌 것 같다.

옆에 서있는 보조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 외국인 누구여요?"

"저 사람요?"

"선교사인데 황정두 씨 간호해 주러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시트도 갈아 주고 이불도 갈아 주고 해요."

"황정두 씨 입원비도 저 사람들이 내고 있잖아요."

 

가슴에 뜨끔하게 와 닿는 게 있었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건너와서 낯설고 힘든 객지 생활을 하면서 간호사들까지도 꺼리는 환자의 시중을 들러 다닌다니.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근무 나오면서부터 집 옆에 있는 대흥교회에 잠깐 들려 기도를 하였었다.

이유는 간호를 잘하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지만 진짜 이유는 선배 언니가 급성 간염에 전염되어 사망한 데서 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외국인 아줌마를 만난 이후로는 기도도 하지만 간호하기에 좀 괴로운 환자도 조금은 쉽고 편안한 마음으로 간호에 임할 수 있었다.

 

1년이 지나 소아과 병동에서 실습할 때였다.

503호에 있는 14살짜리 경석이는 선천성 당뇨병으로 자라지 못해 몸집이 꼭 8살짜리 정도밖에 안되었다.

 

경석이 방에는 꼭 자기만 한 인형이 있어서 친구가 되고 있었다.

하루는 사랑의 요정이란 책을 빌려 주러 들어가니 황정두 씨가 와 있었다.

 

그동안 수술대에 놓여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피부이식으로 허벅지의 피부를 얇게 떠서 팔에다 붙이는 것도 보았다.

침대에 누워서 지내던 황정두씨가 경석이의 방에 놀러 온 것을 보니 새삼스럽게 바라보였다.

 

경석이가 붕대를 잡아 주면서 그 병실에서 붕대를 풀어 다시 감는 것이었다.

 

생에 대한 의욕으로 희망에 가득 찬 눈빛.

그 기대에 맞추려 노력하는 어색한 손놀림.

영숙을 빗껴보며 웃어 보인다.

 

"이젠 많이 좋아졌어요."

"내년 봄이면 퇴원도 가능하데요."

 

영숙은 수술실에서 본 황정두 씨를 생각했다.

크고 적은 수술을 합해서 수술실에 들어간 것이 130여 회.

 

온몸이 흉터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튼 저렇게 웃고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그늘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영숙이도 기분이 좋았었다.

 

 

창 밖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하여진 데다가 진료실 연탄불을 아직 안 피운 탓인지 선생님은 웅숭거리면서 이쪽 사무실로 건너와 난로 앞에 서성이며 창밖을 내다본다.

 

사무실 바닥에 물을 뿌린 후 빗자루로 쓸고 밖의 청소도 마치고 면사무소에서 가져온 허브 차가 난로 위에서 기분 좋게 끓고 있다.

 

청소를 마친 영숙은 말끔한 기분으로 방금 막 씻어 온 컵에다 결명자 차를 따라 설탕을 타던 손을 멈추고는 선생님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에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얼마 전만 해도 선생님은 저 창문 앞을 어슬렁 ~ 어슬렁 ~

꼭 창살 없는 감옥 같다고 투덜 ~ 투덜 ~

 

출처: https://sjjtc1.tistory.com/193 [베이비 붐 세대 - 또순이:티스토리]

💢 베이비 부머 세대의 부모는 어떤 세대일까?

일단 우리 부모 세대는 누구나가 다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가정형편이 되거나 부모가 깨어 있어서 자녀교육을 위해 희생한 경우 외에는 배울 기회가 없었다.

혹시 기회가 된다해도 그건 남자 즉 아들들의 몫이었다.

그외 딸들이나 장남외의 아들들은 거의다 장남이나 집안을 위해 희생하는게 당연 하였던 세대들이다.

요즈음은 식료품을 사드리러 한달보름에 한번 정도로 가지만 예전에 생활비를 드릴 때는 식품을 전혀 사시지 않았었다.

어느날 친정에 갔더니 친정어머니 식사 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고사리국.
무우생체와 고추장
밥.

돈은 안쓰고 모아 놓으셨다가 동생들중에서 누군가가 돈없다고 하소를 하면 주시는 것이다.

어렸을때 먹고 자랐던 음식을 찾아 먹고 계신 것이다.

어렸을 때의 식습관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 이후로 생활비 대신에 식료품을 사드린다.

물론 친정엄마도 젊었을 때 당연히 희노애락을 겪으셨다.

5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 관한 일과 집안일은 모두 엄마 차지 였다.

심지어는 김장철이면 배추를 250포기 담갔고 김장독도 뒷뜰에다 손수 땅을 파서 파묻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슈퍼우먼이다.

영숙이가 여고 1학년때 아직 36살의 젊은 엄마는 동네 친구를 사귀었다.

그 엄마는 돈많은 영감의 세컨드였는데 아들이 하나 있었다.

두사람은 낮에는 영숙이네 이층 큰방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축음기를 틀고 사교댄스를 추었다.

밤이면 예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이트 클럽으로 실습을 나갔다.

"엄마 어디 가?"
"친구 만나고 올께"
"친구 만나는데 왜 한복을 입고 가?"
"친구랑 춤추러 갈려구."
"어디로 추러 가는데?"
"중앙나이트클럽으로 추러 가는데 그냥 춤만 춰. 친구는 남자에 관심이 있던데 난 남자에는 관심이 없어"

한복을 곱게 입은 키가 크고 날씬한 엄마는 한창 물이 오른 꽃처럼 영숙이가 보기에도 정말 예뻤다.

