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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카디자 윌리엄스

by 영숙이 202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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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자 윌리엄스>  

                                      출처 :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라)를 보고 있다가 설교 중간에 영상이 나오는 걸 보게 되었다.

 카디자 윌리엄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영상에 나온 대로 적어 본다.◑     

 

 카디자 윌리엄스(Khadija Williams 1991 ~ )

 

 뒷골목 노숙자에서 하버드 장학생까지(from a backstreet homelees to a Harvard scholarship student)

 

 "미혼모인 저의 어머니는 14살 나이에 차가운 쓰레기더미에서 저를 출산했습니다." "My mom, a single mother, delivered me in the cold garbage, at the age14"

 

 두 모녀는 뉴욕의 거리를 전전했고 쓰레기를 뒤지며 굶주림을 해소

mother and daughter wandered around the streets of New York and filled their stomachs with trashes.

 

 노숙자 쉼터나 값싼 모텔을 찾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다.It was almost impossible to Find places like a homeless shelter or affordable motel room

 

 차가운 길바닥과 냄새나는 뒷골목이 그들의 쉼터 Their shelters were the cold street and stinking back allays.

 

 "저의 집주소는 항상 항상 어느 식당 뒷골목이었고 어느새 제 이름은 노숙자가 돼 있었습니다." "My address always was any back alley of some kind of restaurant and my name was a  homeless before i became aware of."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However, she didn't give up her life.

 

 한달에 5권의 책을 읽고 길거리에 굴러 다니는 뉴욕의 모든 신문을 정독She read five books in a month and carefully read every kinds of New York's newspapers rolling around the streets

 

 

 "거리에 길바닥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공부방이었습니다."

 " for me, the street was the largeststudy room in whole world. "

 

 

 "저는 꿈이 생겼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운명을 바꾸고 가족이 더 이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꿈 Her dream was to change her destiny by going to college and

her family no more be conscious of the eyes of other people.

 

 하지만...But

 

  "노숙자 주제에 대학은 꿈도 꾸지마라" 주변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비아냥 "Never dream of a college know yourself , a homeless girl" People around her mocked the girl's dream saying It's impossible to happen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등교, 밤 11시가 되어서야 귀가. "I studied hard with all my strength" She work up at 04:00 in the morning and came to school, and came back home at 23:00 in the night. 

 

 고교시절 4.0에 가까운 학점 유지. 토론 동아리, 육상팀등 다양한 학교 활동에도 참가 She maintained the school marks that near the score of 4.0. and participated various school activities such as the debate club, the track and Filld team

 

 

드디어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 Eventually, small began to happen

 

 "저를 믿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복지단체, 사회단체가 카디자 윌리엄스를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The walfare group and social Organlzations began to support Kadiza Wiliams enthusiastically. "I finally got the people who have their trust in me"

 

 결국 At lest,

 

 브라운, 칼럼비아,암허스트등 미 전역의 20여개 대학으로 부터 합격통지 

  She got the letter of accoptance frrome appromimately 20 universities of all parts of America such as Brawn, Columbia, Amherst.

 

노숙자였던 과거를 떨치고 하버드 4년 장학생으로 당당히 입학. She proudly entered Harvard as a full scholarship student. throwing off her past as a homeless girl..

 

 

 "남들이노숙자니까 그래도 돼"

 라고 말하는게 너무나 싫었습니다.

 I too much hated to hear others saying

 " it's alright, it's okay with such people like you. ahome less. "

 

  "전 가난이 결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I think the poverty never can be an excuse" 

 

 "제 이름은 카디자 윌리엄스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저를 노숙자라 부르지 않습니다. "My name is Kadiza Willams." No more the people call me a homeless.

노숙자였던 카디자 윌리엄스의 인간승리
                                        출처 : 사단법인 대한안전문화협회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꿈은 자란다.]

 저의 어머니는 14살 때 차갑고도 차가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저를 출산하였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뉴욕의 거리를 전전했고, 무료급식과 쓰레기를 뒤지며 굶주림을 해결했습니다.
 전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길거리에서 키워졌습니다.
 값싼 모텔과 노숙자 쉼터를 찾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고, 대부분 차가운 길바닥과 냄새나는 뒷골목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집 주소는 언제나 뉴욕 어느 동네의 식당 뒷골목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이름은 '노숙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전 공부가 좋았습니다.
 가진 것 없는 제가 그나마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서는 한 권의 책을 더 읽고 한 번 더 생각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텐트촌에서 어머니와 저는 두 모녀가 감수해야 할
위험한 시선을 참아내며 필사적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12학년을 다니는 동안 12곳의 학교를 옮겨 다니며 공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한 달에 5권의 책을 읽었고 뉴욕의 모든 신문을 정독했습니다.
 거리의 길바닥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공부방이었습니다.

 꿈이 생겼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나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는 꿈!
 우리 가족이 더이상 남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는 꿈!
 "노숙자 주제에 대학은 꿈도 꾸지마라."
 사람들은 항상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노숙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머리를 단정하게 했고,
 옷도 언제나 깨끗하게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11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께 이사를 하더라도 더 이상 학교는 옮기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대학을 가려면 저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의 추천서가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학교에 갔고 밤11시가 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4.0에 가까운 학점을 유지했고 토론 동아리 참여, 육상팀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학교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모든 곳이 저에겐 배움의 장소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복지단체들이 장학금으로 저를 도와주기 시작했고, 사회단체들이 절 지켜봐 주었습니다.
 절 믿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 인생과 운명을 바꾸기 위해 앞만 보고 꾸준히 달렸습니다.
 그리고 전 결국 하버드,브라운, 컬럼비아,암허스트 등 미 전역의 20여개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아냈습니다.

