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김종한. 북정신용협동조합 이사장 직무대행. 처용수필. 제2호. 1996. 겨울)
내 고향은 첩첩으로 산이 둘러진 곳이였다. 하늘만 훤히 틔여있고 온통 녹음이 에워쌓는 마을은 녹색포장의 자연 그대로의 심산유곡일 뿐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그날부터 소를 돌보는 당번은 내 일과다. 풀밭으로 소를 몰아내면 풀어둔체 나는 잔디에 누워 책을 읽었다.
귀가길의 내 팔굽 밑에는 독파된 책이 끼워져 있었다. 책장의 몇군데 빨간줄을 친 명구절이 선택되기도 했다.
마음속으로는 오늘 읽어 낸 책보다는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상상의 환상에 젖어 노벨 문학상을 몇년안에 받을 것만 같았다.
동구밖 산을 따라 황혼이 한폭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었고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마을로 소달구지에 짐이 실려 들어오고 있었다.
밤하늘에는 별빛이 차갑다 못해 무서워 지기까지 하는 공간을 별똥별이 미끄러져 갔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은하수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한해 여름은 녹음의 포장 속에 독서로 일관되고 책장이 넘겨지는 숫자와 방학의 기간은 바꾸어져 나갔다.
풀밭이 독서공간인 나를 실개천이 흐르며 들려주는 이야기로 키워갔다. 바람이 시샘하듯 책장을 먼저 넘겼다.
매미소리가 귓속으로 기어들어 왔다.
자연의 소리들은 소음이 아닌 질서 정연한 소리로 이루워 지고 있었다. 햇빛이 옮겨가는 나무그늘은 작열하는 더위의 차도를 조절해 주기도 했다. 한겹 두겹 산들이 성벽보다 굳게 쌓고 있어. 소년의 탈출구가 없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고향마을은 내 유년기의 요람이였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관통해 간다. 시간마다 노선버스도 와 닿는다. 시골집 담모퉁이에 승용차와 소형 트럭이 꾸벅꾸벅 졸아댄다.
그 조용한 산골마을을 잃어버렸지만 바로 그 곳이 나를 키워준 낭만의 마을이였고 지금은 그리움이 축적된 고향이다.
독서하는 풀밭엔 여름 내내 가냘프고 청초한 들꽃들이 피고 있었다. 이들은 언제 찾아도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들려주곤했다.
소녀들의 조잘됨같이 개울물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뿌리 내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말이 없다.
꽃은 무언의 몸치장으로 미소를 머금은 몸차림이다.
움직이는 것들은 소리를 내었다. 새는 노래하거나 울며 이동하고,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바람소리를 들려 두었다. 물은 흐르면서 존재를 알리는 몸짓으로 표현해 내었다. 자연의 소리인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가 내 시심을 잉태시켜 가슴 속에 자라게 적셔주었다.
들꽃이 얼굴을 보이며 침묵을 일깨우고 마음 속에 아름다움을 수 놓아 시를 쓰게 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움으로 적셔준 자연이라 소년시절은 자연그대로 였는지 모른다.
어느것 없이 보게 되는 것은 미의 극치로 나를 산골에 머물게 한 요인들이다.
밤마다 풀벌레 소리가 창호지 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음악의 용어 소나타의 하모니였다.
늦잠에 취한 나를 깨우지 않고 아들의 성공을 염원하는 일념으로 어머니는 새벽에 혼자 밭으로 나가셨다.
아침마당에 닭들이 모이를 찾고, 감나무 위의 거미줄에 이슬방울이 영롱하다.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의 사실화가 아니면 한구절의 명시들 뿐이다. 이런 시어들을 표현해 낼 수 없는 나는 환성을 지르며 대체했다.어머니 손길이 쌓여 있는 장독간 옆에는 봉수아꽃이 피고 있었다.
한낮의 여름바람은 봉숭아꽃을 흔들었지만 손톱에 물들이지 못하고 지나쳤다.
봉숭아를 심은 어머니도 일에 쫓겨 손톱을 한번 가꾸어 보시지 못하고 꽃이 진 자리에 까만 씨가 매달렸다.
바람은 논과 밭 위로 지나간다. 물구나무 서서 지나갔는지 밟힌 자리가 없다. 풍년을 기약하듯 이랑마다 알차다.
여름바람은 선풍기를 모르고 살아온 마을 사람들의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했다. 차곡차곡 곡광 속에 쌓이는 농산물보다 풍성한 언어로 내 시심을 열어준 들꽃은 피고 있었다.
손마디가 거친 어머니의 소가락엔 반지 하나 볼 수 없고 들꽃도 화장끼가 없다. 어머니 얼굴처럼 청초한 모습으로 피어있었다.
한해농사의 소출이 연말결산의 대차대조표보다 더 정확하게 아들의 학비와 하숙비로 지출되었다. 전표 한장 없는 가감산이 이렇게 맞아 떨어질 수 있는 뒤안엔 허리띠를 동여맨 흔적으로 남았다.
산업사회로 변모한 오늘, 아들을 도회지로 보냈다. 비탈밭이 묵정으로 변해 들꽃이 지천으로 피고 있다.
명절에 찾은 고향집 마당에 할미꽃 차림으로 맞아주시는 어머니의 눈동자 속에 아들을 몽땅 담고 계셨다.
소리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은 청초하고 가냘픈 그것 뿐인가.
피고지는 되풀이가 어머니 차림같다.
아침이슬을 안고 있는 들꽃은 내 가슴 속을 씻어주고 헹구고도 남는다.
수정알 방울의 이슬은 아침에 보이는 최상의 맑음이다.
해마다 야생화는 어머니의 모습같이 한살이로 피고 살아가고 있었다.
◐ 독서하는 풀밭엔 여름 내내 가냘프고 청초한 들꽃들이 피고 있었다. 이들은 언제 찾아도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들려주곤했다.
소녀들의 조잘됨같이 개울물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뿌리 내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말이 없다.
꽃은 무언의 몸치장으로 미소를 머금은 몸차림이다.
움직이는 것들은 소리를 내었다. 새는 노래하거나 울며 이동하고,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바람소리를 들려 두었다. 물은 흐르면서 존재를 알리는 몸짓으로 표현해 내었다. 자연의 소리인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가 내 시심을 잉태시켜 가슴 속에 자라게 적셔주었다.
- 정말 주옥같이 아름다운 표현들이다. 같은 세대를 살아온 베이비 붐 세대로서 마음 속에 아름답게 그려진다.
요즘 청년들에게 말한다면 그 정서를 이해할까? 왠지 모를 그리움을 품고 있어도 그게 자연에 대한 향수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남자 아이들에게 학교 건물 옆에 자라난 풀을 뽑게 했더니 벌레가 있다면서 자지러진다. 체격은 어른 못지 않은데도 개미 한마리만 나와도 온갖 호들갑을 다 떤다. 큰일 난 것처럼 고함을 쳐댄다. 그때문에 옆에서 놀려대고는 했었다.
"왜 벌레가 너 잡아 먹을까봐 그래? 개미가 그렇게 무섭니? 개미나 벌레가 너 안잡아 먹어. 놀래긴 무쟈게 놀래네. 절대로 너 안 잡아 먹을테니까 풀 마져 뽑아"
중학생 남자 애들은 그렇게 말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화를 낸다.
"누가 무섭대요? 풀 뽑는거 정말 싫어해요. 안뽑을 거여요. 뽑기 싫다고요."
결국은 영숙이가 뽑고는 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풀 밭에 누워서 책을 읽으라면 글쎄 진득이 땅과 붙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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