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전체 글 2050

또순이 어렸을 적에 19 - 성적

56 필순이 자동차가 다니는 큰 도로 건너편에는 제법 고풍스러운 한옥이 있었고 잘 꾸며진 큰 대문에 동그랗게 만들어진 정원에는 작은 분수까지 나오는 부잣집아이 이름이 필순이다. 귀염성 있는 하얀 얼굴에 어울리는 빨간색 옷을 자주 입었는데 귀티가 흐르고 부잣집에 어울리는 부잣집 아이처럼 보였다. 필순이네 대문 앞에는 도로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긴 나무 벤치가 양쪽으로 2개 놓여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가끔 앉아서 담소를 주고받는 곳이다. 얼마나 오래되고 사람들이 많이 앉는지 나무의자가 빤질빤질 윤이 나고 촉감도 매우 좋아서 또순이도 자주 그곳으로 필순이를 만나러 갔다. 대문간에서 기웃거리고 있으면 마당에서 놀고 있던 필순이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문 앞 의자로 나왔다. 만나기만 하면 필순이가 하는 동네 사람..

또순이 어렸을 적에 17 - 주인 집

50. 행려병사자 또순이 어렸을 적에는 길에 가끔가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시장이나 골목이나 이런 곳에 저녁에는 술 취한 아저씨들이 쓰러져 있었고 새벽에는 길에서 자던 사람들이 의식이 없이 누워 있기도 하였다. 보릿고개에는 먹을 게 없어서 사람들이 부황 떠서 굶어 죽던 시절이었다. 지금 아이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 왜? 라면 먹으면 되지? ' 그 시절에는 아직 라면이 나오던 시절이 아니다. 혹여 나왔더라도 삼양라면은 서민의 음식이 아니라 여유 있는 집의 먹기 어려운 식품이었다. 콩나물을 사려고 추운 새벽에 집을 나섰는데 가게가 있는 도로 옆에 나이 지긋한 뚱뚱한 할머니 한 분이 누워 계셨다. ' 아줌마 저기 할머니가 누워 계셔요! ' 가게 주인에게 이야기했지만 아주머니는 내다보는 ..

또순이 어렸을 적에 18 - 교회

53 . 크리스마스와 교회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는 어느 날 누구인가? 주인 집 딸 들이었나? 하여튼 크리스마스에 교회에 가면 노트와 공책을 선물로 준다고 하였다. 또순이도 연필과 공책을 타기 위하여 산꼭대기에 있는 교회로 갔다. 꽤 먼 거리로 산꼭대기에 외따로 서 있는 교회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늦어서 헉헉거리며 언덕을 올라 교회에 갔다. 오래된 갈색 체크 양복을 입은 영화나 소설 속에 주인공으로나 나올 법한 마르고 초췌한 인텔리틱한 아저씨가 앞에 있는 나무 탁자 앞에 서서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 이름을 불린 아이들이 마룻바닥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또순이와 아이들 사이에서 나가 노트와 연필을 받아 가지고 돌아와 앉았다. 또순이 빼고는 전부 이름이 불리어 나가서 공책과 연..

또순이 어렸을 적에 16 - 담양 엄마 집

47. 담양 엄마 집 여름 방학이 되어 막내 이모랑 담양 엄마네 집에 갔다. 집은 나무로 만든 집이었고 높다란 누마루에 마당에는 맨드라미와 봉선화가 피어 있었고 양철 대문에 담벼락은 호박이 열리는 호박 넝쿨이 무성한 잎사귀를 달고 덮여 있었다. 저녁 해 질 무렵 막내 이모랑 석양이, 분홍빛이 가득 채워진 너르디너른 들판 한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석양 속으로 들어 갔었다. 한참을 가다가 뒤돌아보면 동네가 옹기종기 모여 저녁 짓는 연기를 내고 있었고 또순이는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두 번은 볼 것 같지 않아 열심히 눈에 담았다. 호박 잎을 따오라 해서 담에 붙어 있는 호박 잎을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으로 골라 껍질을 벗겨 갖다 주면 엄마는 밥 위에 얹어 쪄서 밥상 위에 반찬으로 올려놓았다. 호박잎에 밥을..

또순이 어렸을 적에 15 - 창호지 유리창과 꽃

44. 연못 마름 캐기 가뭄으로 연못 물이 빠져서 바닥에 진흙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연못으로 몰려 갔고 또순이도 아이들을 따라 진흙이 드러난 연못으로 들어갔다. 흙탕물이 허리 까지 오는 연못 바닥에서 까만 마름 열매를 건져내었다. 양쪽에 뿔같은 것이 달린 까만 마름 열매를 까면 하얀 가루가 맛있었다. 배꼽까지 차는 흙탕물 속에서 첨벙 거리며 많은 동네 아이들이 진흙을 파헤치고 마름열매를 캐고 헤엄치면서 놀았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동네 어른이 지나가면서 연못에서 다 나오라고 소리소리를 질렀다. 또순이도 아이들과 같이 연못 진흙탕 물 속에서 나와 연못 옆에 우물이 있는 집으로 씻으러 갔다. 또순이는 아래 쪽이 가려워서 걸어가면서 손가락을 집어 넣어 긁었는데 거기에서 까만 거머리가 잡혀 나왔다. ‘..

