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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면사무소 뒤편에는 흰 페인트가 칠해진 서양식 건물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크고 넓은 창마다 하얀 커튼이 깨끗하게 묶여 있었고, 오래되었지만 정갈한 인상을 주는 건물이었다. 주변으로는 낮은 돌담과 작은 대문이 정원을 감싸고 있었다. 보건지소와 면사무소 사이의 그 정원에는 잘 가꾼 화단과 깔끔한 산책로가 있고, 정원 한켠에는 키 큰 왕버드나무 한 그루가 봄바람에 가지를 한들거리며 서 있었다.
이선우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의사로, 몇 달 전 이 작은 보건지소로 잠시 파견을 나와 있었다. 성실하고 똑똑했지만 과묵한 성격의 그는, 낯선 시골 생활 속에서 왠지 모를 공허함과 무감각을 느끼며 지내고 있었다. 한적한 농촌의 고요함은 처음엔 여유롭기보다도 적막하게만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과를 충실히 해내면서도 마음 한켠이 텅 빈 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보건지소 안에는 두 명의 나이 지긋한 간호조무사가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새로운 간호사 이봄이 부임해 왔다. 이봄은 이름처럼 밝고 친절한 젊은 여성으로, 환자들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고 동료들의 마음도 세심하게 살폈다. 조용한 보건지소는 그녀가 온 뒤로 한결 부드러운 활기가 감돌았다. 선우는 매일 아침 마주치는 그녀의 환한 인사에 무심히 답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굳은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끼곤 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오후, 선우는 진료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다 말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따라 환자도 뜸하고, 보건지소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 적막한 공기에 잠시 울적해진 그는 손에 들었던 펜을 내려놓았다. 문득 갑갑함을 달래고 싶어, 선우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출입문을 밀고 정원으로 나오자 은은한 햇빛과 함께 산들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졌다. 선우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단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 있었고, 푸른 잔디밭은 해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왕버드나무의 긴 가지들은 바람을 타고 유유히 흔들리며 잎새를 반짝이고 있었다. 선우는 한 걸음 한 걸음 정원을 거닐다가, 그늘진 나무 아래쪽에 누군가의 모습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왕버드나무 아래 놓인 작은 나무 벤치에는 이봄이 혼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평소 환하게 웃으며 분주히 일하던 그녀는, 지금은 두 손을 단정히 모은 채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람에 몇 가닥 머리카락이 흩날렸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햇살이 그녀의 옆얼굴을 부드럽게 비추고, 나뭇잎 그림자가 얼굴에 얼핏 얹혀 있었다.
선우는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내 용기를 내어 천천히 다가갔다. 마른 잔디가 발밑에서 바스락거리자 이봄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선우를 보자 그녀의 입가에 금세 밝은 미소가 번졌다. 이봄은 벤치 옆을 가리키며 다정하게 눈짓했다.
"선생님도 잠시 쉬러 나오셨어요?" 그녀가 먼저 조용히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맑고 다정했다. 선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네, 좀 답답해서요." 그는 멋쩍은 듯 대답하며 벤치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봄 씨도 여기서 뭐 하고 있었나요?"
이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손바닥으로 받았다. "가끔 이렇게 나와요. 저도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요." 그녀는 손바닥 위에 떨어진 작은 햇빛 조각들을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이 나무 아래에 있으면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아서요."
선우는 그녀의 옆모습을 흘낏 바라보았다. 잔잔한 미소를 띤 채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한결 평온해 보였다. 한동안 말없이 함께 바람 소리를 듣다가, 이봄이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은… 요즘 어떠세요? 많이 적응되셨어요?"
그 질문에 선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될지 망설여졌다. 이내 그는 시선을 땅으로 떨어뜨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그냥 매일 똑같은 날들의 반복 같아서요." 뜻밖의 속내 고백에 본인도 약간 놀란 듯, 선우는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가끔은 제가 여기서 제대로 지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이봄은 이해한다는 듯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진심이 묻어났다. "도시에 있을 때는 이렇게 조용하면 오히려 불안할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여긴 처음 와보니… 참 적막하더라고요."
선우는 이봄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녀는 살짝 미소지으며 계속했다. "근데요, 어느 날부터인가 이 적막함 속에서 오히려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시선이 멀리 정원 너머로 향했다.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 새들 지저귀는 소리, 가끔씩 들리는 마을 어르신들의 웃음소리…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으면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요." 이봄은 눈을 다시 선우에게로 돌리며 말했다. "그 작은 소리들이 제가 여기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더라고요. 오히려 그 고요함이 이제는 편해졌어요."
선우는 그녀의 말에 조용히 귀 기울였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만히 집중하자, 정말로 그제야 여러 소리가 귓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귓전에 스치는 산들바람 소리, 나무 가지들이 부딪히며 내는 사르락거림, 멀리 면사무소 쪽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그동안 그는 이런 소리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선생님 오시고 나서 다들 좋아하셨어요." 고요를 깨고 이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선생님 이야기 참 자주 하세요. 든든하다고요." 선우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들었다. 이봄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지난번 허리가 아프셨던 박 할아버지도 선생님 덕에 많이 나아지셨다고 했어요.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 와 계셔서 참 다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요…?" 선우는 모르고 있던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저 묵묵히 일할 뿐이라고 여겼는데,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위안이 되고 있었다니. 순간 가슴 한켠이 뭉클해졌다. 그는 알 수 없는 쑥스러움에 시선을 돌리며 작게 웃었다. "저는 그냥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런 당연한 일을 해주는 사람이 여기엔 필요했거든요." 이봄이 부드럽게 말했다. 선우는 그제야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둘 사이에 다시 말없이 잔잔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제 그 적막이 전처럼 낯설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선우는 이봄과 함께 살랑이는 왕버드나무 가지를 올려다보았다. 따뜻한 봄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와 두 사람의 어깨를 포근히 감싸주고 있었다.
선우는 옆에 앉은 이봄을 향해 미소 지었다. 마음속 어딘가 단단히 얼어 있던 부분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고맙습니다, 이봄 씨." 그는 조용히 말했다. 무엇이 고마운지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이봄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선우는 자신 안에서 무언가 달라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때 공허하기만 하던 시골의 정적 속에서 이제 그는 작은 온기와 살아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흰 보건지소 뒤뜰의 오래된 왕버드나무 아래, 봄날의 부드러운 바람이 두 사람 곁을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홀로선 버드나무란 소설을 수정해야 하는데 막막했다.
어떻게 수정하지?
명품과 명품 아닌 것의 차이는 한끗 차이라고 한다.
한끗 차이.
한끗 차이를 찾기가 힘든 것이다.
노트북으로 이렇게 저렇게 편집하고 써 봐도 그 나믈에 그 밥이었을 뿐.
손 놓고 있다가 챗봇에게 도움을 청했다.
즉각적이고 완벽한 답.
좀 무서워지기도 했지만 조금씩 사용 방법을익히는 중이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원하는 방향의 단편이 나와서 여기에 올려 본다.
즐감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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