영숙이는 걱정이 됐다.

'저러다 바람이라도 나면 우리 5형제는 끈떨어진 연이 되는구나.'
'아버지는 우리한테 관심도 없고 맨날 바람필 궁리만하는데 엄마까지 그러면 안되는데'

큰방 아랫목에  얇은 담요를 덮고 우리 5형제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영숙이는 16살 ~ 고1
똘이는 14살 ~ 중1
쫑숙이는 11살 ~ 초4
민이는 9살 ~ 초2
막내는 4살

"언니. 우리가 학교 가고 나면 큰방에 남자 하고 여자들이 모여서 측음기 켜놓고 춤춰."
"어떻게 알아?"
"몇일전에 학교 마치고 집에 왔는데 큰방에서 남자하고 여자들이 모여서 축음기 음악에 맞춰서 춤추는거 봤어."

영숙이는 자율학습하느라 늦게 오기 때문에 본적이 없다.
막내는 아직 어려서 집에서 매일 그 광경을 봤을테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같이 다니는 엄마가 집으로 찾아 왔는데 화려한 목단꽃 같았다.
크고 화려하지만 향기는 없는 꽃.

그 엄마 아들은 영숙이 또래였고 영감은 한달에 한번 온다고 하였다.

지금 세대들은 이해가 안되겠지만 그때는 사교춤 추는게 불법이었다.
그래도 남녀들이 어딘가에 몰래 모여서 춤을 추면 지금 불법 도박장을 급습하듯 불법으로 모여서 춤추는 곳을 급습하여 춤추던 남녀들을 검거하던 시절이었다.

굴비처럼 엮여서 잡혀가는 모습이 한번씩 뉴스를 도배 하였다.

'아버지한테 일러서 못하게 해야겠네.'

청주 시청에 다니시는 아버지는 주말에만 오셨다.
주말에 오신 아버지한테 말했다.

둥그런 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엄마는 부엌으로 무언가를 가지러 갔었다..

"아버지. 엄마 춤바람 나서 낮에 큰방에 남자하고 여자들 모아놓고 축음기 켜놓고 춤춰요."
"밤에는 나이트 클럽가고요"
"내일 출근한다고 하고 숨어서 지켜봐야겠네.'

아버지는 월요일 아침에 출근한다고 하고는 집근처에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모여 드는 것을 보고 불법 무도장을 급습했다.

영숙이는 걱정이 되어 아파서 자율학습을 못하겠다고 말하고 정규수업이 끝난 다음 청소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왔다.

1층에 사는 세입자가 아직 안나가는 바람에 비어있는 2층에 살던 영숙이네는 큰방과 작은 방을 쓰고 있었다.
큰방에서 아버지가 엄마를 쥐잡듯이 잡고 있었다.

큰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말리려고 큰방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슬그머니 놓고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엄마를 다잡는 소리가 들렸다.

"이혼하자. 이혼해. 그러구 나랑 계속 살생각은 아니겠지."

벽에 엄마 머리를 붙잡아서 콩콩 박으면서 하는 말이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그럴께요"

영숙이는 숨소리도 안내고 엄마 아버지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다음날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출근하셨다.
엄마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집안 일을 하셨다.

축음기는 없어지고 큰방에 춤추는 남녀도 더이상 모이지 않았다.
엄마도 더이상 밤에 나가지 않았다.

엄마 친구가 화려하게 치장하고 이쁘게 화장한 얼굴로 엄마를 찾아 왔다.
키가 크고 화려한 그 엄마 얼굴이 대문 위로 쑤욱 올라와 있었다.
영숙이가 엄마 대신 대문에 가서 말을 전했다.

"엄마 이제는 안가신대요. 앞으로는 안가신다고 찾아오시지 말래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영숙이가 대학생일때 하루는 엄마가 말했다.

"그 엄마 죽었대"
"왜?"
"영감이 안온다고 방안에 연탄불 피워놓고 죽었대."
"아들이 있다고 했잖아."
"응.아들이 충남대학교 다닌다고 했어. 다 키웠지. 군대갔다고 하던데. 죽은여자만 불쌍하지."
"영감이 와서 장례를 치렀대."
"영감은 왜 안온다고 했대?"
"큰마누라한테 들켜서 이젠 못온다고 했대."
"그렇다고 죽어?"
"영감이 몇달동안 안왔는데 영감한테 전화 걸어서 안오면 죽는다고 했대."
"설마 죽으려고 생각해서 안왔었나봐. 그래도 걱정되서 왔더니 너무 늦게와서 벌써 죽어있드래."

그후 소식을 모른다.
어쨌든 세컨드는 큰마누라가 알게되면 끝장이라는 것.
잘된다하더라도 후손에게 오명이 남는다.

여상에 같이 근무하던 여선생님이 아주 이쁘고 성격도 좋고 좋은 대학을 나오고 집도 잘살았다.

여선생님의 이주 잘지은 석조 건물로 된 주택을 방문했을 때다.
좋은집에서 잘사는게 부러운 영숙이다.

같이 몰려다니는 또래 여선생이 그선생에 대해서 말했다.

"저 선생 할머니가 울산에 아주 부잣집 세컨드였대.

성경에도 이삭과 이스마엘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도 그 후손은 갈등을 빚고 있다.

지금 세대는?
조강지처도 없고 남녀가 뜻이 안맞으면 쉽게 이혼한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세계 평균보다 높다.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어지는건 역시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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