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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천만원으로 건강을 샀다.>
세상에 오천만원짜리 건강이 있을까?
' 와우 ~ 있을 수가 없지.
그러면 어떻게 오천만원으로 건강을 사게 됐을까?
사실 은퇴 전 부터 은퇴하면 카페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언제인가는 카페를 열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학 때 그때 유행하던 "일일 찻집"을 열게 되면서 부터다.
"일일 찻집"
고등학교 동창생들 10명이 모여서 모임을 하고 있었다.
경민이와 보경이와 친했는데 경민이와 보경이와 친한 아이들이 모였고 거기에 jinnssam도 끼었던 것이다.
경민이와 보경이가 아담한 사이즈여서 그랬는지 친했던 아이들이 전부 아담한 사이즈에 귀엽고 상냥한 여유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었다.
전부 다들 이제 70이 가까운 나이들이 되었을 텐데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보고 싶다.
고등학교 연합 동창회 밴드와 우리 기수 동창회 밴드에 연락 달라고 올렸는데도 답이 없다.
우리 모임에서 특히 기억이 나는 건 대천 해수욕장에 다 같이 놀러 갔던 일이다.
여고 졸업하고 첫해여서 거의 전부 다 참석했었던 것 같다. 특히 귀엽고 예뻤던 회장의 간곡한 종용으로 대천 해수욕장까지의 나들이가 성사 되었던 것 같다. 회장 이름이 엄기숙?이었던 것 같은데 확실이 기억이 안난다.
그렇게 이어진 모임에서 겨울에 "일일 찻집"을 열기로 하였다.
대전역 앞에 있는 다방을 그때 일반 직장인의 한달 월급인 15만원을 주기로 하고 빌려서 티켓을 만들어 나누어 주고 팔라고 하였다.
생각처럼 티켓은 팔리지 않았다.
파는 것 보다는 절친들에게 공짜로 주고 커피 마시러 오라하고 커피 값은 티켓을 준 우리가 감당했기 때문에 티켓 수입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전 역 앞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때는 대전 역 앞이 최고의 번화가 였다.
하루를 마치고 결산을 하는데 하루 임대비 빼고 이것 저것 빼고 순이익이 23만원이 나왔다.
그 돈으로 18만원이었던 쌀 한가마니를 사고 나머지로 떡국 떡을 사서 트럭을 타고 양로원으로 가서 어른들을 모아놓고 그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떡국을 끓여서 다 같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모임은 흐지부지 ~
아마도 회장이 열심히 할 때는 모임이 잘 이루어졌었는데 회장이 다니고 있던 회사 사장 아들과 약혼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후 왜인지 모르지만 파혼을 했다고 했다.
이후로 회장이 활동을 하지 않는 바람에?
모임도 그렇게 끝나고 일일 찻집은 한번으로 끝났지만 옛날 다방 이미지가 안좋아서 그렇지 하루 판매한 이익이 한달 월급이 되는 것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이후 학교 축제마다 일일 찻집을 열었는데 항상 높은 이익을 누렸다. 원가가 너무 쌌고 가성비가 너무 좋고 뜨거운 물에 커피 가루만 타면 되는 쉬운 일을 하루 열고 한달 월급은 정말 큰 돈이었다.
지금도 잘되는 카페는 그 이익이 셀러리맨의 한달 급여를 넘나들 것이라 생각된다. .
일일 찻집을 할 때 마다 생각했다.
언제인가는 커피 장사를 해야겠다.
스타 벅스가 상륙했을 때 우리 나라에도 커피 사랑이 시작 되었다.
울산에 스타 벅스가 옥교동에 처음 생겼을 때 남편과 함께 옥교동 예전 주리원 백화점 옆에 있던 스타 벅스까지 가서 커피를 마셨던 생각이 난다.
방학 때 마다 한양 방문을 하면서 명동에 있던 스타 벅스도 방문하였다.
티비나 신문이나 거리를 지날 때에도 카페를 눈여겨 유심히 살펴 보았었다.
직장인이 카페를 할 수는 없고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데 동서가 착하고 차분하고 계산을 잘 하는 사람이어서 함께 하고 싶어서 명절 때 동서 집에 가서 말했다.
"동서 커피 좀 배워. 우리 카페 열자."
시기가 빨랐었나 보다. 시부모님 말씀이
"돈독이 올랐나? 먼 다방을 한다고 난리여."
