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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부부탐구생활

이중의 고통

by 영혼의 닻을 찾아서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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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의 고통 >  

   오늘의 말씀 : 디모데전서 1:16       글쓴이 : 빌 & 린 하이벨스    오늘의 성경 : 디모데전서 1: 12 ~ 17

 아마도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 중 가장 흔한 것은 

 "결혼은 행복을 책임져 준다."

 

 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식장의 중앙 통로를 걸어가는 것이 곧 행복의 현관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실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의 신화는 당신이 결혼의 수학을 고려할 때 진정 우스워 보인다.

 즉 한 죄인 더하기 한 죄인은 두 죄인이 된다.

 한 지붕 아래 '이중의 고통'이 생겨나는 것이다.

 게다가 조만간 태어날  '어린 죄인들'(자녀들) 둘을 더해 보라.

 그러면 우리는 한 지붕 아래 '네 배의 고통'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 된다.

 

 심지어 성숙하고, 잘 적응하고, 성령 충만한 신자들도 결혼 생활 중 셀 수 없는 불균형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경제적 불균형이 있다.  - 남편은 골프 회원권을 원하지만, 아내는 식기세척기를 원한다.

 오락적인 불균형이 있다.  - 아내는 여행하길 원하지만, 남편은 정원 가꾸기를 원한다.

 성적인 불균형도 있다. - 남편은 오늘밤 로맨틱하길 원하지만, 아내는 어제 그러했다.

 사회적인 불균형이 있다. - 아내는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은 친구들을 좋아한다.   이외에도 얼마든지 새로운 불균형이 생겨난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결혼은 멋진 것이다.

 결혼은 깊은 만족을 주고, 상호간에 성취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결혼이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배우자 모두가 여러 해 동안에 걸쳐 결혼이 성취감을 주도록 매우 높은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대가 없이 우리는 결혼을 멋지게 꾸밀 수 없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묵상>

 

* 통상적으로 결혼을 '보장된 행복'으로 보는 신화적인 관점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결혼에서, 행복이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해 당신은 어떤 노력을 하는가?    

                                                        참조 성경 : 이사야 64: 6,  로마서 3:22 - 24
                    커플 성경 (개역개정 . 새찬송가) 편찬대표 : 캐더린 드브리즈, 폴 우즈 (성서원) 338쪽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배우자의 마음을 잘 알 수가 있을까.

 

 은퇴 이후 베이비 붐 세대가 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갈등을 많이 겪는다.

 결혼 이후 그동안 신혼 기간을 거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집에서 보다 밖에서의 생활반경이 더 컸었기 때문에 어느날 부터 준비없이 함께 24시간을 해야 한다는 일이 절대로 쉽지 않은 것이다.

 

 울산만 해도 1인 가구가 1/3이나 된다고 한다.

 왜 1인 가구가 이렇게나 많을까?

 그중에 상당수가 베이비 붐 세대다.

 

 베이비 붐 세대인 우리 세대는 유교 기반의 사회를 이끌던 세대의 마지막 세대이고 핵가족 세대의 처음 세대이다.

 가부장제도의 아버지에게 복종하며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란 세대라서 어른들에게 자기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곧 배운바 없고 예의가 없는 사람이 된다고 인식하는 세대다.

 결혼해서 시부모님에게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는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라."

 

 였다.

 이해가 안되었다.

 왜 부당한데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 하는 것일까?

  jinnssam은 어려서부터 친정엄마 말대로 "우길성"이 많은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그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무엇을 "우길성"이라고 하는지 사실은 잘 몰랐었다.

 어느날 부터 "우길성"이란 자신의 의견과 틀린 의견 앞에서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것을 "우길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철희도 말했다.

 

 "좀 시키는 대로 해라."

 "말 좀 들어라."

 

 이제는 jinnssam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말좀 들어라."가 되었다.

 시부모님의 지론은 말을 안들으면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jinnssam처럼 말안듣는 여자는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도리로 때려야한다는 지론이다.

 그래야 말을 잘듣는다는 지론이었다.

 실제로 어머니는 정말 말 잘 듣는 여자였다.

 

 지금도 jinnssam에게 기억되는 장면은 초기 치매이셨던 어머니랑 아버님이랑 남편과 함께 외식을 가서 식사를 할 때면 맛있게 먹는 어머니한테 아버님이

 "이제 좀 그만 좀 먹지?"

 그러면 어머니가 먹다 말고 재빨리 수저를 내려 놓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정말 jinnssam 마음이 아팠다.

 오랜 세월동안 말 잘 듣도록 훈련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신혼 시절에 시부모님 왈
"저런 년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라고 시키는데로 결국 남편으로부터 맞았지
만 그 때문에 jinnssam
은 더 말안듣는 여자가 되었다.

 무얼시키면 먼저

 "싫어."

 라고 대답했다.

 

 방학하는 날이었다.

 커텐이 너무 더러워서 좀 빨아볼까?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는데

 "방학 동안에 커텐 좀 빨지?"

 그냥

 "커텐이 많이 더럽네 ~ 먼지가  내려 앉았나?"

 이랬으면 빨았을지 모르겠다.

 커텐을 빨라는 명령에 방학이 끝나는 날까지 빨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는 날 또 말했다.

 "커텐 좀 빨지?"

 "이제 방학 끝났어. 커텐 빨 시간 없어."

 결국 그 커텐은 안빨고 떼어 놓았다가 안달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이런 베이비 붐 세대가 다음 세대 아이들이 의견을 내어 놓으면

 

 "음 그렇구나."

 

 무조건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 잔소리가 되고 고집스런 사람이 된다.

 무조건 아이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이렇게 동양적인 유교 관습과 서양적인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이론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세대가 바로 베이비 붐 세대다.

 
사람은 잘 안바뀐다.

 그러다보니 이혼율도 높아지고 혼자사는 가구수도 늘어나는 것이다.

 

 누군가가 jinnssam에게 물었다.

 결혼 생활이 어땠냐고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평생을 통한 끊임없는 투쟁과 도전이었다고"

 

 그랬다.

 
목표로 한 것을 붙잡고 놓지않고 끊임없이 투쟁하고 도전하고 앞으로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한발자욱도 나가지 못했을 뿐더러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 더 힘이 들었다.

 
예수를 믿고 나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고 잘못된 스스로에 대한 생각과 관념을 이겨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생에 대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학교 - 집 - 교회의 빠듯한 일정 속에 숨쉴틈없이 돌아갔지만 마음 만은 여유를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하나님의 도움이요.

 은혜일 것이다.

 

 평생을 통하여 여러가지 경제적, 오락적, 성적, 사회적 불균형을 맞춰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의 우리 부부 모습이 되었다.

 서로를 가장 많이 의지하고 서로를 가장 많이 돌볼 수 있는 상태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jinnssam도 많이 변했지만 철희도 정말 많이 변했다.

 음식점에서 진짜 천천히 먹는 jinnssam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도 그렇고 아파트 문안으로 들어가서 들어 올때까지 기다리고 자동문이 열리도록 해주는 것도 그렇고 엘리베이터로 먼저 올라가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도 변한 모습이다.

 

 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통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기댈데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건지.

 힘들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었음에 정말  감사한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마찬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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