 '그녀를 합격시키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제2의 미셸 오바마를 놓치는 실수를 하는 겁니다."

 카디자 윌리엄스!
 노숙자 였던 저는 지금 하버드의 4년 장학생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에 언제나 자신감을 가졌어요.
남들이 '노숙자니까 그래도 돼.'라고 말하는 걸 너무나 싫어해요.
전 가난이 결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사람들은 저를 노숙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꿈을 현실화 시켰으며,
 지금은 더 큰 꿈을 향해 가고 있으며,
 하버드 대학의 장학생이 되어있습니다..

 다음은 인터넷 조선일보에서 가져온 내용이다. 국내에서 ‘금수저’에게 유리한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학종) 논란이 한창이다.

 한국 학종의 모태인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미국에서는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큰딸 말리아가 하버드대를 낙점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은 스탠퍼드대에 입학했다. 조지 부시의 쌍둥이 딸은 아버지의 모교 예일대와 아버지의 정치적 고향에 있는 텍사스대를 선택했다. 미국에서 유력 정치인이나 재력가의 자녀가 명문대를 골라 가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소수자 우대정책이 잘 정착돼 있다곤 하나, 정성평가를 중시하는 입시제도는 미국에서도 금수저들을 더 우대한다.“노력이 환경을 이긴다”는 주류의 충고를 입증하듯 기회를 쟁취하는 ‘흙수저’는 어디나 있다.

 미국에는 극적인 예로 2009년 20여개 명문대에서 입학 허가를 받고 하버드로 간 홈리스 소녀가 있었다. 하버드 입학사정관이 학교 당국에 “그녀를 합격시키지 않는다면 제2의 미셸 오바마를 놓치는 실수”라고 경고했을 정도였다.

 카디자 윌리엄스, 어머니가 홈리스였고 아버지는 누군지 몰랐다. 열네살이 많은 엄마를 따라 떠돌며 초중고 12년간 12번 전학을 다니다 하버드에 입학했다. ‘아이 캔 두 잇’ 신화의 전범을 발견한 미국은 열광했다. 변호사가 되겠다던 카디자는 최근 워싱턴 디시(D.C)의 교육 공무원이 돼 홈리스 아이들을 돕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최악의 환경에서도 노력으로 꿈을 이뤘다는 ‘신화 같은 실화’는 많은 이들을 자성으로 이끈다.

 하지만 금수저가 아니어도 최선만 다하면 하버드로 상징되는 어떤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채찍질’의 끝에는 오아시스가 아닌 신기루가 있을 공산이 크다.

 조악한 통계를 만들어보자면 20여년간 재임한 세 미국 대통령의 자녀 5명 중, 어린 사샤 오바마를 뺀 4명이 명문대에 진학했다. 100%다.

 미국에는 12만3천명의 아이들이 홈리스로 추산된다. 카디자 같은 사례는 카디자 1명, 0.0008%다. 그 전에도 후에도 비슷한 사례는 알려진 게 없으니, 확률은 더 낮아질 것이다.

 홈리스보다 형편이 낫다고 해서 보통 아이들의 성공 확률이 0.0008%에서 100%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진 않는다. 카디자가 바늘구멍을 뚫은 과정은 범인의 한계를 벗어난 위인의 영역에 가깝다. 카디자는 초등학교 때 캘리포니아주 상위 1%에 드는 영재였다. 거리에서도 한 달에 네댓 권의 책을 읽고, 뉴욕의 모든 신문을 정독할 정도로 공부를 좋아했다. 대학은 꿈도 꾸지 말라는 조롱에도 위축되지 않았다. 매일 새벽 4시에 등교해 밤 11시에 하교했다.

 홈리스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아이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증가와 뇌 손상 등 회복하기 힘든 트라우마 탓에 정상 발달이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물질계의 이런 ‘자연 현상’마저 극복한 카디자는, 정신력의 천재였다.

 한국에서도 카디자가 대입 자기소개서 모범답안으로 언급되지만, 미국 천재의 신화는 한국의 보통 아이들한테 채찍이 될 수 없다. 다만 카디자의 재능과 노력을 뒷받침한 미국의 교육 제도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카디자는 토론 동아리와 육상팀 등 다양한 ‘교내 활동’에 참여했다. 교사는 성심성의껏 추천서를 썼고, 대학은 이를 인정했다. 카디자가 새벽 4시에서 밤 11시까지 학교에 있었던 건 학교 안에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17시간씩 노력하면 하버드도 갈 수 있다고 독려하기 전에, 수능이든 학생부든 대입 전형부터 학교 교육과 활동에 최적화시키는 것, 수저 차별의 폐해를 줄이는 ‘대입 정상화’의 첫걸음이다.   

 

 ◐ 요즘 20대의 취업난이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제가 되어 있다. 생활하는게 불편하지 않은 20대들이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3D 업종은 인력난을 겪고 있다. 20대들을 탓한다고 이런 현상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줘야 한다. 

 

 100세 시대.

 

 다음 세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주고 밀어주고 이 사회를 이끌어 가도록 기성세대들이 손을 잡아줘야 한다.

 

 "잘하고 있어. 잘했어."

 

 끊임없이 박수를 쳐주고 계속 배우고 노력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분명 열심히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해주고 밀어줄 때에 언제인가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서 우리 모두 윈윈하는 시간들이 올 것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 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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