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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박꽃

by 영숙이 2020.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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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

                                           (김종한. 북정신용협동조합 이사장 직무대행. 처용수필. 제2호. 1996. 겨울)

 나는 박꽃을 좋아한다. 박은 넝쿨도 좋고 꽃도 좋고, 그리고 열매가 더욱 좋다. 

 내가 박꽃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사십년 전이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문예반원 모집이 있었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어 지원을 했다. 

 국어과 담당이신 윤영준 선생님이 나의 문학을 눈뜨게 하셨고 항시 박과 인간생활을 비유하시고 우리 민족을 결부해 말씀하시며 내 문학수업도 박이 여물어 가듯이 알차게 굳으라고 수차 일러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박을 좋아하고 박에 관심을 두었다. 이 글의 내용에는 윤선생님의 말씀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 선생님을 한번 뵈올수 있으면 한다. 

 한마디의 교훈이 한 사람의 진로와 마음의 자세를 결정한 힘이라면 얼마나 맑고 밝고 참된 것일까. 

 선생님은 정년퇴임을 하신 분일지 모른다. 나같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참된 씨를 심어 주셨으리라. 

 다시 박 이야기로 돌아가자. 

 봄에 호미로 흙구덩이를 파고 소똥 거름이나 인분을 퍼부어 땅을 썩힌 후 한구덩이에 대여섯포기가 움트게 씨를 심는다. 

 며칠이 지나면 거의 같은 시간대에 박은 움터 오른다. 여러포기 중에 약한 놈들을 솎아버리고 두세포기만 키운다. 

 한뼘쯤 자라고, 키만큼 자라고, 기어이 넝쿨로 뻗어 나간다. 울타리나 지붕으로 기어오를 넝쿨손이 생긴다. 

 막대기를 받쳐주면 넝쿨손이 붙잡고 싱싱하게 뻗어 오른다. 

 박넝쿨이 뻗어나는 것을 보면 즐겁고 내가 자라는 것 같아 싱싱해진다. 

 고구려의 벽화처럼 힘찬 생명력을 갖고 있다. 어떤 넝쿨에서도 볼수 없는 힘이다. 나팔꽃 넝쿨은 연약하고 칡넝쿨은 복잡하고 오이넝쿨은 게으르다. 호박넝쿨을 보느라면 그만 잠이 온다. 주욱주욱 뻗는 것은 박넝쿨 뿐이다. 정말 남아답다. 

 꼭 같이 움터난 넝쿨들은 사다리를 받쳐주지 않으면 찬소리가 내릴 때까지 박넝쿨은 지붕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묘한 것이다. 그냥 땅으로만 기어나갈 뿐이다. 땅위의 박은 지붕위의 박보다 햇빛을 받는 시간이 적고 밟히기 쉬워 결실이 못하다. 

 박을 심어준 어머니나 내 손은 삶에서 선배나 동료나 전통이라 믿으면 된다. 협동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좋다. 내 한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가의 뜻을 알게 된다. 

 꽃은 더욱 좋다. 박꽃이 피는 계절은 온통 푸르고, 넝쿨과 잎이 푸르러도 박꽃은 한점 녹음에 물들지 않고 하얗게 피어나는게 좋다. 그래서 나는 꽃중에 박꽃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석양이 되면 모든 꽃들은 입을 다무는게 많다. 이때 수줍게 피어나는 박꽃을 보느라면 나는 조용해진다. 

 내 유년기엔 시골에 시계가 흔하지 않았다. 볼 수가 없었다. 여름 장마가 겹쳐 해를 볼 수 없을때는 지붕위의 박꽃을 보고 저녁시간을 점치곤 했다. 박꽃이 피는 저녁이면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시골풍경이 그리워진다. 

 열매는 어떤가, 넝쿨과 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더욱 좋다. 

 뻗어나는 넝쿨에서 속잎을 밀치고 쌀알만하게 맺었다가 이내 콩알만 하고 밤톨만큼 자라고, 주먹만큼 굵어 사발처럼 커지고 기어이 함박으로 자란다. 썩어가는 초가에서도 박이 맺으면 굵어갈 수록 차돌처럼 여물어만 간다. 