다음에는 동서가 음식 솜씨가 좋아서 반찬 가게 하자고 했다가 메몰차게 거절 당한 이후에는 동서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시동생이 독서실을 하겠다고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거절했다가 어머님의 미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생각만 하고 시도도 한번 못해 보고 시간은 화살같이 흘러 40대를 보내고 50대 후반이 되었는데 친척 결혼식에 갔을 때 동서가 말했다.
"형님. 언제 은퇴해요?"
"왜?"
"형님이 은퇴하면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진작에 jinnssam이 말할 때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하자고 했을 때 했다면 자금은 전부 jinnssam이 대고 잘되던지 안되던지 동서 월급은 계속 줬을텐데 ~ 그만큼 동서에 대한 신뢰가 컸었다.
그런데 이제 동서에 대한 관심을 끊고 나니 하자고 하네?
참 인생은 왜 이렇게 어긋나는 것일까?
50대 후반이 되니까 좀더 조심스러워져서 무언가 다른 사람을 시켜서 무모하게 뛰어 든다는걸 할 수가 없었다.
60이 넘고 정년 퇴직이 일년 남았을 때 명퇴를 하니까 명퇴비가 4000정도 나왔다.
"이제 카페를 여는거야."
마침 가지고 있는 상가에 기타 학원이 너무 잘 되어서 많이 벌어 근처 건물 4층 전체를 세 내어서 이사를 갔다.
"옳타구나. 내 상가니까 월세도 안내고 맘 편하게 카페를 여는거야."
사실 너무 바쁘게 교회와 집과 학교를 쳇바퀴로 살아서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
혼자서 노는게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놀아야 하는게 두려웠다.
"카페를 열고 찾아 오는 손님들과 노는 거야."
어림도 없는 상상을 했다.
손님은 손님 일 뿐이었다.
지나가는 과객은 그냥 지나쳐 가는 과객 일 뿐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모든 것은 겪어봐야 안다.
그냥 이론 상으로는 무엇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
지만 경험해봐야 뭐가 뭐인지를 안다.
코로나가 닥치면서 바로 문을 닫았다.
남편 철희 왈
"3년 동안 오천만원 까먹었구만."
시시 때때로 불리할 때마다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그려. 오천만원 날렸어. 평생 해보고 싶었던거 해봤고 카페 하느라 규칙적으로 활동하는 바람에 건강도 샀어. 오천만원으로 건강을 샀으니까 더 이상 말하지마."
요즘 철희가 가끔 카페나 부동산을 이야기 할 때마다 화가 난다. 그토록 귀가 닳도록 이야기 할 때는 코웃음만 치더니 왠 카페나 음식점? 부동산? 그럴 때는 이렇게 쏴 붙인다.
"카페 해서 오천만원 까 먹고 망해 본 사람이 말하는데 절대 하면 안돼. 돈 못 벌고 매달 나가는 비용 장난 아니고 설겆이에 청소에 그냥 이쁜 카페에 가서 한잔 사먹는게 최고여."
오천만원으로 건강을 사본 사람이다.
"자영업자 아무나 되는게 아녀. 그 사람들 삶을 내놓고 평생을 바친거여. 그래도 먹고 살만큼 버는 사람이 열명 중에 하나여. 그래서 월급쟁이 하는거라니까. 돈도 주고 규칙적인 생활도 주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토,일 놀잖여"
어제 톡으로 이런 내용이 왔다.
"김상무 부인이 아침에 성당에서 예배 드리다 심장마비로 운명하였다네요"
김상무는 남편 철희하고 자주 어울리는 분이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심장마비가 아니고 뇌출혈"
"아.네."
"갔다가 집에 오는 길임."
"어데."
"네 조심해서 오셔요."
"지금 교회 저녁 기도회 시간에 늦었지만 기도하고 가려구요."
"생사화복이 다 하나님께 있으니 기도외엔 길이 없답니다."
"기도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세상에 영원히 사는 사람 없어요. 하나님이 오라고 하시면 가야해요."
"인명이 제천이라잖아요. 뭐든지 최선을 다하고 잘 관리하고 그러는 거지요."
"자신의 몸이 성전이니 깨끗하게 잘 관리하고 음식도 골고루 섭취하고요."
"그려."
카페 덕분에 은퇴 루틴이 생겼다.
평생 일찍 일어나는 일을 그렇게 힘들어 했는데 맘껏 늦게 일어나고 점심 꼭 챙겨 먹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루틴을 만들어 냈다.
세월이 지나 갈 수록 오천만원으로 건강을 샀다는 것이 너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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