또순이 어렸을 적에 14 - 과수원

40. 소시장 외할아버지가 암소를 팔고 송아지로 바꾼다 하여 똑순이도 따라 갔다. 옥천 장에는 소를 사고 파는 꽤 큰 소 시장이 따로 있었다. 커다란 황소, 암소들 사이사이에 송아지들까지 100여마리 넘게 커다란 눈망울로 이리저리 둘러보며 불안한 모습으로 말뚝에 매여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암소를 가까운 빈 말뚝에 매어 놓고,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잡담하는 아저씨들 옆으로 갔다. 똑순이는 이렇게 많은 소들을 처음 봤다. 좋은 가격을 받으려고 깨끗하게 단장하고 팔려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책에서만 보았던 노예들의 모습이 저랬을까? 외할아버지 뒤를 따라 오면서 슬퍼 보이는 암소의 눈망울 때문 에 외할아버지네 암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내내 생각했었다. ‘ 할아버지 소는 무슨 생각을 해요? ’ ‘ 소는 생..

또순이 어렸을 적에 13 - 명돌이 오빠 결혼식

37. 명돌이 오빠 결혼식 마을 회관 옆 아이들 놀이터 무덤 위에 있는 명순이네 명돌이 오빠가 장가를 간다고 한다. 동네에서 구식 결혼식을 하기 때문에 동네 관심사가 되었다. 결혼식 전날 명돌이 오빠가 술에 취해 온 동네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작은 얼굴의 명돌이 오빠가 동네 길을 전속력으로 달리고 무너진 담을 훌쩍훌쩍 뛰어넘으며 괴성을 질러대자 마을 어른들이 한마디씩 했다. "아비 없이 커서 그래!" "내일 장가간다고 하니까 싱숭생숭 한가부네!" 결혼식은 새 색시 집에서 구식으로 했다. 외갓집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서 막다른 집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모여 있었다. 결혼식에 참석한 어른 들은 아래 위로 하얀 무명 한복을 떨쳐 입고 간밤에 온 비 때문에..

또순이 어렸을 적에 12 - 대보름 농악대

34. 암소 외 할아버지가 송아지를 샀는데 암소였다. 정말 지극정성으로 돌보아서 커다란 암소가 되었다. 당시 시골에서 유일하게 쉽게 현금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소였고 그만큼 큰 재산이어서 애지중지. 사실 암소는 송아지를 낳는다는 거 외에는 고랑을 판다든지 논에 써래질을 한다든지 하는 것이 황소보다 못하기 때문에 큰 모험이었다. 드뎌 송아지를 낳기 위하여 동네 마을 회관 마당에서 황소와 만나기로 하였다. 날짜와 시간을 잡아 사람들이 모여들고 똑순이 눈에는 태산같이 커다란 부리부리 황소와 크기만 하지 여리여리 꿈벅꿈벅한 외 할아버지네 암소가 회관 마당에 서 있었다. 지금은 다 가축병원에서 해결하겠지만 그 당시는 정말 소들의 구식 결혼식이었다. 모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커다란 부리부리 황소가 도망만 다니던 여..

또순이 어렸을 적에 11 - 자치기

31. 정월 대보름 달빛이 눈부시게 마당으로, 지붕으로, 길로, 들판으로, 산등성이로 쏟아져내렸다쏟아져내렸다. 정월 대보름의 눈부신 달빛이 온 세상을 점령하였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좀 떨어진 동네 어귀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서낭당에 모여 있었다. 돌탑 아래에는 낮에 외갓집 정지에서 찌던 시루떡이 놓여 있었고 그 앞에 외 할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소지 종이에 불을 붙여서 동네의 평안을 빌면서 농사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마지막 남는 작은 불꽃을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계속해서 소지 종이에 불을 붙이고 기도를 중얼거리면서 작은 불꽃을 띄워 올리는 외 할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다. 내가 알던 외할아버지 모습이 아니었다. 또순이도 다른 동네 아이들과 같이 길게 줄을 서서 외할아버지 소지 올리는 일이 끝나기를 ..

또순이 어렸을 적에 10 - 환갑잔치

28. 외 할아버지 환갑잔치 사랑방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서 외 할아버지와 밤도 깎고 사과도 깎고 배도 깎고 있었다. 깎아 놓은 밤톨을 입안에 넣고 먹으면서 동그랗게 깎아서 접시에 높이 ~ 높이, 산처럼 높게 쌓는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였다. 마당에 천막이 쳐지고 방에 커다란 상이 놓이고 엊저녁에 깎아놓은 밤, 사과, 배, 대추들과 시루떡과 고기와 여러 가지 음식들이 접시에 높이 ~ 높이 차곡 차곡 예쁜 모양으로 산 같이 쌓여서 상위에 놓이고 그 상 앞에 곱게 입은 외 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앉으셔서 고운 옷을 입은 이모들과 외삼촌이 절하는 것을 받으셨다. 내가 잘 모르는 친척 분들도 그 앞에 나아가 절을 하였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흡족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계셨다. "화자야(또순이 아명) 너도..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