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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3

스물세살의 수채화 13. 지소장의 떠남 가뭄을 달래는 오랜만의 단비로 이 작은 산골도 무척이나 바빠졌다. 모심으랴 물 대랴 농사일들이 태산이다. 사무실로 면사무소의 한서기가 면장님이 안양과 곽양 언니를 부른다고 데리러 왔다가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을 보고 영숙이랑 면사무소 이야기를 하다가 갔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영숙이랑 초등학교 동창인 김기남이 여기 청성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군대를 갔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이 동네 아가씨랑 사귀다가 군대를 갔는데 이번에 그 아가씨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 기남이가 여기 면사무소에 근무를 했었구나. 아들을 낳았구나. ~ 기남이는 옥천군 군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반장이었다. 그 애가 아파 3월 한 달 내내 학교에 안 나와서 우리 반 아이들이.. 2022. 8. 21.
스물세살의 수채화 14.순진컨셉 영숙은 이즈음 간간히 통증이 오는 오른쪽 가슴과 한두 번 나오는 기침에 왠지 모를 불안을 느낀다. 불안.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얀 밤톨 속의 하얀 벌레처럼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파먹고 있는 벌레. 바람 한가운데서 영숙은 바람이 더 세게 부는 소리를 듣는다. 영숙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었다. 불과 몇시간 전 수경이에게 한턱냈던 일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집에서나, 미장원에서 머리 할 때나, 아는 아저씨를 만나 몇 잔의 술잔을 홀짝이고 나이트에서 춤을 출 때에도 수경이는 자신의 순진을 자부했고 실제로 순진해 보였다. 순진해 보이는 것이 특기인 순진파 형 아가씨. 수경이가 영숙이를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 2022. 8. 20.
스물세살의 수채화 스물세살의 수채화 12. 출장 여름. 영숙은 여름이 좋다. 땀을 흘리면 마음속에 쌓여 있던 잔티들이 땀 속에 섞여 몸 밖으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 같다. 동글동글한 햇볕이 시멘트 위에 쏟아져 내리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어찔어찔 현기증을 일으키면서 살아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가장 좋은 것은 가을이 곧 올 것이라는 것일게다. 뜨거운 여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결실이 있다. 그 시원한 계절과 청량한 하늘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여름이 좋았다. 아직도 여름의 아우성이 한창인 8월. 영숙이가 보건지소에 온지 아직 한달이 지나지 않았을 때다. 보건 지소에서는 한 달에 보름 이상을 출장 가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임 발령자. 만명리까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출장을 갔다. 자전거를 타고 가.. 2022. 8. 20.
스물세살의 수채화 11.향기 세숫대야에다가 물을 담아 난로위에 올려 놓고 윤선생님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체 연통 옆에 서서 어두워 오고 있는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겨울의 어둠은 날씨가 아무리 따뜻하다고 하여도 어김없이 일찍 찾아와서 이 조그마한 사무실을 부드러운 검은 휘장으로 둘러싸 버린다. "뭐하시려고요? " "발 씻으려고. 집에 가서 씻으려니까 귀찮아서. " 물이 적당히 데워진 세숫대야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선생님은 매맞기 위해 조심스럽 게 손을 내미는 아이처럼 바지 끝을 올리고 천천히 양말을 벗기 시작한다. 네 개의 시선이 선생님의 손 끝을 따라 움직인다. 발은 어제 목욕한 것처럼 깨끗해서 오랜만에 100점 맞아 의기양양해하는 어린아이처럼 영숙이를 올려다보곤 크게 웃음 짓는다 만족스러운 몸짓으로 손을 넣..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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