 박이 초가지붕 위에 앉아 배꼽을 내밀고 낮잠을 자듯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어느 군자의 자세가 이보다 앞설 것이며, 동양화의 신선도를 보고 있는 것보다 마음이 편안하다. 

 이제 다 여물었을까 하고 바늘을 들고 지붕위로 올라간다. 지붕이 상할까봐 조심조심 발을 옮겨 바늘로 박의 배꼽을 살짝 찔러본다. 아직 멀었다. 며칠 후 다시 바늘로 꼬옥 찔러보면 바늘이 튕기며 들어가지 않는다. 다른 부분도 찔러본다. 역시 마찬가지다. 

 차돌처럼 단단한 박을 따서 내려와 톱으로 쪼갠다. 

 톱질을 할 때는 흥부와 놀부의 얘기를 생각한다. 이웃아이들이 구경을 오면 박속에서 금은보화가 나온다고 말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집중시킨다. 

 박을 쪼갠 뒤에 속을 보면 결실된 박씨가 박힌 속뿐이라 아이들은 웃으며 실망의 눈빛으로 돌아선다. 

 나는 군에 입대 했다. 훈련을 마치고 어느 특수부대에 배속되어 그해 봄 휴가 때 박씨를 갖고 와 철조망 밑에 수십포기 심었다. 

 박넝쿨은 철조망을 기어올랐다. 한 해 여름이지만 철조망을 온통 덮어버리고 보이지 않게 했다. 철망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마음이 풍성했다. 

 가을이 접어들때 박나물로 동료들과 즐거운 식사로 고향 풍경을 상상하는 순간도 있었다. 

 철망에 박을 올린 것은 위장술이 아니고 넝쿨과 꽃과 박을 내 옆에 두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시골을 떠났다. 콘크리트벽 속의 생활이라 박을 심을 공간을 얻지 못한다. 

 오랫만에 고향으로 가는 기회가 왔다. 차창밖 풍경은 온통 푸른색 일색이다. 멀리 보이는 시골집들에서 초가를 볼 수 없다. 박넝쿨이 기어오를 울타리가 필요없게 되었다. 

 집집마다 쓰고 있는 물쪽박은 "플라스틱" 제품이다. 

 볏짚수세미로 깨끗이 닦아 햇빛에 말리던 어머니들의 손자욱은 영영 잃어버렸다. 

 고향에 박넝쿨이 없다는 것은 내 유년의 낭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여름이 다 가기전 나에게 박의 장점을 알려주신 은사님 소식이 감감하나 찾아 뵈올 수 없다. 

 우리 2세들은 박을 모르게 되겠다. 초가지붕 위에 박꽃이 하얗게 피고 반딧불이 날아가던 그 여름밤은 전설로 간직된 것 같다. 

 올해 내 가슴 속에 뻗은 넝쿨에 흰 박꽃이 피어 굵어갈 수록 차돌처럼 여무는 박의 수확이 있을까. 가을을 맞게 되었다

 

◐ 영숙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과외가 성했던 시절이었다. 서울 최고의 학교는 경기 중고등학교였고 그 외에는 중학교가 고등학교를 들어가려면 선발고사로 뽑았기 때문에 학교에서나 개인적으로 과외를 받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밤늦게까지 6학년 담임들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했고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달빛에 뽀얀 얼굴로 초가집 지붕위에 피어있던 박꽃은 정말 예뻤다. 신비하도록 달빛에 하얗게 빛나면서 달빛을 향하여 나팔을 불듯이 꽃잎이 활짝 열려 피어있는 것을 보면 저절로 시인이 되고 싶었다. 마치 시인인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표현력이 부족해서 무엇이로든 어떻게로든 표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인가는 시인이 되어서 저 이쁜 박꽃에 대해 노래하리라 생각하고는 했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사람의 글이지만 이렇게 박꽃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 저자에 대해 정말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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