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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

새 날려 보내기

by 영숙이 2020.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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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날려 보내기>

                       (김인숙. 울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처용 수필 제2호 1996년 겨울) 

 어린 시절은 누구에게나 더없이 즐거운 기억들로 가득한 축복의 시절이다. 그리고 많은 기억들 가운데는 아무리 되새겨도 소중스럽기만 한 그런 기억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바로 이 울산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지긤보다 좁고 얕고 구불구불하던, 아름답던 태화강이 그때 내가 즐겨 찾던 놀이터였다. 이른 봄에는 강둑에서 어린 쑥을 캐고, 쑥이 꺽정이가 될 무렵부터는 햇살 따스한 모래사장에서 모래집을 짓고 놀거나 아니면 치마를 다부지게 말아 쥐고서 재첩을 주으러 무릎까지 오는 물 속으로 들어갔다. 맑은 강물이 마치 황금 고기 비늘처럼 햇살 아래 반짝이며 흐르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고, 가만히 디디고 서 있는 다리와 발이 물 속에서 이상한 모양으로 쭈글어지는 것도 재미나는 일이었다. 때마침 강을 가로질러 기차라도 덜컹거리며 지나갈라치면, 온통 흐르고 움직이는 것 가운데 서서 나는 달콤한 어지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풍덩 엉덩이를 적셔버리곤 했다. 그 틈에 치마 앞 섶에 보물처럼 소중하게 모아들고 있던 재첩들은 걸음아 - 하고 흩어져 버린다. 얼른 일어나 발 근처를 이리저리 더듬어 보아도, 재첩은 생각처럼 쉽사리 손에 걸려 오지 않는다. '어디로들 그렇게 재빨리 가버린 걸까.' 텅빈 손으로 햇살 가득한 강물 가운데 서 있는 나의 가슴은 젖은 엉덩이만큼이나 서늘한 상실감으로 떨려오곤 했다. 

 계절이 바뀌어 물기가 차갑게 느껴질 무렵이면 나는 밭두렁에서 잠자리를 시집장가 보내거나 논두렁에서 메뚜기 잡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강은 이미 나에게 잊혀져 있었다. 짧아진 해가 서쪽 하늘을 바알갛게 물들여 놓을 때면 길 옆으로 무리지어 핀 흰빛, 분홍빛, 꽃분홍빛 코스모스가 눈을 마구 때리듯 화사했다. 무엇이 어린 나를 그토록 사로잡았길래 기억 속에서 나는 종종 혼자일까? 문득 정신을 하려보면 함께 왔던 또래들은 흔적도 없는 것이었다. 불현듯 싸늘해 지는 바람과 함께 으스스 느껴지는 외로움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메뚜기가 툭탁거리는 병을 들고서 집을 향해 날 듯이 뛰어 가곤 했다. 뛰어가는 길 옆으로 키 큰 코스모스가 정신없이 스쳐가고, 황홀한 노을은 숨찬 내 가슴을 더욱 가쁘게 했다. 

 발끝에 둔한 통증을 느끼며 몸이 순간적으로 노을을 향해 뛰어오르는 느낌 뒤에 나는 잠깐 정신이 아득해 지고 말았다. 포장이 되지 않은 좁은 길에 울퉁 불퉁 박힌 돌부리 하나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일어나 앉아보니 깨진 병에서부터 튀어 달아나는 메뚜기들이 이리저리 뛰어 오르는 그 많은 메뚜기들을 넋을 놓고 바라보면서 나는 감히 상실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다고 기억한다. 

 물론 그 어린 아이가 상실이라는 단어나 그 뜻을 알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상실감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정서가 어린 가슴을 채운 경험이 꼭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뭔가를 상실해 가고 포기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어찌 생각하면, 상실없는, 즉, 버리는 과정이 없는 추구는 사람을 오히려 그로테스크하게 만들어 버리고, 보다 소중하고 값진 것에 눈멀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상실감은 우리의 가슴을 말할 수 없는 허전함과 싸늘한 외로움으로 떨게 한다. 그러나, 지나친 집착이 우리 자신을 온통 황폐하게 하지 않도록 우리는 상실의 과정, 버림의 행위가 내포한 아름다움을 때로는 받아 들여야 한다. 우리의 인생을 "경험의 모습을 한 새가 내려와 그림자 짓는 땅"이라 한 어느 예술가의 말은, 상실의 미학을 그려내는 아름답고도 적절한 비유라고 여겨진다. 

 우리가 경험의 모습을 한 새의 그림자에 연연해서 그 새를 묶어 둔다면 우리는 결국 새의 본질을 알 수 없다. 새는, 새이기에 날아가야 한다. 새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우리는 새를 날려 보내야 한다. 새는 점점 높이 날아 오르고, 마침내는 한점으로, 그리고 이윽고 사라진다. 우리는 그렇게 새를 날려 보냄으로써, 그 새 - 경험의 실체-를 보다 잘 이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또 보다 큰 날개를 지닌 멋진 새가 앉을 마음의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태화강에서 조개를 잡고 송사리를 쫓으며 놀았던 물맑은 강물이었다는 이야기가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신기하다.

  처음 울산에 왔을 때 태화강은 발을 담그면 안되는 공해물질이 섞인 오염수였었다. 아이들이 피부병에 걸렸는지 조사하던 시절이다. 그후 건축자재가 모자라 태화강의 모래를 퍼내어 건축을 하던 시절이 지나가고 한때 카누 경기를 하기도 했었다. 

 전설로만 듣던 내용을 글로 읽은 것이다. 

 그 어렸을 때의 추억을 경험으로 바꾸어 인생에 대입한 것은 정말 놀랍다.

 

 나이가 들면 변화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다보면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기 마련이다. '나때에는 말이야! 어쩌구 저쩌구 ~'

 우리는 과거를 살아서도 미래를 살아서도 안된다. 지금 현재를 살아야 한다. 혹 기억하고 싶으면 어렸을 때의 좋은 기억만 남겨두고 ~ 그게 쉽지만은 않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더 크고 좋은 것을 위하여 ~ 

 나도 오랫동안 초등학교 1학년 때 혼자 집에 남겨졌던 일이 잊혀지지 않고 꿈속에서나 문득문득 혼자 있을 때면 의식의 표면에 나타나고는 했었다.  때때로 쓸쓸하게 혼자 있는 내속에 어린 아이 모습을 바라 볼때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래서 누군가가 박수쳐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친정 엄마나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집착했던거 같다. 

 예수를 믿으면서 많이 벗어났지만 쓸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 은혜로 티스로리에 글로 풀어내면서 벗어났다. 

 작가의 말처럼 ~ 우리는 그렇게 새를 날려 보냄으로써, 그 새 - 경험의 실체 - 를 보다 잘 이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또 보다 큰 날개를 지닌 멋진 새가 앉을 마음의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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