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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양초 한자루가 밝혀주는 세상

by 영숙이 2020.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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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초 한자루가 밝혀주는 세상>

                                                  (김인숙. 울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처용수필 제2호. 1996. 겨울)

 혜전이가 여섯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일이 있는 엄마라 저녁에 빠질 수 없는 모임이 있으면 같은 아파트의 옆 동에 사는 이모에게 아이를 맡겨 놓곤 하던 때이다. 늘 옆에 끼고 씨름하면서 사는 엄마들과는 처지가 달라서, 아이가 그냥 잘 놀고 있어도 괜히 마음이 아프고 그 또래의 아이들이 다들 가는 유치원에 보내면서도 꼭 못보낼 곳을 보내는 것처럼 뒤가 돌아보아지는 터였다. 그래서 엄마같은 큰 이모와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저녁 시간에 아이와 함께 집에 있어 주지 못하는 것이 모임 내내 마음이 쓰였다. 

 조급한 마음에 앨리베이터가 느린 것을 탓하며 초인종을 울렸다. 호호호 까르르 하며 다가오는 웃음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무섭게 언니는, "인숙아 니 딸 천재다! 천재!"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말이 좋아서인지 엄마가 와서 반가워서 인지 혜전이가 옆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무슨 일이야? 우리 아가씨가 또 무슨 일로 이모를 놀래켰어?"

 내 말에 언니는 손에 든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양  초>

양초는 

춤추는 거인 

 삐뚤삐뚤 어린아이다운 글씨로 쓰여진 짧은 시 한편(!)과 나름으로 정성을 들여 그린 촛불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 옆에서 언니는 자초지종을 들려 주었다. 

 잘도 먹고, 잘도 놀고, 하도 기특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데리고 노는데 어스름 무렵에 느닷없이 정전이 되더란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양초를 찾아서 부엌과 거실 여기저기에 촛불을 켜고 다니는데 치마에 붙어 다니던 아이가, "이모, 촛불이 너무 아름다워요." 하더란다. 사내 녀석 둘을 키워 오는 동안 치고 받고 우당탕 대는 시절을 지나 이제 정나미 없이 무뚝뚝하기만 한 꼬락서니를 푸념을 하던 터라 조그만 여자애가 살갑게 붙어 다니며 이것저것 정겹게 묻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이렇게 사물에 대한 아름다운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기특하고 신기하더란다. 

 "이모, 촛불은 그냥 불처럼 붉지만 않구요. 끝은 참 예쁜 푸른색이네요. 가만히 타지 않고 우리가 숨을 쉬니까 이렇게 이렇게 움직이지요."

 신기해서 빠져들 듯이 좃불을 바라보는 혜전이와 함께 언니도 정말 오래간만에 주변의 어줍잖은 사물 그 자체가 가져다 주는 섬세하고도 순수한 즐거움에 젖을 수 있었단다. 여태껏 특별한 느낌없이 대하던 촛불을 둘이서 한참 바라보며 정말 혜전이 말처럼 촛불 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단다. 

 그렇게 둘이서 한동안 촛불에 매혹되어 있다가 이제 저녁 준비를 해야겠다 싶어서 혜전이더러 잠깐 혼자 놀고 있으랬단다. 아이는 촛불을 보다가 책을 보기도 하고 또 언니에게 큰 소리로 말을 걸기도 하면서 잘 놀더란다. 그러다가 언니는 반찬 장만하느라 자지러져서 깜박 아이 생각을 잊어버렸단다. 대충 저녁 준비를 마쳐 놓고서야 아차! 하면서 거실 쪽을 쳐다보니, 아이는 조용한 가운데 뭔가를 열심히 종이에다 그리고 있더란다. 

 "혜전이 뭐하니?"

 "응, 이모. 나 시 썼어."

 뜻 밖의 대답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으로 다가간 언니는 혜전이가 쓴 시의 아름다운 표현에 또 한번 놀라면서 물었단다. 

 "혜전아, 왜 양초가 춤추는 거인이니?"

 "응 이모가 저녁 준비하는라 이리저리 움직이니까 촛불이 춤을 주지. 그리고 이모 그림자를 거인처럼 크게 만들어 주고 그 그림자도 따라서 춤을 추니까 춤추는 거인이지."

 아이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모는 아이를 덥석 끌어 안고 예쁘고 작은 엉덩이를 아프도록 토닥이고 말았단다. 

 나 또한 한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아이를 부둥켜 안았다. 주변의 사물을 향해 열려있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과, 양초 한자루와 그 타는 모습도 예사롭게 넘기지 않는 그 따뜻한 시선이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아이를 안은 가슴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사랑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 양초 한자루가 밝혀주는 세상 >은 양초를 대하는 아이의 순수한 영혼과 그를 지켜보는 어른 들의 시선을 그려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교육 시킬 수록 아이들을 근시안적으로 그리고 좁은 시야를 갖게 한다고. 창의성이라는 것을 키워주는게 아니고 있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려고 몰려들어 100:1의 확률을 뚫으려고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현상이라고.

 잘못된 것인줄은 알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몰랐었다. 그러다가 메리츠 펀드의 존리가 말하는 금융문맹에 대한 유튜브를  듣고 막연히 잘못되었다는 느낌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교육이 문제였다는 것도 알았지만 어떻게 문제라는 걸 알 수 없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과 창의력을 말살 시키는 교육이 문제였던 것이다. '세월호'라는 아픈 사건을 겪었어도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훈련을 못하는 교육 ~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20조의 돈이 창의력을 없애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숙이에게 여동생이 2명 있는데 그중 큰 여동생에게는 남자애들만 2명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교를 통틀어 한사람에게 개인 과외 교습 비슷한 걸 했는데 항상 성적이 뒤에서 3번째라고 하였다. 왜 그렇게 과외를 시키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적이 그토록 안나온다면 차라리 집에서 그냥 과외비 가지고 맛있는거 사먹으면서 하고 싶고 놀고 싶은거라도 하게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고 큰애는 아직 대학을 거의 10년째 다니고 있고 작은 애는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공무원이 되었다. 전공과 상관없는 공무원이 될려면 뭐하러 4년동안 등록금과 시간을 들였을까나. 그런 것을 이사회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교육 변해야 한다. 우리의 금융문맹도 탈출해야 하는 하나의 과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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