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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 않는 바이올린 >
박시호의 행복편지 5에서
남편의 친구가 어느 날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는 얼굴도 잘 생겼으며 건강해 보였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남편과 같이 있는 동안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매혹된 나는
"악기도 다룰 줄 아세요? "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악기요?" 하더니 한참 무언가를 망설이던 그는 입을 열었다.
실은 바이올린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 되었지요.
나는 왜 그만 두셨냐고 물었다.
"실은 결혼 당시 제 아내한테 바이올린을 켜주었을 때, 제 바이올린 솜씨가 형편없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는 바이올린을 정말 잘하는 사람을 몇 안다고 말하더군요. 무슨 뜻이었는지 알 수 없었죠."
그 후로 그는 20년 동안 단 한번도 바이올린을 잡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사람 같이 보이지 않았는데, 자기 아내가 무심코 던지 한 마디에 20년 동안이나 바이올린을 잡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참 상처받기 쉬운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내 남편도 얼마나 많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숨기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 사람은 노래를 아주 잘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집에서는 편한 마음으로 노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도 싫어하고 ~~~
아내는 너무 시끄럽다고 한다고 ~~~
나는 진정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듯 정감 있고 사랑이 넘치는 노래를 어째서 그 사람의 아내와 아이는 들어주지 않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설사 자기 남편이 노래를 음정이 틀리게 부른다 해도 가슴에 사랑이 있다면 기꺼이 들어주고 만족해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언젠가 남편이 쉬는 날 집에서 조그만 의자를 만들었다.
값 비싸고 고급스런 의자와는 달랐지만 나는 그것이 나름대로 큰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마음을 전해주는 방법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그 의자에 앉아서 기뻐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남편이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 삼아 얘기할 때, 그것이 다소 지루할지라도 조금은 감탄하며 들어주는 것 역시 그에 대한 작은 사랑이자 배려라고 생각해 왔다.
이렇듯 가정이란 별 것 아닌 작은 이야기도 자랑 삼아 나눌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다정하고 관대한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볼품 없고 조잡한 의자는 당신이나 앉으라."는 말로 남편을 외롭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미 없는 말들은 남편의 가슴에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하나 더 보태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돌아 간 후 ~~~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울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계속되는 한, 내 마음 속에도 역시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란 없을 것이다.
내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울게 해 주었다"는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계속되는 한, 내 마음 속에도 역시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란 없을 것이다.
💕 신혼 때의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을 변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 있다.
여선생님들끼리 모여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는데 누군가가 시댁 식구들이 수건을 한번 쓰면 무조건 빨고 삶는다는 소리를 했다.
집에 와서 보니까 남편도 한번 쓴 타올을 빨래통에다 넣고 있었다.
한번 쓰고 빨래통에다 넣지말라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타올을 빨래통에 넣는 경우가 없었다.
나중 생각하니까 많이 미안하였다.
간호사임에도 아이 체온을 잴때마다 "후꾸루 간호사"라고 놀렸다.
처음에는 웃기느라 하는 말이려니 나중에는 상처를 받았다.
학교일에도 평가절하를 하였다.
노느니 학교 가는 것처럼 ~~~
항상 잘생겼다고 말해주었더니 아예 대놓고 "야수와 미남"이란 표현을 썼다.
드디어 어느 날 폭발.
잘생겨서 잘생겼다고 하는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말해주는 거라고 ~
이왕이면 좋다고말해주고 이왕이면 잘한다고 말해주면 덧냐냐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하고 잘 지내는게 제일 어렵다.
어쩌다 만나는 사람하고 잘지내봐야 나쁠 건 없지만 같이 지내는 사람하고 잘 지내는게 제일 좋다.
평생 철희한테 감사하는 일이 있다.
"나하고 결혼한거 후회 안해? "
"응"
"나하고 결혼한거 어떻게 생각해? "
"잘했다고 생각해."
오늘 엄마한테 갔다.
엄마는 같이 지내는 석이 욕을 하려고 하였다.
석이가 나에게 "벌컥 화"를 내니까 "기회다" 싶은 가부다.
석이를 뭐라한게 아니라 엄마를 나무랬다.
"엄마.
같이 있는 사람하고 잘 지내야지.
나한테 이야기 해봐야 소용없어.
나는 가버리면 고만이잖여.
같이 있는 사람하고 좀 잘 지내요.
나도 집에서 이서방하고 잘지려고 애써요."
엄마가 석이 욕을 하려다가 눈을 끔벅끔벅하더니
"그래. 그래야지.
잘지내야지."
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신다.
석이는 누나가 편들어 주니까 얼굴색이 환해진다.
가까이 있는 사람하고 잘지내는 법을 애써서, 노력해서 자기 인격화해 야 할 것 같다.
이제 30년이 다되어 가는 일이지만 지금도 생각이 날때마다 마음 아픈일이 있다.
민이가 결혼해서 누나 집에 다니러 왔다.
다같이 정자 바닷가에 갔을때 노래를 좋아하는 동생 민이에게 명태를 불러 달라고했다.
검푸른(감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카~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짜악짝 짖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허허허
명태 허허허 명태라고 음 허허허허 쯔쯔쯔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다 불렀을 때 박수를 치면서
"와 ~ 정말 잘부른다. ~ "
그러면서 민이 처를 바라 보았다.
"뭐가 잘 불러요?
전에도 몇번 불러주던데 별루예요."
노래 부를 때의 그 빛나던 동생 민이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보통 사람들은 가사 외우기도 힘든 그 어려운 노래를 불렀는데 잘부른다고 해주면 안되나?
꼭 그런 소리를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은 올케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후 얼마 안되어 하늘의 별이 된 민이를 생각할때마다 함께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되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
멀리 아프리카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기부금을 보내면 힘이되겠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섬기는 말 한마디만 있으면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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